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일단 이해하고 나면 그 기본 가정 그리고 수학이 증명해놓은 깜짝 놀랄 정도로 복잡한 진리를 도무지 믿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다. 하지만 정작 그 기본 가정과 수학적 증명에 사용된 방법론을 수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입증할 방법은 없다. 너무나 자명한 것이기에 다른 독립적인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논리와 수학의 진리를 알아볼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5) ...... 유신론자들은 자신의 가치 사실주의가 근거 사실주의라고 가정한다. 유신론자들은 신이 자신들에게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고 그것을 입증해 준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책임감 있는 삶과 경이로운 우주를 신이 깨닫게 해주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유신론자들의 사실주의는 결국 근거가 없는 게 분명하다. 그들의 믿음을 방어할 수 있으려면 그런 가치가 신의 역사를 비롯한 모든 역사로부터 철저하게 독립적이어야 한다. (41)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가 자신의 전임자라고 자주 칭했다. 심지어 스피노자의 신이 곧 자신의 신이라는 말까지 했다. 아인슈타인은 인격적인 신을 믿지 않았지만 자연을 '숭배'했다. 그는 자연을 경의감 어린 태도로 바라보았으며, 자신을 비롯한 다른 과학자들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앞에서는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자연에 대해서 종교적 믿음을 나타낸 것이다. / 반면 스피노자는 우주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이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는 자연이 심미적으로는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리적, 도덕적으로도 불활성 상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연의 근본 법칙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가장 올바르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연이야말로 정의의 진정한 기반이며, 그가 지지했던 자유주의적, 개인적, 정치적 도덕성의 기반이라고 믿었다. (60)
다시 말해, 물리학자들은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존재의 총체성 안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또 그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감 있는 물리학자라면 우주가 그저 우연으로라도 아름답다는 확신을 느낄 만큼, 우주에 대해 충분히 알아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마르셀로 글레이서 같은 사람은 자신의 책 <최종 이론은 없다>에서 자신의 의구심을 밝혔다. 그는 우주가 결국에는 통일되기보다는 오히려 지저분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우주가 아름답다는 관점을 공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어 있는 우주가 아니라 인간의 삶만이 본질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 삶과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의식이 없는 은하계나 원자에는 아름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경이로운 존재이지만, 통일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 그 자체에는 경이로움이 없다고 주장한다. (85)
과학은 여전히 보호막을 필요로 하며, 신학과 마차가지로 개념의 영역에서 그런 보호막을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세속적 과학은 신학의 과학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해졌다.) 적어도 한동안 우주론 학자들은 빅뱅이 시간과 공간의 기원이기 때문에 그전에 무엇이 어디서 왜 일어났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런 질문은 북극에서 그보다 더 북쪽은 어디냐고 묻는 것처럼 어리석다는 뜻이다. ... 그러나 이것은 보호막이 효과가 있으려면 그 보호막이 자기가 보호하는 이론으로부터 유도되어야지, 나중에 이론에 덧대어지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사항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시간과 법칙 그 자체는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119)
정치적 자유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공정한 국가에서는 '윤리적 독립성'이라 부를 수 있는 아주 일반적 권리, 그리고 특정 자유에 대한 특별한 권리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 ...... 이제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종교의 자유를 정의하면서 우리가 처하게 된 문제점은, 종교의 자유를 특별한 권리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종교를 신으로부터 분리하려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 대신 이제는 높은 보호 기준 때문에 엄격한 제한과 세심한 정의가 필요해진 특별한 권리라는 지위를 종교의 자유에서 내려놓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신하여 그러한 권리의 전통적 주제에 윤리적 독립성에 대한 좀더 일반적인 권리만 적용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160)
스위스 시민들은 2009년에 전 세계를 충격으로 내몬 국민투표를 통해 스위스 어디에도 미나레트를 건설하지 못하게 금지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 만약 종교의 자유를 종교적 주제에 국한된 특별한 권리로 생각한다면, 미나레트가 그 어떠한 종교적 의무나 요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것이 사실이라면)은 이 상황과 적절한 관련이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윤리적 독립성에 대한 좀 더 일반적인 권리의 핵심 사례로 생각한다면, 이런 사실은 완전히 관련이 없는 셈이 된다. 이 논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국민투표가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을 표출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이 투표는 윤리적 독립성의 평등주의적 이상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173)
죽음 이후의 삶이 사실상 의미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절망적으로 두려워하는 그 무엇, 즉 존재가 모든 것으로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상상할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아닌 무언가를 의미할 뿐이다. (180)
하지만 정말 필수적인 부분은 도덕과 윤리의 전문지식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객관적인 윤리적, 도덕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판단이 필연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올바른 삶을 살겠다는 욕구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이 존재한다는 신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1장에서 삶에 대한 종교적 태도라고 설명한 핵심이다. 이것은 실재가 오로지 물질과 마음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불가능한 부분이다. 그들에게 그러한 가치관은 물질과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나 허구에 불과하다. (186)
"이 말이 어리석은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그저 감상적인 푸념에 불과한가? 당신이 음악을 연주하거나, 야구를 하며 커브 공을 던지거나, 의자를 직접 만들거나, 소네트를 작곡하거나, 사랑을 나누는 등, 무언가 소소한 일을 잘해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이런 것들은 삶에서 이룬 성취다. 그렇다면 왜 삶도 그 자체로 완벽한 성취가 될 수 없단 말인가? 그 삶에 드러난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예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자기만의 가치로 말이다." ...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불멸이다. 적어도 우리가 실질적으로 바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신념이다.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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