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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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늑대>는 일부 인간 동물들에게서 따뜻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사실이 진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업이며, 삶을 이해하는 데 유머가 차지하는 역할이 지극히 중대하다는 내 소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책을, 스스로에게 안수한 여러 전문가들은 비웃었다. (5) ...... 우리는 늑대의 유죄를 선고할 때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적인 잘못된 인식에 근거를 두었다. 포악하며 무자비한 킬러라는 신화화된 이미지는 사실상 우리가 던진 우리 스스로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희생 늑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9)

응답은 빨리도 왔다. 엿새가 지나서 말이다.
"귀관의 문제 이해 불가 끝. 임무는 명백 끝. 잘 이행하면 문제 소지 없을 것 끝. 민간 무전은 긴급시에만 이용하며 절대 절대 전문이 열 단어를 넘지 않도록 끝. 2주 내로 늑대와 긴밀 접촉하는 중간 진전 기대 끝. 부처 예산 무전 비용은 긴급 사항만 열 단어까지 지원 최대한 간결 요망 끝. 카누가 반쪽이라니 무슨 뜻 끝. 초과 무전 비용 귀관 급여에서 감함 끝. - 포식방어과장" (31)

텐트를 늑대들이 다니는 주요 통로 하나에서 10야드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길은 늑대들이 서쪽 사냥터로 오갈 때 쓰는 길이었다. 자리를 잡은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늑대 한 마리가 사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와 텐트를 발견했다. 힘든 밤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라 지쳐서 집에 가서 자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소설에서 초자연적으로 경계심이 있고 의심이 많은 짐승이라고 묘사된 것과는 딴판으로, 이 늑대는 자신에게 너무 몰두해 있어서 15야드 안에 있는 나에게 곧바로 다가와 하마터면 텐트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 늑대는 고개를 들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거나 늦추지 않았다. 고작 한 번 슬쩍 곁눈질을 해준 것이 지나가며 나에게 베푼 모든 것이었다. (83)

전적으로 늑대 가족의 나날에 주파수를 맞추다보니 그들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이 더 어려워짐을 느꼈다. 그들을 아무리 과학적인 객관성으로 보려 해도 각각의 개성이 주는 영향을 뿌리치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내가 일개 사병이었을 때 모셨던 장군님과 너무 닮아서, 어느덧 나는 늑대 가족의 아버지를 조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 나는 조지를 아주 존경하고 좋아했다. 한편 앤젤린[조지의 짝인 암컷 늑대를 말함]에 대해서는 몹시 정이 가서, 나는 지금도 그녀의 미덕을 다 갖춘 인간 여성을 어디선가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93)

카일라 신이 듣고 가라사대, `내가 한 일은 옳도다. 내가 아모락(늑대의 정령)에게 이르리니, 그는 자기 자손에게 일러 아프고 약하고 작은 순록을 먹게 할지니라. 그리하여 땅에는 살지고 건강한 것들이 남으리라.`
...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잠깐 아찔해졌다. 글자도 모르고 배운 적도 없는 에스키모에게서 받은 강연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우화 형식으로 자연 선택을 매개로 한 적자생존 이론을 풀이해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123)

그는 또 늑대가 자식들에게 갖는 전반적인 시각이 에스키모가 자기 아이들에게 갖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즉 실제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고아가 없다고 했다. ...... 이사가 끝나고 보니 이 굴에는 새끼가 열 마리나 되었다. 우텍이 보기에 모두 같은 크기에 또래였던 녀석들은 상처한 수컷을 포함한 여러 어른들로부터 똑같은 보살핌과 애정을 받았다. (143)

내가 본 것들을 이야기했더니 우텍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놀란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방문하지 않느냐, 늑대가 다른 늑대를 방문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것이었다. (169)

나의 분노는 두려움이 낳은 적개심에서 온 것이었다. 그 적개심은 내 안에서 적나라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인간적 자존심을 참을 수 없도록 우습게 만들어버린 짐승에 대한 것이었다.
그 여름 내내 늑대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과 나 스스로에 대해 배운 것들을 내가 얼마나 쉽게 망각했으며 얼마나 간단하게 부인했는지 깨달으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나는 굴 바닥에 움츠리고 있던 앤젤린과 그녀의 꼬마를 떠올려 보았다. 그들은 천둥처럼 갑자기 밀려온 비행기를 피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
하지만 나에게는 그 소리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조화롭지 못한 역할을 선택하기 전, 한때는 우리의 것이었던 세계, 내가 얼핏 알아보고 거의 들어가기까지 했지만, 결국 내 스스로가 외면하고만 세계에 대한 노래였다.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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