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본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은 여전히 장비의 매력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경시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몸과 마음이 통합된 전체로서의 몸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의학 연구 분야는 상당히 확장될 것입니다." (14)
특히 자신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고 개선하려는 과정에서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것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필요한 과정을 수행하려면 처음에는 ‘옳지 않게 느껴지는‘ 새롭고 생경한 방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를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고 개선하는 이 테크닉을 적용할 때, ‘옳다고 느껴지지만‘ 분명 우리를 오류로 인도하는, 이전의 습관적 ‘함(doing)‘이 주는 익숙한 ‘느낌‘에 계속 의존하는 것이 바로 실패의 원인이다. (22)
최근 나는 속독을 연습해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해보다 속도를 중요시하는 속독의 습관은 이 시대에 매우 흔한 결점이며, 인류를 육체적 정신적 혼란으로 몰고 가는 지름길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자극에 너무 빠르게 반응하는 습관의 한 사례일 뿐이며, 이러한 습관이 널리 퍼진 탓에 오늘날 정치 조직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잘못 인식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애쓰는 일이 발생한다. (22)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일어난 뒤에 ‘치료...‘를 하기보다는 미리 ‘방지...‘하는 원리를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지식은, 자기 몸을 사용하고 각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만드는 일과 건강과 전반적인 행복의 기준을 높이는 법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개인의 권리와 노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이야기하건대, 그 훌륭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으로서, 교사가 있건 없건 인내심과 시간을 투자해 일생에 이 기법을 적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 (25)
그러므로 자신의 반응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방식으로도 디렉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된 이상, 자기를 사용할 때 본능적인 디렉션을 의식적인 디렉션으로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이러한 변화를 낳는 수단에 대한 지식이 모든 교육에서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는 이유를 이해하리라고 믿는다. (71)
코치의 가르침에 따르려는 의도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에서 눈을 떼는 이유는, 그 선수가 확고부동한 ‘목적 지향자(end-gainer)‘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습관을 갖고 있다. 목적을 달성시키는 진행과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목적을 향해 곧바로 돌진한다. 이 경우, 그의 목적이 공을 잘 치는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는 곧 그가 경기를 시작하는 순간, 공을 가장 잘 치기 위해서 인체를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할지 고려하지 않고 목적을 향해 곧바로 움직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결과 그는 습관적 사용 방식에 따라 공을 친다. ... ‘목적 지향...‘의 습관에 지배받는 한, 그는 동이랗게 자신을 잘못 사용하여 ‘공을 잘 치려는‘ 자극에 반응하고, 공에서 계속 눈을 떼게 될 것이다. (81)
어떤 증상을 없애는 과정에서 다른 증상들이 그대로 있고 원하지 않는 새로운 증상들이 나타난다면, 이 방식은 효과적이거나 과학적인 ‘치료‘ 방식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방법으로 ‘치료‘된 말더듬증 환자를 실험해 보면, ‘치료‘의 과정에서 과도한 근육 긴장, 에너지의 잘못된 디렉션, 감각경험의 비신뢰성 등이 증가했음을 너무나 자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말더듬증이 꼭 재발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평소에 드러나지 않던 원치 않는 다른 증상이 발생할 거라고 거의 확신한다. 결함과 질병이 특정한 방법으로 ‘치료‘되었을 때 이러한 문제는 예외 없이 발생한다. ‘치료‘되었다는 기록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체의 문제가 늘어나 점점 더 많은 ‘치료‘가 필요해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108)
(1) 의사는 병균 침입 같은 문제의 즉각적인 원인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잘못된 인체 메커니즘이 사용될 경우 환자가 병균을 막아 내는 저항력이 낮아지는 기능저하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진단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126)
(2) 의대에서는 인체 메커니즘의 사용이 더허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교육은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의사는 진단할 때 내가 정의한 ‘사용(use)‘을 적용하지 않으며, 사용의 잘못된 디렉션과 질병을 일으키는 불만족스러운 기능 수준 간의 관련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추론은 불완전한 전제에 근거한 것이며, 그 의료의 가치는 예방과 치료의 영역 모두에서 제한적일 것이다.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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