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미는 한국인은 사과할 때 일본인보다 말이 50% 정도 더 많으며, 이유를 많이 설명한다고 지적했다.
정현아의 연구에서도 한국인은 사과할 때 일본인보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변명하는 경향이 강했다.
학계에선 한국인의 사과 유형을 ‘문제 해결 중시형‘, 일본인을 ‘인간관계 중시형‘으로 분류한다. - P173

언어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의 거절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한국인은 거절할 때 솔직하게 이유를 설명하는 데 비해, 일본인은 애매하게 말하고 일단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한 한일 연구에서 솔직하게 거절하는 비율은 일본이 25%로, 한국 50%의 절반에 그쳤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다음 기회‘로 일단 미루겠다는 일본인이 8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 P175

이데 리사코 교수는 일본인은 과거의 일을 계속 환기시키며 반복적으로 인사한다면서 일본의 유형을 ‘반복 확인형‘으로, 한 번만 말하는 한국을 ‘1회 완결형‘으로 구분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무척 중요하다. 일본인과의 소통에서 큰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감사할 일이건 사과할 일이건 과거에 대해 한 번만 언급하면 충분하다고 보지만, 일본인은 그럴 경우 무척 섭섭해한다. - P182

한국어와 일본어는 흔히 ‘고맥락 언어‘로 분류된다. 맥락에 따라 의미의 변화가 심해, 겉으로 드러난 뜻보다 숨은 뜻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은 언어라는 뜻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로 범위를 좁히면 일본어가 훨씬 더 맥락에 의존한다. 한국인은 솔직하게, 일본어는 에둘러서 표현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한국어는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어는 듣는 사람이 잘 들어야 한다. 우회적으로 말한 사람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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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정말 신뢰가 돈독한 사회일까? 일본의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야마기시 토시오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본은 ‘안심할 수 있는 사회‘이지 ‘신뢰가 높은 사회‘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안심‘을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는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며 신뢰와 구분한다. - P145

심지어 집단 안정을 위해 선의의 행동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행을 벌하는 사회‘인 셈이다. 사회심리학자 고마쓰 미즈호 등은 일본 대학생들이 집단에 가장 헌신적인 사람들, 이른바 ‘과대 협력자‘에게 의외로 호감도가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공동 과제를 수행하는 실험에서, 일본인들은 더 열심히 일한 사람보다 평균 정도로 일한 사람에게 더 큰 호감을 보였다. 반면 캐나다 학생들은 ‘당연히‘ 집단 기여도가 높은 사람을 더 좋게 평가했다. - P148

일본인은 갈등을 극단적으로 피한다.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 일본인은 갈등이 빚어졌을 경우 자기주장이나 대결보다는 회피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회피가 아닌 대결과 주장의 방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경우도 있다. 가족 간 갈등이다. 가족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달리 유대가 워낙 공고하기 때문에, 관계가 붕괴될 위험이 낮고 심각하게 배척당할 우려도 적어서다. 일본인들은 독설을 퍼붓는 개그맨이나 정치인에게 열광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평소 꾹 참아 둔 말을 대신 해 주는 그들에게서 ‘사이다‘ 같은 속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다. - P150

특히 운동경기에서 이 표현이 쓰일 때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유명 야구 선수가 ‘친정 팀‘이나 옛 스승의 팀을 만나서 잘했을 때도 온가에시라고 표현한다. 스승의 은혜를 갚았다는 의미로, 일종의 청출어람인 셈이다.
특히 스모 중계에 이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예전에 가르침을 준 스모 선수를 이기고 올라갈 때 보은을 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햇병아리일 때 자신의 성장을 도와준 스승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제대로 대갚음을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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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나에게 말하길, 요즘 들어 꿈에서 자꾸 누가 돌아가라고 한다고 했다. 바로 엊그제에도 마을 사람 하나가 전하길, 우리 밭에 풀이 무성하니 자식들 데리고 돌아가 김을 매라고 했다는 거다. 아버지는 그 사람에게 우리 밭은 다른 사람이 농사지은 지 한참 됐다고, 우리는 일찌감치 성안으로 이사 와서 농사를 안 짓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땅은 쭉 너희 집에 남아 있잖아. 그건 너희 밭이야. 달아날 생각 말라고.
깨어날 때마다 아버지는 한참을 망연히 앉아 있었다. - P504

모름지기 농민은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다면, 가난하고 초라하게 살아갈지언정 고향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고 싶어하지 않는다. 집안을 일으키는 어려움을, 거친 땅과 집을 버리는 괴로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 P506

가정이나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나치게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사람이 되면, 내가 떠나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까지 이르는 것은 좋지 않다. - P513

땅에서 내가 가진 것은 머지않아 황폐하게 버려질 집 하나뿐이다.
하늘에는 벽돌 한 장, 기와 한 장도 없다. 사방을 떠도는 혼백이 될 운명인 나에게 남은 것은 오직 너ㅡ황사랑뿐이다. 그곳이 유일한 목적지이자 돌아갈 곳이다. -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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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된 뿌리 하나가 땅속 깊이 박히면 몸통의 튼튼한 가지도 하늘 높이 뻗기 시작한다.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에서 그들은 서로 만난다. - P455

한 가지 사물의 문은 사람에게 한 번씩만 열리는 모양이다. 그 문으로 들어가본 사람은 그 사물의 진상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 된다. 그 뒤로 사람들은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그 사물을 알 수 있다. 진짜 모습은 전해질 길이 없다. 전언자를 통해서 보는 것은 그저 전언일 뿐이다. 그것은 이미 다른 사물이다.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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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오래되면 그 길을 걸어가 떠나버린 사람도 너무나 많아진다. 그러나 발자국은 가버리지 않는다. 발자국은 사람 몸에서 떨어진 나뭇잎이다. 그것은 사람의 몸을 떠나 시간 속에서 홀로 나부낀다. 나부낄수록 멀어지고 또 잠잠해진다. - P405

황사량에서는 서른이 넘으면 눈을 감고도 살아갈 수 있다. 불안하다면 칠팔 년쯤 지나 눈을 떠보면 된다. - P407

이 마을은 참으로 운이 좋다. 운 좋게도 똑똑한 사람들이 다 떠나버렸다. 똑똑한 사람이 촌장을 맡았다면 마을은 일찌감치 탈바꿈했으리라. 그는 보기 흉하게 쓰러져가는 담장과 집을 모조리 헐고, 낫처럼 생긴 황사량 마을을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으로 정비했으리라. 신품종 가축을 들여오고 인공 교배하여 집집마다 소를 다른 품종 소로, 닭을 다른 품종 닭으로 바꿔놓았으리라. 어느 집에도 검은 소나 이마가 하얀 황소가 없을 것이다. 수수닭도, 등은 붉고 배는 하얀 닭도, 잘생긴 잡털 닭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마을은 진짜 끝장인 거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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