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입동

이런 기능을 다 하네 북플이.
기억을 다시 불러주어 고맙군. 지금의 심정과 다르지 않아
재포스팅하여 공유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한다기보다 오히려 생을 반복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들, 달라져야할 것들도 있고. 바야흐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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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1-1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새 글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저도 작년의 기록을 보면, 그 때와 지금이 큰 차이가 없는데, 그 사이 일년이 지났다는 것이 조금 낯설어요.
날씨가 차가워지고 있어요. 겨울이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8-11-18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니데이님 안녕하시죠^^ 겨울이긴 하나 봐요. 갈수록 계절마다 참 애틋해집니다. 열공하시면서 바람도 쐬고 좋은 나날 보내시길.

카스피 2018-11-1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오랜만에 뵙는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8-11-20 09:30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시죠^^

서니데이 2018-12-1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8-12-21 02:0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모르고 있었는데 사니데이 님 소식 전해주신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새해에는 좀 더 자주 뵐 수 있게 할게요.

2018-12-24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12-3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새해인사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글과 인사 나누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019년입니다.
새해에는 가정과 하시는 일에 건강과 행복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더합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 8. 28 녹음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나 싶더니 다시 땡볕이 기세등등하다.

막바지 더위에 과일이 달게 익기를...매미소리도 제법 잦아든 요즘, 모기가 기세등등하다.

지난 주 작은아이가 데리고 있는 냥이를 며칠 봐주러 가 캣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왔다.

어찌나 귀엽게 구는지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녀석 ㅎㅎ

나를 할퀴고 살살 물고 하더니 그래도 내치지 않았더니 나를 아주 신뢰하고 안기는 관계가 되었다.

화장실을 치워 줄 때면 모래에 뒹굴고 먹을 거리를 챙겨줄 때면 어서 달라고 쌀알 같은 이를 드러내고

애기 소리를 내며 빤히 쳐다보고 누워 있기라도 하면 내 귓속에 골골송을 부르며 숨을 불어넣기도 하고

고 말랑말랑한 발바닥으로 내 얼굴을 더듬고 혀로 핥고, 나는 고 귀여운 입에 뽀뽀도 하였다.

그렇게 냥이와 난 서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더위도 불사하고 낮에 풍납토성을 찾아갔다. 마을 어르신이 허리 굽혀 잡초를 뽑고 계시는 옆에 가서

이 나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모과나무에요. 저 위에 모과 파랗게 열려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아오리사과 연두빛보다는 좀 진한 모과가 대롱대롱 많이도 열렸다.

그 나무 둥치에는 황금옷을 입은 성자들이 꼼짝않고 매달려 있어 내 눈길을 끌었다.

매미는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태어나고자 침묵의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 외피를 벗고 새로 태어나는 날  죽음은 안중에도 없이 열혈생명의 목소리로 울어대겠지.

한세상 제대로 울어재끼다 가겠지.

풍납토성 위로 하늘이 찌를 듯이 높았고 흰구름 두둥실 가벼이 걸려 있었다.

 

 

함민복 시인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은 2013년에 출간된 시집이다.

총 세 개의 파일로 한 호흡에 시집 한 권을 녹음완료했다.

 

 

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 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양팔저울 / 함민복

 

1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행

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2

입과 항문

구멍 뚫린

접시 두 개

먼 길

누구나

파란만장

거기

우리

수평의 깊이

 

 

이 외도  '이가탄'을 한자로 달리 쓴 '이가탄'이라는 시는 신랄하고 재미있고 슬프다.

 

 

<황무지>는 황동규 옮김, 황동규 해석으로 엮었다. 역시 2013년 발간.

'황무지'뿐 아니라 다른 시까지 T.S. Eloit의 시를 좀더 이해할 수 있다.

주석도 많은 시집이지만 듣을 분들을 위해 적절히 배치하여 빠짐없이 녹음했다.

작년 강의 때 이 시를 녹음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하신 시각장애인 한 분의 요청으로

점자도서관에서 시집을 구매하였고 이제사 내가 녹음했다.

그분이 부디 찾아서 잘 들으시길...  그리고 늘 "내 예쁜이"라고 부르시던 아내분과 요즘도

건강하고 밝게 동행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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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9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9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8-08-30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로 들으면 얼마나 더 좋을지요. 수고가 많으셨네요.

프레이야 2018-09-02 13:34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 시집 낭독은 한 권에 30분 파일 세 개 정도면 되어요.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8-08-31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취미 같습니다.

blueyonder 2018-09-2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정말 멋져요!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네요.

프레이야 2018-09-21 21: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카페 공곶이 이야기

- 그곳에 길이 있고 꽃이 있네

 

 

 

 

 

 

 

 

 

 

 

 

 

 

 

 

 

   

공곶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라면 몇 가지가 될까.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는 봄이면 노란 얼굴을 내미는 수선화가 계단식 밭을 메우는 공곶이가 있다. 영화 <종려나무 숲>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계절 따라 동백나무, 종려나무, 조팝나무 등 50여 종의 나무와 꽃이 손님을 맞이한다. 19세기 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의 피난처였기도 하다. 천주교신자들의 묘지도 있는 공곶이에 꽃밭이 조성된 건 노부부의 신념과 수고가 이뤄낸 공(悾)이다. 공곶이는 2007년 거제의 추천명소 8경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을 만큼 매력적인 풍광을 품고 있다.

 

 

 

 

 

험한 언덕을 오르려면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공곶이 언덕을 오르기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눈앞이 툭 트이는 언덕 꼭대기에 이른다. 조붓한 산길을 걷다가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면 검은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넓게 펼쳐진다. 흰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파도와 그 비명소리를 가슴으로 마주서면 바닷길은 멀리 한려수도로 이어진다. 몽돌 사이 널브러진 바다새의 주검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명랑한 아베크족들과 대조된다. 극명한 생과 사의 풍경에 크게 놀라진 말자. 한숨을 돌리고 오른쪽 숲으로 연결된 데크계단을 올라가 새소리 호젓한 숲길을 걸어 내려가면 한 바퀴 걷기에 딱 좋은 힐링코스가 된다. 방향을 바꾸어 걸어도 괜찮은 길이 되겠다.

 

툭 트인 바다도 좋지만 아담한 포구는 마음을 한껏 당긴다. 와현해수욕장을 지나 공곶이길로 들어서서 공곶이 언덕으로 좌회전하지 말고 조금 더 가면 작은 포구, 예구가 나온다. 고양이낮잠처럼 나른하게 시간이  멈춘 예구에 서면 잔잔한 바다도 눈부신 하늘도 그대로 하나의 길이 되어 마음속에 들어온다. 신기하게도 비좁은 마음자리에 너른 길 하나 내어주게 된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공곶이를 지키는 부부가 있다. 공곶이를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이곳에서 뜻밖의 하얀 성모입상을 처음 본 건 오래 전이다. 공곶이 언덕으로 오르는 초입 오른쪽으로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이층집 마당에 성모상은 서 있었다. 저 멀리 잔잔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비 그친 마당엔 사람이 다녀간 흔적마저 희미했다. 호기심에 젖은 흙마당까지 걸어 들어가 집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주인도 없는 집에 별 다른 게 없었다. 그로부터 몇 해 후, 이곳이 공곶이언덕 펜션으로 리모델링되어 탄생하였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이 건물의 주인장이 개인사정으로 한동안 펜션일을 미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목공 손재주가 예사롭지 않은 주인장이 손수 꾸민 펜션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건 안주인의 세심하고 깔끔한 손맵시다. 공곶이 언덕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길에 들러도 좋고, 편안한 컨트리풍 펜션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브런치나 티타임을 가지기에 더없이 좋은 카페가 있다. 올해 3월 노란 수선화가 한창일 때 부부는 공곶이 이야기라는 이름의 카페를 펜션 한모퉁이에 마련했다. 물론 주인장이 일일이 자재와 소품을 구하여 하나하나 만들고 다듬고 꾸민 공간이다.

 

 

 

 

여름휴가철 정점에 친구들과공곶이 이야기를 찾아갔다. 우드 코티지 풍의 카페 문을 열자, 일본의 젊은 스님 류노스케가 쓴 <생각버리기 연습>을 읽고 있던 주인장이 책장을 덮으며 반색을 한다. 구석구석 주인장의 손길로 만들어진 공간에 밝은 분위기의 앙증맞은 소품과 부담 없이 읽을 만한 도서들 그리고 구석에 세워져 있는 낡은 통기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방은 오픈되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 안에서 주문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안주인의 맑은 미소만큼이나 정갈하다.

 

주인장이 손수 만들어 판매도 하는 우드 트레이와 우드 쟁반들이 눈길을 끈다. 목재질의 강도와 특성에 따라 트레이의 두께를 조절하고, 손잡이도 만들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게 했다. 창가 한구석에 세워둔 트레이가 눈에 들어와 물어보니 느티나무로 만들었다며 나뭇결이 정말 멋지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마을의 수호수, 아낌없이 주는 정령, 수령 높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주인장의 애정이 담긴 우드 트레이 하나로 연상되었다.

 

 

 

 

테라스도 좋지만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실내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섬과 바다와 구름이 그려내는 한폭의 수채화가 테라스에 내려앉은 늦은 오후의 그림자와 함께 그야말로 그림이다. 진한 카페라떼에는 하얀 하트가, 블루베리 스무디에는 깜찍한 꽃이 얹혀 나왔다. 꽃은 먹으라는 말과 함께. 연보라색 스무디 위에 앉은 하얗고 빨간 작은 꽃이 깜찍하다. 나로선 처음 보는 꽃이다. 주인장이 얼른 나가더니 그 꽃을 뜯어서 들고 들어온다.

   

체리세이지! 그가 해보라는 대로 작은 잎을 손으로 만져 코끝에 갖다 댔다. 싱그러운 초록향기가 퍼진다. 허브 종류인 체리세이지는 일조량과 공기의 온도에 따라 꽃잎의 색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주인장의 설명은 좀 다르다. 원래의 체리세이지는 빨간색이고 변종 체리세이지가 그렇게 하얀 색이 섞이도록 변한다는 것이다. 앙큼하지만 어쩌면 지혜로운 본성이 아닐까.

 

꽃잎의 변색이야 아무렴 어떠냐 싶지만, 고 작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생명을 애지중지하는 따스한 심성이 엿보인다. 집 잃은 개 몇 마리와 오래 동거하는 걸 보아도 섬기고 보살피는 은사를 베풀고 사는 마음이 순하게 전해진다. 알고 봤더니 눈빛 맑은 안주인이 천주교 신자이다. 성모상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주인장은 어떤가. 한때는 주말이면 미친듯이 전국의 산을 찾아다녔지만 아킬레스건을 다친 이후로 반(半)자발적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 자유는 물리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지 않을까. 이런 곳에서 친구같은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라면 자유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 모른다.

 

 

 

 

 

몇 시간 수다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니, 저 아래 바다 위로 놀이 지고 있다. 붉은 꽃잎이 수평선 위에 엎드린 듯 황홀하게도 수굿해지는 시간이다. 풀도 눕고 태양도 그 기세를 꺾는다. "해거름이면 나는 집으로 가고 싶어져요."  놀이 붉게 타는 신선대부두 고가도로를 차로 달리다 울컥해져서 해거름이면 저는 마음이 막 이상해져요, 라는 내 말에 노문우가 단칼에 뱉은 대사가 환청처럼 들린다. 놀을 배경으로 선 안주인과 카페 간판이 역광으로 빛난다.

     

우리도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카페 입구 길섶에 낮달맞이꽃이 연분홍 고운 자태로 낮게 피어 있다. 체리세이지 꽃잎이 온도를 따르듯 열정에도 따라야 할 온도가 있다. 누구의 어떠한 삶이든 삶이 아름답다면 이야기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야기의 온도가 있어서일 것이다. 느긋하고 선한 두 사람이 말없이 전하는 공곶이 이야기를 나와  '바람의 언덕'으로 희미한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차 안에서 길과 꽃, 그 열정의 방향성을 새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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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8-08-1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초 고등동창들과 큰마음 먹고 1박2일의 여행을 계획중이에요.
아이들 키우느라 늘 친구들과의 여행을 뒤로 미루다 보니 거의 20년만에 떠나게 된 것같습니다.
그 첫장소를 사람들이 덜 붐비면서 풍경좋은 장소로 거제를 선택했죠.
팬션을 잡아야 하는데~~라며 고민중이었는데 마침 프레야님의 ‘공곶이 이야기‘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해요^^
친구들에게 한 번 의견을 내보야겠습니다.
공곶이 이야기^^

2018-08-11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충전복

- 전복(全鰒)으로 무더위도 전복(顚覆)해 볼까

   

    

 

휴가철 도심은 태풍의 눈이 된다. 더위를 피해 인파로 들끓는 산과 바다를 비웃듯 조용한 휴처를 내어주는 곳이 휴가철 도심이다. 도심 바캉스를 즐기는 방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좋은 음식으로 재충전하기.

 

전국이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날, 서울에서도 어린 시절의 헙수룩한 골목 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네를 찾아갔다. 장충동이 그곳이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 내려 추억의 빵집태극당을 지나 조금 더 가서 왼편으로 골목을 찾아들어가도 되지만 퇴계로로 들어선 택시는 웬 좁다란 골목이 보이는 입구에 부산사람을 내려주었다. “저기 저 위에 흰 간판 보이네요.”

 

정감 가는 낡은 골목 중간쯤, 흰색 바탕에 검정 파랑 캘리그래프로 장충전복이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將充 : 장을 충전하다> 라는 부제가 눈에 띈다. 을미사변 때 구국 군인들의 충성심을 기리는 뜻에서 세워진 제단, 장충(將忠)단에서 동음이의를 이용해 중의적으로 쓴 이 문구는 영리한 주인장의 아이디어겠지, 짐작하며 문을 열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때라 손님은 나 하나. 태풍의 눈 중의 눈이다. 20석 정도 좌석이 깨끗하게 배치되어 있고 주방도 오픈되어 있는 아담한 공간에서 주인장이자 주방장이 어제 만난 듯 인사를 한다. 곧바로 내어온 주요리 전복삼계탕은 한눈에 봐도 구미가 확 당긴다. 개업한 지 몇 달밖에 안 되었지만 주변 직장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 점심시간이면 전복삼계탕을 찾는 식도락가들로 좌석이 꽉 찬다고.

 

 

 

 

다양한 종류의 전복요리 전문점 장충전복, 이곳 전복삼계탕은 특별하다. 전복내장을 갈아 넣어 진한 녹두색을 띄는 국물을 보고 녹두삼계탕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먹어보면 전혀 맛이 다르다. 윤기 나는 국물이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다. 이것저것 부재료를 많이 넣지 않고 전복 하나와 마르지 않은 알밤 반 톨이 담긴 모양새가 주인내외의 성품을 닮아 자랑을 삼가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우선 국물부터 담백하고 고소하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전복내장의 깊은 맛이 잘 우러나 아끼지 않고 재료를 풍성하게 넣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닭고기의 육질 또한 부드럽기 이를 데 없다. 전혀 잡내가 나지 않고 어린아이 살을 만지는 듯 연하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가 맛있다고 하니 친정어머니가 좋은 배추로 직접 담근 것이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국내산 배추라고 써 붙여 놓으라고 하니 의아해하며 안 써놓으면 당연히 국내산이고 중국산이면 써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전복은 매일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공수해 오고 싱싱한 것으로 하루에 다 요리하고 남는 것은 아무래도 부부가 먹다보니 건강도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하루를 같이 시작하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또 각자의 시간도 틈틈이 가지는 이들의 등을 다시 돌아보았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 인생 이모작, 삼모작을 준비해야 한다고들 한다. 오십대 고개를 넘는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과욕 부리지 않고 여유와 건강을 누리며 소박하고 조촐한 품위를 잃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열치열로 전복삼계탕 그릇이 다 비어갈 즈음, 전복회 세트가 나온다. 먹기도 좋게 보기도 좋게 칼질한 전복살과 내장이 통째로 혀와 코를 감치고 돌아 남도의 푸른 바다를 불러준다. 세상에서 제일 맛난 건 살맛이라더니 일상에 지칠 때 한 끼 정갈한 음식으로 살맛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조만간 또 찾게 될 걸 예감하고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동공이 타들어갈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데 속은 든든하고 머리는 시원하다.

  

다른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간 탓에 다 못 먹고 남긴 전복내장이 눈에 아른거린다. 전복 앞에서는 못 말리는 식탐이다. 서울로 도심바캉스를 가실 분들은 꼭 들러보시길.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중복도 지나고 말복으로 가면서 기승을 부릴 무더위도 이제 꼬리를 감출 일만 남았다. 우리 생의 무더위도 생각을 전복(顚覆)하면 제법 즐길 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사진은 장충동이 아니라 현재 시각 부산입니다.
무더위에도 건강히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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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7-3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멋집니다.

프레이야 2018-08-01 12:4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더운 데서 일하는 분들은 힘들겠지만 하늘은 멋지네요. 장충동이랑 멀지 않으면 저곳 식당 추천 드려요^^

stella.K 2018-07-3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더워 죽을 것 같긴한데 하늘은 꽤 멋있더라구요.
적당히 구름도 낀게.
이런 하늘을 언제까지 좋아할 수 있을런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기만 해도 살 것 같을텐데...
건강 조심하시길.^^

프레이야 2018-08-01 12:45   좋아요 0 | URL
오늘 부산은 좀 낫습니다. 아무래도 바다쪽이라 그렇겠지요. 서울은 찜통이라고 들었어요. 저곳 장충동 장충전복 한 번 가보세요. 든든하게 ㅎㅎ 기사 클릭되나요

서니데이 2018-07-31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날씨가 무척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신가요.
사진속의 부산은 파란 하늘이 예뻐요.
그렇지만 요즘 이런 날에는 더 더워서 그런지 아아 덥겠다, 그 생각이 먼저 듭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8-08-01 12:46   좋아요 1 | URL
요즘도 열공하느라 힘드시겠어요. 지치지 않게 시원하게 해놓고 하세요.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덜 멋지겠죠. ^^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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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첫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을 출간하고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도 지정된 김살로메 작가의 에세이집이다. 스무살 시절 뭔가 쓰고 있다는 걸 안 친구는 저자에게 미스 마플 같다고 말했단다. 미스 마플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든 제인 마플, 노파 탐정이다. 그녀의 첫 에세이집이자 두번째 책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형식도 내용도 참하다. 한눈에 반하여 마음에 쏘옥 들어온다. 새벽에 깨어 눈물 젖은 눈으로 매일 일천 자를 써놓은 저자에게 사랑과 감탄을 보내며...


뚜렷한 경계를 지키면서도 소박한 품성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꽃 본연의 모습을 살리면서도 담백함을 잃지 않는 꽃. 봄이면 나는 데이지를 만나러 꽃집 나들이를 한다.
- 데이지의 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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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2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잘 지내셨어요. ^^
김살로메 작가님의 신간 소식 저도 얼마전에 들었어요.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중입니다.
오늘 바깥에 날씨가 괜찮은 것 같은데요.
편안한 하루 되세요.^^

프레이야 2018-05-24 15:56   좋아요 1 | URL
네. 좋은 하루~~. 오늘은 정말 오월답네요. 계속 비가 왔었는데 말이죠. 미스 마플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책입니다. 곧 만나보시길요.

2018-05-24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4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5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4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5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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