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후에 독자들은 어쩌면 `미술`에 대해 자기만의 견해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원하고 또한 시간이 허락한다면, 당신이 이해한 `미술` 혹은 `미술` 이야기(역사)를 직접 써볼 것을 제안한다. 모든 사람은 인류를 이야기할 권리가 있으며, 실제로 인류 문명의 역사는 부단히 쓰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11)
역사적으로 사실주의는 그 시대의 과학과 민주운동이 서로 호응한 결과였으며, 쉬베이홍 개인의 독단적인 입장을 제쳐두고 보면 중국에서 사실주의의 중요성은 장즈동, 리홍장 등이 추진한 실업과 군사공업의 중요성과 같은 것이었다. 일종의 과학으로서(르네상스 시기 예술에 대한 정의), 사실기법은 틀림없이 중국예술가들이 숙달해야 할 기교였고, 실제로 예술을 현실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예술가들에게는 십분 유용했다. (182)
쉬베이홍은 이후 한동안 사실적 기법이 정당정치와 이데올로기의 규정 아래 정치 목적을 수행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일찍 세상을 뜬 탓에 자기가 제창한 방법이 어떻게 경직된 허래허식의 도구로 변해갔는지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190)
다소 풍자적인 것은 타이완 당국이 예술가들의 행위를 질책하면서 이를 공산당 혹은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기괴한 현상이었다. 대륙의 예술가들이 모더니즘 언어를 사용하기만 하면 즉시 반동으로 간주된 것과 마찬가지로, 타이완의 급진주의 예술가들의 행위는 도리어 공산당의 전복행위로 인식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이는 자유주의 인사들과 서양인들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토론을 통해 추상예술 혹은 현대예술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하게 됐다. 특히 기록해둘 만한 역사적 사실은 국민당이 국제사회에서 국공 양안의 실력대결 구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현대예술을 도구로 사용했으며, 사실상 현대예술가들이 관방의 지지와 묵인을 얻도록 했다는 점이다.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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