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들이 박복하구나. 어찌하랴. 내가 비를 맞으랴.
임금이 내행전 마당으로 내려섰다. 버선발이었다. 마당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임금은 젖은 땅에 무릎을 꿇었다. 임금이 이마로 땅을 찧었다. 구부린 임금의 저고리 위로 등뼈가 드러났다. 비가 등뼈를 적셨다. 임금의 어깨가 흔들렸고, 임금은 오래 울었다. 막히고 갇혔다가 겨우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눈물이 흘러서 빗물에 섞였다. 임금은 깊이 젖었다. 바람이 불어서 젖은 옷이 몸에 감겼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세자가 달려 나와 임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승지들은 마루에서 뛰어내려 왔지만, 임금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임금이 젖은 옷소매를 들어서 세자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임금이 울음 사이로 말했다.
-우리 부자의 죄가 크다. 하나 군병들이 무슨 죄가 있어 젖고 어는가.
세자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