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동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구석으로부터”에서
여울 님의 그림전이 열립니다. 이 달 말까지입니다.

포스터와 여러가지 시리즈 중 두 가지만 첨부합니다.
그림이 날로 날로 깊어지네요. 여울 님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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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23-04-08 14: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사드려요. 여의치가 않아 긴댓글을 쓸 수 없어 아쉽네요. 지나시는 알라디너분들 꼬옥 둘러가세요.

서니데이 2023-04-09 21:04   좋아요 0 | URL
전시 축하드립니다. 대구에서 전시중이라서 가볼 수는 없지만, 예쁜 작품 잘 봤습니다.^^

2023-04-09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3-04-1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 님의 그림전, 대전이군요. 아쉽게도 멀군요. 이젠 먼 곳에 가는 게 부담스러운 나이가 됐어요. ㅋㅋ

프레이야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고 계셨지요?
언제 나타나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반갑습니다.^^

프레이야 2023-04-17 19:21   좋아요 0 | URL
페크님 서울에선 여기보다는
가까울 듯요 ^^. 기차 타고 휭~ 가보고 싶은데 제 사정이 좀 그래서 좀 기다려보고 있어요. 반겨 주셔서 고마워요 ☺️

2023-04-12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17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김수영전집1 , 민음사


————

어제는 하루종일 봄비가 내리더니 지금은 화창한 하늘 아래 꽃들이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올해 첫 낭독도서로 김유담 소설집 <돌보는 마음>을 골랐다. 부산원북원도서 후보작이라 미리 녹음을 해둔다. 어제는 14번 파일로 녹음을 완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쏟아졌다. 앞유리에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고 차창 밖은 어둡고 시야가 침침하였다. 한 곳엔 접촉사고가 나 길게 차량이 막혀 있었다. 천천히 가자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배캠을 들으며 오는데 “비는 움직이는 비데”라고 김수영 시인이 그랬다고. 엉? 철수씨도 눈이 침침한가 보다 싶어 어찌나 웃었던지. 곧바로 정정하면서도 특유의 배짱으로 “비데도 움직이는 거 아니냐고.“


비가 오면 와이퍼 움직이듯 우리 마음이 작동한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쉽지만 와이퍼와는 반대로 느리게 움직인다.
시인은 비를 움직임을 제하는 결의… 라 했다.
밖으로 내달리는 속성과 마음의 속도를 붙잡아야 한다.
집으로 들어가 내 머리와 심장에 좀더 매달려 볼 일이다.
“비는 움직이는 휴식…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무사히 집에 당도했다.

그동안 안부를 건네준 상냥한 마음과 묵묵히 기다려준 마음 그리고 단단한 목소리를 전해준 마음들을 잊지 않는다. 늘 그렇듯 어느 한 시기를 지나면 새봄이 와 있고 꽃들이 피어 있다. 고양이가 발소리도 없이 내 발치에 와 있듯이.



_ 돌보는 마음 / 김유담

여성의 돌봄 노동 그 회로를 다각도로 비추는 이야기 열 편이 담긴 소설집이다. 산후조리원 요양병원 맘카페 등 여성의 오랜 돌봄노동도 사회적 회로를 가지는데 그것이 노동을 덜어준다기보다 가중되거나 여전하다. 여기저기서 그 실태가 드러난다. 남성은 빠져 있고 그 자리에서 여성은 중첩된 돌봄을 이어간다. 실제 우리 사회의 이야기라 공감되는 내용이다. <이완의 자세>를 쓴 밀양 출생 83년생 저자가 직간접적 몸과 마음으로 체험했을 이야기. 어떤 단편은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른다. 경상도 사투리 대사 읽기, 재미있었다.



_ 바이닐 / 마이크 에번스 / 박희원 옮김

번역을 한 이는 1993년에 태어난, 나의 첫 분신이다. 이 일을 시작한 후 출판되어 나온 첫 도서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라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보는 그는 욕심없이 꼬박꼬박 사는 삶을 추구하며 정확하고 성실한 번역가이다. 번역가로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바이닐, 책도 문장도 반듯하고 야무지다. 무선제본이라 책장 넘기는 것도 마음에 든다. 양쪽이 활짝 편평하게 펼쳐져 컬러 화보와 자세한 내용을 읽기에 편안하다. 팝과 엘피와 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반가운 도서일 듯.
작년 말에 나왔는데 이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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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4-0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꽃이 이쁩니다.
그리고 첫 분신님,
첫 번역 책, 표지도 이쁘네요.
축하드리고 싶네요.
엄마 닮았음 아무렴! 반듯하고, 야무지고, 성실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 뿌듯합니다.
꼭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봄이 끝나가는 건가? 싶은데, 남은 봄도 즐거이 보내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3-04-08 23:02   좋아요 1 | URL
어젠 봄비가 단비라 참 좋았어요
저 안 닮아서 가능한 것 같아요 ㅎㅎ
같이 뿌듯해 주셔서 고마워요~ ^^
안그라픽스가 디자인 관련도서로 괜찮은 도서를 꾸준히 내온 데라는 걸 알았어요.

세실 2023-04-0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희원 번역가! 멋집니다.
저도 응원할게요^^
프레이야님 이제 다리는 괜찮으세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프레이야 2023-04-06 20:17   좋아요 0 | URL
세실 님 고마워요. ^^ 희원이 기억하시는구나.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이 뭉클했어요. 엄마 마음이 다 그렇죠~ 전 많이 나아지고 있어요.

stella.K 2023-04-06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죠?^^

프레이야 2023-04-06 20:15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봄입니다^^

stella.K 2023-04-06 20:27   좋아요 1 | URL
ㅎㅎ 인사가 너무 성의 없죠?
딸래미 번역서 냈다고 자랑하시는데 반응도 없고.
지난번 우리 문자인가 댓글 나눈 후
아, 프님이 돌아오셨나 보다 싶어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맞아야지한 게 너무 했나 봅니다.
제가 이렇게 멋대가리가 없습니다.ㅠㅠ
희원이가 번역가가 됐군요.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프레이야 2023-04-06 21:08   좋아요 2 | URL
ㅎㅎ 그러니 언제든 우리의 둥지이지요. 포에버^^ 축하 고마워요. 전할게요. 꽤 괜찮은 번역가로 활동하길 기대합니다 엄마로서 독자로서. 워낙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 잘 하리라 믿어요.

cyrus 2023-04-06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알라딘에 글 잘 쓰는 분들이 많네요. 제 댓글 위에 있는 분처럼 책도 써서 내시고, 이번에 프레이야님이 번역가로 활동하시다니 정말 멋집니다. 첫 번역서 출간 축하드립니다. ^^

프레이야 2023-04-06 20:15   좋아요 1 | URL
아니ㅠ 제가 오해하게 썼나요. 제가 아니옵니다. 저의 첫 딸입니다. 다음에 더 자세히 페이퍼 써야겠어요. 반가워요 사이러스 님.

cyrus 2023-04-06 20:26   좋아요 1 | URL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프레이야님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큰 실수를 하고 말았네요. ^^;;

프레이야 2023-04-06 21:05   좋아요 1 | URL
아니어요 님^^ 오랜만이라 더 반가워요. 고맙습니다.

자목련 2023-04-07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산으로 온 큰 따님이 번역을 하시는군요. 따님이 번역하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기대합니다.
프레이야 님의 글도 정말 반갑고요.
봄비가 그치고 막상미세먼지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봄이니, 봄처럼 환하게!!

프레이야 2023-04-07 09:25   좋아요 1 | URL
네. 자목련 님 😊 감사합니다^^
그간 여여하셨지요. 그리운 이름들 이곳에 다 있네요. 봄꽃들이 미세먼지 견디면서 어찌 환한지요.

hnine 2023-04-07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따님이 얼마나 대견하세요.
제가 다 감격입니다!

프레이야 2023-04-07 17:50   좋아요 0 | URL
감격! 엄마 마음이죠^^
감사합니디 나인 님 ~

꼬마요정 2023-04-07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축하드려요!! 따님 너무 멋져요^^ 다른 나라의 글을 우리 글로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데 너무 멋지고 부럽습니다!!

경상도 사투리 낭독 하실 때 신나셨을 것 같아요 ㅋㅋㅋ

프레이야 2023-04-07 17:52   좋아요 2 | URL
요정님 으샤으샤 고마워요^^
갱상도 사투리 완전 제대로 한 거 같아요 ㅎㅎ
감정이입 격하게 돼가지고 그다음 문장도 막 그 톤으로 읽을 뻔했어요.

희선 2023-04-08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 소리 없이 발치에 온 고양이를 보면 무척 좋겠습니다 봄은 고양이를 닮았군요 따님이 한국말로 옮긴 첫번째 책이 나왔군요 축하합니다 프레이야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3-04-08 10:10   좋아요 2 | URL
희선 님 고마워요.
고양이랑 동거 꽤 괜찮답니다. ^^

페넬로페 2023-04-08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반갑습니다^^
프레이야님의 분신의 첫 번역작품 출간을 축하드려요. 제 마음이 더 뿌듯하고 좋아요^^

프레이야 2023-04-08 20:11   좋아요 3 | URL
와락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님^^
봄밤 느긋하게 보내세요~

기억의집 2023-04-11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큰 따님이 출간하셨군요. 구매 들어갑니다~

프레이야 2023-04-17 19:19   좋아요 0 | URL
어마나 기억의집 님 고맙습니다
잘 계시지요.

기억의집 2023-04-17 19:26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잘 있어요. 프님은 잘 계신지요??!! 그리고 진심 따님 번역 축하드려요. 구매해 보고 있어요. 예전 기억 새록새록 생각 나 추억을 정리 하는 책이었어요~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置換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 P20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날 오후에 내 신상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데이브 힐턴이 톱타자로 진구 구장에서 아름답고 날카로운 2루타를 날린 그 순간에 - P46

그리고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그 개략은 처음부터 상당히확실했습니다.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점이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 자신의 체험에 따라 생각한 것인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P105

내 생각에는(이라고 할까, 그렇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런 자유롭고 내추럴한 감각이야말로 내가 쓰는 소설의 밑바탕에 자리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동력이었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엔진입니다.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또한 순수한 내적 충동이란 그 자체의 형식이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습득해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P109

@@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P110

소설가로 적합한 사람은 이를테면 ‘이건 이렇다‘라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내려지더라도, 혹은 자칫 내려질 것 같더라도, ‘아니,
잠깐,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어‘라고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일이란 그리 쉽게 결정할수 있는 게 아니지. 나중에 뭔가 새로운 요소가 불쑥 튀어나오면 얘기가 백팔십도 달라질지도 모르잖아‘라는 식으로. - P120

통상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던 것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획득하고,
일반적으로 묵직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새 그 무게를 잃고형해만 남습니다. 지속적 창조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시간의 도움을 얻어 그런 과격한 역전을 몰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소재가 나에게는 없다‘고생각하는 사람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눈길을 받고 당신의 손에 잡혀 이용되기를 기다립니다.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키포인트입니다. - P137

내가 경애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도 그런 ‘망치질‘을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라고. 그 기분, 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것과 똑같은 일을 나도 수없이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가 한계다. 이 이상 더 고치면 도리어 맛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라는 미묘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는 쉼표를 빼고 넣는 것을 예로 들어 그 포인트를 적확하게시사한 것입니다. - P164

‘근육은 빠지기 쉽고 군살은 붙기 쉽다‘는 것이 우리 몸의 하나의 비통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감퇴를 보완하려면 체력 유지를 위한 정기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불가결합니다.
또한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예외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완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 P183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tell a story입니다. 그리고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속 어두운 밑바닥으로 하강한다는 것입니다. 큼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작가는 좀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큼직한 빌딩을 지으려면 기초가 되는 지하부분도 깊숙이 파 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치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그 지하의 어둠은 더욱더 무겁고두툼해집니다. - P188

작가는 그 지하의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 즉 소설에 필요한 양분을 찾아내 손에 들고 의식의 상부 영역으로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형태와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전환해나갑니다. 그 어둠 속에는 때로는 위험한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곳에서 서식하는 것은 때때로 다양한 형상을 취하며 사람을 미혹시키려 합니다. 또한 표지판도 지도도 없습니다. 미로같은 곳도 있습니다. 지하 동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방심하면 길을 잃고 헤매고 맙니다. 그대로 지상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어둠 속에는 집합적 무의식과 개인적 무의식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태고와 현대가 뒤섞여 있습니다. 우리는그것을 해부하는 일 없이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데 어떤 경우에그 패키지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 같은 깊은 어둠의 힘에 대항하려면, 그리고 다양한 위험과일상적으로 마주하려면 반드시 피지컬한 강함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한지 수치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강하지 않은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강한 편이 훨씬 더 좋겠지요. 그리고그 강함이란 타인과 비교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강함이 아니라나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강함을 말합니다. - P189

자신의 내적인 혼돈을 마주하고싶다면 입 꾹 다물고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혼자 내려가면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해야만 할 혼돈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발밑에 깊숙이 잠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묵한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어떤 포인트까지는 견고하게 제도화된 의식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자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체력입니다. 실로 재미라고는 없는, 말 그대로 산문적인 결론인지도모르지만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비판을 받든 상찬을 받든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든 아름다운 꽃 세례를 받든 나는 아무튼 그런 방법으로 글을 쓰는 것밖에는 그리고 또한 그렇게 사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P195

인생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경향이 어느 한쪽으로기울면 인간은 늦건 빠르건 반드시 다른 한쪽에서 날아오는 보복(혹은 반동)을 받게 됩니다. 한쪽 편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필연적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육체적인physical 힘과 정신적인 spiritual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이건 대단히 심플한 예지만, 만일 충치가 욱신욱신 아프다면책상을 마주하고 찬찬히 소설을 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구상이 머릿속에 있고, 소설을 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당신에게갖춰져 있다고 해도, 만일 당신의 육체가 물리적인 격한 통증에끊임없이 습격당한다면 집필에 의식을 집중하는 건 일단 불가능하겠지요. 우선 치과 의사에게 찾아가 충치를 치료하고ㅡ즉몸을 합당하게 정비하고 그런 다음에 책상 앞에 앉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간단히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너무도 단순한 이론theory 이지만 이건 내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내 몸으로 배운 것입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균형 있게 양립하도록 해야 합니다. 각각 서로를 유효하게 보조해나가는 태세를 만들어야 합니다. - P199

@@소설이란, 스토리란, 남녀와 세대 간의 대립이나 그 밖에 다양한 스테레오타입의 대립을 누그러뜨리고 그 날카로운 칼끝을 완화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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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희망이 아니라 늙어감에 대한 냉철한 성찰.
1912년생 저자가 1968년 초판 56세 때의 성찰로 비난도 있었으나 10년 후에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인. 1977년 4판. 1976년 자유죽음 발간. 1978년 자살.

늙어가는 사람을 A로 약칭. 첫번째 A로 마르셀 프루스트, 즉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내레이터 소환.

세계로부터 추방당한 얼굴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동시에 비로소 자신이 된다는 역설. 늙어 가는 낯선 얼굴과 몸을 인식하게 됨과 동시에 몸으로부터 소외된다. 몸이 아플 때에야 몸을 인식하게 된다. 그 노인 자체가 시간이다. 시간 안에 머무르는 존재가 된다. 젊음은 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이고 세상 그 자체이다. 시간 안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이 나아간다. 건강한 사람은 자아와 뗄 수 없이 맞물린 세상의 일과 사건에 충실할 따름이고 자기 바깥에 머무른다. 외화한다. 노화는 세계의 상실이고 늙어가는 사람은 정신과 몸의 기억을 끌어모은 과거로 즉 살아낸 시간 살아낸 자연이 된다. 내화한 노인에게 아픈 몸은 그렇게 감옥이 된다. 동시에 마지막 안식처이자 껍데기가 된다. 시들어가는 몸은 우리 자신이 부정하는 것이자 지극한 진정성이다. 마지막까지 생명의 권리를 담보하는 것은 언제나 몸이다.

사회적 노화(사회적 연령). 변화에 저항하며 적응하기
문화적 노화. 통속에 머무르지 않기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의 불평등. 가난
죽음이라는 무로 들어가며 처음으로 완전하게 인생을 극복한 우리의 승리. 그것은 우리의 총체적 붕괴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이둘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시간은 언제나 우리 시간, ‘살아낸 시간‘ temps vecu일 따름이다. 이런 시간을 성찰하면서 우리는 두 개의 위험지대 사이를 지나간다. 둘 다 똑같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한쪽에서 우리는 공허한 말장난과 천박한 캐물음의 위협을 받는다. 다른 한편에서는뭔가 배운 것 같은 울림을 주기는 하지만, 알아야 할 최소한의가치도 제시하지 못하는 이른바 전문 철학자의 인공 언어에 휘둘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두 위험지대를 돌파하려 시도해야만 한다. 시간은, 살아낸 시간 혹은 (그렇게 표현하길 원한다면)주관적인 시간은 우리 모두의 가장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 이런 단어는 잉크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신문에서나 나오는 게 아니던가! 시간은 우리의 숙적인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다. 우리가 저마다 각자 전적으로 홀로 소유하는 게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우리의 고통이자 희망인 게 시간이다. 시간 이야기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P23

그러나 결국 문제 삼지 않았던 것 곧 자연적인 시간 감각은 쓸모 있음 이라는 법칙에 굴복한 편안함과는 다른 것임을 깨닫지 않을까? 자신이 저 무의미한 성찰이나일삼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여기며 매달렸던 바로 그 ‘자연적인시간 감각‘ 말이다. 아마도 그게 ‘자연‘이니까,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는 있다. 이 자연은 과학으로부터 이끌어낸 물리적이고수학적인 질서의 자연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변형을 준다면 ‘살아낸 자연‘nature vécue이라는 반론이!
그래야 그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상처를 입었다고 가정해보자.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곪아 통증을 일으켜공간적인 외부가 그의 몸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몸은 가지지 않아야 완전히 소유한다. 다시 말해서 느껴지지 않는 몸이 건강하다. 그러다가 점차 상처가 아문다. 감염과의 싸움을 그의 유기체가 이겨내 상처가 아문다. 그러니까 이제상처를 지워버리는 것은 돌연 시간이다. 매일 흘러가는 하루와 더불어 새로운 조직이 상처를 덮어버림으로써 이제 시간은 더욱 살아낸시간이자 살아낸 자연이 된다. 드디어 시간이 승리하는 날이 찾아온다. 바로 그래서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고 세상사람들은 말하는 모양이다. - P53

A는 암울한 사태를 밝히 풀어보고자 하는 희망을 가졌으며, 또 그럴 수 있는 처지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애매모호함에 흠칫 놀라 굳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 애매모호함을 여자 친구와 함께 ‘중의성‘重義性(ambiguite)이라 부르기를 즐겼다. 그 안에 꼼짝도 할 수 없게 사로잡혀 상황을 명백하게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게 ‘중의성‘이다. 거울 앞에 서서 자기 권태와 자기 보상을 동시에 느끼는 풀 길 없는 아포리아, 곧 난제라는 사실 때문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자기 소외와 자아 신뢰 사이의 불협화음이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바람에 그녀는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 P64

나인 동시에 내가아니라는 이런 생각은 하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나는 내가갈수록 낯설어진다. 나의 세포에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래서나 자신의 실체를 보면 볼수록 나는 낯설기만 하다.
비유의 언어를 빌릴 때 비로소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물론과학의 탐구정신은 그런 비유의 언어를 애매하다며 거부하리라. 그러나 지금 우리의 고찰에는 좋든 나쁘든 비유의 언어만쓸 수 있다. 비유컨대, 나는 몸을 통해 늙어가면서 몸을 적대시하는 나다. 젊었던 시절 나는 몸을 등한시하면서도 몸과 더불어 나였다. - P79

사회의 모순은 어디서 성립하는지, 이 모순을 거부할 기회에는 어떤 게 있는지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만 한다. 왕성하게활동을 벌이던 젊은 시절부터 눈치 채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짙어져가는 합의, 곧 우리를 바라보는 사회적 판단의 합의는 그러니까 미리부터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존재, 우리 존재 그 자체라 불러도 좋을 사회적 존재는 본격적인노화의 과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그 윤곽을 드러낸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 사회는 대답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가 사회라는실의 1막이다. 2막은 1막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반론 혹은 대답으로서의 행동이라는 차원이다. 우리는 작가로서 말하면 받아들여지리라는 믿음으로 작가적 표현으로써 사회에 도전한다. 우리가 활동하는 작가로 실제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는 물음은 사회가 우리의 도전을 받아들이는지 그여부에 달렸다. - P102

노인은 자기 부정과 파괴에
"안 돼!" 하고 저항하는 동시에 "알았다" 하고 그것을 인정한다.
아무런 전망이 없는 부정에서만 노인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자아의 포기를 강요당하는 획일적 일상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노인은 정신병원에서 묵을 거처를 찾는다. 여전히 젊음이라는 마스크를 쓴 것처럼 자신을 기만하며, 거짓으로 묵직한 황혼의 노년이라는 목가적 풍경에 매달린다.
노인은 사회가 요구한 바로 그대로다. 노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할 때에만 누군가다. 노인은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안에 녹아 있는 부정이 자기문제임을 알아차리고 그에 저항하려 몸을 일으킨다. 노인은 실행할 수 없는 일을 하려 과감히 떨쳐 일어난다. 아마도 이게 노인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 진정 품위 있게 늙어갈 유일한 가능성이리라. - P131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창피한 것, 곧 통속은 언제나 어제 유행으로 체험된 것이라고 A는생각했다. 그러니까 역사로 자리 잡지 못한 어제의 유행만 낡고늙은 것으로 여겨질 따름이다. 헤세, 귀엽다는 형용사를 붙일수 있는 그의 문학은 어제의 것이며, 어제 인기를 누렸다. 다시말해서 대량소비로 닳아버렸으며 가치를 잃고 말았다. 헤세가귀여움에 몰두하던 때와 같은 시기에 차갑게 인간 실존의 전율을 써내려간 카프카는 통속화 과정에 조금도 사로잡히지 않 - P147

았다. 카프카의 작품이 헤세의 귀여운 그것과 전혀 다른 요소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짚어보자면 다른 누구도 아닌 헤세가 카프카의 문학을 읽어보라고힘주어 권고한 최초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게 순전한 우연의 일치일까? 카프카가 통속화 과정에 사로잡히지 않은 것은이 프라하 시민이 슈바벤 출신의 스위스 남자와 반대로 단 한번도 동시대의 유행으로 부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카프카 열풍은 그가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일어났다.
오히려 카프카 열풍은 일종의 안티 유행이라는 태도로 출현했으며, 역사적인 동시에 미래를 제시하는 성격을 갖추었다. - P148

문화적으로 늙는 일의 품위는, 그것이 그 가운데 자리 잡은 사회적 노화의 품위와 마찬가지로 다시금 오로지 모순된 저항, 모순과 철저히 싸우는 저항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새로운 체계들은 이미 찾아왔다. 늙어가는 사람은 아무 희망도없이 매일 새로운 체계를 해독하려는 싸움터로 나가야만 한다.
늙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한, 부패하는 질서를 버려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신적 태도가 시체를 붙들고 못 다한 성욕을 풀려는 음울한 네크로필리아"라는것을 잘 알면서도, 늙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부패한 체계에 무가치할지라도 충절을 보여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무망한 시도로 자신의 부정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거부해야만 한다. - P169

"틀렸어, 그건 그냥 죽음이야."Le faux, c‘est la mort. 장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이 말로 철학자는 죽음을 거절했다. 인간의실존을 불투명한 본질로, 돌처럼 굳어진 ‘존재‘etre로 만드는죽음을 거부한 것이다. ‘에트르‘être(존재)는 그저 ‘아부아레테‘
avoir-été(현재완료형으로 ‘갈수록~하다‘라는 프랑스어 문법옮긴이)일뿐이다. 죽음과 대결하려는 사람은 단지 과거와 현재를 맺어주는 위험한 결합 그 이상의 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가 저지르는 일은 자신을 연모한 나머지 스스로를 굳어진 존재로 만드는 음란한 근친상간이다. 그러나 유일한 진리는 죽음이라고도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어쨌거나 죽음은 미래 가운데 미래, 모든 미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떼는 모든 발걸음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행보다. 우리가 품는 모든 상념은 결국 죽음에서 깨어진다. 죽음의 완전히 공허한 진리, 그 비현실적인 현실성은 우리 인생이 가지는 무의미함의 완성이다. 무無로 넘어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완전하게 인생을 극복한 우리의 승리는 곧 우리의 총체적 붕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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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조세희 선생이 타계하시고,
집에 있던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난장이 연작을 실은 이 책의 첫 작품 <뫼비우스의 띠> 문장처럼, 알량한 독서와 지식이랍시고 자신의 이익에 맞춰 쓰이진 않도록 하자. 그저 바람직한 생각들이 바람직한 실천으로 이어지길…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제 나의 노력이 어떠했나 자신을 테스트해볼 기회가 온 것 같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 P29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어머니 · 영호·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 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 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 P80

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라는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 /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세대와 세기가 우리에게는 쓸모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 하나 주지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 우리는 인류의 사상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못했고 남의 사상으로부터는 오직 기만적인 겉껍질과 쓸모 없는 가장자리 장식만을 취했을 뿐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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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2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23-01-16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쓰실 때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