그러나 방랑자는 번번이 기대가 빗나가도 여행의 수고와 고난을 견뎌낸다. 방랑의 온갖 고통스러움이 고향의 계곡에서 평화를 찾는 것보다 더 편안할지니. ...... 행복한 순간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나는 그저 손님일 뿐, 결코 주인은 될 수 없기에. (30)
"당신은 착각하고 있어요. 고향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집에 돌아가서도, 식구들과 함께 있어도 당신이 지금 체험으로 알게 된 이 뿌리뽑힌 느낌을 종종 갖게 될 겁니다. 한 남자에게 고향은 그가 일하고 또 뭔가 소중한 것을 이루는 곳에만 있습니다. 그 소중한 것 없이는 어디서도 편안할 수 없지요. 혹 괜찮은 일을 하거나 설령 그가 자기의 가족과 만족을 위해 일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는 인간을 위해 일하지요. 그 대가로 일하는 것 자체의 기쁨을 얻지요.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동지요, 형제들입니다." (48)
좀처럼 오지 않는, 오래 고대해온 순간이 왔다. 난 수천으로 갈라지는 하얀 번갯불 속에서 원시림이 자기만의 신비스러운 힘을 망각한 채 지독한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뭔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것은 내가 알프스의 협곡을 들여다보았을 때, 폭풍우 이는 바다를 항해했을 때, 스키장에 높새 바람이 불어닥쳤을 때, 그러니까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자꾸만 체험하려 했던, 살아오면서 수천 번 들었던 그것과 너무나 똑같았다. (84)
가장 고약스러운 것은 교회다. 고요하고 우아한 야자나무 숲에서, 어여쁜 말레이 마을 골목에서, 고상하게 단색으로 통일된 중국인 거리에서 서구의 문화적 무능력이나 설교하는 족보도 없는 영국식 고딕 교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불결함과 고열 못지않게 인도 여행에서 겪는 당혹스러움 중의 하나다. 나도 유럽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다. ... 어제 완공된 말레이식 집은 석달만 지나도 날씨에 따라 색이 바래 어느새 마치 50년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완전히 뿌리를 내려 주위에 동화될 것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공사관저라든가 영국식 교회, 프랑스식 천주교 학교 건물은 마침내 수명이 다하고 그 구성 요소를 자연에 환원시키기 전에는 눈엣가시처럼 결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없을 것이다. (105)
인간은 한층 진보되었다. 온 인류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이 두 존재를 무조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피 흘리는 십자가 상의 예수도, 완벽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부처도 필요없다. 우리는 그들을 포함해 다른 신들도 극복해서 마침내 이들 없이 살 수 있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하나 훗날 신을 모르고 자란 우리 자손들이 내면을 나타내는 분명하고 위대하고 확고한 기념비와 상징물들을 이룩할 용기와 희열, 그리고 영혼의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또한 매우 훌륭한 일일 것이다. (183)
아침식사 때 하젠프라츠씨가 중국인 웨이터에게 나이프를 새로 달라고 했다. 그 웨이터가 하는 말이, 새것은 더 이상 없으니 치즈 접시에 있는 나이프를 쓸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당돌한 지적 때문에 그 웨이터는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영국인들에게 잘못 길들여진 싱가포르 출신의 원주민들에 대한 성토로 한참 동안 시끄러웠다. 반면 네덜란드인들 밑에 있는 원주민들은 잘 훈육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양 있고 싹싹한 백인들조차 너무나 당연하게 원주민들을 몸종들인 양, 혹은 아주 미개한 종족들인 양 대하는 걸 보고 거듭 놀랐고, 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268-9)
이제 왕은 그 많은 군중 한가운데에서 점점 더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하였고, 자신의 모든 감각을 닫아버린 채 불타오르는 의지를 오로지 진리로만 향하였다. ... 그리고 그가 아무런 오점도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내면에 깃들게 되자 왕은 점점 더 많은 만족과 밝은 빛을 자기 자신 속에서 발견했다. ...... 그의 감각들이 단일성으로 융합되고 내면으로 향한 왕은 진리 그 자체를 보았다. 떼어놓을 수 없는 이 진리는 달콤한 확신으로 그에게 파고든 순수한 빛으로서 마치 태양 광선이 보석을 파고드는 것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 자신이 빛과 태양이 되고, 창조자와 피조물이 내면에서 거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그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 차고, 이마는 별처럼 반짝였다.. 그는 옷을 벗어놓고 사원을 떠났다. 도시를 떠나고 왕국을 떠났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 숲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343)
소박하고 순수한 젊은이로서 그는 철학적인 욕구는 없지만 재능 있는 눈과 손으로써 자기에게 제공되고 있는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하고 인식하고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에서 훨씬 더 완전한 만족감을 느꼈다. 소년이었을 때 그는 꽃을 기르고 식물을 채집했으며, 그 다음에는 한동안 돌과 화석물에 열렬히 몰두하면서 아름답고도 예감으로 가득 찬 자연의 형태 유희를 공경하게 되었다. 특히 이 시골에 머무르게 되면서부터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다양한 색깔의 곤충의 세계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비였다. 애벌레와 번데기 상태에서 오색찬란한 나비로 변신하는 것은 언제나 그를 진정으로 황홀하게 하였고, 그 나비를 멋지게 그리며 온화하고 만족스럽게 색깔을 융합하는 일은 그에게 정말로 순수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런 기쁨이란 별로 유능하지 못한 인간이 그저 아무런 욕심도 없는 유년 시절에나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과 같은 것이었다. (365)
이 수백 가지 신들에 대한 예배와 사원들과 승려단들은 만족스럽게 나란히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한 종교의 신봉자는 우리 고향의 기독교 국가들에서 습관이 되어 있는 것처럼 다른 종교의 신자를 증오하거나 때려 죽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피리 연주 음악과 온화한 헌화 등 많은 것들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아주 많은 경건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화와 명랑하고도 고요한 광채가 깃들어 있었는데,영국인들의 얼굴에서는 이러한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도인들이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생물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도 그에게는 아름답고 성스러워 보였다. 때때로 그가 무자비하게 몇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와 딱정벌레를 죽여서 바늘에 꽂아놓을 때에는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또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을 찾아내기도 했다. 다른 한편 모든 벌레를 신의 창조물로 성스럽게 여기고 진정으로 기도를 하며 사원에서의 예배에 몰두하는 이 동일한 민족에게 있어서 도둑질과 거짓말, 거짓 증언과 신뢰에 대한 배신 등은 아주 일상적인 일로서, 어느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놀라워하지 않았다. (389)
쿠부, 아, 그는 누구였던가! 그는 빽빽한 숲속의 어두컴컴한 수렁에서 전 생애를 공허하게 지냈으며, 비열한 벽촌의 신들에게 겁을 먹고 암울하게 복종했던 더럽고 하찮은 짐승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여기에 세상이 있었다. 이 세상의 가장 지고한 신은 태양이었다. 길고 굴욕적인 숲속 생활의 꿈은 저 멀리 뒤쪽으로 물러났고, 죽은 사제의 흐릿한 모습과도 같이 벌써 그의 영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의 영혼은 태양의 다스림을 받는 밝은 대지에 대한 꿈 같은 예감이 행복의 도취에 젖어 덧없이 떨고 있었다. 이 대지에서는 명랑하고 자유로운 존재들이 밝은 햇빛 속에 살아가며, 태양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살았다. (429)
목동이 된 왕자, 그에게로 도망쳐 온 이 가련한 사나이는 그저 샘물에 가서 물을 떠왔을 뿐이며, 시간적으로는 채 15분도 떠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튼 그는 감옥에서 돌아온 것이다. 아내와 자식을 잃고 왕위를 상실했으며, 인간 생활을 졸업하고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통찰한 것이다. 추측하건대 이 젊은이는 예전에도 한 번 아니면 여러 번 깨우침을 받았고, 한 입 가득히 현실아른 것을 호흡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곳으로 와서 이렇게 오랜 세월 머물러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올바른 깨우침을 받고, 기나긴 길을 떠날 만큼 성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 젊은이에게 올바른 자세와 호흡을 가르치는 데만도 여러 해가 걸릴 것이다. (493)
수백만의 인간들이 지키는 종교적 질서와 결속에 대한 인상. 서양인들이 이성과 기술을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동양인은 종교를 호흡하고 있다. 불교도이든 이슬람교도이든 아니면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동양인이 갖고 있는 잘 보호되고 가꾸어지고 신뢰로 가득 찬 종교성과 비교해볼 때, 서양인의 영혼 생활이란 유치하고 그때그때의 우연에 내맡겨진 것처럼 보인다. ...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동양에서 무엇을 수입한다 해도, 인도나 중국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어떻게든 형성된 기독교로 다시 도망친다 해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문화가 구원을 받아 계속 존속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처세술과 공동 재산을 다시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도 또한 분명하다. 종교라는 것이 극복되고 대치될 수 있는 그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남겨두도록 하자. 우리에게 종교 혹은 그 대치물이 깊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아시아 민족들 틈에서처럼 준엄할 정도로 분명히 느껴본 적은 없었다. (514)
지금까지 외국의 업적들을 공평하게 인정하는 데 있어서나 여러 문학에 나타난 민족을 초월한 인류애에 대한 감정에 있어서 다른 모든 민족보다 앞장서 있었던 독일이 곧 평화와 상호 이해를 담은 이런 작품들에 대한 작업을 다시 계속하기를 바라노라! 하나하나의 작품으로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작업을 하는 정신이란 서서히 인내심을 가지고 인간성을 북돋우는 요소가 될 것이다.--어쩌면 먼 꿈속의 미래에는 전쟁도 없애버리는 경지까지 이를지 모른다. (527)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인도인의 몽상적인 걸음걸이, 귀여운 싱가포르 사람의 슬플 정도로 아름다운 부드러운 갈색 눈, 검은 청동색 피부의 타밀인 막노동자의 눈동자 속에 깃든 눈부신 흰 자위, 우아한 중국인의 미소가 그러하다. 거지가 고로롱거리는 낯선 방언으로 더듬거리는 소리, 열 가지도 넘는 다른 민족들의 서로 다른 언어로도 말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 억눌린 자들에 대한 동정과 허세를 부리는 억압자들에 대한 야유, 어디에서나 이들 모두가 사람이며,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우리의 형제요 운명적 동료라는 특이하게 행복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536)
그러나 내게 그보다 더 아름답고 한없이 중요했던 것은, 동양인과 서양인, 유럽과 아시아가 공통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공동체, 즉 인류라는 것을 온 감각으로 새롭게 되풀이해서 체험했다는 점이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책이 아닌 완전히 낯선 민족들 속에서 눈과 눈을 마주하는 실제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면 누구에게나 한없이 새롭고 진귀한 일일 것이다. 민족이라는 경계선과 대륙이라는 국경선을 넘어서 인류가 존재한다는 이 작고 평범한 태곳적 진리는 내가 그 당시의 여행에서 얻은 궁극적이고도 가장 위대한 체험이었다. 저 거대한 전쟁이 있을 이후로 그 진리는 내기 더욱더 값진 것이 되었다. (538)
마음이여, 언젠가 그대는 쉬게 되리라. 언젠가 그대는 마지막 죽음을 죽고, 고요 속으로 몰입하여,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자게 되리라. ...... 이 길을 가게 되면 그대는 인식의 꽃을 피우게 되리니, 즉 죽음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그대의 가장 내면적인 자아란 오로지 그대만의 것이지. 이름에 귀 기울이는 세상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나긴 그대의 순례는 오류의 길이었고, 이름 모를 잘못에 속박된 오류의 길이었다. 기적의 길이 언제나 그대 가까이에 있었건만, 어찌하여 그대는 그리도 오랫동안 눈이 먼 채 걸어다니고, 그대의 두 눈이 이 길을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로 어떻게 그런 마술이 그대에게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558)
[이국의 예술품들이 유럽으로 몰려들며 환영 받는다는 사실은] 분명 몰락의 징조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 계급인 신문 독자가 슈펭글러...를 읽고 화가 나서 상상하는 몰락의 징조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올바르며 건강한 몰락의 징조로서 동시에 재탄생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즉 개개인이나 민족들의 영혼이 지나치게 개량된 기능들에 완전히 지쳐버러셔 우선은 대립적인 것을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같은 몰락인 것이다. 이런 몰락의 분위기가 만연한 시대에는 언제나 이상하고 새로운 신들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이 신들은 오히려 악마 같은 모습을 지닌다. ......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길을 걸어왔다. 어떠한 다수의 결정도 바퀴를 뒤로 굴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지하의 어머니들을 찾아가는 파우스트의 길이다. 이 길은 쾌적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러나 이 길은 꼭 필요하다. (575)
언젠가 그가 내가 그린 수채화를 보고 있기에, 그 중 하나를 골라 가지라고 했다. 그는 중앙에 다리가 하나 시냇물 위에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는 그림을 골랐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그림을 택하겠습니다. 당신도 저와 마찬가지로 나무들을 알고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다리는 우리가 함게 지낸 날에 새로 놓인 동과 서를 잇는 다리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582)
그것이 그저 어느 한 학자의 연구로서 자기 마음에 드는 진귀한 것들을 찾아 번호를 달고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면, 이렇게 방대하고 값비싼 출판을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너무 지나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진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의 순수하고 고귀한 예술 작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특히 네덜란드인들이 자기 나라의 렘브란트...를 굶어 죽게 한 이후에, 그리고 말레이 지역을 오랜 세월 동안 그저 착취 대상으로만 알고 있었던 네덜란드인들이, 이제 동양 예술품을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사실--그리고 지금도 서서히 부처상들과 라마상들과 동양의 다른 우상들이 서방세계로 건너오며, 그들의 엄청난 수수께끼와 문제들 앞에 우리를 세워놓고 있다는 사실은 이 순간에도 유럽이 함께 처해 있는 상황인 것이다. (597)
다른 측면에서, 그러니까 많은 정신분석의 교훈에서 얻은 결론에서도 내가 지혜라고 부르는 하나의 이상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일방적인 사고가 아니라 양극적이며 종합적인 사상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러한 사고의 발전이 이루어진 개개의 상황을 간단히 서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삶의 운명이 내게 어려움을 더해주고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할지라도, 내 생각으로부터는 체념이라는 것이 점점 더 사라져버렸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종종 인도에서 중국으로의 전향, 즉 인도의 금욕주의적 사고에서 중국의 시민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의 전향이라고 표현하였다. (609)
오늘의 세계 상황은 표면적으로 모든 것이 변했고,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다. 한때 이 지상에서 반군국주의를 지향하고 가장 평화적이었던 중국인들이 오늘날엔 가장 두렵고 가장 난폭한 민족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모든 민족들 중에서 인도와 더불어 가장 경건한 민족인 성스런 티베트를 야만적으로 침략하여 점령했으며, 지속적으로 인도와 다른 모든 인접국들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그저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17세기의 프랑스와 영국 정치를 오늘날의 정치와 비교해본다면, 한 민족의 정치적 관점이 몇 세기가 흐르는 동안 강력히 변할 수 있지만, 민족적 특성의 본질은 이러한 변화와 하등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 민족도 이 혼란기를 넘어서 그들의 수많은 경이로운 특성과 천부적 재능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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