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값을 매기고 판매하기로 결정했다면 내 이야기를 하는 ‘자기만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내 책을 구매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제작했으면 해요. 지금까지는 독립출판에 대해 알리고 제작물이 많아지고 있는 초기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독립출판계가 질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시기일 거예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에 ‘완성도‘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8)
일년에 한번씩 2박3일 일정으로 회사 전체 워크숍을 가고, 회사 분위기 역시 개인적인 여행을 권장하는 편이에요. 여행지에서 서점이나 카페 등을 보고 좋았던 점이나 배울만한 부분을 체크하여 서로 공유하고, 이를 저희 책방에 어떤 식으로 접목하면 좋을지 고민하죠. 여행을 통해 일상에 활력을 불어놓고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 것이 저희가 즐거운 이유입니다. (31)
책은 평생을 함께할 인생의 길잡이입니다. 그림책은 소설과 시보다 철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이야말로 자신의 철학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소중한 매체입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이 그림책을 보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받기를 바랍니다. (45)
지금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요? 잘게 쪼개진 세계에 살고 있어요. 모든 것이 분화된, 그래서 신경쓸 것도 많고 확인해야 할 것도 많지만, 그 쪼개진 규모로 인해 산만한 지점을 이어나가도 보상이 크지 못한 세계. 독립출판 역시 그 분화의 문화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판이라는 큰 덩어리가 잘게 쪼개지고 그 속에서 아마추어 저자들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이죠. 그래서 전체 덩어리의 힘이 약해지면서 숱한 가지가 생겨나는 지금이 반갑지만, 과연 어디까지 잘게 나누어질 것인가 두렵기도 합니다. (59)
1년 단위의 키워드 선정을 기획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다양한 책들이 담고 있는 객관적인 정보가 ‘공부‘를 통해 새로운 텍스트로 탄생하기를 의도했어요. 한 가지 키워드를 공부하는 데 적어도 1년이라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1년간의 공부를 통해 기존의 키워드에서 새로운 키워드가 파생되기를, 그래서 앎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기를 기대하는 기획이에요. (223)
처음 한 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책을 만들어내면 좋겠어요. 책이 한 권 두 권 추가될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자신만의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를 말이죠. (270)
대안적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꿈으로만 간직하고, 취직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좋은 소비자가 되어주세요. (367)
이페메라는 언뜻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기는 쉽지 않은 일회성 인쇄물이나 출판물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어떤 것들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프린티드 메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자.... 그림이나 글이 담긴 연습장 형태의 책, 광고 전단지, 포스터, 티켓, 책갈피, 화폐와 비슷한 모양을 한 쪽지들이 같은 분류 아래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런 걸 대체 왜 파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이걸 책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흥미로은 점은 그것이 단지 ‘전단지‘나 ‘찌라시‘ ‘엽서 비슷한 것‘이 아니라 ‘이페메라‘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점이다. (386)
이페메라는 영어 단어 ‘Humble‘이 가진 중의성을 떠올리게 한다. 초라함과 겸손함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가 한 단어에 내재하듯, 찢기기 쉽다는 말은 그만큼 귀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의 모든 서점이 이런 분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프린티도 매터‘와 같이 특정한 독립책방에서만 찾을 수 있는 출판물이다. 작고, 고유하고, 훼손되기 쉽기 때문에 유통하기 까다롭고, 대형 서점의 진열 방식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책이 있을 것이다. 수직으로 설 수 없기 때문에 수평적인 진열이 필요한 출판물이 있을 것이며, 보통의 책이 특정한 판형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모든 책이 그런 방식으로 제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책방이 없다면 새로운 책은 애초에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 아닐까. 다양한 책을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상력이 용인되지 않는 환경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87)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어떤 독립책방이 필요할까? 독립출판 작가들과 제작자들의 작업을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책방이다. 문학상, 평론상, 미술상에 투고하는 작업들로는 결코 새로운 책이 나올 수 없다. 한국 제도권 출판의 최종 포맷은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주 없는 비평, 그림책 시집, 픽션에 가까운 논픽션, 10대 LGBT청소년을 위한 잡지, 팬시하지 않지만 개성 있는 그래픽노블...... 나는 뉴욕의 독립책방에서 메이저 출판을 뛰어넘는 퀄리티...를 지닌 이런 작업들을 보았다. 이처럼 독립출판은 ‘다른 책‘이지 후진 책이 아니다. 독자들에게 새로움과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그 책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작가를 길들이지 않는 책방을 통해, 그렇다면 그 책방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바로 ‘다른 책‘을 만들 준비와 경험을 가진 작가...들이다.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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