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도 그녀는 방향감각을 잃지 않았다. 발의 감각은 무뎠지만 집까지의 거리는 두렵지 않았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도 그녀를 엉뚱한 곳으로 날려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오그라들고 피부가 터질 듯 얼어붙어도 상관없었다. 순수하고 벌거벗은 그녀의 일부는 멈추지 않았기에. 그해 부활절에는 사십 년 만에 가장 큰 눈이 내렸지만 준은 물위를 걷듯 눈밭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