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여성해방 운동의 선봉자
1970-1980년

“1976년에도 결혼과 모성은 여전히 여성에게 함정과 같다.”

- 노년, 에이드리엔 리치
- 1980년 사르트르의 죽음
- 1972년 독일 저널리스트 알리스 슈바르처와 인터뷰
“보부아르의 말”



(발췌 요약)
일찌기 보부아르는 여성으로서 타자임을 느꼈고 그 점이 “제2의성”의 분석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타자임을 느꼈다. 늙어가고 있었고 다시 한번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남들의 경험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노화와 노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금기시된 분위기였다.
보부아르는 노년이 유일한 보편적 경험을 가리키지 않기 때문에 모든 노화가 과격하거나 삐걱되거나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 되기처럼 노인 되기도 개인의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지리학적 가족적 맥락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띤다. 나이듦의 상황이 그 경험에 극도로 큰 영향을 준다. 노년은 생물학적 사실이고 충분히 오래 산 인간의 보편적 운명이다. 하지만 노년이 모든 이에게 주변화와 외로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어린아이와 노인을 평범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아직은 혹은 더는 인간이 아닌데 인간인 것처럼 행동하므로 특별하게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미래를 대표하는데 노인은 집행유예 상태의 송장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밖에서 보면 나이 듦이 안으로부터의 유폐처럼 느껴질 만하다. 보부아르는 독자에게 되기의 경험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노년은 1970년 1월에 출간되어 금방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보부아르는 노년에 따라올 수 있는 다양한 경험에 기대어 또다시 금기에 도전했다. 노년을 경험하고 글쓰기로서 성찰하는 이들을 인용했기 때문에 특권을 누리는 이들의 나이 듦에서 주로 끌어올 수 밖에 없었다. 노년을 사회적 정치적 범주로 논하면서 주체 경험이 하는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문학 자료를 인용한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
1976년에 보부아르는 결혼과 모성은 여전히 - 너무 많은 경우에ㅡ함정이라고 보았다. 아이를 낳고 싶은 여성은 진지하게 그 아이의 양육 조건을 숙고해야 한다. 아이들이 아플 때 일을 포기하고 집에서 돌볼 것으로 기대되는 쪽은 늘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 크지 못하면 그 비난은 여성에게 간다. 문제는 가사 노동이나 돌봄 노동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 노동 자체가 비하를 낳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은 여성뿐만 아니라 모두가 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자기를 살아 있게 하는 일을 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는 자신이 자발적 모성을 지지하는 운동가˝라고 했다.
그해에 대서양 건너편에서 페미니스트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가 《여성으로 태어나》를 출간했다. 이 책은 《제2의성》에서 다룬 모성에서 출발하여 모성의 힘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 1976년 3월 여성대상범죄국제재판소가 브뤼셀에서 열렸는데 보부아르의 편지가 공식 의사록에 포함되었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해‘ 바로 다음에 이 위원회가 열렸으니 우습다면서 ‘여성의 해‘도 결국 남성 사회가 여성을 신비화하려고 마련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4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1- 26장 아이들의 교육에 관하여

세상을 두루 접하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놀랄 만한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끼리 엉겨붙고 들러붙어 있어, 시야가 우리네 코 길이로 짧아져 버렸습니다. 어떤 이가 소크라테스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라고 대답하지 않고 "세상"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보다 높고도 너른 사고를 지닌 그는 세계를 자기 도시로 품고, 자기 발밑밖에는 보지 않는 우리와 달리 인류 전체에 자신의 삶과 교분과 애정을 주었습니다. - P292

선생은 학생에게 진정한 덕의 가치와 숭고함은 그 실행이 용이하고 유용하고 즐거운 데 있고, 힘든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어른이나 아이나, 세련된 자들이나 순진한 자들이나 행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르침을 줄 것입니다. 절제는 덕의 도구이지 덕의 힘이 아닙니다.
공덕이 가장 총애하는 사람, 소크라테스는 힘이 드는 것은 기꺼이 피하고 덕의 자연스럽고도 편안한 길에 자기를 맡겨 두었습니다. 덕은 인간적인 쾌락의 유모입니다. 덕은 인간적인 쾌락을 정당화함으로써 쾌락을 확실하고 순수하게 만듭니다. 쾌락을 조절함으로써, 쾌락이 지닌 싱싱함과 풍미를 유지시킵니다. 덕은 자기가 거부하는 쾌락을 잘라내 버림으로써, 남겨 준 쾌락에 더 예민해지게 만듭니다. 게다가 덕은 천성이 원하는 쾌락은 무엇이나 풍성하게, 물리도록까지는 아니더라도 (술꾼을 만취 전에 멈추게 하고, 포식가를 소화불량 전에 멈추게 하고, 호색가를 대머리가 되기전에 멈추게 하는 섭생을 쾌락의 적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포만할 때까지 누리게 해 주지요. - P301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린아이의 교육에선 욕구와 열의를 북돋워 주는 것만 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책을 잔뜩 짊어진 당나귀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매질을 해서 학문을 잔뜩 우겨 넣은 주머니를 아이들에게 주고 잘 간수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문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아 두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과 한몸이 되어야 합니다. - P3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어진 카드를 어떻게 섞고 “발췌하고 채취하는지”에 따라 운명의 지도가 달라질 수 있는 인문학적 사유. 사주 풀이에 관심이 집중한다면 이 책을 봐서는 모자람이 크게 느껴질 것이고 그렇지 않고 기본 작동원리만 알면 된다는 식이면 충분히 좋다. 자기 욕망을 충족시켜 줄 운명을 찾기 위해 점집을 찾거나 사주를 보는 식이면 그게 바로 미신이라는 저자의 강의 말씀은 뒷장 QR코드로 연결된 영상강의에서 들었다. 개운에 꽂히지 말라. 개운은 막힌 운을 트는 것이지 운을 바꾼다는 게 아니다. 개운의 종류가 틀렸다는 생각을 하라. 운신의 방법 두 가지는 비전과 일상.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하늘의 별과 별 사이의 지점을 쳐다보는 존재로서의 나. 그걸 탐구하라. 신영복 선생의 감옥 이야기 등등 호쾌하고 거침없이, 여전하다.
“지혜”를 위해 공부해야 삶이 나아진다는 건 진리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생각해보라. 당신이 명확하게 기억하는것, 자신이 실제로 거기에 있는 듯이 보고 느끼고 나아가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것, 어쨌거나 당신은 당시에 실제로 거기에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에 깜짝 놀랄 일이 있다. 당신은 거기에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당신의 몸에 있는 원자는 단 하나도 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거기에 없었다. (………) 물질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흐르며 순간적으로 모여서 당신이 된다. 따라서 당신이 무엇이든, 당신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당신이 아니다. 그것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쭈뼛 일어서게 하지 않는다면, 그럴 때까지 다시 읽어라.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 570쪽) - P142

그래서 ‘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과 의식의 상태에 있는지를. 가장 간단하고도 근본적인 훈련은 호흡관찰이다. 호흡을 면밀히 관찰하노라면 온갖 잡념과 망상이 흘러가는데, 그것들을 잘 보기만 해도 무차별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이치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집중이란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뜻으로 ‘지금, 여기‘와의 완벽한 일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집중력 자체가 자신의 행위와 말과 생각을 통찰하는 ‘마음의 근육‘에 다름 아니다. - P146

이어지는 또 하나의 전도. 상처라는 담론 속에서 자신은 결코 주체가 아니다. 상처를 입힌 자들만 클로즈업된다. 나는 그저 ‘당했을 뿐이다. 얼떨결에, 난데없이! 그렇다면 이상하다. 왜 이 상처의 서사에선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전혀 부각되지 않는 걸까? 무섭고 약해서 그랬다고 한다면 그런 자신의 모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왜 그토록 어리석었을까? 혹은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던 것일까? 요컨대 상처라는 담론 안에는 자신에 대한 관찰이 놀랄 만큼 빠져 있다. 그래서 그 과거는 여전히 현재에 개입하고 미래를 창조한다. 니체는 ‘양심의 가책‘ 혹은 원한감정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오래도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바가 있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 P210

아주 간단하다. 자승자박! 자업자득! 즉, 길이든 흉이든 결국은 자신이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도 자신의 내부에 단서나 원인이 없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운명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이 원리를 깨우치지 못하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일정한 조건만 주어지면 동일한 욕망과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반복하는 리듬과 강밀도, 이것이 바로 팔자다. 해서, 팔자를 고치려면 자기 안에 있는 단서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동양사상이 내적 성찰과 통찰의 힘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데, 이렇게 말하면 대개 억울해한다. ‘왜 나만 갖고 그래? 그게 왜 내 탓이야?‘ 혹은 ‘그러니까 세상이 안 바뀌는 거야. 나를 그렇게 만드는 세상이 문제지, 내가 뭔 죄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한번 찬찬히 따져 보자. 이런 논리는 상당히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의 삶에서 나를 소외시키는 방식이 아닌가. - P2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주말에 예정되어 있던 부산불꽃축제가 예상대로 무기한 취소되었다. 특수를 노렸을 카페 등 손해가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많은 인파로 매해 교통마비도 대단했다.
지난달도 걸음수는 없이 그냥 읽은 책만 보관해 두었다. 읽는 중인 책도 포함해 나름 작은 기록이 되네. 낮에 잠시 아파트 공원에 나가 보았다. 별로 걷지는 않았고 나무 아래 쌓인 낙엽과 햇살의 그림자를 담아 보았다. 각도를 조금만 달리해도 수피의 결과 그림자가 달리 보인다. 지금 나의 계절도 늦가을. 좋은 계절이구나. 주말에 지리산 펜션에서 일박이일 하고 왔다던 초등 동기의 남편 부고가 갑자기 날아왔고, 매몰된 광산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주말에 교수님 출판기념회에서 넷이서 윤송하기로 되어 있어 카톡방 만들어 의논하고 내가 리더라 주도하는 것도 있다. 6분 이내로 시간을 맞추려고 음악을 고르고 완급 조절해 혼자 낭송해 보다 먹먹했다. “그는 무엇보다 만난 적도 없는 이웃의 눈물을 헤아립니다.”
내일은 애호박 넣고 수제비 끓이려고 반죽을 해서 비닐에 넣어두었다. 티비에서 가수 현미가 “보고 싶은 얼굴”을 부르고 하루하루 삶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삶은 제각각 다르고도 비슷하다.


#
고미숙의 “나의 운명 설명서”에서 적재적소에 발췌된 문장들도 의미 있다. 여기 다 옮길 순 없지만 여러 갈래로 다리가 되고 하나로 다시 모아지는 사유들을 만나 반갑다. 자신을 이해하고 종횡무진 20년째 고전공부 공동체를 이어가며 운명을 차고 나가는 저자의 시원시원한 글이 긍정에너지를 준다. 어디로 튀든 고미숙 샘 결론은 우주적 존재로 태어난 우리 몸! 몸과 하나되는 공부로서 낭송과 글쓰기! 뒷장 QR코드로 들어가면 고미숙의 영상강의로 연결된다. 강원도 집에서 촬영, 귀에 쏙 들어온다.


#
복잡한 추론 과정이 있긴 하지만 내용인즉슨 과거에서 부터 현재를 추적하지 말고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가. 역사가 우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역사를 창조한다. 이것이 양자역학이 말하는 시간 법칙이다. 개인의 삶도 그러하다. 인생에는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 현재가 과거를 조작하고 미래를 창조한다. 지금 여기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과거가 끊임 없이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과거와 미래에 끄달리지 말고 오로지 현재 집중하라는 뜻이다. 일단 그렇게 되면 누구든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 3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11-02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6권이나 읽으셨군요 ^^
오늘도 그렇고 요새 사건 사고가 많아서 참 걱정입니다 ㅜㅜ

안타깝네요. 책도 잘 못읽겠더라구요

프레이야 2022-11-02 12:18   좋아요 3 | URL
그렇네요 새파랑 님 마음이 산란하고요. 집중 좀 해야겠어요. 각자도생. 마음 잘 모으고 모두 잘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렇게 결국 방관자 입장이네요. ㅠ
 

http://bookple.aladin.co.kr/~r/feed/824193
15년전 오늘의 포스팅이라며 북플에 뜬다.
———

I‘m Nobody / Emily Dickson
11월, 무명씨의 또하루를 시작하며~
남은 두 달을 생각하며~


I‘m Nobody


Emily Dickinson



I‘m Nobody! Who are You?
Are you - Nobody - too?
Then there‘s a pair of us!
Don‘t tell!
They‘d banish us - you know!


How Dreary - to be - Somebody!
How public - like a fog -
To tell your name-
the livelong June-
To an admiring bog!


--------



무명인




난 무명인입니다! 당신은요?
당신도 무명인이신가요?
그럼 우리 둘이 똑같네요!
쉿! 말하지 마세요.
쫓겨날 테니까 말이에요.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요란할까요, 개구리처럼
긴긴 6월 내내
찬양하는 늪을 향해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대는 것은.



*Emily Dickinson


미국 시인(1830~1886). 자연과 사랑, 청교도주의를 배경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담은 시들을 남겼다. 평생을 칩거하며 독신으로 살았고, 죽은 후에야 그녀가 2000여편의 시를 쓴 것이 알려졌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생일> 중




———

자꾸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속속 전해지는 뉴스와 증언들은 차마 다 보고 듣기 힘들 정도다. 이십 대가 많다보니 그 또래 부모 입장에서 차마 무슨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 년 전 가을, 지인의 부탁으로 초등학교 영어 방과후 수업을 맡은 적이 있다. 몇 달간이었지만 십인십색 아이들과 정이 들어 헤어질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월 말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그 주에는 핼러윈 특집 수업을 하였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날의 의미는 제쳐두고 전주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던 아이들은 사탕을 받고 소품을 만들어 분장하고 깔깔거렸다. 그게 다였다. 나는 아이들 구미에 맞게 분위기를 맞춰 핼러윈데이와 연결되는 단어카드와 소품들, 간식을 준비하고 재밌는 영상도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그 모든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따라했을 것이다. 놀이수업이었다고 해도 그마저 주입식이었다. 그 아이들은 몇 년 후 이태원에 놀러 갈 수도 있다. 이태원에 간 청년들은 예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그렇게 의미도 모를 수업을 받았을 아이들인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 유치원 때도 그런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남은 소품 중 주황색 호박 플라스틱 바구니가 지금 우리 집에도 하나 굴러다닌다. 그것과 똑같은 게 쓰레기 나뒹구는 그 거리 구석에 오두커니 남아 있는 뉴스 화면을 보았다.
내 아이가 그곳에 없었다는 것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으로서 참담하다. 국민으로서 분노한다. 유실문 센터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손길을 기다리는 짓밟힌 신발과 가방, 에어팟과 안경 들, 팔 년 전의 아우성이 환청처럼 들린다. 안전불감증과 무책임, 천박한 인식과 이기주의, 비방과 혐오가 만연한 나라에서 눈을 감고 다시 두 손을 모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1-01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작가님 글 참 좋아했었는데 ㅠㅠ 그리운 작가님입니다. 저는 뉴스를 못 보겠더라고요. 그냥 아무렇지 않은척 일상을 살아내는게 참 힘든 세월입니다.

프레이야 2022-11-01 11:49   좋아요 2 | URL
네. 아무렇지 않은 척할 뿐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요. 그렇게 믿고 싶어요. 팔년전의 트라우마가 당시 한달은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도 오래도록.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장영희 샘 글 좋아합니다. 김점선 화가의 그림과 잘 어울리고 쾌활함이 있지요. 두 달 남았네요 올해가. 날마다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명복을 빌며… _()_

새파랑 2022-11-0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15년전이라니 까마득하네요 ~ 프레이야님 북플의 산증인이십니다~!!

저도 이젠 뉴스를 안보게 되더라구요 ㅜㅜ

프레이야 2022-11-01 21:06   좋아요 1 | URL
가끔 20년 전의 글이 뜨면 저도 놀라네요. 의인들 이야기는 그와중에 또 마음을 울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11-01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작가님의 글 따뜻하고 좋았던 기억이... 지금은 다 정리해서 없어서 아쉽지만^^;
저는 매일 아침 신문을 보는데 특히 어제는 많이 힘들더라구요. 감정적으로 바라보려니 더 힘들어서 지금은 이성을 가동중입니다.

프레이야 2022-11-01 21:10   좋아요 1 | URL
장영희 선생님의 온기 있고 긍정적인 글이 이런 때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네요. 감정적으론 어제보다는 오늘 좀 낫습니다. 마음이나마 모두 모아 드리고 싶습니다. 다 같은 마음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