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분양제도 하에서 분양 계약으로 아파트를 사는 일이 그렇게 불리하고 불합리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정말 몰랐다. 아파트 사업을 계획하고 영업하고 건설하고 관리하는 업체들이 결코 아파트 소비자의 편이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파트의 문제는 나쁜 관리사무소와 무책임한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은밀히 활동하는 ‘입주자 엑스‘ 때문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 이 책은 그들을 향한 경고이다. (8)
광고 이미지에 속지 말자. 같은 건설사,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라고 해도 실제 제품은 천차만별임을 기억하라. 아무리 브랜드가 같아도 다른 지역, 심지어 다른 단지라면 전혀 다른 아파트라고 생각하라. 그 사실을 잊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아파트라는 정글에 놓인 거대한 함정들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55)
단지의 규모나 지역에 따라서 입주자 엑스의 수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은 5~10명 정도가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입주자 스몰 엑스(x)‘가 있다. 이들은 입주자 엑스처럼 업체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입주자 엑스와 친하고 이들에게 동조하는 입주자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입주자 엑스의 논리에 부화뇌동하면서 앞에서 나대는 선무당들이 ‘스몰 엑스‘다. 입주자 엑스는 이들을 총알받이로 활용하기도 한다. 입주자들 사이에 주장이 엇갈리면서 충돌이 벌어질 때에는 입주자 엑스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스몰 엑스를 내세우고 이들이 앞에서 설치면서 싸우게 만든다. (112)
한 입주예정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간 카페에 나타나지도 않고 글 한 번 남긴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다짜고짜 육두문자를 내뱉기 시작했다. 입주대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더 받아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나에겐 건설사에 회유당한 것 같아고 비난을 퍼부었다. 원하는 만큼을 전부 받지는 못했지만 3분의 2 정도 수준의 대책을 얻어냈는데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은 세대에게서 이런 욕까지 먹어야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180)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단지라는 작은 나라 안에서 정부와도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비용을 결제할 권한이 있고, 용역 및 외주업체를 선정할 권한도 있다. 입주민들을 위해서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좋은 입대의가 구성되면 그 아파트는 투명하고 좋은 아파트가 된다. 반대로 이권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 혹은 시행사나 건설사와 결탁한 사람들이 입대의를 장악하면 그 아파트는 복마전이 된다. (191)
한편 입주자들도 1/n의 마법에 편승하기도 한다.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도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입주자 엑스, 혹은 나쁜 입대의와 맞서야 하고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귀찮아질거라 생각하기 쉽다. 말을 안 하고 공론화시키지 않아도 더 나가는 돈은 한 달에 1~2만원 수준이다. 그냥 1만 원 더 내고 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게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1만 원이지만 1,000세대면 1,000만 원, 1년이면 1억 2,000만 원이다. 1/n의 마법 속에 묻혀서 슬금슬금 우리의 주머니는 털리고 입주자 엑스를 비롯한 누군가는 배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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