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르스텐은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끔찍한 조건에서 죽어가도록 놔두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계층의 인간들을 섬기는 신하였다. 그 계층이 전부 나치주의자는 아니었을지라도 히틀러의 제국에 적응했던 사람들이고, 대체로 아주 잘 적응했다. 기업인과 사업가들, 교수와 의사들, 외교관과 관료들. SS를 위해 자랑스럽게 일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SS의 잔인한 방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을 ‘품위 있는‘ 사람들이었다. - P413

격렬한 논쟁과 인신공격이 10년도 넘게 계속되었다. 겉으로는 바인레프가 저항했느냐 부역했느냐, 혹은 둘 다였느냐에 관한 진실을 따지는 것 같았지만, 논쟁은 사실 바인레프에 대한 것이 아니었고 유대인의 운명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벌어졌던 유사한 논쟁과 마찬가지로 최근의 과거에 비춰봤을 때 당대의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이었다. 전후 민주주의는 파시즘과 식민주의와 강제 점령과 군사 정복이라는 가혹한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가? 과거에 대해 어떻게 속죄할 것인가? 누구를 혹은 무엇을 비난해야 하는가? 미래에 비슷한 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가? - P431

역사는 정밀과학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 실제로 발생했던 일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걸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해석의 영역이다. 사람의 마음이 컴퓨터인 것도 아니다. 기억은 변하고, 쉽게 조작되고, 언제든 틀릴 수 있다. 지난 우리 삶의 이야기의많은 부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꾸며진다. 지난 일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간다. 진실을 아주 잠깐이라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부터 의심해보는 것이다. - P437

책 속 부역자들의 문제는 이들의 기만이, 때로 아마도 거짓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기만이, 결국 자기기만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거짓 속에서 살다보면 흔히 그런 결과를 맞는다. - P4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시코가 피해자였고, 사악한 군국주의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마는 평화를 사랑하는 이상주의자였다는 서사는 큰 공감을 얻었다. 전후의 일본에서는 영웅주의보다 이런 것이 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천황을 지고의 상징으로 갖고 있던,
선의로 가득한 일본인들이 전쟁광들에 의해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다는 서사였다. - P3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적어도 일본은 서양 제국주의 열강이라는 진정한 적과 명예로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벌이고 있던 전쟁은 지저분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만주국은 가난에 찌든 일본 농민들이 몰려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 P3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이야말로 바인레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가장 명확한 열쇠다. 그는 마치 자신이 예술가인 것처럼 대안 현실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예술가들조차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구분할 줄 안다. 예술작품은 실제 세계를 반영하고, 실제 세계에 관해 논평하고, 실제 세계에 대한 표현을 찾는다. 하지만 작품이 실제 세계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범주의 오류다. - P299

전쟁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힘러를 비롯한 일부 나치는 서양의 연합국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이 엉뚱한 적과 싸우고 있음을 깨닫기를 바랐다. 연합국은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시아의 무리를 상대로 싸우고 있어야 옳았다. - P3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대륙에서 일본인들이 아무리 제멋대로 행동하더라도 그녀의 주적은 변함없이 장제스와 그의 국민당이었다. - P257

두 요시코는 모두 난폭한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감상적인 선전 선동을 체현하고 있었다. (중략) 둘은 또한 좀더 변태적인 무언가를 체현하고 있기도 했다. 에로틱 페티시의 대상으로서 이들은 남성적인 일본 정복자들에 의해 정복당하는이국적인 동방을 여성의 모습으로 의인화했다. 이들이 일본의 군인, 경찰, 정치인, 영화 스튜디오 간부, 영화배우들과 맺었던 수많은 관계가 실제로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들은 대중에게 권력과 복종에 대한 커다란 판타지를 불러일으켰고 본인들도 그런 판타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 P2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