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5년부터, 다섯 번째 자서인 셈이다. 여는말에서 시작해 40꼭지를 담고 닫는말까지 다 했으니, 그만 입을 닫으려고 했다. 책을 낼 때마다 벌거벗고 선 기분이지만,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 또 용기를 내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에게 특별히 의미 있게 다가온 시간이 있듯이 비교적 잔잔한 삶을 살아온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온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당시는 몸과 마음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점점 더 그런 생각이 확실해졌다. 


부상을 입은 2022년 3월 4일부터 12월 30일까지 열 달간, 몸-책-영화의 기록 그리고 이틀 후 아빠와 이별한 순간까지를 엮었다. 여는말은 아빠와 내가 몸에서 풀려난 그 시점에서 시작했다. 책과 영화가 필요하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지만 아직은 기댈 게 필요한 내게 여전히 그것들은 내 몸과 더불어 떨칠 수 없는, 모든 의미의 교과서다. 그날들의 기록을 올해에 어떤 형식으로 담을까 고심했다. 월별 독서일기 형식으로 엮으며 거의 모든 장면에서 조용히 떠난 아빠가 떠올랐다. 자연스러웠고, 스스로 내 마음을 말릴 수가 없었다. 애도일기가 되었다. 우리 생의 시작과 끝을 말할 수 없듯, 기쁨과 슬픔을 규정한다는 것도 어려운 말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수록 애써 읽으며 기쁨이 찾아왔고 또 그렇게 나를 살찌운 기억을 엮어 내보내어 홀가분하다. 또다른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내일의 우리는 같고도 또 다르겠지만 우리 삶은 결국 사랑이고 기쁨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살아 있는 우리의 친구 '죽음'이 자주 등장해도 밝고 가볍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담담하고 기쁘게 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책 제목에 '고독한'은 '힘써 읽은'이라는 뜻에 더 힘을 주었다. 그날 이후 열 달간 읽은 책들 중에서 고르고, 걷어내고, 아주 사적이지만은 않을 기록으로 구성하려고 했다. 글자 크기를 일반적인 크기보다 작게 하고, 대신 명조체를 써서 진하다. 그러고 싶었다. 촘촘한 마음을 깨알같이 담고 싶었나 보다. 계간지에 게재했던 글도 몇 편 있고, 서재에 포스팅했던 페이퍼와 리뷰는 비공개로 돌렸다. 책의 후반부에는 본문 내용과 연결되는 사진들을 수록했다. 그중 네 개와 표지사진, 책날개 프로필 사진은 옆지기가 찍었다. 나머지는 모두 내가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다. 표지사진이 어디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은데, 부산 기장 쪽 카페 '마레'다. 기장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그러고보니 나의 두 번째, 네 번째 책도 이곳에서 옆지기가 찍은 사진으로 표지를 했었다. 마음에 들어오는 사진을 찜해 두었다가 사진창고를 열고 이미지에 맞는 사진을 마음대로 쓴다.^^ 


책 정보를 나누고 서로 응원하며 이야기 나누었던 알라디너들에게 감사하다. 이번엔 살짜기 지나가려고 했는데 두 분이 소개글을 올려주셔서 또한 감사하다. 문학영화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문학영화에 꽃히는 나를 읽어내신 눈 밝은 여울님과 나의 궤적을 신간소개와 함께 올려주신 다정한 서니데이님. 이 마을에 오래 둥지를 두고 있지만 특히 입원한 그날부터 많이 회복한 지금까지도 힘이 되는 책벗들, 글벗들. 소소한 이야기들, 따스한 마음들, 글자를 뚫고 비치는 눈빛들까지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맑은 얼굴들을 기억한다. 온기 있는 말을 나눠준 목소리들도 행간에 담았다. 우리의 삶이 조금씩 나아가며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당당하면서 온유하기를 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온세상에 튼튼히 뿌리 내린 한 그루 나무를 떠올린다. 


다가오는 2024년에도 몸과 마음, 모두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2.


올해를 보름 남기고 셋이서 간 삼척. 원래는 바다열차를 타고 싶었다. 올해로 그 기차가 그만 다닌다는 뉴스를 우연히 보았고 그런 기차가 있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인지 이미 매진이었다. 삼척해변역에서 동해, 정동진을 거쳐 강릉이 종착역이었다. 동해시의 도경리역은 지금 사람을 태우진 않지만 여전히 기차가 지나간다. 사람이 타고 내리지 않는 기차역엔 무엇이 타고 내릴까. 한때는 삼척의 중요한 교통시설이었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철암-묵호 구간에 위치한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창호와 지붕을 새로 손봐 낡은 멋이 덜하다. 빗줄기 긋는 창 너머로 소박한 철길이 보인다. 자박대는 발아래 빗소리가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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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4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5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5 2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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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루종일 겨울비가 차갑게 내리더니
오늘은 다른 날입니다.

여울 님 여섯 번째 전시가 어느새 오늘 마감일이네요.
그날, 불쑥 갔는데 따스하게 맞이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여러가지 소재의 만남과 손으로 만져지는 재료의
물성과 물성, 여러 면에서 온기있는 시선이 돋보였어요.
특히 응시, 라는 부조는 익살스럽기까지 합니다.
포항 구도심 낡은 골목에 아닌 듯 앉아 있는 문화공간
2층으로 올라가는 좁다란 계단도 정겨웠어요.
그곳, 부산이 고향이라는 관장님의 문화 전도사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도 느껴졌어요.

그날은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었어요.
장기면 유배문화체험촌을 먼저 둘러보았어요. 다산이 처음 유배 온 곳입니다. 마루에 내려앉은 겨울햇살이 목화솜을 담아 둔 광주리 위로 포근하게 느껴졌어요. 해설사가 권해준 대로 장기읍성까지 차로 올라갔습니다. 걸을까 하다 높은 곳을 보니 오금이 저려 읍성 걷기는 포기했어요. 봄날 따뜻할 때 다시 오자 생각하고 내려와 시내로 달렸어요.
구도심 골목을 뒤져야겠다 생각하고 담벼락에 주차했는데, 자동차 뒤쪽 타이어 바람이 꽤 빠져 있는 걸 발견했어요. 더 두면 완전히 빠져 어려워질까봐 타이어점부터 찾아갔고 날카로운 게 깊이 박혀 있는 걸 알았어요. 기사가 그걸 빼내느라 고생했어요. 시내 도로 공사하는 곳 옆을 지날 때나 어디선가 날아든 뾰족한 이물이겠지요. 박힌 지 좀 오래된 거 같다는데, 저는 감지하지 못하고 여태 무심히 달렸네요. 언제부터였을까요.
수리 후 전시장을 다시 찾아 갔습니다.

이번 전시의 중심 소재는 가자미라는 게 특이하기도 하고요. 바닥을 감지하고 자신의 몸 색깔도 바꿀 줄 아는 가자미에 대한 여울님의 시선, 각기 다른 시선들의 중첩과 만남, 교차하는 시선과 그 각도에 대한 생각에 교감합니다. 마무리 잘하시길 바라고요,
또 새로운 시도를 항상 기대하겠습니다.

다 달라서 좋고 다다를 수 있어서도 좋고 다다르지 못해서 더욱 좋은 날들입니다. 실수에서 배우고 실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말씀, 시인이고 화가인 여울 님 서재에 포스팅된 인터뷰에서 들었어요. 공감의 박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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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14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소식도 좋지만... 프레이야 님, 책을 내셨으면 페이퍼를 올려 주셔야죠?
책 제목이 고독한 기쁨, 인가요? 제목이 참 좋습니다.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23-12-17 10:4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페크님 말씀대로 책 소개 혹은 고백 페이퍼
소소하게 올렸어요.

희선 2023-12-1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시작부터 비 오고 어제 그리고 오늘 새벽에도 비가 오는군요 겨울비가 오래도 온다 싶습니다 눈이 오는 게 더 좋은데... 유배문화체험촌도 있군요

멋진 전시회였군요 다 다른... 가자미도 다 다르고 사람도 다 다르겠습니다 다른 걸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좋겠네요

프레이야 님 추워진다고 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3-12-17 10:53   좋아요 1 | URL
포항의 옛이름이 장기라고 하네요.
지형도 그렇고 옛날에 그곳에 수군도 배치되어 있어서 유배지의 조건들에 맞는 고장이었대요.
그냥 조그만 체험촌인데 날씨 따뜻한 날 주변을 걸으면 좋겠더군요. 다시 한번 가야겠어요.

여울님은 시선이 남다른 것 같아요. 항상 그렇게 깊고 맑은 시선으로 작품활동 하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여요. 다음엔 어떤 시도를 하실지 또 기대되네요.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감기 조심하시고요~

2023-12-16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새 완연한 겨울이 되었다. 2023년을 한 달 남기고,
가을과 함께한 시각장애인 수업 북유럽 신화 스토리텔링 종강.
재미있게 들려드리려다 인물들을 더 매력적으로 소개해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상상력이 무한 발동되는 시간이었다.
프레이야도 다시 만나고 ^^
추운 겨울 건강히 나시고 새봄에 다시 만나길…
노르웨이 가고 싶다.
오딘보다도 토르를 좋아하는 북유럽인들이 많다고 한다.
대지의 신, 천둥의 신. 묠니르.
북유럽 신화에 핀란드는 제외된다.
핀란드 신화가 별도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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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1-30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이 프레이야를 만났다고 하셔서 뭔가 했습니다 신화에 프레이야가 있군요 그리스 로마 신화도 잘 알지 못하고 북유럽 신화는 더 모르기도 하네요 예전에 들어본 것 같기는 해요 프레이야...


희선

프레이야 2023-11-30 11:15   좋아요 1 | URL
북유럽 신화 속 인물들 엄청 매력 있어요.
그들의 우주관 참 좋아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전 북유럽 신화가 참 마음에 들어요^^
희선 님 겨울이에요.

그레이스 2023-12-06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프레이야셨군요^^
북유럽역사 저도 사놨는데 언제 읽으려나 십습니다.

2023-12-17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9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7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항 “스페이스 신선”에서 12.12일까지 합니다.
여울 님 서재에서도 엿볼 수 있네요.
늘 새로운 시도로 나아가는 전시를 축하드리며,
좋은 시간 되길 바랍니다. ^^
도록의 일부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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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해변에 있는 소극장에서 아리엘 도르프만 원작,
동명의 연극을 같이 보았다.
세 배우 모두 열정적으로 연기했다.
시네마낭독극장에서 함께했던 우리 다섯은 각기
연령이 달랐지만 괸심사와 지향점이 비슷했다.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죽음과소녀’

“이 곡에서 슈베르트가 단지 암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완전히 소진된 감정의 표출이다.”
-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그림1 한스 발둥 그린
그림2 에곤 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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