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는 구미인,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까지 한데 뒤섞여 공존하는 부조화의 조화를 형성하는 곳이었다. 특히, 공동 조계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타이밍은 그런 느낌이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인간성을 말살한 금권주의의 상징이랄 수 있는 괴물 같은 고층 건물들이 주변 풍경을 압도하고 있었고, 그 건물들 사이를 인간과 차량의 광분한 격류가 지칠 줄 모르고 출렁대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 물결이 너무도 어마어마해 맞은편 쪽으로 건너가는 일에도 목숨을 걸어야 할 지경이었다. ... 이곳 상하이에는 인간의 혼을 마비시키는 것만 있을 뿐 인간의 영혼에 안식을 주는 것은 없었다. (181)
그녀의 연설은 극히 선동적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내용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단지 무장한 말들의 나열일 뿐이었고 일종의 감정론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민중들은 크게 공명한 듯 연신 박수를 보냈다. 타이밍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안 나왔다. 이론적 근거는 전혀 없이, 그저 남들이 했던 선전을 뜻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 민중들에게 앵무새처럼 그대로 떠들어 대는 그녀의 그 무책임한 행위에 타이밍은 증오마저 느껴졌다. ... 지금의 가두연설도 마찬가지이다. 항전의 필요를 외치지만 양국의 군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전쟁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런 무책임한 주장을 설파해서 민중을 선동하는 정치적 브로커들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왔다. 특히 그는 아내 슈춘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군사적 지식이라곤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군비조차 제대로 모른다. 그런데도 주전론을 주창하고 있다. 그는 왠지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저 우쭐하는 생각만으로 전쟁을 할 수는 없다. (237)
"추상적인 논리로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상황이 오고 있어. 중국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행동 뿐이야. 자네도 빨리 관념의 탑을 나와 자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기를 바라네. 남 일이 아니야. 이건 머지않아 자네 자신의 운명이 걸린 문제야." (240)
타이밍은 그와는 약간 견해를 달리했다. 황민화운동은 확실히 타이완인의 등골을 뽑는 정책임에는 틀림없다. 타이완인이 그로 인해 거세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독되어 있는 것은 오히려 명리에 눈이 먼 일부 극소수 타이완인일 뿐이며 나머지 대다수의 타이완인, 특히 농민들 가운데는 여전히 중독되지 않은 건전한 정신이 살아 있다. 그들 농민들에게는 지식도 학문도 없지만, 대지에 족한 생활이 있다. 또한 그로부터 생겨난 생활감정은 명리나 헛된 선전 따위에 함부로 춤추지 않는 건전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대지에 밀착해 있는 한, 결코 그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담장 위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적 성격의 황민파는 동요하기 쉽다. 그들이 육체적인 감각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뿌리 없이 떠다니는 개구리밥과 같다. (317)
그는 무화과를 만지작거리며 울타리 근처를 천천히 배회했다. 누가 다듬어 놓았는지 예쁘고 깔끔하게 손질된 타이완 개나리 울타리엔 어느덧 파릇파릇 새잎이 움트고 있었다. 문득 그 밑동을 들여다보니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울타리 중간을 뚫고 제멋대로 자라나 수족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경이로운 눈길로 다시 한 번 그 가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위로 뻗쳤다거나 가로로 누워 있었다면 필경 다 가지치기되어 있었을 텐데 유독 이 가지만이 잘리지 않고 자유롭게 그 생명력을 발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는 새삼 깊은 감명을 받았다. ...... '그래 맞다. 강하게 살자. 타이완 개나리처럼...... .' (323-4)
타이밍은 돌아온 지 알마 되지 않았지만 이러저러한 현실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게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도기적 현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괜히 그에 얽매여 끙끙 앓기보다는 무엇보다 자기를 잃지 말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352)
내 장담하는데, 만에 하나 누가 저것들한테 문학 정신이 있느니 뭐니 하며 짓까분다면 진짜 문학자들은 아마 지하에서 통곡할 걸세. ...... 방금 딩이 그랬지? 문학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내가 볼 때, 저 놈들은 문학을 장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문학은 개인이 성공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에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야.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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