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늘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항상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집에 돌아가겠다며 짐을 싸셨고, 이웃에게 기차역에 어떻게 가는지를 물으셨다. 할머니는 아러타이에 아직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저 기차가 유일한 희망임을 알 뿐이었다. 기차는 가장 확실한 떠남을 의미했다.
할머니의 기나긴 삶 속에서 오직 기차만이 할머니가 먼 길을 떠나게 해 주었고, 머나먼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기차만이 할머니를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기차는 할머니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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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학의 세가와 시로 교수는 일본 언론의 원전 보도가 전형적인 ‘대본영 발표‘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본영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최고 통수 기관으로, ‘대본영 발표‘란 전황에 대한 일본군의 공식 발표였다. 그런데 당시 대본영은 의도적으로 전쟁 피해를 축소하거나 미화하고 심지어 승패를 바꾸는 등 사실과 다르게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본영 발표는 이후 ‘전혀 믿을 수 없는 내용의 엉터리 공식 발표‘의 대명사로 통하게 되었다. 즉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 주요 언론의 보도는 진실과 거리가 먼 허위 보도였다는 것이다. - P272

정신과 의사이자 평론가인 가야마 리카는 이런 현상을 포지티브 내셔널리즘이라고 명명했다. ‘긍정적 민족주의‘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동일본 대지진 직후 ‘일본은 강한 나라‘, ‘힘내라 일본‘ 같은 문구가 넘쳐 나는 것에 대해 ‘부흥 내셔널리즘‘ 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녀는 이 같은 현상이 부흥 내셔널리즘의 연장선상에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자기부정적‘이 되지 않기 위해 반대로 자기를 긍정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분석했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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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은 텅 비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옷도 한 벌 걸치지 않았다. 세상에는 오직 식물만이 남았고 식물에는 길만이 남았다. 모든 길은 시원하게 트였으며 모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물은 빛 가운데서 힘겹게 걸음을 떼며 나아가다 어둠 속에서 청신호를 내며 꼭대기를 향해 달려갔다. 물이 이 대지 위에서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바로 해바라기의 꼭대기였다.
이 해바라기 밭은 물이 지구를 돌고 난 뒤에 다다르는 마지막 정거장이었다. 장장 사흘 동안 밤낮 없이 해바라기 밭에 물이 골고루 스며들었다. - P25

나는 도통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고 늘 초조하고 심란했다. 그럴 때면 ‘잠깐일 뿐이야. 집이 생기면 괜찮아질 거야.‘ 나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꿈꾸는 집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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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대만 정도다. 일본과 우리는 이력서에도 혈액형 기재란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외국은 본인의 혈액형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수혈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반문하겠지만, 응급 상황 시 혈액형을 바로 체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대만이 갖고있는 혈액형에 대한 고정관념은 일본이 ‘원조‘다. - P227

최신 혈액형 연구는 혈액형에 대한 고정관념이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일본 사회에 혈액형 성격론이 자리 잡은 이유로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이득이 더 많기 때문‘임을 보여 준다. 혈액형은 재미 삼아 이야기하거나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기에 좋은 소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혈액형 성격론을 적당히 믿는 사람들에 대해 ‘똑똑하지는 않지만 인간성은 좋다‘ 정도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혈액형 성격론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능력은 있지만 거리감이 있다‘고 느꼈다. 혈액형에 대해 가볍게 농담을 나누는데 정색하며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 P234

일본 학자들은 일본인이 추구하는 행복은 ‘다다익선‘식이 아니라 ‘균형을 지향하는‘ 행복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인은 부족함을 알면서도 일정 정도가 충족되면 행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100점 만점으로 치면 가장 이상적인 행복 점수는 70점 정도라는 것이다.
일본인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균형적인 행복‘이란 무엇일까? 긍정과 부정의 균형이다. 즉 인생에서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기에,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이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 P240

<한국일보>의 조사에서 한일 통틀어 일본의 20대는 가장 행복하지 않은 세대였다. 행복도가 10점 만점에 5.2점으로 일본의 전 세대중 최하위였다. 한국 20대의 6.3 점보다도 현저히 낮았다. 전문가들은 장기 불황의 여파를 가장 먼저 꼽는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고, 달관 세대가 됐다고 우려한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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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아보니 휠체어에 대해선 일본이 시설과 인식 면에서 모두 선진국다웠다. 우리의 열악한 환경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관대한 시선과는 대조적으로 유모차에 대해선 우리 사회보다도 훨씬 냉랭한 것으로 각종 조사에서 나타났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2013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6개국의 유모차 이용 인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혼잡할 때 유모차를 접지 않고 타는 승객이 있으면 불쾌하다‘는 대답이 한국은 8%인 데 비해, 일본은42%에 달했다. ‘유모차 승하차 시 주변 승객의 양보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엄마의 비율도 한국은 53%였지만 일본은 13%에 그쳤다. - P214

‘유모차 = 민폐‘라는 일본인의 인식을 볼 수 있는 조사가 있다. 일본민영철도협회는 해마다 ‘전철 내 민폐 행위‘ 순위를 홈페이지에 발표한다. 이런 순위를 집계한다는 것 자체로 일본인들이 얼마나 민폐에 민감한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유모차 접지 않고 승차하기‘는 당당히 7위에 올라 있다. 8위의 쓰레기 방치, 10위인 음주 후 승차하기보다도 높다. 경멸과 혐오의 느낌마저 난다. 실제 일본 엄마들은 유모차를 탄 아이와 자신을 죄인 취급한다고 호소한다. - P215

전철 내 민폐 행동에 대한 일본인의 평가 기준을 분석했더니, 일본인들은 공간 침해 행위가 가장 질이 나쁘다고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유모차 승차‘ 역시 새치기와 ‘쩍벌남‘ 문 주변에 쭈그려 앉기와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악질‘로 말이다. 한 칼럼니스트는 "일본 사회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는 것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엄격한 사회"라고 진단한다. - P216

민폐는 자의적 개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선악을 판단하는 절대적 도덕 기준처럼 쓰일 때가 적지 않다. 일본인들이 남을 공격할 때 자신들의 정의를 주장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민폐‘를 사용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특히 자신은 규칙을 엄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수록 상대방에게 ‘악인‘의 낙인을 마구 찍었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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