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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실천하는 지성인으로 알려진 오에 겐자부로의 교육 에세이라는 문구가 다소 상투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폈다. 그러나 이 책은 에세이가 아니라 한 편의 성장소설과도 같은 짜임새로 일관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나의 나무'

몇년 전부터인가 해오지 못하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양산 어느 절의 너른 마당에 있던 나무들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큰아이가 세살 때, 우리 부부는 그 나무를 아이의 나무로 정하고, 그 나무에 아이의 등을 대게 하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해마다 같은 때(아이의 생일은 12월) 이 곳에 와서 '아이의 나무'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로 하였다. 가지만 앙상한 그 겨울나무는 잿빛 하늘을 향해 기운차게 가지를 벋고 있었다. 모든 걸 다 벗어버리고 굳건히 서 있는 그 나무가 봄기운과 함께 다시 피어올릴 것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 참 희망찼던 기억이 난다.

'계속'

하나의 몸체 안에서 쉼없이 돌고 도는 계절의 여행을 하는 한 그루 나무처럼, 작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자기 안의 '인간'은 서로 이어져 있'고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자기 나름대로 시작하는 삶의 방식은 평생 계속되'며, '계속한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들려준다. 어린 시절의 공부와 경험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인지, 어떻게 잘 키워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들려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평생 '계속'되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란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가꾸어나가야 할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너는 어른인 너에게 계속되어 있어. 그건 네 등뒤의 과거의 사람들과, 어른이 된 네 앞의 미래의 사람들을 잇는 것이기도 해.

한 사람 한 사람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의 주인공으로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망각하고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자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없다'라고 말하며,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번민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보는 힘'을 내어 보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는 데에는 용기도 필요하고 부단한 힘을 길러두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란 것이 해결해 주는 것들과 의외의 소득이, 이전에 가졌던 번민의 시간들을 무색하게 하는 때가 종종 있다.

큰아이의 뒤로 당당히 서 있는 겨울나무는 지금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뿌리 저 밑에서 건져올린 인내와 강인함으로 생명을 부단히 잇고 있다. '계속하고' 있다. pepper and salt에서 salt가 좀더 많은 머리카락이 되었을 때, 내 안에 있는 '어린 나'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습니까?'하고 물어오면, 나무처럼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살면서 자신 안에 들어있는 '어린 나'와 수시로 대면하기를... 순수와 열정으로 세상을 바로 보는 작가의 맑고 차분한 눈빛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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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 - Learning Fable Series 데이비드 허친스의 학습 우화 시리즈 1
데이비스 허친스 지음, 김철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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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는 우리가 짐작하는 정도보다 더 많은 수의 동굴들이 있다. 그 안에는 동굴의 입구쪽으로 등을 지고 돌아 앉아 동굴벽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저마다 자신이 보고있는 것이 완전한 것이라 믿으며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려한다. 무엇때문에 동굴 밖의 빛을 두려워하고 동굴을 빠져나오지 못하나? 이것에 대한 답을 저자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고 모델'의 작용이라고 한다.

'사고 모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추측하고 가정하며 자신의 신념으로 확고히 굳혀간다고 한다. '사고 모델'이 위험한 것은, 그것의 일곱 가지 원리 중 몇가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사고 모델'은 항상 불완전하며, 우리가 얻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며 다시 스스로를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사고 모델은 때때로 그것의 유용성보다 오래 남는다.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는 이러한 사고 모델의 실체를 재치있는 삽화와 함께 우화 형식을 빌어 쉽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단지 돌아 앉기가 겁이 나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세상의 모든 것으로 알고 만족해 하며 살아가는 원시인은, 문명인을 자처하는 오늘날의 우리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코끼리의 다리나 코만 만져보고 코끼리를 다 알았다고 자만하는 경우와도 다르지 않다.

참된 존재를 앎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고 모델에 수시로 질문을 던지고 그 틀에서 나와 고개를 돌려볼 필요가 있음이다. 망루에 올라 동서를 모두 먼 시선으로 내다본다면, 원시인 부기처럼 혼자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말 조금밖에 못 보는구나......'

사고 모델을 바꿈으로써 수많은 경영 혁신을 일으킨 경우도 있지만, 더 좋든 나쁘든 우리의 사고 모델은 우리가 취하려는 행동의 폭을 제한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념은 단지 자신의 사고 모델일 뿐이라는 것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신념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검증해보지도 못하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로 하자.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선과 지적 호기심에 눈밝히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도, 사고 모델에 스스로 휘둘리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리가 늘 우리 자신의 사고 모델에 도전하여 그것의 정체를 훤히 꿰뚫어볼 수 있다면, 사고 모델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은폐된 권력으로서 작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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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4
이주홍 글, 김동성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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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대의 아픈 이야기가, 아주 서정적인 맑은 수묵화를 배경으로, 가슴에 아련한 메아리가 되어 들려오는 느낌이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시집이 뭔 지도 모르면서 낯선 어른을 따라가는 누이가 마지막으로 먹고 가는 건 한 그릇의 감자밥이다.

돌이의 눈에 비치는 단장한 누이의 모습은, 꾸미지 않은 순박한 모습의 누이를 도저히 잊지 못할 그리움으로 진하게 남길 뿐이다. 때묻은 누이의 베개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돌이의 가슴을 달래주는 건, 송아지의 탄생이다. 새 생명의 태어남이란 이렇게 경이롭고 환희에 차오르는 무엇인가 보다.

묵묵히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돌이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어깨는 늘 짓누르는 무엇으로 무거워보이고 침묵으로 모든 걸 견뎌내는 깊은 산 속 나무와도 같다. 이런 느낌은 말수 적은 모습으로 담담히 버티고있는, 이 책의 그림이 주는 느낌과도 닮아있다. 그렇게 없는 듯 뒤에서 서있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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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 비룡소의 그림동화 64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조은수 옮김 / 비룡소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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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은 윌리엄 스타이그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친구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꼭 자신들이 내면과 닮아있는 친구말이다. 아이들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런 속성을 보여주는 데 한치의 망설임이나 양심의 가책도 없다.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슈렉의 행동방식이 밉지 않다.

가는 곳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라면 슈렉을 피해 달아나지만, 슈렉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짖궂음이 마치 세살 아이같다. 슈렉은 오직 자신의 짝인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공주만을 찾으러 거침없이 나아간다. 자신이 바라는 것만 향해 돌진한다.

<슈렉!>에는 못생긴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더 못생기고, 더 지저분하고, 더 짖궂은' 초록색 괴물 슈렉을 비롯하여 마녀, 터무니없이 큰 용, 뱀, 못생긴 공주 그리고 둘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있는 악어까지. 혐오의 대상으로 밀쳐내는 것들이 여기에서는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다.

우리의 눈에 추악한 모습을 하고 있는 슈렉과 못생긴 공주가 서로 애정의 눈빛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마음 속 어두운 동굴에 살고있는 근질근질한 무엇을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라고 은근히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시처럼 노래처럼, 둘은 마냥 행복하다. '너무나 못생겼기에' 둘은 서로 사랑한다. 그 표현도 코를 덥썩 물거나 귀를 꽉 깨무는 것이다.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고 새들이 노래하며 날아다니는 동산에서 귀여운 얼굴의 아이들이 빙글빙글 춤추며 노니는 장면이 있다. 슈렉이 잠시 정신을 잃고 잠이 든 동안 꾼 악몽의 장면이다. 아이들은 자꾸만 슈렉을 껴안고 뽀뽀를 하려고 한다. 잠에서 깬 슈렉이 하는 말. '나쁜 꿈을 꾼 것뿐이야. ......아주 끔찍한 꿈이었어!' 이는 어른들의 고정된 생각을 다소 바꾸어 줄 수 있는 장면이자 작가의 위트가 유쾌하게 반짝이는 부분이었다. 슈렉이 나가는 길 양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눕혀 길을 내주는 나무와 꽃들은 또 어떤지...

시적이면서도 거침없이 내뱉은 '아름답지 못한'(?) 단어들로 씌여진 글과 생략할 건 생략하고 윤곽을 살려 '못생기게'(!) 그린 그림들이 작가의 기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싫은 사람에게 실컷 욕을 해댄 것 처럼, 슈렉이 하는 말과 행동은 통쾌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보고나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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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지와 빵집주인 비룡소의 그림동화 57
코키 폴 그림, 로빈 자네스 글, 김중철 옮김 / 비룡소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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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명판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옛이야기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어쩌면 평이하다할 이야기가 이 그림책에서는 풍성하고 유머러스하게 살아난다.

갈색톤의 풍부한 색감이 따스하기도 하고 화려한 옷 색깔이 생기를 주기도 한다. 그림의 배경은 아주 이국적이라 할 수 있다. 사막과 낙타가 그렇고 샌지가 머물렀던 집의 아랫 층에 있는 빵가게의 풍경이 그렇다. 모두 갈색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종류의 빵과 사람들의 피부색까지 갈색이다. 머리에 두른 터번과 구렛나루의 시커먼 수염, 야자수 뒤로 보이는 돔 지붕의 건물들.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시키며 뭔가 이야기가 숨어서 꿈틀대고 있을 것 같다.

군데군데 볼 수 있는 코키 폴 특유의 유머가 재미있기도 하다.
아랫 층에서 올라오는 빵냄새를 더 잘 맡으려고 샌지가 코에 끼우고 있는 기계는 기발하다. 나중에 보니, 발명가 친구의 아이디어에서 따온 것이었다. 은닢 다섯 냥이 그릇 속에 떨어지는 소리를 차례로 다른 흉내말로 표현한 것은 사실적이다. 짤랑, 딸랑, 딸그락, 땡그랑, 떨그덕. 동전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빵집 주인의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되면서 음흉스럽게 드러나보이는 허연 이빨. '이제 저 은닢은 내 거야' 라고 생각하는 표정이 잘 살아있다.

그런데 여행 중인 샌지가 어떻게 친구들에게 은닢을 빌릴 수 있었을까? 다섯 명의 친구는 아마도 샌지가 여행 중 사귄 친구일 것이다. 직업도 연령도 성별도 다 달라 보이는 다섯 명의 친구가 웃는 얼굴로 은닢 한 냥씩을 샌지에게 빌려준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니, 밖에서 이 친구들은 손을 내밀고 샌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 발명가로 보였던 한 친구는 없고 대신 애꾸눈 해적이 서 있다. 좀 아리송한 부분들이다. 하지만, 이제 빵집 주인도 샌지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쯤되면 이 이야기는 명재판관의 이야기가 아니라, 샌지가 하는 여행 그리고 여행에서 얻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샌지는 젊었을 때, 거친 바다를 만나고 뜨겁고 넓은 사막을 지나기도 하며 여행을 많이 했다. 전설의 도시 후라치아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빵냄새와 함께 얻은 것은 지혜로움 그리고 다소 욕심이 많지만 밉지만은 않은 새 친구.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서 가고 있는 빵집 주인을 바라보는 샌지의 표정이 그런 마음을 말해준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삶을 살아 온 샌지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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