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일본에서 부부동성(夫婦同姓)은 법적 의무다. 남편이 아내 성으로 바꿔도 되지만 어쨌든 부부라면 같은 성을 써야 한다. 실제로 95퍼센트는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른다. 나는 2000년대 초반에 법대를 다녔는데 당시에도 부부별성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고, 곧 실현될 거라고 배웠다. ‘내가 결혼할 때는 부부별성이 되어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바뀌지 않았다. 결혼 후 10년 이상 지났지만 지금도 일본은 부부동성이다. - P252

가부장재의 잔재는 사실 부부의 호칭에도 드러난다. 남편은 옷또(夫), 아내는 쓰마(妻)다. 하지만 많은 남성들은 밖에서 아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요메 (嫁)라고 한다. 요메는 며느리라는 뜻이라 남편이 이렇게 칭하는 것은 잘못된 사용법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남성이 많다. 반대로 아내가 밖에서 남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슈진, 또는 단나라고 하는 여성이 많다. 둘 다 ‘주인‘이라는 뜻이다.
남편 밑에 아내가 있다는 것이다. 관습적인 표현이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말이다. 옛날에는 전업주부가 많았고 이혼도 적었지만,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이혼도 흔하다. 이제 부부동성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 P253

이렇게 오랫동안 선택적 부부별성제가 실현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여성의 인권을 가볍게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부별성에 반대하는 보수파는 부부동성이 일본 고유의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부부동성이 법으로 규정된 것은 1898년이다. (중략) 1868년에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어 모든 사람들이 성을 갖게 된 후에도 부부별성이 일반적이었다. 1898년에 부부동성을 규정한 것은 메이지 시대가 시작한지 30년 지난 시점이다. 오히려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국가를 따라 도입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서양화가 진행된 시기였지만, 특히 부부동성은 가부장제를 통해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쉽게 만드는 데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 P254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일본 정부에게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2024년 10월까지 네 번 권고했지만 여전히 따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민들 사이에 여러 의견이 있는 사안이며 앞으로충분히 검토하고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네 번째 권고를 받을 때까지 충분히 검토할 시간은 있었으니, 앞으로도 적극적인 대응은 기대하기 어렵다. - P256

나는 신문 기자가 될 때까지 일본에서 그렇게 성범죄가 많은지 몰랐다. 거의 보도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2022년 강제 성교 등으로 가해자가 체포, 기소된 것은 1,655건이나 되고, 그중 피해자가 20대 이하인 경우가 8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런데 가해자가 유명인이거나 강간 살인처럼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가아니면 대부분 보도되지 않는다. 신문사에서는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들었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 P257

나카이 사건을 ‘트러블이라고 보도한 일본 언론도 문제다. 나카이와 여성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했다고 하면 보통시청자나 독자는 무슨 트러블인지 궁금해할 것이다. 일본 뉴스를 보는 한국 지인은 "도대체 어떤 트러블이냐"고 여러 번 나에게 물어봤다. 한국에서는 ‘성상납‘이라고 보도하고 있는 사이에도 일본에서는 계속 ‘트러블‘이라는 말을 썼다. 가해 당사자가 숨기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왜 언론사가 사건의 본질을 숨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P259

나카이 사건은 원래 ‘개인적 트러블‘로 덮으려던 사건이다. 후지TV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의 지적 때문이었다. 후지TV의 주주인 미국 펀드가 후지TV에게 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해외에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적절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 P261

일본에서는 언론이 문제를 파악해도 보도하지 않고 감추는 일이 적지 않은 듯하다. 일본 국민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 소극적인 배경에는 일본 언론의 책임도 있다. - P263

2024년 10월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권고했을 때 일본 정부는 또 다른 권고도 받았다. 황위 계승에 대해서 남성만 계승하게 돼 있는 황실전범을 개정하도록 권고받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다. 부부동성도, 남성만 황위를 계승하는 것도 결국 같은 뿌리인 가부장제에 기인하는 것 같다. - P264

천황은 헌법상 ‘일본국의 상징‘이다. 일본국의 상징인 천황이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남녀평등과 모순되지 않을까? - P265

2024년 세계 경제 포럼이 발표한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146개 국가 중 일본은 118위였다. 한국은 94위로 양국이 다 낮지만 일본이 더 심각하다. 경제, 교육, 보건, 정치 네 가지 분야 중 일본은 정치 분야가 특히 낮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낮아서인데 초대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 이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까지 65명 중 여성은 단 한명도 없다. 결국 부부별성제 도입이나 여성 천황에 소극적인 정부의 구성원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 P266

일본국 헌법 제1장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이 있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성 천황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논의해서 정해야 한다. 여성 천황을 용인하자는 의견이 81퍼센트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는데 유엔의 권고를 정부가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P268

한국 남자를 만나고 나서 가장 많이 변한 건 자기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 여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일단 참는 경우가 많다. 불만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른다. 상대방이 알아서 눈치채기를 기대하고, 싸우지 않고 해결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건 한국 남자 친구한텐 통하지 않았다. - P271

일본 여자는 순종적이고 여성스럽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이를 전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일본 여자들은 여성스러움을 어느 정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여자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외모나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꾼 매력적인 여성의 힘을 가리키는 말로 남자들에게 인기 많은 여자를 ‘여자력이 높다‘라고도 한다. - P272

나는 2000년대 초반에 한국에 유학하자마자 한국에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쓸데없이 웃는 표정을 보이면 마음이 있다고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다. - P276

일본 맥도날드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메뉴가 있다. ‘스마일 0엔‘이다. 맥도날드라고 하면 ‘스마일 엔‘을 떠올릴 정도로 유명하다. (중략) 항상 손님을웃는 얼굴로 환영한다는 의미로 ‘스마일 엔‘이라는 메뉴가 추가됐다. 실제로 손님이 "스마일 주세요"라고 하면 종업원은 공짜로 웃어 준다.  - P277

나는지금 시대의 스마일 0엔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한국에서 그런 메뉴를 추가하겠다고 하면 아마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한국 친구에게 스마일 0엔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면 대부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것을 허용하는 일본이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다. "한국에서는 시대적인 변화가 아니라 1980년대였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서 자체가 일본과 다르다는 것이다. - P279

이렇게 미숙한 상태의 아이돌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일본 팬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일본 K-POP 팬들의 취향을 봐도 그렇다. (중략) 전체적으로 일본에서는 여성 아이돌은 멋있는 아이돌보다 귀여운 아이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P282

조남주의 페미니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일본 여성 독자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자신이 겪어 온 볼합리한 일들에 대해 되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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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천황이 생전에 퇴위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본 사회가 정체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쇼와 천황 때가 그랬다. 1988년 가을부터 쇼와 천황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축제 같은 행사가 잇따라 취소됐다. 방송에서는 오락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쇼와 천황이 서거했을 때는 천황에 관한 프로그램 일색이 됐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일본 전체의 분위기가 침체되는 상황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 P210

헤이세이 천황은 ‘평화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11차례나 오키나와를 방문한 것도 그런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큰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그의 아버지 쇼와 천황은 전국을 순행하면서도 한 번도 오키나와를 방문하지 않았다. 헤이세이 천황은 1975년 황태자였을 때 처음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중략) 일본에도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작아진 데에는 헤이세이 천황이 보여 준 평화 지향적 태도도 큰 역할을 했다. - P213

그런데 한국에서는 천황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천황의 ‘전쟁 책임‘이라는 관점에 집중해서 보도한다. 한국 언론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지만, 그러다 보니 일본 국민들의 감정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사건이 일례다. 이 사건이후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 P214

천황의 존재감은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특히 에도시대 말기부터 존재감이 커졌다. 에도 시대는 쇼군을 정점에 둔 봉건 사회였고 천황의 존재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계급이 명확했고 사무라이가 제일 높았다. 역사 시간에
‘사농공상‘이라고 배우는 계층 구분이 있다. 위에서부터 무사(사무라이), 농민, 장인, 상인의 순이다. (중략) 한국에서도 ‘사농공상‘이라는 말을 쓰지만 한국에서 ‘사‘는 무사가 아니라 선비라고 들었다. 이는 아주 큰 차이다. - P217

나는 천황에게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던 것이 한국을 포함한 전쟁과 식민 지배로 피해를 입은 나라들과 지금까지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한 뒤 80년이 지나 버린 현재로서는 천황제를 부정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 - P224

천황이란 존재는 신화와 실화가 섞인 것이다. 그런데 진무 천황이 실제로 있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의외로 많을 수 있다. 왜냐하면 진무 천황의 묘가 나라현 가시하라시(橿原市)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진무 천황의 묘가 지금의 장소로 확정된 것은 에도 시대 말기인 1860년대다.
서구 열강 국가들이 몰려오는 속에서 천황의 정통성을 확립함으로써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 같다. - P226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에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하고 메이지 천황이 즉위한 후 천황 중심의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에도 막부를 타도하고 성립된 메이지 정부는 천황의 존재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천황을 사람의 모습을 한 신 ‘아라히토가미(現人神)‘로 신격화했다. 그런데 메이지 초기에는 천황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지방을 순행하면서 천황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천황은 근대화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앞장서서 양복을 입고 소고기를 먹는 등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며 일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 P230

정리하면 신화로부터 시작한 천황이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헤이안 시대까지, 쇼군이 정치의 중심이 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다. 메이지 시대 이후다시 천황이 정치의 중심이 됐다가 1945년 패전을 거쳐 주권자는 국민, 천황은 상징이 됐다. - P233

<기미가요>‘에서 ‘기미(君)‘는 ‘천황‘을 뜻한다. 즉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다. 원래가사는 10세기의 와카(和歌)에서 유래했고 ‘기미‘는 ‘그대‘라는 뜻으로 천황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메이지 이후에 주권자인 천황의 치세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가사로 해석되었다. 패전 후 주권자가 국민으로 바뀐후에도 여전히 <기미가요>가 국가로 남은 것에 불편함을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 P236

왜 애국심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면, ‘나라를 위해‘라는 명분으로 전쟁터에 나가 죽이고 죽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중략)
2021년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가장 낮았던 나라가 일본이다.(중략) - P-1

그런데 2006년 교육기본법 개정으로 ‘애국심 조항‘이 추가됐다.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함양한다"는조항이다. 애국심을 교육의 목표로 정하는 것에 반대하는목소리는 적지 않았다. 가치관을 국가가 법률로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P238

전전(戰前)과 전후(戰後)에 많은 변화와 단절이 있었지만, 이어지고 있는 것도 많다. 그중 하나는 ‘재벌‘이다. 일본에서는 전후 GHQ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인해 재벌이 해체됐다.
재벌이 군국주의에 가담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야스다 등 재벌에 대한 일족의 지배력이 배제됐다. 이를 교과서에서는 ‘재벌 해체‘로 표현한다. - P239

아소의 지역구는 후쿠오카다. 이곳에서 아소는 세습의원이며 재벌가다. 아소의 전직은 아소 시멘트 사장이다. 아소 시멘트는 아소 그룹의 핵심 기업이다. 아소 그룹은아소 다로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가 시작한 아소탄광이 원류다. 식민지배 당시 조선인 강제 동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회사다. - P242

국회 의원은 그 지역의 대표이므로 누가 당선되었을 때 지역에 이득이 있을지도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다.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아무리 실언을 되풀이하고 한자를 못 읽어도 그래도 아소 재벌가다. 여기에 여당인 자민당의 핵심정치인 중 하나다. 야당 의원보다는 지역에 이익을 더 줄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 P243

아소는 탄광왕의 증손, 아베는 만주국의 실권자였던 전범의 손자다. 그런 배경이 강제 징용 문제나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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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면 당연히 영문 석사 졸업 증명서가 필요한데 내가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는 것처럼 대응해서 놀랐다. 매뉴얼에 없었던 모양이다. (중략)  매뉴얼대로만 대응하는 답답한 일본 경험담은 경험해 본 사람끼리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유도리‘가 없는 일본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다가도 "그래도 일본이 예측 가능성이 있는 건 좋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될 때도 있다. 사실 장점도 있다. 매뉴얼대로 할 것이라는 믿음은 소비자 입장에서 손해를 볼까 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편한 부분도 있다. 특히 자동차 수리 같은 경우가 그렇다. 적절한 금액을 알기 어려운 분야의 경우 일본에서는 매뉴얼대로 계산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 P175

일본에서도 ‘매뉴얼 인간‘이라는 말은 나쁜 이미지다.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보다는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리스크 회피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행동으로 뭔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 P177

일본에 비해 한국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대통령선거와 정권 교체가 있다는 것이 큰 차이다. "일본은 직접 총리를 뽑지 않는데 그래도 괜찮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이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총리는 국회의원 중에서 국회 의결로 선출된다. - P181

큰 재해를 겪고 나서 국민들은 다이내믹한 정치보다 경험이 많은 자민당에 맡기고 큰 실수 없는 정치를 원하게 된 것 같다. - P185

자민당 지지자 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 지지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다른 정당보다 믿을 수 있다", "지금까지 정권을 운영해 온 경험치가 장점이다" 같은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상 유지라는 보수적인 생각이 지배적이다.
한일을 비교하면 한국은 새로운 일에 도전적이고 일본은 리스크 회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P185

리스크 회피부터 생각하는 일본 방식은 답답할 때도 많지만, 큰 재해를 여러 번 겪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막상 가장 큰 리스크로 보이는 원자력발전소가 일본 같은 지진이 잦은 나라에 많은 이유는 모르겠다. 일본 국민은 원전 리스크는 왜 피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 - P186

일본에는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나쁜 일이나 실패, 추문 등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하지 않고 일단 감추는 것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잘못을 감추려고 하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일본에서는 국민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가려는 경향이있다. - P188

그 내용이 무엇이든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 차갑다. 그런 아빠가 참여한 반대 운동도 결국 이긴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정부에 불만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기보다 조용히 포기해 왔다. - P194

일본 사람에게 종교를 물어보면 60퍼센트 이상이 ‘무교‘라고 답한다. 그런데 종교와 별로 상관없이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새해에는 신사에 하츠모데(첫 참배)를 가는 사람도 많다. 무교라기보다 사실 여러 종교를 조금씩 믿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 P196

이렇듯 ‘무교‘라고 하면서 불교도 기독교도 습관처럼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종교관은 세계적으로 봐도 희한한 종교관이다. 이는 일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야오요로즈의 신‘을 믿기 때문인 것 같다. 800만의 신. 일본에서는 예부터 산, 바위, 나무 등 자연뿐만 아니라 화장실에까지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무수의 신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부처님과 하나님을 다 믿는다고 해도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 P200

일본 사람들이 야오요로즈의 신을 믿는 건 자연 재해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대상이 뭐든 빌고 싶고, 빌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 P203

국가 신토란 메이지 시대 정부가 천황과 신토를 결합시켜서 천황을 아라히토가미로 모시게 만든것이다. 천황 숭배를 의무화하고 태평양 전쟁 때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래서 국가 신토는 전후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인해 폐지됐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믿는 전통적인 신토는 국가 신토는 아닌데, 그 안 좋은 역사 때문에 신토를 믿는다고 말하기가 불편한 것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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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는 주로 ‘특별 영주자‘를 가리킨다. 기본적으로 1945년 일본의 패전, 즉 조선의 해방 전부터 일본에 거주했던 사람과 그 후손들이다. 광복 이후에 밀항으로 일본에 건너온 사람들도 일부 포함되지만, 중요한 것은 분단 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현재 자이니치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조선적‘인 사람도 있다. 조선적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적이라고 착각한다. 조선적의 조선은 분단 전의 조선이다. 엄밀히 말하면 국적이 아니다. 무국적자다. 이는 내가 <아사히신문> 기자였을 때 법무성에 직접 확인한 내용이다.
법무성은 조선적의 조선은 나라가 아니라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 P158

조선적 자이니치는 한국의 정권에 따라 한국에 입국 가능 여부가 갈릴 때도 있다. 대부분 그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지만, 유명인은 주목받을 때가 있다. 2015년 자이니치 김석범 작가가 입국을 거부당했을 때는 양국에서 화제가 됐다. 김석범 작가는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화산도》로 알려져 있다. 2015년은 《화산도》 한국어 번역판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에 출석하려고 했는데, 한국 정부가 입국을 막았다. 김석범 작가는 남북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 P159

자이니치가 일본에 있게 된 원인은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이다. 2023년 시점으로 한국적/조선적 특별 영주자는 27만 7,707명, 그중 조선적은 2만 4,305명이다. 일본 국적을 취득한 사람도 많지만 그건 통계상 알 수 없다. 1945년 해방 당시 일본에 있던 조선 출신자는 약 200만 명이었고 그 후 일본에 남은 사람이 약 70만 명이다. 이것이 자이니치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 P160

서양 사람이 일본에 거주한다고 해서 동조 압력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자이니치는 겉으로는 일본인과 거의 구별하기 힘들다. 그리고 일본은 식민지배 시절 동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중 하나가 일본식 성명을 강요하는 창씨개명이다. - P161

한국 관련 강의를 하는 대학 교수들도 학생들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교수에게 고백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요즘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한국이 젊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면서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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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극장판 1편이 생각난다. 아마 이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거겠지..

2004년 4월에 이라크에서 일본인 5명이 무장 세력의 인질로 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5명은 자원봉사 활동가와 저널리스트였다. 무장 세력은 자위대가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고 일본 정부는 거부했다. 다행히 이라크의 종교 지도자가 무장 세력을 설득해서 무사히 풀려났는데, 그들이 일본으로 돌아오자 위험한 지역에 가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국가(일본)에 폐를 끼쳤다는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인질이 된 5명의 집에는 비난의 전화와 편지가 쇄도했다. 나나 내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친 것도 아닌데 국가에 폐를 끼쳤다고 화가 나는 감정은 나는 잘 모르겠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오히려 비난이 쏟아지는 여론이 끔찍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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