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 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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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에 와서야 곱씹어 보면, 난 우울했었다. 날씨는 추워졌고, 햇볕은 생명력을 잃어버린듯 흐물흐물해졌으며, 난 열중할 필요성을 가진 일을 한개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열망에 들뜰만한 일도 없었다. 내 주변에 흘러가는 세상은 한 없이 고요했으며, 추웠다. 아침이면 침대 밖으로 발을 내 딛기가 싫었고, 먹는 것도, 웃는 것도, 말하는 것도 귀챦은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찾아와 벗어나기 위해 "끙"하고 소리를 내야 했다. 하루종일 똑바로 누워서 가슴에 손을 모으고, 천장을 쳐다보는게 내가 원하는거 전부처럼 느껴지던 순간들. 렛미인을 읽고 있던 순간들.

  겨울이 성큼 다가와 버린듯해 너무나 추웠고, 오스카르와 엘리의 대화가 너무 가만가만 서걱거리는듯해 가슴이 시렸다. 머릿속에서는 자꾸 검은 차창밖에 흩날리던 눈발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깊고 깊은 겨울밤, 그 안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해서, 자꾸 눈을 감게 됐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해 보려 하다가 그만둔다. 모든것들이 파편처럼 흩어지는 상상을 하게 되는 순간들.

  이 소설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모두 사족이 될 뿐일거 같아 난 그저 고요한 심해같은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다시 눈을 감는다.
 

 

사랑은 구원일 수 없어도,

이 공고한 지옥,

세상이라는 이름의 진창 속에서 우리가 부여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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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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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신 또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고,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어 가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지는 않는다. 각자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다 다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가 가진 호불호의 차이는 우리가 타인에게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음악 또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천양지차일지도 모른다. 가령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두명의 장신 가드를 뚫고 덩크슛을 한 것처럼 신난다!"라고 신나는 기분을 표현할지도 모르고, 어떤이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세상이 포효하면서 날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운명안에 가둬놓는 기분이었어."라고 절망감을 표현할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이런식으로 자신을 표현한 사람을 만난본 적은 없다. 만나봤다면, 훨씬 재밌었을텐데.)

  책읽는것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정혜윤PD는 자신이 겪는 대부분의 상황속에서 책에서 읽은 구절들을 들춰낸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구절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밖에 기억하고 있지 못할 텐데, 그녀는 구절만을 기억하는 연습을 한 듯, 다른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쳤을 문장들을 읊어댄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생각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우울한 다음 날 술 한잔 딱 걸치고 돌아오는 길엔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을 읽는게 제격이다.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이면 <개선문>이라든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나 <빅피쉬>를 읽는다. 사랑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닥터지바고>나 <브로큰백마운틴>을 읽는다. 이렇게 내 감정상태에 맞는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다면, 책이 얼마나 삶에 위안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는 <비블리오테라피>란 책의 리뷰에, 지금 내 마음이 읽고 싶어하는 책이 지금 나의 감정상태에 가장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하겠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 그런 책의 목록을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상황에 맞는 책들을 딱딱 골라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놀이를 해 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이럴땐, 이런책.

  그러고보니, 침대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다. 하루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과를 마치는 시간은 항상 잠들기 직전의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다 보니 책읽기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은 침대에서 책 읽기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침대와 책의 관계가 성립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이럴땐 이런책'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도 일견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다른책을 더 꼽고 싶은 사람도 많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글귀들은 아름답고, 그 글에서 파생된 그녀의 생각들엔 고개가 끄덕여 질때도 많지만, 또한 나는 원치 않았는데, 너무 사적인 그녀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간 듯한 불편함.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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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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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보니까 생각나는게 있어. 언젠가 벳푸로 여행을 갔을 때 일이야. 호텔이 무료로 제공하는 반딧불이 투어에 갔는데 말이야. 깊은 숲 속에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이었어. 그 투어의 가이드는 그 말을에서만 평생을 산 아저씨였지. 그 아저씬 그 온천 마을의 깊숙한 곳까지 알고 있다고 자랑을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의 보름달을 향해 플래쉬를 비췄어. 그때 뭐가 보였는지 알아? 보름달 위로 날아가는 부엉이 한 마리였어. 보름달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는 크고 검은 부엉이의 그림자를 난 본 거지. 그 순간 내게는 그게 내 영혼 같아 보였어. 미래를 향해 날아가는 내 영혼의 그림자. 과거와 미래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말이 뭔지 알아? 과거는 출발점이고 미래는 목표라 생각하지만 그건 틀렸어. 과거와 미래는 공통점이 있어. 과거와 미래의 공통점은 둘 다 가능성이란 것이야! 아까부터 이 말을 너에게 속삭여주고 싶었어. 우리의 우울은 의지박약 탓이 아니고 기질이니까 너무 기를 쓰고 애쓰지 말자. 잘 자."-26~27쪽

그의 머릿속을 따라다니다 보면 진정으로 매력 있는 사람은 매일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게 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32쪽

하지만 <파브르 평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꿈>이란 제목이 달린 부분이다. '나는 꿈에 잠길 때마다 단 몇 분만이라도 우리 집 개의 뇌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람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세상의 사물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인가?'-78쪽

내게는 수많은 나쁜 일과 몇 개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모든 것, 특히 나쁜 일이 장기적으로 글로 변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다른 것으로 변환될 필요가 없으니까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이 문장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장기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행복보다 불행일 수 있다는 말일까? 보르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작가, 아니 모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이 유용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심지어 수치와 장애와 불행을 포함한 모든 것을, 예술의 재료로서... 그런 것들은 우리가 변형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실명은 하늘의 선물입니다.-162쪽

그래서 시간이 덧없는 날, 쓸쓸한 날 진정으로 적합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왜 살아왔는가?'도 아니다. 진정으로 적합한 질문은 이것 하나다. 보르헤스가 ,목격자.란 글에서 던졌던 그 질문.
'만일 내가 죽으면 나와 함께 무엇이 죽고 세계는 서글프로 부서지기 쉬운 어떤 형상을 잃게 될 것인가?' 보르헤스에겐 그것이 목소리, 거리, 책상 속의 물건들이었다.-166쪽

매일의 작은 모욕감은 간이 맡는다. 췌장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충격을 관장한다. 췌장이 얼마나 많이 받아들이 수 있는지 당신이 안다면 놀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오른쪽 신장이 맡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느끼는 실망은 왼쪽 신장이 맡는다. 개인적인 실패는 창자의 몫이다.

이 문장은 뉴욕의 떠오르는 별 니콜 크라우스가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차례차례 몽땅 다 잃고 혼자 살아남은 폴란드계 유대 노인이 고통을 처리하는 방식을 설명한 글이다.-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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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서울 - 미래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스무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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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치야 감독은 "민족주의자 아마미야는 아직 아마미야 자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이든 어떤 주의主義를 짊어지는 순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아마미야의 전향이었다. 자신의 고단한 삶으로 되돌아와 그것을 응시하고, 고통의 원인을 캐물으며, 그것을 쉽게 운명이라 생각하여 미리부터 포기하며 허무(공허)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 것.....
아마미야 카린은 자신의 고단한 삶(이것이 언제나 그녀가 쓰는 글의 중심 테마이다)으로 되돌아가 기록하기 시작한다.-10쪽

기본적으로 교도소는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들의 선교 장소가 되어 있습니다만, 좀 극단적으로 말하여 그것은 갇힌 자들에게 별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 가장 필요한 것은 사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왜 자신이 지금 이런 상황에 있는가를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 인문학이니까요. 그런데도 그것을 접할 기회가 적습니다.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교도소에서 강의를 들은 사람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가 밖에 있었다면 절대 이런 건 듣지 않았을 겁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잠이나 잤을 겁니다.' 라고요. 이것을 계기로 공부를 하게 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154~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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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서울 - 미래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스무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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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심, 대충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여지지 않아서, 타인과의 대화에서는 다르게 얘기하는 것들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2030세대의 실업난 같은 것들.

 혹자는 눈높이는 높아져서 힘든 일을 안 하려 하니까 그렇지,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는 무궁무진하다고 얘기한다. 또 다른 혹자는 그동안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번듯하게 취직해 다니는 또 다른 친구와 비교하면서. 하지만 우리는 모두 내심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이 이상하다고. 무언가 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대학시절 학점이 2.5만 넘어도 현재 내노라하는 대기업 두 세군데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일 뿐이다. 지금의 4~50대들이 취업을 시작했던 시절과 지금의 2~30대들의 상황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한창 왕성한 열정으로 일을 시작해야 할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태백으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분명, 이 사회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데, 현재의 2~30대들은 자신의 무능력만을 탓하며 자기계발에, 어학연수에, 각종 고시에 매달린다. 그들에게 삶은 희망적이고 살아볼 만한 것이라기 보다는 버텨내야만 하는 고단한 의무감일 뿐이다. 한창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시작하며, 살아가는 희망에 부풀어 있어야 할 20대 사망원인 1순위가 자살이라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지?

 

  비록 우리나라가 20대 실업률은 OECD국중 최고라고 하지만, 위 이야기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마찬가지임을 이 책은 지적한다. 한때,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그 답답함에서 벗어나는 대안으로 각광받았던 '프리터'의 진상은 '프레카리아트(불안한 프롤레타리아트)'일 뿐이다. 

 일본 '프레카리아트'운동의 잔다르크로 알려진 아마미야 카린은 일본과 유사한 한국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을 방문한다. 우리들의 삶이야 현재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잘 알아야지 맞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웃나라의 의식있는 사회 운동가의 시선이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듯 싶다. 책을 읽으면서 연방 깨닫게 되는 장면들 중 하나는 일본과 유사함을 느끼는 아마미야 카린의 놀라움이다. 

 빈집을 점거하며 예술 활동을 하는 문래동의 아티스트들, 연합을 형성하는 '전국 백수 연합',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 코뮌을 만드는 연구자들. 이들과 같이, 절망적인 현재의 상황 속에서도 남들처럼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깨닫고 지적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몇몇 20대들이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을 논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당사자가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고 자신의 처지가 그 때문임을 깨달을때, 진정한 연대는 이루어 질 수 있을 테다. 현재의 상황에서 그 일은 요원해 보인다.  아마미야 카린 역시 고단한 자신의 인생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깨닫고 사회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힌다. 우리 역시, 삶의 고단함을 자신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며 무기력하게 살아갈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부조리함을 바꾸기 위한 연대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아마미야 카린이 주장했듯이, 단지 한 개인의, 한 나라의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연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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