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고아 아시아 문학선 4
우줘류 지음, 송승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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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는 구미인,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까지 한데 뒤섞여 공존하는 부조화의 조화를 형성하는 곳이었다. 특히, 공동 조계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타이밍은 그런 느낌이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인간성을 말살한 금권주의의 상징이랄 수 있는 괴물 같은 고층 건물들이 주변 풍경을 압도하고 있었고, 그 건물들 사이를 인간과 차량의 광분한 격류가 지칠 줄 모르고 출렁대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 물결이 너무도 어마어마해 맞은편 쪽으로 건너가는 일에도 목숨을 걸어야 할 지경이었다. ... 이곳 상하이에는 인간의 혼을 마비시키는 것만 있을 뿐 인간의 영혼에 안식을 주는 것은 없었다. (181)

그녀의 연설은 극히 선동적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내용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단지 무장한 말들의 나열일 뿐이었고 일종의 감정론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민중들은 크게 공명한 듯 연신 박수를 보냈다. 타이밍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안 나왔다. 이론적 근거는 전혀 없이, 그저 남들이 했던 선전을 뜻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 민중들에게 앵무새처럼 그대로 떠들어 대는 그녀의 그 무책임한 행위에 타이밍은 증오마저 느껴졌다. ... 지금의 가두연설도 마찬가지이다. 항전의 필요를 외치지만 양국의 군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전쟁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런 무책임한 주장을 설파해서 민중을 선동하는 정치적 브로커들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왔다. 특히 그는 아내 슈춘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군사적 지식이라곤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군비조차 제대로 모른다. 그런데도 주전론을 주창하고 있다. 그는 왠지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저 우쭐하는 생각만으로 전쟁을 할 수는 없다. (237)

"추상적인 논리로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상황이 오고 있어. 중국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행동 뿐이야. 자네도 빨리 관념의 탑을 나와 자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기를 바라네. 남 일이 아니야. 이건 머지않아 자네 자신의 운명이 걸린 문제야." (240)

타이밍은 그와는 약간 견해를 달리했다. 황민화운동은 확실히 타이완인의 등골을 뽑는 정책임에는 틀림없다. 타이완인이 그로 인해 거세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독되어 있는 것은 오히려 명리에 눈이 먼 일부 극소수 타이완인일 뿐이며 나머지 대다수의 타이완인, 특히 농민들 가운데는 여전히 중독되지 않은 건전한 정신이 살아 있다. 그들 농민들에게는 지식도 학문도 없지만, 대지에 족한 생활이 있다. 또한 그로부터 생겨난 생활감정은 명리나 헛된 선전 따위에 함부로 춤추지 않는 건전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대지에 밀착해 있는 한, 결코 그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담장 위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적 성격의 황민파는 동요하기 쉽다. 그들이 육체적인 감각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뿌리 없이 떠다니는 개구리밥과 같다. (317)

그는 무화과를 만지작거리며 울타리 근처를 천천히 배회했다. 누가 다듬어 놓았는지 예쁘고 깔끔하게 손질된 타이완 개나리 울타리엔 어느덧 파릇파릇 새잎이 움트고 있었다. 문득 그 밑동을 들여다보니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울타리 중간을 뚫고 제멋대로 자라나 수족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경이로운 눈길로 다시 한 번 그 가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위로 뻗쳤다거나 가로로 누워 있었다면 필경 다 가지치기되어 있었을 텐데 유독 이 가지만이 잘리지 않고 자유롭게 그 생명력을 발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는 새삼 깊은 감명을 받았다. ...... '그래 맞다. 강하게 살자. 타이완 개나리처럼...... .' (323-4)

타이밍은 돌아온 지 알마 되지 않았지만 이러저러한 현실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게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도기적 현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괜히 그에 얽매여 끙끙 앓기보다는 무엇보다 자기를 잃지 말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352)

내 장담하는데, 만에 하나 누가 저것들한테 문학 정신이 있느니 뭐니 하며 짓까분다면 진짜 문학자들은 아마 지하에서 통곡할 걸세. ...... 방금 딩이 그랬지? 문학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내가 볼 때, 저 놈들은 문학을 장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문학은 개인이 성공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에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야.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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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인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인웅.백인옥 옮김 / 푸른숲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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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방랑자는 번번이 기대가 빗나가도
여행의 수고와 고난을 견뎌낸다.
방랑의 온갖 고통스러움이
고향의 계곡에서 평화를 찾는 것보다 더 편안할지니.
......
행복한 순간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나는 그저
손님일 뿐, 결코 주인은 될 수 없기에. (30)

"당신은 착각하고 있어요. 고향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집에 돌아가서도, 식구들과 함께 있어도 당신이 지금 체험으로 알게 된 이 뿌리뽑힌 느낌을 종종 갖게 될 겁니다. 한 남자에게 고향은 그가 일하고 또 뭔가 소중한 것을 이루는 곳에만 있습니다. 그 소중한 것 없이는 어디서도 편안할 수 없지요. 혹 괜찮은 일을 하거나 설령 그가 자기의 가족과 만족을 위해 일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는 인간을 위해 일하지요. 그 대가로 일하는 것 자체의 기쁨을 얻지요.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동지요, 형제들입니다." (48)

좀처럼 오지 않는, 오래 고대해온 순간이 왔다. 난 수천으로 갈라지는 하얀 번갯불 속에서 원시림이 자기만의 신비스러운 힘을 망각한 채 지독한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뭔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것은 내가 알프스의 협곡을 들여다보았을 때, 폭풍우 이는 바다를 항해했을 때, 스키장에 높새 바람이 불어닥쳤을 때, 그러니까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자꾸만 체험하려 했던, 살아오면서 수천 번 들었던 그것과 너무나 똑같았다. (84)

가장 고약스러운 것은 교회다. 고요하고 우아한 야자나무 숲에서, 어여쁜 말레이 마을 골목에서, 고상하게 단색으로 통일된 중국인 거리에서 서구의 문화적 무능력이나 설교하는 족보도 없는 영국식 고딕 교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불결함과 고열 못지않게 인도 여행에서 겪는 당혹스러움 중의 하나다. 나도 유럽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다. ... 어제 완공된 말레이식 집은 석달만 지나도 날씨에 따라 색이 바래 어느새 마치 50년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완전히 뿌리를 내려 주위에 동화될 것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공사관저라든가 영국식 교회, 프랑스식 천주교 학교 건물은 마침내 수명이 다하고 그 구성 요소를 자연에 환원시키기 전에는 눈엣가시처럼 결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없을 것이다. (105)

인간은 한층 진보되었다. 온 인류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이 두 존재를 무조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피 흘리는 십자가 상의 예수도, 완벽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부처도 필요없다. 우리는 그들을 포함해 다른 신들도 극복해서 마침내 이들 없이 살 수 있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하나 훗날 신을 모르고 자란 우리 자손들이 내면을 나타내는 분명하고 위대하고 확고한 기념비와 상징물들을 이룩할 용기와 희열, 그리고 영혼의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또한 매우 훌륭한 일일 것이다. (183)

아침식사 때 하젠프라츠씨가 중국인 웨이터에게 나이프를 새로 달라고 했다. 그 웨이터가 하는 말이, 새것은 더 이상 없으니 치즈 접시에 있는 나이프를 쓸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당돌한 지적 때문에 그 웨이터는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영국인들에게 잘못 길들여진 싱가포르 출신의 원주민들에 대한 성토로 한참 동안 시끄러웠다. 반면 네덜란드인들 밑에 있는 원주민들은 잘 훈육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양 있고 싹싹한 백인들조차 너무나 당연하게 원주민들을 몸종들인 양, 혹은 아주 미개한 종족들인 양 대하는 걸 보고 거듭 놀랐고, 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268-9)

이제 왕은 그 많은 군중 한가운데에서 점점 더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하였고, 자신의 모든 감각을 닫아버린 채 불타오르는 의지를 오로지 진리로만 향하였다. ... 그리고 그가 아무런 오점도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내면에 깃들게 되자 왕은 점점 더 많은 만족과 밝은 빛을 자기 자신 속에서 발견했다. ...... 그의 감각들이 단일성으로 융합되고 내면으로 향한 왕은 진리 그 자체를 보았다. 떼어놓을 수 없는 이 진리는 달콤한 확신으로 그에게 파고든 순수한 빛으로서 마치 태양 광선이 보석을 파고드는 것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 자신이 빛과 태양이 되고, 창조자와 피조물이 내면에서 거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그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 차고, 이마는 별처럼 반짝였다.. 그는 옷을 벗어놓고 사원을 떠났다. 도시를 떠나고 왕국을 떠났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 숲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343)

소박하고 순수한 젊은이로서 그는 철학적인 욕구는 없지만 재능 있는 눈과 손으로써 자기에게 제공되고 있는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하고 인식하고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에서 훨씬 더 완전한 만족감을 느꼈다. 소년이었을 때 그는 꽃을 기르고 식물을 채집했으며, 그 다음에는 한동안 돌과 화석물에 열렬히 몰두하면서 아름답고도 예감으로 가득 찬 자연의 형태 유희를 공경하게 되었다. 특히 이 시골에 머무르게 되면서부터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다양한 색깔의 곤충의 세계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비였다. 애벌레와 번데기 상태에서 오색찬란한 나비로 변신하는 것은 언제나 그를 진정으로 황홀하게 하였고, 그 나비를 멋지게 그리며 온화하고 만족스럽게 색깔을 융합하는 일은 그에게 정말로 순수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런 기쁨이란 별로 유능하지 못한 인간이 그저 아무런 욕심도 없는 유년 시절에나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과 같은 것이었다. (365)

이 수백 가지 신들에 대한 예배와 사원들과 승려단들은 만족스럽게 나란히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한 종교의 신봉자는 우리 고향의 기독교 국가들에서 습관이 되어 있는 것처럼 다른 종교의 신자를 증오하거나 때려 죽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피리 연주 음악과 온화한 헌화 등 많은 것들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아주 많은 경건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화와 명랑하고도 고요한 광채가 깃들어 있었는데,영국인들의 얼굴에서는 이러한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도인들이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생물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도 그에게는 아름답고 성스러워 보였다. 때때로 그가 무자비하게 몇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와 딱정벌레를 죽여서 바늘에 꽂아놓을 때에는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또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을 찾아내기도 했다. 다른 한편 모든 벌레를 신의 창조물로 성스럽게 여기고 진정으로 기도를 하며 사원에서의 예배에 몰두하는 이 동일한 민족에게 있어서 도둑질과 거짓말, 거짓 증언과 신뢰에 대한 배신 등은 아주 일상적인 일로서, 어느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놀라워하지 않았다. (389)

쿠부, 아, 그는 누구였던가! 그는 빽빽한 숲속의 어두컴컴한 수렁에서 전 생애를 공허하게 지냈으며, 비열한 벽촌의 신들에게 겁을 먹고 암울하게 복종했던 더럽고 하찮은 짐승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여기에 세상이 있었다. 이 세상의 가장 지고한 신은 태양이었다. 길고 굴욕적인 숲속 생활의 꿈은 저 멀리 뒤쪽으로 물러났고, 죽은 사제의 흐릿한 모습과도 같이 벌써 그의 영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의 영혼은 태양의 다스림을 받는 밝은 대지에 대한 꿈 같은 예감이 행복의 도취에 젖어 덧없이 떨고 있었다. 이 대지에서는 명랑하고 자유로운 존재들이 밝은 햇빛 속에 살아가며, 태양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살았다. (429)

목동이 된 왕자, 그에게로 도망쳐 온 이 가련한 사나이는 그저 샘물에 가서 물을 떠왔을 뿐이며, 시간적으로는 채 15분도 떠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튼 그는 감옥에서 돌아온 것이다. 아내와 자식을 잃고 왕위를 상실했으며, 인간 생활을 졸업하고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통찰한 것이다. 추측하건대 이 젊은이는 예전에도 한 번 아니면 여러 번 깨우침을 받았고, 한 입 가득히 현실아른 것을 호흡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곳으로 와서 이렇게 오랜 세월 머물러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올바른 깨우침을 받고, 기나긴 길을 떠날 만큼 성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 젊은이에게 올바른 자세와 호흡을 가르치는 데만도 여러 해가 걸릴 것이다. (493)

수백만의 인간들이 지키는 종교적 질서와 결속에 대한 인상. 서양인들이 이성과 기술을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동양인은 종교를 호흡하고 있다. 불교도이든 이슬람교도이든 아니면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동양인이 갖고 있는 잘 보호되고 가꾸어지고 신뢰로 가득 찬 종교성과 비교해볼 때, 서양인의 영혼 생활이란 유치하고 그때그때의 우연에 내맡겨진 것처럼 보인다. ...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동양에서 무엇을 수입한다 해도, 인도나 중국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어떻게든 형성된 기독교로 다시 도망친다 해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문화가 구원을 받아 계속 존속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처세술과 공동 재산을 다시 발견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도 또한 분명하다. 종교라는 것이 극복되고 대치될 수 있는 그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남겨두도록 하자. 우리에게 종교 혹은 그 대치물이 깊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아시아 민족들 틈에서처럼 준엄할 정도로 분명히 느껴본 적은 없었다. (514)

지금까지 외국의 업적들을 공평하게 인정하는 데 있어서나 여러 문학에 나타난 민족을 초월한 인류애에 대한 감정에 있어서 다른 모든 민족보다 앞장서 있었던 독일이 곧 평화와 상호 이해를 담은 이런 작품들에 대한 작업을 다시 계속하기를 바라노라! 하나하나의 작품으로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작업을 하는 정신이란 서서히 인내심을 가지고 인간성을 북돋우는 요소가 될 것이다.--어쩌면 먼 꿈속의 미래에는 전쟁도 없애버리는 경지까지 이를지 모른다. (527)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인도인의 몽상적인 걸음걸이, 귀여운 싱가포르 사람의 슬플 정도로 아름다운 부드러운 갈색 눈, 검은 청동색 피부의 타밀인 막노동자의 눈동자 속에 깃든 눈부신 흰 자위, 우아한 중국인의 미소가 그러하다. 거지가 고로롱거리는 낯선 방언으로 더듬거리는 소리, 열 가지도 넘는 다른 민족들의 서로 다른 언어로도 말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 억눌린 자들에 대한 동정과 허세를 부리는 억압자들에 대한 야유, 어디에서나 이들 모두가 사람이며,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우리의 형제요 운명적 동료라는 특이하게 행복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536)

그러나 내게 그보다 더 아름답고 한없이 중요했던 것은, 동양인과 서양인, 유럽과 아시아가 공통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공동체, 즉 인류라는 것을 온 감각으로 새롭게 되풀이해서 체험했다는 점이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책이 아닌 완전히 낯선 민족들 속에서 눈과 눈을 마주하는 실제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면 누구에게나 한없이 새롭고 진귀한 일일 것이다.
민족이라는 경계선과 대륙이라는 국경선을 넘어서 인류가 존재한다는 이 작고 평범한 태곳적 진리는 내가 그 당시의 여행에서 얻은 궁극적이고도 가장 위대한 체험이었다. 저 거대한 전쟁이 있을 이후로 그 진리는 내기 더욱더 값진 것이 되었다. (538)

마음이여, 언젠가 그대는 쉬게 되리라.
언젠가 그대는 마지막 죽음을 죽고,
고요 속으로 몰입하여,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자게 되리라.
......
이 길을 가게 되면 그대는 인식의 꽃을 피우게 되리니,
즉 죽음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그대의 가장 내면적인 자아란
오로지 그대만의 것이지.
이름에 귀 기울이는 세상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나긴 그대의 순례는 오류의 길이었고,
이름 모를 잘못에 속박된 오류의 길이었다.
기적의 길이 언제나 그대 가까이에 있었건만,
어찌하여 그대는 그리도 오랫동안 눈이 먼 채 걸어다니고,
그대의 두 눈이 이 길을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로
어떻게 그런 마술이 그대에게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558)

[이국의 예술품들이 유럽으로 몰려들며 환영 받는다는 사실은] 분명 몰락의 징조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 계급인 신문 독자가 슈펭글러...를 읽고 화가 나서 상상하는 몰락의 징조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올바르며 건강한 몰락의 징조로서 동시에 재탄생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즉 개개인이나 민족들의 영혼이 지나치게 개량된 기능들에 완전히 지쳐버러셔 우선은 대립적인 것을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같은 몰락인 것이다. 이런 몰락의 분위기가 만연한 시대에는 언제나 이상하고 새로운 신들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이 신들은 오히려 악마 같은 모습을 지닌다. ......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길을 걸어왔다. 어떠한 다수의 결정도 바퀴를 뒤로 굴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지하의 어머니들을 찾아가는 파우스트의 길이다. 이 길은 쾌적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러나 이 길은 꼭 필요하다. (575)

언젠가 그가 내가 그린 수채화를 보고 있기에, 그 중 하나를 골라 가지라고 했다. 그는 중앙에 다리가 하나 시냇물 위에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는 그림을 골랐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그림을 택하겠습니다. 당신도 저와 마찬가지로 나무들을 알고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다리는 우리가 함게 지낸 날에 새로 놓인 동과 서를 잇는 다리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582)

그것이 그저 어느 한 학자의 연구로서 자기 마음에 드는 진귀한 것들을 찾아 번호를 달고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면, 이렇게 방대하고 값비싼 출판을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너무 지나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진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의 순수하고 고귀한 예술 작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특히 네덜란드인들이 자기 나라의 렘브란트...를 굶어 죽게 한 이후에, 그리고 말레이 지역을 오랜 세월 동안 그저 착취 대상으로만 알고 있었던 네덜란드인들이, 이제 동양 예술품을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사실--그리고 지금도 서서히 부처상들과 라마상들과 동양의 다른 우상들이 서방세계로 건너오며, 그들의 엄청난 수수께끼와 문제들 앞에 우리를 세워놓고 있다는 사실은 이 순간에도 유럽이 함께 처해 있는 상황인 것이다. (597)

다른 측면에서, 그러니까 많은 정신분석의 교훈에서 얻은 결론에서도 내가 지혜라고 부르는 하나의 이상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일방적인 사고가 아니라 양극적이며 종합적인 사상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러한 사고의 발전이 이루어진 개개의 상황을 간단히 서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삶의 운명이 내게 어려움을 더해주고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할지라도, 내 생각으로부터는 체념이라는 것이 점점 더 사라져버렸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종종 인도에서 중국으로의 전향, 즉 인도의 금욕주의적 사고에서 중국의 시민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의 전향이라고 표현하였다. (609)

오늘의 세계 상황은 표면적으로 모든 것이 변했고,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다. 한때 이 지상에서 반군국주의를 지향하고 가장 평화적이었던 중국인들이 오늘날엔 가장 두렵고 가장 난폭한 민족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모든 민족들 중에서 인도와 더불어 가장 경건한 민족인 성스런 티베트를 야만적으로 침략하여 점령했으며, 지속적으로 인도와 다른 모든 인접국들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그저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17세기의 프랑스와 영국 정치를 오늘날의 정치와 비교해본다면, 한 민족의 정치적 관점이 몇 세기가 흐르는 동안 강력히 변할 수 있지만, 민족적 특성의 본질은 이러한 변화와 하등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 민족도 이 혼란기를 넘어서 그들의 수많은 경이로운 특성과 천부적 재능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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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교감 완역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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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안개비가 잠깐 뿌리다가 늦게 갰다. 선창으로 나가 쓸 만한 널빤지를 고르는데, 때마침 수장 안에 피라미 떼가 몰려들기에 그물을 쳐서 이천여 마리를 잡았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대로 전선 위에 앉아서 우후 이몽구와 더불어 술을 마시며 새 봄의 경치를 구경하였다. (52)

12일 맑음. 아침 식사 후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라고 분부하여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 (149)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의 평안하심은 알았으나. 또 면의 병세가 중하다고 하였다. 몹시 애타는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유상(유성룡)이 죽었다는 부음이 순변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는 유 정승을 질투하는 자들이 말을 지어내 훼방하려는 것이리라. 통분함을 이길 수 없다. 이날 저녁에 마음이 몹시도 어지러웠다. 홀로 빈집에 앉았으니, 심회를 스스로 가눌 수 없었다. 걱정에 더욱 번민하니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 유상이 만약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면 나랏일을 어찌할 것인가. (189)

비가 계속 내렸다. 홀로 앉아 아들 면의 병세가 어떠한지 염려되어 글자를 짚어 점을 쳐 보니, "군왕을 만나 보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 또 유 상의 점을 쳐 보니, ...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 왔다. 매우 길한 것이다. 저녁 내내 비가 내리는데, 홀로 앉아 있는 마음을 스스로 가누지 못했다. ... 비가 올 것인가 갤 것인가를 점쳤더니, 점은 "뱀이 독을 내뿜는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앞으로 큰비가 내릴 것이니, 농사일이 염려된다. (189)

20일 새벽 바람이 그치지 않았으나 비가 잠깐 그쳤다. 홀로 앉아 간밤의 꿈을 기억해 보니, 바다 가운데 외딴섬이 눈앞으로 달려와서 멈췄는데, 그 소리가 우레 같아 사방에서는 모두들 놀라 달아나고 나만 홀로 서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참으로 흔쾌하였다. 이 징조는 곧 왜놈이 화친을 구하다가 스스로 멸망할 상이다. 또 나는 준바를 타고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이는 임금의 부르심을 받아 올라갈 징조이다. (205-6)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고 안으로는 계책을 세울 기둥 같은 인재가 없으니 더욱더 배를 만들고 무기를 다스리어 적들을 불리하게 하고 나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 (219)

어두울 무렵 항복해 온 왜인들이 광대놀이를 많이 벌였다. 장수된 자로서 좌시할 일은 아니었지만, 귀순하여 따르는 왜인들이 마당놀이를 간절히 바라기에 금하지 않았다. (329)

늦게 두 조방장과 충청 우후를 불러다가 상화떡(床花餠)[각주57]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 (335) [각주57] 상화병(霜花餠). 밀가루를 수로 반죽하여 발효시킨 다음 거피팥소를 넣고 쪄서 만든 음식. 상화는 고려 시대 때 원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중국 사신에게 대접하던 명물 음식의 하나였다. ... 제사에도 썼던 기록이 보인다. "여식이 제사 후에 상화병 한 상자를 얻었다." (496)

6일 맑음. 꿈에 돌아가신 두 형님을 만났는데, 서로 붙들고 통곡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장사를 지내기도 전에 천리 밖에서 종군하고 있으니, 누가 일을 주관한단 말인가. 통곡한들 어찌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와서 이토록 근심하고 애달파 한 것이니 비통함이 그치지 않는다. 또 남원의 추수 감독하는 일을 염려하시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연일 꿈자리가 어지러운 것도 형님들의 혼령이 말없이 걱정하여 주는 터라 애통함이 더욱 간절하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원통한 마음에 눈물이 엉겨 피가 되건마는, 하늘은 어찌 아득하기만 하고 내 사정을 살펴 주지 못하는가. 왜 어서 죽지 않는 것인가. (363)

비가 계속 내렸다. 아침에 출발하려다가 비가 이토록 오니 쭈그리고 앉아 고민하고 있을 때쯤 ... 길을 물어보자 출발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여 그대로 묵었다. 아침에 고을 사람들의 밥을 얻어먹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종들을 매질하고 밥한 쌀을 돌려주었다.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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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똥배
윌리엄 데이비스 지음, 인윤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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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이야기되는 바이지만 이리 단호하게 밀을 끊으라고 하는 책은 처음. 우리로 치면 쌀을 끊으라는 격이니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서인지 밀의 무시무시한 해악들이 다수 동원되고 있다. 그래도 통곡물 신화의 허황됨과 유전자 조작의 가공할 위해를 복습하고 오늘의 식탁을 점검하는 데는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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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오가와 나오 지음, 나은정 옮김 / 라이카미(부즈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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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딸의 도시락을 만들고 있으면 부엌에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요. 그리고 비 오는 주말에 정원의 푸른 나무들이 젖어있는 예쁜 모습을 보면, 이 집에서 살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57)

"진짜를 만든다면 장소가 어디든 사람들이 찾아온다." (66)

"공간에서도, 소유물에서도, 그리고 아마 삶에 있어서도 지나침이 없도록 유념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지나치게 가지지 않기, 지나치게 행하지 않기,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기 등이죠. 10년 전, 어떤 일에 대해 고민을 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 우연히 본 TV의 다큐멘터리에서 어느 장인이 '무엇이든지 지나침이 없으면 살아가기가 쉬어진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바로 마음이 편해졌어요." (69)

와타나베 씨는 20대 때 청년 해외 협력대원으로 필리핀에 부임하여 근무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필리핀 건축가인 레안드로 로크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그가 이후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재능있는 사람들이 모두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던 그 시절에, 로쿠신은 평생 조국에 머물며 필리핀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그 지역에 기반을 둔 건축에 힘썼어요. 그런 그에게 감명을 받았죠." (88)

히로유키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보다 8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어리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아, 그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 듣고 싶어진다. 젊은 사람이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사물의 참뜻을 알고 있는 듯한 노련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런 그에게 가구 직공으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주변의 다양한 것들에 현혹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제자리로 돌아와서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가치관을 키워주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 가구요. 작은 집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러한 생각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123)

"두 사람 모두 집에 있는 날에도, 각자 혼자가 될 수 있어서 좋아요." (146)

"소중히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일수록 내놓는 거군요."라고 말하자, 스나하라 씨는 "물건에는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넣어두기만 하면 그 물건이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라고 답했다.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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