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자신의 외모와 능력에 대해서는 비하하지만, 배려심과 친절, 성실함 등 일본 사회에서 미덕으로 간주하는 특성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선 긍정적 환상을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는 일본 문화가 선택적 비하를 강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P31

일본인이 생각하는 겸손의 의미도 달랐다. 일본에서 겸손은 자기 비하를 하는 태도라고 여겨지는 데 비해, 한국에선 상대를 존중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로 여겨진다. 즉 일본에서 겸손은 반드시 자기 비하를 동반해야 한다. 일종의 셀프 디스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일본인은 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더욱 자기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 P31

연구에서 일본인은 자신의 비하에 상대방이 강하게 부정해 줄수록 호감을 갖고, 미지근할수록 무례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는 자기 비하를 하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이 부인해 주기를 바라는 셈이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일본인들끼리는 내가 비하하면 상대방이 이를 강하게 부정하는 ‘문화적 각본‘이 있어, 사실상 칭찬을 받듯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비하를 해야 바람직하다는 문화적 규범과 사회적 압력 때문에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 P32

겉으로는 자기 비하를 속으로는 자기 긍정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는 자존감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데, ‘이중자기관‘을 갖는 셈이어서 자아에 일종의 분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 P33

일본의 사회학자 도이 다카요시는 자신의 책에서 일본의 젊은 세대가 이른바 ‘친구 지옥‘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지옥인 이유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친구, 즉 나카마로부터 따돌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카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 대립과 마찰을 회피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다 보니, 하루하루가 힘겹다는 것이다. 그는 나카마에게 반감을 사서 배제되고 고립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일본의 젊은 세대를 삼키고 있다고 우려한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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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지도자, 정치인, 기업가 모두 우리나라에 일어난 일로 인해 비난을 받아 왔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일세, 오노, 우리의 기여는 언제나 주변적이었네. 자네와 나 같은 사람들이 과거에 무슨일을 했는지 오늘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네. 그들은 우리를 그저 지팡이를 짚은 두 노인으로 보는 걸세." 그가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물고기 밥 주는 일을 계속했다. "이제 우리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우리뿐이네. 자네와 나 같은 사람들은 말일세, 오노, 지난삶을 돌아보고 그 결함을 인식하지만, 이제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우리 자신뿐일세."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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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말 일본인들답게 모든 일을 빙빙 돌려 말하네.
뒷표지에 적힌 줄거리 안 읽었으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파악 못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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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스텐은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끔찍한 조건에서 죽어가도록 놔두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계층의 인간들을 섬기는 신하였다. 그 계층이 전부 나치주의자는 아니었을지라도 히틀러의 제국에 적응했던 사람들이고, 대체로 아주 잘 적응했다. 기업인과 사업가들, 교수와 의사들, 외교관과 관료들. SS를 위해 자랑스럽게 일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SS의 잔인한 방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을 ‘품위 있는‘ 사람들이었다. - P413

격렬한 논쟁과 인신공격이 10년도 넘게 계속되었다. 겉으로는 바인레프가 저항했느냐 부역했느냐, 혹은 둘 다였느냐에 관한 진실을 따지는 것 같았지만, 논쟁은 사실 바인레프에 대한 것이 아니었고 유대인의 운명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벌어졌던 유사한 논쟁과 마찬가지로 최근의 과거에 비춰봤을 때 당대의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이었다. 전후 민주주의는 파시즘과 식민주의와 강제 점령과 군사 정복이라는 가혹한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가? 과거에 대해 어떻게 속죄할 것인가? 누구를 혹은 무엇을 비난해야 하는가? 미래에 비슷한 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가? - P431

역사는 정밀과학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 실제로 발생했던 일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걸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해석의 영역이다. 사람의 마음이 컴퓨터인 것도 아니다. 기억은 변하고, 쉽게 조작되고, 언제든 틀릴 수 있다. 지난 우리 삶의 이야기의많은 부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꾸며진다. 지난 일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간다. 진실을 아주 잠깐이라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부터 의심해보는 것이다. - P437

책 속 부역자들의 문제는 이들의 기만이, 때로 아마도 거짓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기만이, 결국 자기기만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거짓 속에서 살다보면 흔히 그런 결과를 맞는다.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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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코가 피해자였고, 사악한 군국주의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마는 평화를 사랑하는 이상주의자였다는 서사는 큰 공감을 얻었다. 전후의 일본에서는 영웅주의보다 이런 것이 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천황을 지고의 상징으로 갖고 있던,
선의로 가득한 일본인들이 전쟁광들에 의해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다는 서사였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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