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좁은 곳에 있을 때 제인을 필적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다.” _ 러디어드 키플링 (1865-1936)


오스틴의 작품을 폄하한 남성 작가들 틈에서 저런 말을 한 작가 키플링. 의외의 면을 알게 되었다. <정글북>의 저자, 42세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인도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영국에 양자로 가서 다섯 해의 유년을 열악한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그런 갇힌 공간에서도 상상력이 충만해 나중 그 생활의 체험을 작품으로 쓴다.


4장의 내용에 의하면, 러디어드 키플링은 단편 <제인의 추종자들>에서 제인 추종자회를 만든다. “얌전한 응접실”과 “폭력적인 전쟁” 사이에서 여성적인 특징 남성적인 특징이라는 괴리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사회적 지위와 얽매인 신분 역할“의 의미를 똑같이 분석한다. 오스틴의 인물들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고 “모두 조용한 방식으로 제인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남성 문화에 미친 영향력 면에서 오스틴을 추켜세운 키플링의 말은 오스틴 소설의 표면상의 점잖음 뒤에 숨은 폭발적 분노에 주목하게 한다. “문화의 여성화”에 오스틴이 든 도구는 희생적 소설쓰기. 자신을 포함한 여성의 순진한 면을 조롱하면서 좁은 곳에서 압박받는 상황에서도 우아하고 지적으로 살 수 있는 본보기를 보인다.


사후 일 년 후 1818년에 <설득>과 함께 발간되었으나 <수잔>으로 부르며 처음 집필을 시작한 <노생거 사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오스틴의 나이 스물하나였던가. 이 장에서 오스틴의 초기작으로 <사랑과 우정>과 함께 집중 다룬다.


바스와 거기서 30마일 떨어진 노생거 사원에서 캐서린이 겪게 될 ”어려움과 모험“을 그린 <노생거 사원>. 이 작품에서 오스틴은 주인공 캐서린 몰랜드를 독자 삼아 자신의 한계를 들여다본다. 이것은 통렬한 일이고 “압도적으로 서글픈 동요”를 야기하지만 캐서린과 동시에 오스틴은 조용히 숨기고 입을 다문다. “책을 너무 읽어”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캐서린에겐 고딕성에 비유될 만한 노생거 사원. 캐서린의 상상은 어처구니없는 허구가 되고 그곳을 어느날 갑자기 벗어나(사실 비자발적이지만) 그저 집으로 돌아온다. 캐서린이 선택한 게 아니라 모든 건 틸니 장군이라는 ‘아버지’가 꾸린 일이다. 캐서린이 즐겨 읽은 앤 래드클리프의 고딕소설 <우돌포의 비밀>을 조용히 조롱하면서 답습하여 전복하는 이 작품이 무서운 고딕소설이 되는 이유는 ”여성이 위험에 대한 감각을 무시해야 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모순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 받았을 때 생기는 공포와 자기 혐오”에 있다. 오스틴은 ’아버지’가 세운 견고한 건축물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재건축하는 양상으로 조용히 속임수를 쓴다.

하지만 <사랑과 우정> 같은 청소년기 작품은 우리가 생각하는 오스틴의 소설적 야망보다 ”더 큰 삶의 조각“을 품고 성숙기 소설과 달리 여성의 도망과 탈선을 줄기삼는다. ”익명의 여자 발신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유쾌한 편지를 보내 반란을 반복한다“.


결혼을 중요시 다룬 건 결혼만이 소녀들이 자기 인식을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여자들이 품는 사랑이라는 감상과 환상을 경계했고 연애에서의 돈의 문제도 중요시 다루었지만, 다른 모든 역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오스틴의 침묵은 그 자체로 진술이다“. 그것은 소녀와 여자들의 삶 못지않게 오스틴 자신의 불충분한 삶과 결핍을 증명하는 언술이다. 오스틴은 당대 여성문학의 전통을 인정하고 로맨스 소설 장르를 답습하여 그 플롯을 반복 재연함으로써 “자신에게 허용된 자기 표현의 형태를 전복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감추었”다. “어리석은 문학 구조에 대한 오스틴의 조롱은 문학과 마찬가지로 부적절한 사회적 비난이 안겨주는 소외감을 분명하게 표현하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265)“


- 4장 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사진_
윈체스터대성당 내 제인 오스틴 무덤
바스, 로얄빅토리아파크에서 나와 눈에 띈
가시를 품은 고결한 백장미, (장미가 아닐 수도)
제인 오스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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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플링이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 저런 평가를 한건 또 의외네요. 그의 백인의 의무란 시를 보면 진짜 완벽한 제국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였거든요. ㅎㅎ 노생거 사원 읽었는데도 저 다미여의 해석은 또 새롭네요. 뭔가 알듯말듯한 기분이랄까요?

프레이야 2022-11-08 22:55   좋아요 1 | URL
그죠^^ 유년시절 갇힌공간의 경험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의외라 놀랐습니다. 오스틴의 진지한 내적수다가 사랑스럽네요.

등대지기 2022-11-0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안의 키플링은 너무나 마초적인 이미지였는데 저도 의외네요.
사람은 다면적인가봐요. 좋은 건 알아가지고!

마지막 사진 좋아서 한참 봤어요 갑자기 훌쩍 영국에 가고 싶네요 ㅎㅎ

프레이야 2022-11-09 09:55   좋아요 2 | URL
그런가봐요, 등대지기 님. 사람을 한 면으로만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영국엔 오나가나 마음을 잡아당기는 꽃들이 참 좋았습니다. 오스틴처럼 뜨겁고 맑은 꽃이었어요. ^^

책읽는나무 2022-11-0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플링!!! 보는 눈은 있었군요.^^
바쓰.....특별하게 다가오는 장미 사진이네요.
그곳에서 마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22-11-09 11:15   좋아요 1 | URL
마차가 요즘 자동차 같으니 마차 자랑 말 자랑을 하는 남자의 수다에 듣기 싫어하는 똑똑한 캐서린 ^^ 귀여워요. 요즘남자들이랑 별반 다르지 않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요. 이게 꼭 남자만의 성향도 아니지만요.
 

인상적인 영화가 떠올랐다. I Am Love, 의 마지막은 여주인공 엠마가 집을 뛰쳐나와 동굴에 누워 있는 장면을 비춘다. 자궁이 연상되는 이 광경은 거대하지만 차가운 집, 사방이 훤한 유리문 안에서 남자의 소유물처럼 영육이 감금된 채 살던 여자, 천박한 부르주아 사회에 이식된 가난한 이국여자가 맨발로 탈출해 꾸밈없는 자연으로 들어간 것에 불과한 게 아니다. 생명력 넘치는 사랑을 나누며 가장 행복해 보이는 그 표정은 아기처럼 순수하고 어떤 초월성이 느껴진다. ‘흙의 자궁’ 속에서 여자는 근원적 고향의 기억, 잊혔던 과거와 소리 내지 못한 자신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편안해진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전의 이야기기와 다를 것이다.

메리 셸리는 <최후의 인간>(1826) 서문에서 동굴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담는다. 작가 자신을 은유적으로 사라지는 예언자, 모든 여성 예술가들을 잉태했던 신화 속 최초의 예언가의 딸로 그린다고 하며 이 장에 긴 발췌문이 적혀 있다. 구매하려고 보니 1권이 품절이다.

- 3장 동굴의 비유

‘창조‘는 자신을 ‘보이게‘ 만드는 ‘갈라진 거대한 틈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녀는 또다시 은신처인 ‘어둡고 지붕 없는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파편일지라도 자신의 진실과 홀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227

무녀의 잎들을 다 같이 꿰어 맞추는 메리 셸리처럼, 그 비전은 보부아르의 글에 나오는 동굴에 사는 침모의 예술을 지하에서 ‘베 짜는 여성‘의 강력한 예술로 전복적으로 변형시킨다. 베 짜는 여성은 여성 고유의 ‘낙원의 태피스트리’를 짜기 위해 자신의 마술적인 베틀을 사용한다. 그런 비전이 가능했고 현재도 가능한 곳이 동굴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동굴의 힘과 동굴의 비유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다. 이 메시지를 통해 동굴이란 단순히 과거가 회복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잉태하는 장소, 새로운 땅이 솟아오르는 ‘흙의 자궁‘(또는 윌라 캐더의『나의 안토니아』에서처럼 ‘열매 동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떠올릴 수 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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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문장(판결)으로 병들고 감염되었지만 ‘감금’의 온갖 상황에서도 예술가로서 정면으로 맞서 장르와 젠더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을 자아낸 여성 작가들. 훌륭한 성과를 낸 19세기 여성 시인과 소설가들의 특징은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여성의 겸손함이나 남성 흉내내기를 뛰어넘어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중요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 둘째, 가부장적 시학이라 부르는 기준에 따라 남성적인 문학사와 관련해서 볼 때 이들 여성 작품은 종종 ‘이상해’ 보이는데 그것은 익숙한 범주 중 어떤 것에도 들어 맞지 않는 듯 보인다. 여성 문인들을 고립된 기인처럼 보았다. 이 ‘기이함’은 숨겨진 내용과 관련해 볼 때 여성 작가들은 남성의 장르를 수정하거나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꿈이나 이야기를 변장시켜 기록함으로써 작가됨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려 했다. 이런 감추기 전략은 동등한 힘을 지닌 남성들간의 전투적 전략이 아니라 공포와 질병에서 비롯된, 여성 작가들의 필요한 도피이자 문학적 일탈이다. 여성 작가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여성의 탐색이다.

- 2장 감염된 문장

이들 예술가는 누구나 ‘형식 문제‘란 대체로 ‘작품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도록 내용을 숨기기 위한 장치‘였다는 20세기 미국 화가 주디 시카고의 말에 공감했을 것이다. 또한 주디 시카고처럼 여성 작가들은 누구나 ‘이 이중성 때문에, 지배적인 미학에 의하면 나의 작품에는 항상 무언가 ‘옳지 않은‘ 것이 있는 듯 보인다‘고 고백했을 것이다." - P184

여성 작가의 불가피한 젠더의식을 강조한 페미니즘 비평은 ‘전에는 빈 공간이었던 곳에서 의미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공인된 줄거리는 물러나고 지금까지 배경의 익명성 속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줄거리가 엄지손가락 지문처럼 또렷하게드러난다. - P186

‘어떤 남자도 추측할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자신의 감염과 질병을 치유해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고자 애쓰는 여성의 이야기다.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여성 작가는 우선 자신을 감염시켰던 문장(판결)을 쫓아내야 한다. 그녀는 공공연하게 또는 암암리에 ‘주름진 창조자‘에게서 들이마신 절망을 벗어내어 자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여성 작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창조자의 텍스트를 수정하는 것이다. 다른 은유로 표현해보자면, ‘유리 표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여성 문인은 모든 여성이 지켜야 했던 사회적 규범을 그토록 오랫동안 반영해온 거울을 박살내야 한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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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7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읽기 만만치 않겠다는 느낌이 인용문과 프레이야님 글에서도 확 느껴지네요. 이렇게 다른 분들이 올려주는 글들 계속 읽으면서 이 책읽기 훈련을 미리 미리 해야겟어요. ^^

프레이야 2022-11-07 21:47   좋아요 0 | URL
알고 있거나 생소한 상당한 여성 작가들, 환기되는 의미심장한 내용과 상상력을 부추기는 문장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최후의 인간, 한 권은 품절이네요. 구매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으세요?

바람돌이 2022-11-07 21:44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어요. ^^
 

“옛이야기의 매력”에서 브루노 베텔하임이 언급한 대목들이 이 장의 마지막,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나온다. 오래전 시공사에서 발간한 책 두 권을 들춰보았다. 밑줄이 군데군데.
백설공주와 왕비는 동일 인물로 본다. 거울이 내는 가부장적 목소리에 길들여진 여성의 이중적 욕망이 난쟁이라는 미성숙함의 내적억압과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려는 성숙한 자기욕망을 반복하게 한다. 거울과 유리관을 깨는 것으로 죽음과 침묵의 시간을 지나거나 불 붙은 구두를 신고 자아파괴적 광무를 추고서야 탈출에 이른다. 여성을 비정상적 정신의 소유자로 규정하고 소외시킨 ‘변덕’이라는 ‘덕성’을 변심, 변장을 넘어 변화로 변주해나가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소설 ”오, 윌리엄“에서 인물의 말을 통해 “작가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창조와 죽음, 생과 멸을 집행하는 권위가 남성작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기에 어두운 불빛 아래서 부단히 펜을 놀려 자기 언어로 이야기를 방사한 여성작가들의 대두, 흥미진진하다.


- 1장 여왕의 거울

여왕은 자신을 내세우고 과장할 양으로 세이렌의 빗과 이브의 사과 같은 여성적 계략을 전복적으로 사용해 천사 같은 백설 공주를 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술수는 딸을 통해 자신이 실현하려던 바와는 정반대 효과를 낸다. 한마디로 백설공주가 수동적인 처녀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공주를 영원히 아름답고 생명력 없는 예술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바로 가부장적 미학이 젊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다. 광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왕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인습적인 기술은 죽을 만큼 고통을 준다.
그러나 온순하고 자아가 없는 공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여성의 기술이, 그 기술이 자기를 죽이긴 해도,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이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 수단을 제공한다. - P130

릴리스나 메데이아처럼 자기 파괴적인 백설 공주는 자녀 살해와 그 시도에 내재한 자기 살해를 결심한 살인자가 될 것이다. 결국 그녀 자신이 고안한 빗과 코르셋처럼 확실하게 여성의 복식인 불타는 구두를 신은 채 백설공주는 이야기, 거울, 자아상으로 만든 투명한 관 밖에서 끔찍한 죽음의 춤을 말없이 출 것이다. 이 죽음은 그녀의 유일한 행위는 죽음의 행위이며 자아 파괴라는 치명적인 행위임을 암시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왕이 추는 죽음의 춤이 침묵의 춤이라는 것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 P134

18세기 말까지 여성들은 글만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보게 될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 가부장적인 이미지와 인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허구의 세계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 텍스트라는 유리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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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중

다시 말하면, 여성은 펜이 나타내는 자율성(주체성)을 부정당하기 때문에 문화로부터 (문화의 상징은 펜이니) 배제되는 한편 스스로 신비한 타자와 비타협적인 타자라는 양극단을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이 타자를 숭배와 공포, 사랑과 혐오로 마주한다. 여성은 ‘유령, 악마, 천사, 요정, 마녀, 정령‘으로서 남성 예술가와 미지의 것 사이를 중재하며, 동시에 남성 예술가에게 순수함을 가르치고 그의 타락을 지적한다. 그러면 여성 자신의 예술적 성장은 어떨까? 오랫동안 여성 문인들이 남성 작가의 텍스트라는 거울에서 본 천사와 괴물 이미지에 의해 그 성장은 근본적으로 제한되어왔다. 따라서 그런 이미지에 대한 이해는 여성문학 연구에 필수적이었다. 조앤 디디온이 말했듯이 ‘글쓰기란 공격이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하나의 강제이며[…] 누군가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침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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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5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벌써 시작하셨군요.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도 완독하시더니 진도가 너무 빨라요. ^^ 저는 이 책은 그냥 마음 편하게 12월에 읽으려구요. 지금은 최대한 19세기 여성문학가들의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쪽은 진짜 읽은게 거의 없더라구요. ㅎㅎ

프레이야 2022-11-06 00:30   좋아요 0 | URL
전 일단 시작하면서 병행하려구요. 연계되는 생각이 꼬리를 무네요. 좋습니다^^ 더디 갈 거 같아요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