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가 ‘우리‘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은,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동일시된다는 점이다. 이 차이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것이 존댓말 사용법이다. 일본에서는 외부 사람을 상대로 할 때에는 손윗사람이라고 해도 ‘우치‘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낮추어말하는 것이 예의이다. - P190

또한 ‘우치‘의 잘못은 곧 ‘나‘의 허물이라는 공식도 성립한다. 공동체 성원의 잘못에 공동 책임을 지는 것이 ‘우치‘의 어른스러운 태도이다. 그렇다 보니 배우자의 과실은 부부가 함께 반성하는 것, 구성원의 실수는 회사 전체가 책임져야 마땅한 것이라고 여긴다. - P191

굳이 ‘소토‘와 ‘요소‘를 구분하는 것은, 사회적 태도와 기대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토‘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상대도 격식을 갖출 것을 기대한다. 서로에게 신뢰할 만한 사회인이라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요소‘에게는 무례한 태도가 나오기도 한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던 일본인이, 길거리나 전철에서 마주친 행인에게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쌀쌀맞게 구는 경우가 있다. - P192

일본 사회의 ‘느림‘은 무슨 일이든 철저하게 하려는 완벽주의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우선 시계를 멈추고 본다. 꼼꼼하게 경우의 수를 분석하고 앞으로 닥칠 낯선 상황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일단 일이 시작되면 시계가 돌아가기는 하는데, 매사에 디테일을 중시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이는데도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철저한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효율성이 없다. 일본에서는 결과보다도 과정과 디테일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 P199

오모테나시라는 개념에는 친절을 일종의 ‘기술‘로 해석하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가 숨어 있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스킬, 그리고 손님의 요구에 미리 철저하게 대비하는 준비 정신이 친절을 실천하는 방법론이다. 결과적으로는 손님에 대한 배려와 서비스로 가시화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친절의실천 기술을 가다듬고 궁극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자기만족적 환대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 P206

한국과 일본에서 친절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문화적 코드는 서로 다르다. 그렇다 보니 손님의 경험도 다르다. 오모테나시 정신이 살아 있는 일본의 가게에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라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정이 넘치는 한국의 가게에서는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라는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친절이라고 다 같은 친절은 아니다. - P207

나홀로주의가 늘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 속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함께 고민해야 마땅한 사회적 사안을 개인의 이슈로 치부한다든가,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사안에도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아 고립되는 등의 상황이 비교적 자주 생긴다. 나홀로주의 노선을 고수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더불어 사는 삶의 이점을 취하지 않는다면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결코 건강한 선택이 아니다. - P212

일본의 성씨는 매우 다양하다. 수강생이 100명 넘는 대규모 수업의 출석부에 성씨가 동일한 학생이 한두 명 있을까 말까이다. 이러니 성씨로 호칭을 대신해도 한국에서와 같은 대혼란이 생기지 않는다. 많은 일본인이 타인과 좀처럼 중복되지 않는 자신의 성씨를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 P218

-한국과 일본의 성씨나 호칭은 역사적으로는 동일한 한자 문화권에서 파생되었다. 하지만 두 나라에서 이 제도를 해석하고 운영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성씨가 혈통을 강조하는 것과는달리, 일본의 성씨는 계약적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수단이다. 한국에서 성씨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존재론적 정체성으로 해석되는 데에 반해, 일본에서 성씨는 호칭을 통해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일상적인 정체성으로 활용된다. 사고방식의 차이가 뚜렷하고 대조적이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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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처음 알았는데 겁나 어이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전의 일본의 범죄 기사에서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무조건 미녀‘라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실제로 범죄 피해자 중에 미녀가 많았다는 뜻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미녀라는 표현을 붙여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계의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범죄 보도에서 피해자의 용모를 묘사하다니,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다. 또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미녀라는 수식어를 칭찬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구시대적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미녀라는수식어를 붙였다고 한들 범죄의 본질이 바뀔 리 없을 뿐더러, 오히려 보도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만 불러일으킨다. 기자 나름대로는 떠난 자를 배려한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어긋난 배려심의 결과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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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함‘이냐 ‘새로움‘이냐. 사회적 가치 평가 기준으로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81세에 은퇴를 결심한 원로 만화가나, 대학원생들과 동등하게 토론을 벌이는 80대 석학의 사례가 보여주듯, 일본 사회는 장시간에 걸쳐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의 장점을 취하는 데에 더 적극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때에는 헛발질도 많다. 하지만 경험과 전문성이 중요한 분야에 있어서는 여전히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 P151

일본의 원로 ‘현역‘들이 안정적으로 대활약을 펼치는 것은 그것대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 진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일본 사회가 변화에 둔감하고 도전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이런 점과 관계없지는 않을 듯하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와는 정반대이다. 한국의 원로들은 일찌감치 뒷전으로 물러나 ‘꼰대‘가 되거나, 아니면 ‘퇴물‘ 취급을 받곤 한다. - P153

일본 사회에서 매뉴얼이 이처럼 중요해진 배경에는, 거대한 정부 관료 조직이나 대기업의 조직 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거대한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래서 모두의 행동과 동선을 미리 약속하는 매뉴얼을 철두철미하게 갖추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삼가는 문화적 성향도, 매뉴얼주의가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데에 일조했다. - P157

 경험을 온전한 교훈으로 후대에 전달하는 매뉴얼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매뉴얼주의에 빠져 유연성을 잃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원칙주의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 - P160

일본인은 왜 이렇게 다양한 장면에서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일까? 사실 이 습관적인 사과의 화법에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는 겸손의 정서가 깔려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반대로 ‘남에게 빚지고 싶지는 않다‘라는 자기만족적인 생각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스미마센은 ‘빌린 것을 갚다‘라는 뜻의 동사 ‘스무‘의 부정형으로, 말뜻을 그대로 옮기면 ‘아직 빚을 갚지 못했습니다‘ 또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의미이다. 혹은 이 말의 어원을 ‘깨끗하게 맑아지다‘라는 뜻의 동사(한자는 다르지만 동일하게 ‘스무‘라고 읽는다)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이 동사에 부정형 어미가 붙은 것이 ‘스미마센‘으로 ‘내 맘이 썩 편치 않습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 P163

일본 문화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답할 의무를 진다‘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손윗사람도 아닌 대등한 위치의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여간 부담스럽고 착잡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 보답해야만 하는 채무가 발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에도 신중해야 한다. 그에게 불필요한 채무를 떠안기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은혜를 베풀지 않는 것이 더 사려 깊다. - P164

사과나 사죄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스미마센이라는말은 이런 본질적인 맥락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정 행위에 대한 잘못을 인정한다기보다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자기 결의와도 같은 어법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일상생활에서 스미마센과 같은 사과의 화법이 자주 사용된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 사과나 사죄의 관행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과의 화법과 사과의 행위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 P166

일본에서는 ‘패자를 배려하는 것이 승자의 품격‘이라는 생각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아베 총리의 사임에 대한 온정적 여론을 부추기고 있는 듯이 보인다. 건강 문제가 사임의 명분인 만큼 패배자라고 평가절하할 것까지는 아니어도 정치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 것은 문제이다. 하지만 미묘하게 패자의 입장에 놓인 채 공직을 떠나는 총리의 과오를 속속들이 들추어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 P171

젊은 오타쿠가 많아지고 팬질의 내용이 다양해진 만큼, 음침하고 폐쇄적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많이 옅어졌다. 오타쿠를 자처하는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나만의 취향에 몰두하고 싶다는 고집스러운 욕망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획일적인 조직 생활, 주변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완고한 질서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오직 나만의 관심사를 마음껏 추구해 보는 것이야말로 오타쿠의 본질인 것이다. - P178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박한 사회적 평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마니아들의 순수한 열정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권력의 관심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독창적인 팬덤을 꽃피울 수 있었다. 어떨 때에는 국가가 나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도와주는 것이다. 대중문화처럼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핵심가치로 삼는 영역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 P180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니까 겪는 차별적 상황에 대한 공분에 더해, ‘공기를 읽는다‘라는 미덕의 무게에 짓눌려 온 불편함을 사회문제로서 징벌하는 해방감을 준다. 바로 그 점이 한국 사회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 다른 젠더 감수성을가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아닐까.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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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일본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수도인 도쿄가 불바다가 되었는데도, 일본군은 항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패배가 거듭될수록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자. 정신력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라는 프로파간다가 국민들의 더 큰 지지를 받았다. 당시일본 정부가 선전에 능수능란했다고 해도,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일본인의 맹목적인 지지는 불가사의했다. - P106

일본 사회에서는 집단주의가 내부적인 동기에 의해 구동되는 측면이 있다. 그 문화에서는 집단에 대한 충성심 그 자체가수치스럽지 않은 삶의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즉, 충성심은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부끄럼 없이 살고 싶다는 나를 위한 마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국화와 칼은 일본 문화의 근저를 이루는 정서가 수치심이라고 분석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남 보기에 당당한 삶을 살겠다는 이기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동기야말로 일본의 집단주의를 부양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P108

즉, 혼네는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두는 속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들켜야 하는 속마음이다. 달리 표현하면 다테마에는 속마음을 감추는 수단이 아니라, 속마음을 들키기 위한 수단이다.
다테마에로 혼네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다테마에로 혼네를 에둘러 드러낸다는 해석이 더 어울린다. 그런 점에서 다테마에와 혼네의 문화는 속내를 감추는 이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정반대로 간접적이나마 속내를 분명히 드러내는 능동적인 방법이라고 할 만하다. - P130

공적인 의사 표명의 장에서는 오히려 역작용을 부른다. 우회적인 의사 표명이 적절한 강도의 비판과 다양한 의견 수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다테마에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다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외면하게 될 뿐 아니라 권력에는 비판을 비껴갈 명분을 줄 수도 있다. 갈등과 불협화음을 피하기 위한 문화적 관행이 정치적으로는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 P133

분명한 것은, ‘하이테크 사회‘를 자부하는 일본이지만, 아날로그 방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점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령화 사회라는 사실이 그 원인 중 하나이다. 행정이나 금융 등 공공 부문을 포함해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의 이용자는 주머니는 넉넉하고 아날로그가 훨씬 편한 노년층이다. 그렇다 보니 젊은이보다는 노년층이 살기 좋은 생활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디지털화를 서둘러 대다수에게 불편한 세상을 부채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P136

공직자를 뽑는 선거는 일본 사회가 아날로그 원어민의 감성에 얼마나 충실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투표 용지에 후보의 이름을 자필로 쓰는, 반세기 전 방식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후보자 이름의 한자를 잘못 쓴 무효표가 적지 않게 나온다. 디지털 미디어의 자동 변환 기능을 활용한 글쓰기에 익숙한 젊은이에게는 투표용지에 한자로 이름을 쓰는 방식이 어렵고 어색하다. 디지털 원어민에게 더없이 불편한 선거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으니, 젊은층의 투표율이 낮다고 탓할 것만은 아니다. - P139

이런 간사이 사람에게 간토 사람의 차분함은 위선적이고 의뭉스럽게 보인다.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외골수라는 혹평도 따라붙는다. 물론 간토 사람도 간사이 사람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간토사람이 볼 때 간사이 사람은 풍류를 아는 멋쟁이와는 거리가 멀다. 여과 없이 자기 의견을 들이미는 사귀기 피곤한 부류이다. 서로에 대한 가혹한 평가는 피차 일반인 것이다. - P143

에스컬레이터의 어느 쪽 줄을 비워놓을까 하는 문제는 도시의 역사나 자연환경 등 지역 특성이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은 아니다. 그보다는 도쿄와는 다른 방식을 고집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반골기질에서 굳어진 사회적 관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일한 한자를 굳이 다르게 읽거나, 혹은 서로 다른 주파수의 전력을 고집하는 일 등도 불편함과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도쿄와는 다른 노선을 고수하겠다는 지역사회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간사이 사람들에게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도쿄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뚜렷한 자부심과 정체성이 있다. ‘우리는 도쿄와는 다르다‘라는 암묵적 정서에 기반해서, 간토와는 다른 생활양식과 습관을 의도적으로 실천해 온 역사가 있는 것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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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 비해, 일본 사회는 사적인 영역에서는 개인의 선택과 취향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강한 편이다. 개인이 누구에게 성적 호감을 느끼는가 하는 문제는 지극히 사적인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공적인 판단을 개입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라는 생각에 공감하는 일본인이 많다. LGBT와 관련한 사안이 곧잘 동성애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번지는 한국 사회보다는,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장벽이 조금은 낮다. - P66

결혼이나 출산을 ‘안‘ 하겠다는 이들을 문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사적인 결정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를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만큼, 오로지 결혼만이 연애의 종착역이 아닌 사회, 출산이 결혼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 P76

관점만 달리하면 젊은이들의 소극적인 소비 성향은 기후변화나 환경 파괴 등 이 시대의 당면 문제를 의식한 적극적인 행동 전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의 절제된 소비 행동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문화적 가치가 싹터 부지런히 자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자면, ‘소비가 미덕‘이라는 생각은 고도성장과 버블 시대를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해서 기성세대의 관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 속에서 고착화된 관념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가리는 장애물이 된다. 구시대의 고정관념을 걷어내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새로운 소비 취향과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다. - P83

일본은 고령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다. 그렇다 보니 고령화가 진행 중인 다른 나라는 겪지 않은 사회문제가 앞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8050 문제‘ 역시 사회 부적응자의 고령화가 앞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고령화가 진행되는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고 한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10여 년 뒤에는 일본보다도 고령 인구 비율이 높아진다니, 그때에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상천외한 사회문제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서는 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 P90

‘로봇은 친구‘라는 일본의 낙관적인 ‘로봇‘을 서양 사회는 이질적으로 받아들인다. 서양적 사고방식에서는 로봇이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거나, 인간을 구원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는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은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이 있다 보니,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에 대한 저항이 크다. 로봇에 대한 이미지는 친근함보다는 공포에 가깝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많은 SF 영화에서 로봇은 높은 확률로 위험한 존재로 묘사된다. - P96

일본 사회는 한 번의 ‘사라진 올림픽‘, 한 번의 ‘성공한 올림픽‘을 경험했고, 2021년 또 한 번의 ‘실패한 올림픽‘을 경험했다.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성찰할 것인가? 일본 사회의 큰 숙제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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