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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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한 작품. 허술해 보이지만, 총명-조숙해도 아직은 어린 사람의 제한된 시선과 횡설수설 설법에 기대어 이만큼 지옥같은 현실, 처절한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이 간단치는 않을 터. 모모의 나이가 10세에서 14세로 `급증`한다는 설정도 특별하다. <라임오렌지나무>와 <파수꾼>이 계속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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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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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들기 전에 이따금 상상 속에서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거기에는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암사자가 한 마리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바로 그것이 암사자의 특성이라고 했다.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데, ... 나는 거의 매일 밤 나의 암사자를 불러들였다. 암사자는 방에 들어오자마나 침대로 뛰어올라 우리들의 얼굴을 핥아주었다. ... 마침내 어느 날 로자 아줌마는 자신이 자는 동안 내가 암사자를 불러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줌마는 물론 그것이 사실이 아니며 다만 내가 자연의 법칙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져 집 안에 야생동물이 있다는 생각에 밤마다 공포에 떨었다. (74)

그 구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 모두가 실제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받지 않으며 늙지도 않고 불행에 빠지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네 인간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는 낙타...에게조차도 호감이 갔다. ... 열흘 동안 나는 그가 떨어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가 떨어지더라도 하나도 아프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별세계였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106)

나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희망이란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은 큰 힘이 된다. 미칠 노릇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이 아무런 대가 없이 행동을 할 때도 있으니까.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네고, 희망을 일깨우고,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한숨지으며 떠났다. 나쁜 년. (109)

누구를 모욕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하밀 할아버지는 점점 멍청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살 날이 얼마 안 남아서 더이상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노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세였다. 그들은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눈을 보면 능글맞은 타조처럼 과거로 숨어들기 위해서 시선을 자꾸 돌리는 모습이 뻔히 보인다. 하밀 할아버지는 항상 빅토르 위고의 책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그것을 코란으로 혼동하기도 했다. 그는 두권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18)

그 때 내게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과거로 거슬러올라가서 엄마를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땅바닥에 앉아 있는 내 모습과 그런 내 앞으로 가죽으로 된 미니스커트를 입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은 다리가 지나가는 것을 본 것이다. 나는 얼굴을 보려고 눈을 치켜뜨려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 나는 그것이 나의 엄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추억만으로는 눈을 치켜뜨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좀더 먼 과거로까지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나를 어르며 재우고 있는 누군가의 따뜻한 두 팔이 느껴졌다. (135)

"그건요, 만약 그런 권리가 있다면 로자 아줌마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마음대로 할 신성한 자결권이 있다는 거죠. 아줌마가 자결하고 싶다면 그건 아줌마의 권리라구요. 그리고 아줌마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와주어야 해요. 유태인 배척주의에 걸리지 않으려면 유태인 의사가 필요하니까요. 유타인끼리 서로 괴롭히면 안 돼요. 그건 정말 구역질난다구요." (263)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는 셈이니까. 더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296)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307)

'살아야 했다구. 알아들었어? 물론, 너나 나나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었겠니? 그래도 살아야 할걸 그랬다구. 뭣 때문이냐구? 아무것 때문에도 아니지. ...... 그냥 여기 있기 위해서라도. 파도처럼. 자갈돌처럼. 파도와 함께. 자갈돌들과 함께. 빛과 함께. 모든 것과 다 함께.'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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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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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반대로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 마치, 알프스를 오르는 산악인의 또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병기고 안으로 들어설 때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리라. 살 의지를 상실한 도망자로서가 아니라, 굳은 의지를 품고 친구와 조력자들에게 나아가듯이 말이다.
만약에 정말 이럴 수만 있다면, 지금 읽는 것의 한 10분의 1가량만 읽는다고 해도, 우리 모두는 열 배는 더 행복하고 풍족해지리라. (12)

해마다 수천수만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글자를 써보고 한 자 한 자 글을 깨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아이들은 읽기능력을 그저 당연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한 해 두 해를 넘기고 십년 이십년이 지나도록 학교에서 배운 그 마법의 열쇠를 사용하며 새록새록 매료되고 탄복한다. 오늘날 읽기는 누구나 다 배우지만, 얼마나 강력한 보물을 손에 넣었는지를 진정으로 깨닫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난생처음 글을 배워 혼자 힘으로 짧은 시나 격언을 읽어내고 또 동화와 이야기책을 읽게 된 아이는 스스로 얼마나 대견해 하는가. 그런데 소명을 받지 못한 대개의 사람들은 이렇게 배운 읽기능력을 그저 신문기사를 읽는 데나 활용할 뿐이다.
하지만 소수만은 철자와 단어의 그 특별한 경이에 여전히 매료당한 채... 살아간다. 바로 이들이 진정한 독자가 된다. (21)

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생각을 바꿀 수 없다. 큰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는 쇠퇴의 시작이다. 인류를 존중한다면서 자기가 부리는 하인은 괴롭히는 것, 조국이나 교회나 당은 신성하게 받들면서 그날그날 자기 할 일은 엉터리로 대충 해치우는 데서 모든 타락이 시작된다. 이를 막는 교육적 방책은 오직 하나뿐이다. 즉 스스로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해서든 신념이나 세계관이나 애국심 같은 이른바 거창하고 신성한 모든 것을 일단 제쳐두고, 대신 사소한 일, 당장에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것이다. (41)

어휘를 달리 고른다든지 문장의 구조나 길이가 달라질 수는 있다. 또 팔레트에 색깔들을 다르게 정렬해 사용할 수도 있고, 단단한 연필을 쓰거나 부드러운 연필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오직 하나일 뿐이다. 그 오래된 것, 거듭 얘기되고 거듭 시도되던 것, 영원한 그것이다. 관심을 모으는 각종 새로운 면모들, 언어와 예술의 흥미로운 변혁들,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온갖 매혹적인 유희들 속에서, 이들이 이토록 애쓰며 말하고자 하는 것, 말할 가치가 있으되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것, 그것은 영원토록 하나이리라. (70)

예술가의 허영심 때문에 정곡을 꿰뚫는 진정한 비평보다 멍청한 아첨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존재가 사랑을 구하듯 작가도 사랑을 구하며, 이해받고 인정받기를 바란다. ... 진정한 작가라면 진정한 비평가를 반기게 마련이다. 이는 그에게서 뭔가 자기 예술에 보탬이 될 만한 걸 배울까 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그렇게 해서 배워지는 일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행위가 이해받지 못한 채... 무감각의 비현실 속을 부유하는 대신, 자신과 자기의 작업을 자기 나라와 문화의 전반적인 평가 속에서, 또 재능과 성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자리매김하여 본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공부요 수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74)

당연히 언젠가는 그칠 날이 올 것이다. '병적이다'라는 단어가 지금의 의미를 잃을 때가 말이다. 질병과 건강의 영역에서도 상대성이 있음을, 오늘의 병이 내일의 건강이 될 수도 있음을, 건강한 상태라는 게 항상 확고부동한 건강의 징표일 수는 없음을 인식할 때가 올 것이다. 고귀한 정신과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타고난, 일체의 평가를 넘어서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선과 악 그리고 미와 추에 관한 현실의 관습들에 둘러싸여 산다는 것이 어쩌면 갑갑한, 아니 끔찍한 억압일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인문학을 발전시키겠다면 인문학 본래의 방법과 체계를 가지고 추진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90)

그러나 이러한 분노와 끈질긴 노여움이 이들을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한다. 내면을 분출시키거나 정화해주지도, 내적 불안과 불안을 진정시키지도 못한다. 반면에 예술가들, 세간에서 쏟아내는 비난 못지않게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이들은 자신의 분노와 슬픔과 경멸을 표현할 새로운 언어를 궁리하고 찾아내고 또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욕을 퍼붓는 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오히려 욕설을 입밖에 내는 쪽이 손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는 이상으로 삼을 대상이 자신뿐이기에,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며 자기 안의 본성이 심어놓은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그것 하나밖에는 다른 어떤 뜻도 소원도 없는 예술가이기에 그들은 세간에 대한 자신의 적의를 최대한 개성적으로, 아름답게, 설득력 있게 가다듬어 내놓는다. 자신의 분노를 고스란히 독설로 내뱉는 대신 체에 거르고 고르고 매만지고 다듬는다. 그리하여 불쾌함과 혐오감을 유쾌하고 미적인 것으로 변환시키는 새로운 방법, 반어법과 희화화를 찾아내는 것이다. (101)

나는 두 팔 벌려 그들을 맞이하고 수긍하였으며, 내가 하는 일이 심히 의심스러울지언정 결코 그만두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매번 새록새록 깨달았다. 다시금 깨닫노니, 나는 행복한 이들의 모든 행복, 스포츠맨들의 그 모든 신기록과 건강, 돈 많은 이들의 모든 재물, 권투선수들의 모든 명성을 다 준다 해도, 만일 그걸 얻는 대신 나 자신의 생각과 고뇌를 조금이라도 내놓아야 한다면 내겐 일말의 의미도 없으리라. 또한 비록 그 모든 역사적 사상적 논증이 나의 '낭만적' 추구의 가치를 조금도 인정해주지 않고, 모든 이성과 도덕과 지혜가 반대할지라도, 나는 내 일을 계속할 것이며 나의 주인공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러한 확신을 마음에 품고 나는 마치 거인처럼 당당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116)

독자가 세계문학과 생동적인 관계를 맺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어떤 정해진 도식이나 교육과정보다는 자신에게 특별히 와 닿는 작품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길은 사랑으로 걸어야지, 의무로 걷는 길이 아니다. ...... 세계문학의 고귀한 전당은 노력하는 모든 이에게 활짝 열려 있다. 그 풍성함에 기가 질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열댓 권의 책만 끼고 살아도 진정한 '독자'들이 있다. 또 온갖 것을 다 집어삼키고 모든 것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 줄 알지만 그 모두가 허사인 경우도 있다. 교양Building이란 무엇인가 '양성하는'bilden 것, 즉 인격과 인성의 도야를 전제로 한다. 그것이 없다면, 그래서 알맹이가 빠진 채 공허하게 이루어진 교양이라면, 거기에서 지식은 생길지 몰라도 사랑과 생명은 나오지 못한다. 애정이 결여된 독서, 경외심 없는 지식, 가슴이 텅 빈 교양이란 정신에게 저지르는 가장 고약한 범죄 중 하나다. (121)

그렇다. 이 마지막 단계의 독자란 실로 더 이상 독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괴테가 없어도 아쉬울 게 없다. 세익스피어가 꼭 필요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읽지 않는다. 온 세계가 자기 내면에 들어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책을 읽겠는가?
계속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아무것도 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없다. 반면 이 단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 또한 불충분하고 미숙한 독서자다. 그는 세상 모든 문학과 철학이 자기 내면에도 들어 있음을, 그 어떤 위대한 시인 못지않게 우리 각자에게 창조의 원친이 하나씩 내재되어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다.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하루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이런 단계를 경혐해본다면... 당신은 훨썬 더 훌륭한 독자, 좀 더 훌륭한 청자가 될 것이며, 글로 쓰인 모든 것들을 좀 더 훌륭하게 해석하게 될 것이다. 길가의 돌멩이 하나가 괴테나 톨스토이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 단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머물러 보라. (191)

존경받는 고상한 인격체로서의 시인, 독자를 확고한 길로 이끌어 영혼의 귀족으로 승격시켜주는 그런 역할의 시인이란 만화에서나 가능할 뿐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성한 것이 이토록 불확실해지고 선이 이처럼 모호해지고 이상이 이렇게나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마당에, 예전에 정신적 귀족 운운하던 것이 어떻게 여전히 유효하겠습니까? 옛 시인들이 포고해던 저 정신적 귀족을 믿었던 건 당신들 아닌가요? 그러면서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은 그 아름답고 고귀한 믿음을 붙들고 열심히 장사를 벌이지 않았습니까? 다른 모든 사람들을 빈곤하게 민들고 고통으로 돌아버리게 만든 그 전쟁에서 부를 창출해낸 당신들 아닙니까? (206)

오, 친구여, 분석의 전반부가 가르쳐주는 건, 우리 스스로가 하나의 온전한 개인이라는 인식입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와 입법자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과 완전히 상반된 권리와 힘과 충동들을 인정함으로써 말이지요. 말하자면 이 절반은 우리를 모반자로 만듭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면, 우리 스스로가 인류의 일부임을 자각하게 되고, 그리하여 인류를 거스르지 않고 그 궤도를 기꺼이 함게 밟아나갈 때에 비로소 개인의 최고 만족 또한 찾을 수 있음을 통찰하게 됩니다.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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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싸우는가?
김영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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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은 2006년에도 이스라엘의 엄청난 침공을 받았어. 이번에는 헤즈볼라가 문제였지. 헤즈볼라는 `신의 당`이란 뜻으로, 레바논에서 이슬람 시아파가 조직한 합법적인 정당이야. 흔히 헤즈볼라라고 하면 불법 무장 단체 혹은 게릴라 조직으로 잘못 알기 쉽지만, 헤즈볼라는 우리나라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처럼 레바논의 합법적인 정당이야. (27)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이면서 내세운 이유는 빈 라덴 체포와 탈레반 정부에게서 여성을 해방하겠다는 거야. 미군은 카불에 들어오자마자 여성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부르카를 입지 않아도 된다며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해방되었다고 했어. 그런데 미국이 `이제 탈레반의 상징인 부르카를 벗어도 돼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여성들은 부르카를 벗지 않았어. 시간이 가면서 나는 그 옷이 탈레반의 전유물이 아닌 민속 의상이라는 사실을 알았지. 우리 조상이 조선 시대에 외출할 때 쓰던 쓰개치마처럼 아프가니스탄 사람의 고유 의상인 거야. ... 미국이 부르카를 탈레반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야. (43)

큰 전쟁이 나면 어린 병사들이 참전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세상 물정도 모를 때 무지막지한 전쟁터로 나오는 거야. 그들에게 입대한 이유를 물어보면 "대학에 가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많이 한단다. 그들이 고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 미군이 입대 설명회를 하러 학교에 방문하지. 멋진 제복을 차려입고 학생들 앞에 서서 경례한 다음 대학에 무료로 갈 수 있고, 비싼 의료비도 국가가 책임진다면서 세계의 자유를 위해 군대에 지원하라고 하면 학생들은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는 거야. 특히 가난해서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군대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이지. (53)

체첸 사람들은 러시아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러시아를 몰아냈지만, 그 이후 사회 통합과 경제를 감당하지 못했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체첸 사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급기야 서로 갈라지기 시작했지. 먹을 것은 정해져 있고 사람은 많다 보니 싸움이 벌어진 거야. 이제 체첸은 러시아가 아니라 내부 분열이 문제였어. 체첸 사람들은 평생 싸우는 것밖에 모른데다, 대통령마저 총 들고 싸우기만 하던 사람이기에 그들의 분열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한 번도 평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체첸의 비극이지. (115)

체첸의 독립으로 막대한 석유 이권을 잃고 싶지 않았던 러시아는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것을 눈감아 주었단다. 그 대신 "체첸의 반군 지도자가 국제 테러 조직과 연관돼 있다"며 체첸을 탄압하는 데 미국의 동의를 얻어 냈어. 이로써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러시아군은 거리낌 없이 체첸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냉전 시대에 원수로 지내던 미국과 러시아가 이렇게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된 것은 중동의 석유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미국과 체첸의 석유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대문이야. 미국이 러시아의 체첸 인권 탄압을 외면한 이유도 이것이지. (117)

명예살인은 주로 이슬람 국가에서 많이 행해지지만, 이슬람이 생기기 전부터 내려오는 악습이야. 이슬람이 생긴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이니 명예살인을 이슬람의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지.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에 이 풍습이 남아 있을 뿐이야. 일례로 요르단 같은 나라에서는 기독교 집안에서도 명예살인이 일어나. (159)

"이 나라[소말리아를 말함]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미친 것뿐이야. 먹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거야. 앉아서 굶어 죽거나, 해적질이라도 해서 입에 무엇인가 넣고 목숨을 부지하거나 둘 중 하나지." (244)

하지만 콜롬비아를 여행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란다. 콜롬비아는 결코 안전한 나라가 아니거든. 며칠 여행을 하거나 장기간 그곳에 있었어도 본인이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주 무책임하고 위험한 생각이다.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야. 주의하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있는 반면, 아무리 조심해도 막을 수 없는 사고도 있어. 나라 전체의 치안이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지. ...... 그런 때는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안전 대책을 세워야 해. 방심은 절대 금물이지. 10년 넘게 분쟁 지역을 취재하면서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것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안전 대책을 세웠기 때문이야.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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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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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좋다. 읽고 쓴다는 것, 책, 작가, 독자, 출판계를 모두 다루면서, 헤세 글의 모든 장점들과 함께 신랄한 면까지도 드러낸다. 서명은 안 좋다. 원제는 ˝책의 세계˝란 뜻. 실제로 헤세는 독서의 本만 다룰 뿐 그 기술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헤세의 독자라면 이 점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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