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를 떼어 보니 살이 잘 붙었다. 


며칠 전 양파를 썰다가 왼쪽 중지 손톱 옆 살 속으로 중식칼이 쓱 들어갔다. 왼손으로 양파를 단단히 잡았어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미끄덩 양파 속껍질이 미끄러져 벗겨지며 칼이 엇방향으로 내리쳤다. 순간적으로 키친타올을 뜯어 꾹 눌러 지혈하고 밴드를 찾아 붙였다. 이럴 때 보면 순발력이 없진 않은 듯. 물 안 담그고 사흘을 그대로 두었더니 완전히 붙었다. 나는 한 해가 저무는 저녁에 암시처럼 이 일을 되새김질한다. 


어제는 나의 첫 분신이 태어난 날이다. 그해 12월 30일 아침 첫 수술이었다. 시간은 담당의사의 수술일정 대로 정해졌다. 사주의 시주는 그렇게 정해졌다. 세부적 운명이란 게 그러고보면 정말 우연의 결과다 싶다. 


그해 연말연시를 병원에서 일주일간 보내며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외로움을 거의 처음으로 느꼈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분노보다 확실히 외로움에 가까웠다. 둘째를 낳은 5년 후에도 느낀 감정이었지만 조금은 면역이 되었던지 봄비 내리는 창밖 풍경이 위로가 되었던지 좀 나았던 기억이 난다. 어제 나와 띠동갑인 작은이모가 전화로 아빠 안부를 꺼내며 (늙고 병든다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옆지기는 그 말이 무척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미 그 무서움이란 걸 상상하고 있기에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다. 그 무서움은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도 덜어줄 수도 없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나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들 앞에서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몸이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에 비할 수는 없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아빠는 지금 몸의 감옥 안에서 버티고 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으니 얼마나 외로울까. 다리를 좀 주물러 드리고 또 올게요, 하고 방을 나설 때마다 마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눈빛에 눈물을 감추고 돌아선다. 며칠 전에는 백신패스를 확인해 달라는 말씀에 마음이 마냥 어룽거렸다. 걸어나가서 그놈의 백신패스 제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불과 구월 말에도 했던 일이라 아직도 꿈인가 싶다. 어제는 침상의 상체를 완전히 세우고 겨우 앉아 계신 옆으로 내가 무릎을 구부려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옆지기가 갖고 있던 라이카로 극사실적으로 찍었다. 환자치고는 낯빛이 좋고 피부가 좋아 보였다. 엄마도 같이 찍었다. 오늘 붙든 이 순간이 또 다음엔 귀한 순간이 될거라 믿는다. 


엄마는 어제 생전 안 먹던 치킨을 다 사오라고 하셨다. 왠일이냐고 하니까 허한지 그런 게 먹고 싶다고. 제발 육고기 좀 드시라고 해도 잘 안 먹는 분이라 반가웠다. 아무것도 못 드시는 아빠가 안방에 누워 계신데 우리는 식탁에서 치킨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냄새가 들어갈건데 어쩔 수 없었다. 며칠전에 엄마는 대바늘로 긴 바지를 뜨고 계시더니 어제는 어느새 다 떠서 입고 계셨다. 아이보리색 털실인데 당연히 재활용실이다. 무엇을 풀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엄마의 대바늘은 모두 오랜 세월 손에서 닳고 닳아 반질반질 윤이 난다. 안경도 안 끼고 뜨길래 코가 잘 보이냐니까 바늘과 손의 감각으로 정확하다고... 엊그제는 당신한테 미안해,라고 아빠가 말씀하셨다며...


영일대해수욕장(2021.12.30)



어제 아빠한테 가기 전, 포항에 들렀다. 포항 중에서도 북쪽, 영일대해수욕장 바다는 바람이 불었지만 햇살이 또 따스했다.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찍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차로 10여 분, 박찬일 셰프가 극찬한 중국집 '길성관'에서 짜춘권과 삼선간짜장을 먹고 그곳에서 또 가까운 여울 님 전시회 중인 달팽이책방으로 향했다. (길성관 강추. 짜춘권은 단연 윈! 간짜장은 먹어본 중 제일인 듯)  달팽이책방은 한 시에 오픈하는 줄 알고 갔고 골목에 주차한 후 20여분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달팽이 책방, 마음에 드는 분위기였다. 사진도 찍고 여울 님의 그림도 보고 방명록을 적었다. 젊은 여성 주인장이 상자를 풀어 새로 들어온 책을 정리하는 동안 책장을 둘러보았다. 오래되었거나 핫한 여성주의 책들이 한 코너에 빼곡하고 독서관련 스터디와 모임 일정이 많이 적혀 있었다. 


달팽이책방에서 구매한 책_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데뷔작 <에이미와 이저벨> 



첫문장에서부터 우리의 모든 시간과 감정의 격랑을 담아내는 강물이 등장한다.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처럼.

그 강물은 맑지 않고 생활과 섞여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타운의 사람들은 익숙하고 딱히 거슬리지 않는 냄새라는 듯 산다. 우리네 삶의 진미가 그렇듯. 빛과 그림자도 슬픔과 기쁨도 한 물결에 흘러가는 것. 따로일 리가 없다.

전체를 이끌어갈 첫문장과 옮긴이의 예리하고 다감한 말을 적어둔다. 


로버트슨 선생이 타운을 떠난 그 여름은 몹시 무더웠고 강물은 한동안 죽은 듯 보였다. 강은 타운의 중심을 관통하며 죽은 뱀처럼 납작하게 드러누워 있었고, 그 언저리에는 더러운 거품이 싯누렇게 부글거렸다. (11쪽)


이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선들은 글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만큼 그리 잔잔하지는 않아서 내게, 혹은 내 주변에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상상하면 솟구치고 내려앉는 감정의 급물살을 탄 우리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이렇듯 격랑에 휩쓸릴 때, 강물은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고 우리 자신은 죽어가는 듯 보일 때,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그 순간을 어떻게든 넘기는 것 아닐까. 훌륭하게건, 그럭저럭이건, 간신히건, 죽을 뻔하다가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넘기는 것',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그런 '넘기는' 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 

나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법 하나는 그런 순간들의 이면을, 그 순간들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숨은 마음을 친밀하고 세심히 바라보는 일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라봄은 이해를 낳고, 이해는 우리를 성장시킨다. - 옮긴이의 말, 542-543쪽 



<== 19, 20세기 기대되는 여성작가 단편선


<== 좋아하는 배우 키키 키린의 말















달팽이책방 (2021. 12. 30)




"타오르는 신음들로 자라는 책들"

여울 님 전시 <쉬-어, 가:다> 달팽이책방 2021. 12. 30 




한 해 동안 책과 함께한 여러분과 

다정하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 나누어 주신 여러분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합니다. 

새해 임인년에도 지긋이 바라보며 기쁨의 한자리 잃지 않고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Happy New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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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31 21: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시간 전에 에이미와 이저벨 주문했는데...
2021년 마지막주문책, 2022년 첫 배송책이예요 ㅎㅎ

프레이야 2021-12-31 21:14   좋아요 5 | URL
통했네요.ㅎㅎ 저는 미루고 있다가 어제 책방에서 딱 저를 기다리고 있길래
덥석 안았어요. 요게 바로 인연이겠죠. 표지도 넘 이뻐요.

scott 2021-12-31 23:42   좋아요 5 | URL
오!두 분의 텔레파시!
새해 행운 주고 받음요 (*Ü*)ﻌﻌﻌ♥

서니데이 2021-12-31 22: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아버님께서 조금 더 건강하시고, 가족들 곁에 오래 계셨으면 좋겠어요.
다친 손도 빨리 잘 나으시면 좋겠고요.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서,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엔 가정과 하시는 일에 좋은 일들 함께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21-12-31 22:27   좋아요 5 | URL
서니데이 님 늘 좋은 말씀 따스하게 건네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올해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돌아보니 한순간이네요.
아빠는 그런대로 괜찮으실 것 같기도 하고 힘들고 외롭겠지만
조금이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많으면 좋겠어요.
해피 뉴 이얼~~

거리의화가 2021-12-31 22: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손은 괜찮으세요? 마치 제가 아픈듯...ㅠㅠ
오늘 이 순간이 또 다음엔 귀한 순간이 된다는 말 지금보다 어릴 때는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법 와닿는 것 같아요.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2022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2-31 22:25   좋아요 4 | URL
네, 손 완전 괜춘해요.
좀 깊이 베인 듯했는데 다행히 길이가 많이 길진 않아 잘 아물었어요.
물 들어가면 따가울까봐 세수도 사흘이나 안 했네요. ㅎㅎ
포항도 사실 세수 안 하고 다녀왔어요. 저 그러고 잘 다녀요 (비밀!)
거리의화가 님, 새해에도 이야기 많이 나누어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새파랑 2021-12-31 22: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다치신 손이 괜찮으셔서 다행이네요~!! 포항가면 길성관과 달팽이책방을 가봐야 겠어요. 프레이야님 22년 산뜻하게 출발하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1-12-31 22:31   좋아요 4 | URL
네, 괜춘해요, 잘 붙은 거 같아요.
상처는 시간 가면 희미해지겠지요.
포항 두 곳 거리도 서로 가까워서 묶어서 가기 좋을 거에요.
길성관 짜춘권 드시려면 예약하고 가야합니다 ㅎㅎ
2022년 산뜻하게 ~^^

니르바나 2021-12-31 2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장기하와 얼굴들 노래 가사가 마음에 듭니다.
˝달이 차오른다˝
아픔도 슬픔도 2021년 세모까지만 차오르고
프레이야님의 새해, 2022년에는 다시 기쁨과 행복이 차오르길 기원하겠습니다.^^

프레이야 2021-12-31 22:42   좋아요 4 | URL
니르바나 님, 장기하와 얼굴들 ㅎㅎ 좋아해요.
가사도 재미나구요.
유행가 가사처럼 달은 차오르기도 몰락하기도 하네요.
이제 한 시간 남짓이면 슬그머니 새해로 넘어가는군요.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수순처럼 자연스레 되는 것들!
늘 행복한 마음 잃지 않고 지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 2021-12-31 23: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달팽이책방, 가봐야지 하다 저도 올 봄에 처음 가봤는데, 제 취향 저격! 알고보니 언니네 집 근처^^ 프레이야님 아버님 모두 건강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21-12-31 23:24   좋아요 5 | URL
햇살과함께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니네 근처면 자주 가셔도 좋겠어요. 맞은 편 튀김집에 줄서서 기다리던데
그날은 배가 불러 못 먹었어요. ㅎㅎ
건강이 최고! 고맙습니다. 님^^

초란공 2021-12-31 2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많이 보내시기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2-01-01 00:38   좋아요 3 | URL
네. 고맙습니다. 초란공 님도 새해 행복한 시간 엮으시길 바랍니다.

scott 2021-12-31 23: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회복 되시길 바라지만
옆에서 간호 하고 계신 어머님 몸과 마음 많이 상하실까봐 걱정 되기도 합니다
2022년 신년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프레이야님 아버님 회복 되시길 기도 할께요

어제 태어난 따님 오늘과 낼 엄마에게 효녀로 살것 같습니다 !ㅎㅎ

프레이야님 새해 福 마뉘!^^

프레이야 2022-01-01 00:45   좋아요 4 | URL
눈물나게 고마워요 ~
엄마도 새해 83세라 노인인데 마음은 아직도 소녀라 미안하고 그래요 ㅠ 조금이라도 자주 시간 가져야겠어요. 이제 더 미룰 시간이 없는데 말이죠.
큰딸은 ㅎㅎ 너무 맑아서 그저 짠하지요.

mini74 2022-01-01 00: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버지 가시고 저희 어머닌 홀가분하다하셨지만 지금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세요 60년 가까이를 함께하셨으니까요. 아버님이 나아자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님 손에 호~ 해드리며 ㅎㅎ 프레이야님깨 저도 고맙습니다 *^^*

프레이야 2022-01-01 00:51   좋아요 3 | URL
다정한 미니 님 호~ 고맙습니다.
물 안 들어가네요 벌어진 살에 트라우마 있는데ㅠ 60여 년을 함께하는 건 무얼 의미할까요. 어머니 우울증 에구 ㅠ 힘드시겠지만 힘내시길 바랍니다.

행복한책읽기 2022-01-01 0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다친 손 붙었다해서 안심했네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들 앞에서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다> 이 문장 읽다 먹먹해졌어요. 말씀처럼 누군들 그렇지 않겠어요. 아버님이 덜 아프시길 소망합니다. 프레이야님 가족이 이 순간을 거뜬히 통과하는 것도요.
새해에는 프레이야님을 더 자주 만나러 올게요. ^^

프레이야 2022-01-01 00:54   좋아요 2 | URL
네. ^^ 이 순간을 잘 넘기고 통과하도록 마음 단단히 먹고요. 힘이 되는 말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주 만나요 행복한책읽기 님. ^^

희선 2022-01-01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손 다치셨군요 베인 게 잘 붙어서 다행입니다 아직 아프시겠지만... 12월 30일은 뜻깊은 날이었네요 그날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듯합니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은 누구한테나 있겠네요 대신하지 못해서 마음 아플 때도 있고... 프레이야 님 아버님 좀 더 건강이 좋아지시기 바랍니다 지금을 잘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프레이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2-01-01 07:41   좋아요 2 | URL
희선 님 이름처럼 마음도 곱고 이뻐서 넘 고맙습니다. 지금을 잘 건너고 의연히 또 다음도 받아들이고 그렇게요. 겸손한 마음 잃지 말자고 되새김합니다. 신기하게도 살이 붙으니 아프지 않아요. 희선 님고 새 날 새 마음으로 출발요!

러블리땡 2022-01-01 0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는 프레이야님 포함 주변분들이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아버님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22-01-01 07:43   좋아요 1 | URL
러블리님 참 고맙습니다.
우리가 덕담을 나누는 이 마음 잊지 말고 한 해 겸손하게 조심조심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겨울호랑이 2022-01-01 08: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지난 한 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려요! ^^:)

프레이야 2022-01-01 10:06   좋아요 4 | URL
올해는 겨울호랑이 님의 해가 되겠어요 ㅎㅎ 상충하는 게 안 좋다는 말이 있지만 전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으샤으샤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

책읽는나무 2022-01-01 09: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퇴원하셨나 보군요?
찾아뵙기가 조금은 수월하시겠습니다.오래 곁에 머물다 오실 수도 있을테고 어머님도 조금은 편하게 쉬실 수 있으시겠어요.
어머님도 건강 챙기셔야 하실텐데~~
모쪼록 아버님 얼른 쾌차하시길요^^
‘당신에게 미안하다‘라는 말!! 가슴에 콕 박히네요...엄마도 아빠한테 마지막으로 그 말씀 하시고 가셨다더라구요.미안하다고,서운했던 거 있으면 잊어 달라고....저는 임종을 못지켰었거든요.나에게는 마지막 말씀을 어떻게 하셨을까? 뻔하게 알고 있는데도 무척 듣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은 평생 가네요.
그리고 내가 못다 한 말들도 그렇구요^^
모쪼록 아버님의 건강도 쾌차하시길 바라옵고,프레이야님과도 오랜 시간, 좋은 시간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힘 내시구요^^
가족분들 모두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프레이야 2022-01-01 10:12   좋아요 4 | URL
님 임종 못 지키고 돌아가신 엄마가 그립겠어요. 에구 아빠가 팔순이시니 앞으로 좋은 시간 많이 가지시구요. 귀여운 둥이들이 외할부지한테고 잘하겠어요. 울아빠는 집에 오셔서 마음은 편해 보이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누워만 계시니 대소변 처리가 오롯이 엄마몫이네요. 병원침대를 수급했어요. 새 침대로 재가센터에서 친절하게 설치해 줘서 고마웠답니다. 님 올해도 기운차게 밝게 시작해요. 항상 고맙습니다 ^^

stella.K 2022-01-01 1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게 그렇더라구요. 아픈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데 산 사람은 살았다고 먹어야 하는 것.
그게 또한 삶이더라구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셔서 마음이 찡하네요.
달리 위로될 말씀도 못 드리겠고. 그저 힘 내시란 말 밖에...

여울님은 못 뵜나봐요.
달뱅이책방, 바다 다 가 보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2-01-01 19:38   좋아요 4 | URL
넵 그게 살아가는 모두이지요. 아빠는 오늘 제가 주물러 드리니 너무 시원하다고 좋아하시네요. 일어서기만 하셔도 좋겠어요. 여울 님은 그날 오후 늦게 방명록을 보셨다고 하셨어요. 바다는 겨울바다! 책방은 달팽이. 요새 좋은 독립책방이 왜 이렇게 많죠. 곳곳에 없는 듯 딱 앉아 있어서 반가워요.
변함없이 고맙습니다 스텔라 님. ^^

꼬마요정 2022-01-0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어머님 프레이야님 모두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간병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덜 불안하고 덜 지치고 더 좋은 추억 만들죠. 많이 드시고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늘 좋은 글 써 주시고, 좋은 책 읽어주시고,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힘 내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22-01-03 00:40   좋아요 1 | URL
살뜰히 챙겨주시는 말씀 참 고맙습니다. 꼬마요정 님 올해도 행운 가득한 해가 되길 바라요. 늘 밝고 기운찬 에너지 품고 복 많이 받으세요 ^^
 

서방



말레이시아로 이민 간다던 친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는 어제 통화한 듯 아무렇지 않게 이민은 못 갔다고 대답했다. 준비한 이민서류는 모두 통과되었는데 초유의 바이러스 사태로 그만 발이 묶였다고, 그동안 일이 많았다며 이야기보따리가 터졌다. 무엇보다, 결혼하고 지금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왜 연락 안 했냐니까 식을 따로 올리지 않고 가족만 모여 간단히 식사하고 새 삶을 시작한 게 8개월 되었단다.


친구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했다. 결혼에 종지부를 찍은 후 하고 싶은 건 다 했고 남자도 많이 만났다는 친구는 전문직 프리랜서로 잘산다. 나를 포함해 다른 동기들보다 당차고 야무진 사람이다. 15년 전에만 해도 나이는 먹어가고 자식은 없다면서 홀로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아주 약간의 두려움 같은 걸 내비치면서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다시는 걸려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귀는 연하남은 있는데 결혼 제안을 받을 때마다 핑계를 대며 물리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던 친구가 이제는 오래 두고 본 그 남자와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싶다며 공기 좋은 신도시에서 새소리 들으며 사는 게 참 평화롭다고 말했다.


우리의 대학 시절, 순정파 야수와 깍쟁이 미녀는 주변에서 다 아는 과커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첫 인연이었다. 졸업할 무렵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고 하던 어느 날, 순진한 내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꺼낸 단어에 나는 속으로 깜짝이야!’ 했다.


그 남자를 집에 초대했단다. 식구들 모두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친구 어머니가 한 서방!”이라고 부르며 사윗감으로 대우했고 나머지 식구들에게 이제부터 모두 한 서방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당부하더란다. 그러면서 친구는 나한테 우리 엄마가 한 서방!’ 그러니까 되게 듣기 좋은 거 있지. 헤헤. 그러니까...우리 한 서방이 어쩌구저쩌구...” 눈망울이 몽글몽글해지며 자랑이 늘어졌다.


, 너는 한 서방이라고 부르면 안 되지이.”

아니야, 네가 몰라서 그렇지. 울엄마가 다들 그렇게 불러야 된다던데...”

 

남편의 남동생을 부르는 말은 두 가지다. 미혼이면 도련님, 결혼하면 서방님으로 불러야 하는 걸로 안다. 하지만 나는 도련님은 불렀는데 서방님은 언감생심 부르질 못한다. 남편의 두 남동생은 모두 결혼 후부터는 아이들이 부르는 이름 삼촌으로 불린다. 예법에 맞지 않는 호칭이지만 서방님은 어째 입에 올리기가 간질간질하다. 사극과 막장드라마 속 서방질한다는 대사 때문인지 아무튼 선입견이 부른 무슨 부작용인 것만은 확실하다.


친정 부모님에게는 박 서방이 둘이다. 큰사위, 작은사위 모두 박 씨이다 보니 함께 있을 때는 큰박 서방, 작은박 서방, 이렇게 부른다.


명절이면 그동안 일에 바빠 처가 나들이를 자주 할 수 없었던 우리의 박 서방들이 심히 힘들 때다. 여자들만 명절증후군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박 서방들(김 서방, 이 서방, 정 서방 모두)도 못지않게 마음 쓰이는 구석이 많다. 꽉 막히는 도로를 뚫고 안전운행해서 가야지, 섭섭지 않게 지갑도 풀어야지, 동서들끼리 모여앉으면 밀고 당기며 위신도 세워야지. 더군다나 문화가 다른 처가 분위기에 맞춰 적당히 놀아줘야지.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여기서 큰박 서방 자랑을 살짝 할까. 장인 장모에게 앞서서 마음 써주고 챙겨드리니 살갑지 못한 맏딸로서 고맙다. 부모님이 나이 들어가면서 제일 원하는 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인데 무엇보다 큰박 서방은 그걸 잘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에게 이야기하기에는 공감을 얻지도 못할 것 같고 회한밖에 안 드는 슬픈 개인사를 어디에다 내뱉고 싶었을 것이다. “밖에 나가면 누가 뭐 내 얘길 구구절절 듣고 있으려고 하나? 난 이렇게 말만 할 수 있어도 한이 풀어지는 것 같다구.”


큰박 서방은 오래 듣고 앉아 있었다. 다음에 또 들을 요량으로 북쪽 고향 이야기를 남겨두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씨암탉도 한 번 못 잡아준 처가지만 그저 박 서방 고맙네.’ 그런 속말을 다 알 거라 믿으며.

 

서방은 순우리말이다. 옛날에 서방맞히다시집보내다의 뜻이고 지금도 함경도에서는 장가가다의 뜻으로 서방가다를 쓴다. ‘서방에 기어이 한자를 다는 호사가들은 서재를 뜻하는 서방書房과 사위를 서쪽에서 재웠다고 서방西房을 쓰는 예를 우리말에 잘못 가져다 단 것으로 보인다.


사전을 좀 더 찾아보면 서방는 사벌(상주), 서라벌(경주), 소부리(부여), 솔부리(송악), 쇠벌, 새벌(철원), , , , , 처럼 ㅅ계통의 말로 새롭다, 크다라는 뜻도 있다. ‘은 건설방(오입판 건달), 만무방(염치 없는 사람), 심방(만능무당), 짐방(싸전 짐꾼), 창방(농악의 양반 광대)에 쓰는 으로 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그러니 우리말의 서방은 書房이나 西房 아니고 새 사람, 큰 사람이라는 뜻으로 굳이 한자어를 달 필요가 없는 말이다.


일상도 감정도 슴슴해지는 나이에 오히려 신혼의 달달함을 구가하는 친구에게 남편을 어떻게 부르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철없던 시절의 친구가 남편 될 남자에게 모두 한 서방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우기던 얼굴이 귀엽게 떠오른다. 누구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어이, 서방.”, 아양을 떨어야 할 때는 우리 서방니임.”이라고 한다는데, 우습게도 나는 평생 불러보지 못한 호칭이다. ‘나의 새 사람, 나의 큰 사람이라고 불러준다고 그게 어디 낯간지러울 일이냐.



- 계간 동리목월 (2021겨울. 45)









 서정오 






서정오의 옛이야기 보따리를 좋아한다. 성인시각장애인 대상으로 우리 옛이야기 스토리텔링 수업을 할 때도 서정오 이야기를 주자료로 했다. 들려드리기에 좋은 입말로 씌어 있어 더욱 좋다. 누구는 잘나 보이고 싶은 욕심에 허위 사실도 아무렇지 않게 서류에 쓰고도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런 욕심과 허영이 무엇에 다 소용이랴. 조금 모자란 듯 바보처럼 살면 어떠랴 싶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랜만에 셋이서 밥을 먹고 야경이 좋은 산 속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내 책을 본 아는 언니가 아이템을 잘 잡았다고 해서 속으로 놀랐다. 길게 말하기 싫어 그냥 좋아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아이템을 잘 잡고 안 잡고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아이템이라니 ㅎㅎ 이런 내가 '멍'한 건지 몰라도 '똑'한 사람들은 워낙 많으니. 언니는 오래도록 소설습작을 하고 있다. 내년쯤에는 단편이야기집을 내라고 응원했다. 변함없는 분! 


검암도서관에서 독서반을 오래도록 하는 글벗이 아침에 전화와 한 시간을 통화했다. 15명이 잘 유지하고 있고 목포로 이사간 한 분이 안타까웠는데 코로나 이후 줌으로 만날 수 있어 오히려 장점도 있더라고. 방금은 서울친구랑 잠시 통화했다. 늘 간명한 영감을 주는 친구 왈 우리는 모두 각자의 트루먼쇼를 펼치며 사는데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자신만 모르는 형국은 아닐까, 빗대어 말했다. 공감! 트루먼쇼의 주관은 저 위의 높은 분이겠지만 그 또한 명확히 아는 바 없고 그저 오늘도 감사하며! 한때 지적허영에 빠져 책도 많이 사고 그랬지만 이제는 많이 버렸다고 말한 친구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독서토론을 하는 게 지적허영은 아니길 바라며 한 해가 저무는 무렵, 나 자신도 돌아본다.


서방,이라니 뜬금없이 생각난 사진.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아직은 2021년이다. 

모두 몸도 마음 따스한 날 보내세요^^




2017년 3월 18일 Bethlehem.  배혜경 아이폰 촬영


2017. 3. 18. 가시면류관도 상품화된 베들레헴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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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27 1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방에 저렇게 좋은 뜻이 담겨있군요. 서정오님 옛이야기 들려주기 좋아합니다 ~ 서방이라 부르면 저희 남편 좀 무서워할 듯 합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1-12-27 14:41   좋아요 3 | URL
아마도요 ㅎㅎ저희 집도 마찬가지에요.
한번도 입에 올려본 적 없는 단어라...
서정오 님 이야기 참 좋지요. 특히 입말이 재미나요.

책읽는나무 2021-12-27 15: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동생이 있어서 나중에 도련님을 서방님이라고 어떻게 부르지???? 엄청 걱정되던데...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진 서방님이라고 안불러도 되네요!!!ㅜㅜ
결혼하게 되면???하~~~
남편한테 서방님!!은 하~~~갑자기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아요ㅋㅋㅋ
헌데...서방이란 단어가 참 좋은 뜻이었군요?
새 사람,큰 사람이 되란 말이군요!!!
남편한테 일러줘야 겠어요..새 사람! 큰 사람!!^^

프레이야 2021-12-27 15:15   좋아요 4 | URL
애들이 부르듯 삼촌~
헌사람 작은사람이 되는 것보단 나을까요 ㅎㅎ
님 먼저 해 보세요 공황장애 오는지 어떤지요 ㅋㅋ 생각만 해도 울렁증이.

얄라알라 2021-12-27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의 기억 속에서 친구분은 ˝한 서방~˝하는 사랑스런 모습으로 찰칵, 스냅샷!
작가분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기억하시는 방식과, 말을 기억하시는 능력이 정말 작가분들은 다르신 듯!^^

프레이야 2021-12-27 16:38   좋아요 2 | URL
친구라서 고맙습니다 얄라 님
연도 몇날 몇시까지 기억한다고 어떤 친구는 경기합니다 ㅎㅎ 요샌 무뎌져서 그마저 흐릿할 때가 많아요. 아 옛날이여~

persona 2021-12-2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댁과 같은 말이었군요. 우리말 재미있네요. ㅎㅎㅎ

프레이야 2021-12-27 17:25   좋아요 3 | URL
새댁 맞네요 ㅎㅎ 새 집이네요
역시 집은 여자가!!

서니데이 2021-12-27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들레헴에선 가시관 굿즈를 판매하는 건가요. 크리스마스 장식하려고 둔 소품인줄 알았어요. 프레이야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하루 되세요.^^

프레이야 2021-12-27 21:58   좋아요 2 | URL
오늘 지난 집행부 마지막 모임 다녀왔는데 진짜 춥네요. 소감 한마디씩 하면서 전 또 그만 울었네요. 요새 왜 이렇게 짠한지요. 다들 좋은 분들이라 3년간 한 팀으로 일하며 정이 많이 들었어요.
가시면류관은 베들레헴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는 골목 상점에 판매하더군요. 남은 올해 하루하루 편안하게 알차게 지내세요 ^^

기억의집 2021-12-27 1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요. 도련님은 부르겠는데… 서방님 소린 도저히 못 하겠더라구요. 전 도련님 소리도 우리 세대나 멋모르고 했지 .. 아마 요즘 애들은도련 소리 절대 안하지 싶어요 호칭 참 어려워요~

프레이야 2021-12-27 22:03   좋아요 1 | URL
사실 도련님도 좀 그랬어요 ㅎㅎ 구시대 호칭 아닐까요. 진짜 이제 그런 호칭 안 쓰면 좋겠어요. ㅋ 근데 뭐라고 부르죠 그럼? 그것도 모르겠네요. 서양식으로 그냥 이름 부를 수도 없고 애매하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21-12-28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절증후군이 있는 남편님들을 두신 분들이 부럽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시작으로 퍼지면서 시대가 조금씩 변화해 가는 거겠지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결혼 전에 아예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 역할을 면제 받는 일도 있다고 들었어요. ^^

프레이야 2021-12-29 00:48   좋아요 0 | URL
요즘 며느리는 결혼식날 잡고 시엄니 피부관리 티켓 선물하더군요. 며느리 역할 면제받으려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데 어찌보면 딸부모 입장에선 좋다싶기도 하고 갈팡질팡이네요.

희선 2021-12-29 0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방이라는 말이 한국말인데 그걸 한자로 쓰기도 했군요 서방을 찾아보니 書房서방이 나오네요 좋은 말인데 안 좋은 말로 쓰기도 하다니... 반대로 안 좋은 걸 아무렇지 않게 쓰는 일도 있을 듯합니다 영화 보고 책 읽고 독서토론 하는 건 즐거운 일이죠

프레이야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1-12-29 07:54   좋아요 2 | URL
창밖으로 날이 밝았네요. 오늘은 또 저무는 한 해를 카운트다운하기 좋은 날이네요. 하루하루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근대어요. 뜻밖의 좋은일 그렇지 않은 일 있겠지만 평화와 사랑이 중심에 있길 바랍니다.

굳이 한자 달 필요 없이 한글 이름 이쁜데 어떨 땐 한자가 달리면 뜻이 명확해지기도 하고요. 서방은 우리말 ^^
희선 님도 오늘 따뜻하게 보내세요.

han22598 2021-12-30 0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방이라는 단어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품을 수 있네요 ^^ 재밌어요 ㅎㅎ

그리고...지적허영심..맞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게 있어야..독서도 하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서 탐구하고 질문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레이야 2021-12-30 19:05   좋아요 0 | URL
넵. 허영이라 해도 착한 허영이면 좋겠습니다. 의도와 방향이 중요하겠어요^^ 한님 좋은 말씀 으샤으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21-12-30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부터 다시 날씨가 차가워지네요.
프레이야님,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1-12-30 22:0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하루 남은 한 해가 왠지 아쉽네요. 따스히 보내세요. ^^

처음처럼 2021-12-31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방이라고 불러주시는 분은 계시지만 서방님이라고 불러주는 경우는 아직도 없어서 아쉽네요.ㅎㅎ

프레이야 2021-12-31 16:3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분도 저랑 비슷하신가 봅니다.
불러주시는 어르신 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올해 라이카 클럽 전시회 옆지기 출품작 둘.

창고에 많고 많은 사진 중 고심하여 고르고 골랐을 것이다.  

(내 책에 싣고 싶은 사진을 말하면 언제든 무료 창고개방이라 든든하다ㅎㅎ) 

올해는 20주년 기념전이기도 하다. 인사동에서 열렸고 내년 4월에 뉴욕에서도 열린다.

첫 전시회 때 6살이었던 작은딸 데리고 인사동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부산 수정동 Leica III 28mm summaron 5.6 fomapen200




 

창녕 남지 Leica III 28mm summaron 5.6 fomapen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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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1-12-26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Los Angeles Leica Gallery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West Hollywood 에 있는 Leica Gallery 는 가 본 적이 있는데
내년 4월에 뉴욕에서 열린다는 전시회는
Leica Store New York Soho 의 초대전 같은 것인가요?

프레이야 2021-12-26 14:24   좋아요 1 | URL
네. 그렇다고 하네요. 서울 전시 그대로요. ^^

새파랑 2021-12-26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정말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사진에 대해 모르지만 좋아요 열개를 누르고 싶습니다~!! 20주년 기념전 이 잘되길 바라겠습니다 ^^

프레이야 2021-12-26 14:25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말씀 전해 주면 좋아할 것 같아요^^

초란공 2021-12-2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사진 멋져요!!

프레이야 2021-12-26 19: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란공 님 ^^

튜울립 2021-12-2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축하합니다!

프레이야 2021-12-26 20:40   좋아요 0 | URL
튜울립 님 고맙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1-12-2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주년이면 정말 긴 시간!!
대단한 시간입니다.
암튼 축하드리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1-12-26 22:08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책읽는나무 님~^^

희선 2021-12-27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축하합니다 사진 멋지네요 다음은 뉴욕에서 하는군요 뉴욕에서도 전시회 잘 되면 좋겠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1-12-27 08:25   좋아요 0 | URL
전해줄게요 고맙습니다 희선 님~^^

mini74 2021-12-27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빨간딱지! 꿈의 카메라 ㅎㅎ 프레이야님 옆지기님 축하드려요. 이렇게 멋진 사진들이 무료개방이라니 ㅎㅎ 짝꿍 찬스가 좋은거군요. 저희는 음. 뭐가 있을까요 찬스라. 음.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ㅎㅎㅎ

프레이야 2021-12-27 14:29   좋아요 1 | URL
히히 찬스치곤 괜춘하지요.
미니 님도 언능 뒤져봐요. 있을 거에요 한둘은 ㅎㅎ
고맙습니다, 미니 님.
 

1.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이용한 글/사진



이용한 시인은 길냥이들의 사진을 따스하고 재치있게 담는다. 시도 따스하지만 시인이 길냥이들과 함께한 15년 세월과 그 시선이 참으로 도탑다. 오래 전 다큐멘터리 <고양이 춤>으로 먼저 알게 된 이후 팬이다. 이 책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는 며칠전 서울 혜화동 가서 작은딸이 3년간 열공하며 지낼 방을 새로 구하고 연남동으로 이동하여 책방 '아침달'에서 구매한 책들 중 하나다. 본문의 글과 사진 편집이 보기 좋고 색감이 사랑스럽다. 책등도 제본을 노출시켜 특이하고 책장을 넘기면 뻣대지 않고 양쪽으로 순하게 활짝 펼쳐진다. 냥이들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몽글몽글 녹아내린다.


"세상은 이리도 춥고 눈까지 내리는데, 고양이는 어쩌자고 이리도 어여쁜 것인가."

"길고양이들아, 이제껏 그래왔듯이 죽을 때까지는 죽지 말아라."

"인간이 망가뜨린 이 세상이 그래도 아름다운 건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지."


사실 고양이를 기록하는 일은 용기보다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기술보다 애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좋은 고양이 사진은 고양이에 대한 소통과 교감에서 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고양이의 허락 없이는 고양이 사진도 찍을 수 없으므로 무엇보다 고양이의 이해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 무턱대고 사진을 찍는 것보다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고양이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서로가 신뢰하는 관계라면 고양이의 행동과 표정에서도 자연스러움과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법. 나머지는 그냥 운에 맡기자.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 5-6쪽)


가지고 있는 이용한 고양이.















아침달 책방 내부 (2021. 12. 23)


아침달, 시크릿북



2.

부산 금정구에 있는 '카페 소록'에 우연히 갔다. 주변 카페를 찾다가 이름이 친구 눈에 먼저 들었다. 나도 오케이. 식물원 옆 2층 단독주택의 1층, 대문을 들어서자 초록 나무들이 울타리 삼아 선 안쪽으로 동그란 마당이 적당한 크기로 보였다. 통유리창 앞 구석에 스티로폼과 나무상자로 만든 고양이 집이 보였다. 잔디 위로 햇살이 한가득, 마당냥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다섯 길냥이가 카페 마당에서 햇살도 쬐고 서로 장난 치며 뒹굴고, 유독 한 녀석은 어찌나 붙임성이 좋아 카페 안에 들어와 제 집처럼 살았다. 소파에도 올라오고 햇살 따스한 통창 앞에서 세상 편안하게 졸고. 귀여운 냥이 젤리 발바닥 모양 수면양말 두 켤레를 샀다. 길냥이들 돕는 데 쓴단다. 커피도 원두 퀄러티가 좋아 마음에 들었다. 아메리카노는 잘 안 마시는데 이곳은 원두가 좋아 괜찮았다. 이번에 일행과 점심 식사를 하고 가서 그랬지만 다음에 가면 쑥떡쑥떡라떼를 야심차게 마셔야지ㅎㅎ

금정구 숨은 골목 나들이 관광명소로도 선정된 카페 소록, 좋아요. 


카페 소록냥 (2021. 12. 21 아이폰12 배혜경)



3.











수필가 배혜경이 영화와 함께한 금쪽같은 시간.

_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책에서 언급하려다 뺀 주제가 3가지 있다.


첫째, 아동폭력 _ 아무도 모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자비에 르그랑)

둘째, 홀로코스트 _ 사울의 아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카운터페이터(슈테판 루조비츠키)

셋째, 고양이 _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고양이 춤.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


페크 님이 얼마전 페이퍼로 정보를 주셔서 국제신문 시민기자에 반려동물 부문으로 지원했는데 통과. 28일날 있을 사진찍기와 기사쓰기, 두 시간 교육시간을 안내받았다. 새로운 글쓰기가 될 것이다. 합격자 명단에 아는 이름이 두 사람 보였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지 여전할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세월이 6년 정도 흘렀다. 내년에는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될 길냥이와 우리집 착한 고양이 모꾸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인연은 뜻밖일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예감되기도 하고 서로 나누는 관심으로부터 이어진다. 좀더 살갑게 눈길 주고 자세히 담고 느껴야겠다. 고양이 눈이 얼마나 매혹적인지는 고양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에겐 안비밀.^^ 우리는 서로 깊이 나긋하게 바라볼 것이다.


12월 2일 부산일보 '이주의새책' 소개.  
12월 24일 아침 KNN 모닝통통통 '오늘의책' 소개. 
크리스마스 선물인 듯... ^^ 감사드린다. 

여러 곳에서 메시지와 블로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셔서 이런저런 귀한 마음과 마주한다.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다. 내년엔 더욱 겸손하게 또 심지 굳게, 자연스럽게 나아가야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책의 목차에 총75편의 영화가 적혀 있다. 모두 내겐 어떠한 의미로 좋은 영화이지만 아래 6편은 그중 꼭 권하고 싶은, 내가 고르는 최고!!!(내 취향일 수도)


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1.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2. 바베트의 만찬

3. 미안해요 리키

4. 아무르

5. 실락원


특히 요즘 <아무르>를 만든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냉엄한 성찰을 자꾸 떠올린다. 미하엘 하네케 최고!

누워 계신 아빠 걱정을 늘 하면서도 매일은 못 가보고 그 와중에 좋은일도 겹쳐 생기고 해야할 일과 만나야 될 사람과 자리도 띄엄띄엄 있으니 사는 일이 그런 것인가 보다. 생의 비의는 담담히 안고 소소한 기쁨으로 흘러가는 안온한 일상. 오늘 오후에 엄마 드실 반찬 조금 만들어 가봐야지. 



연남동 열정타코 옆 요거트카페 'YOU NEED MY YOGURT' (2021.12. 23. 라이카)

가족이라는, 대체로 슴슴한 것 같지만 짠내 나는 이름. 딸들, 많이 컸고 잘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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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27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에 있는 고양이 편안해 보입니다 따듯한 볕 쬐고 자는군요 분위기 좋은 카페군요 맨 앞에 책은 알라딘에서 나온 거 봤습니다 저는 어쩌다 한번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지만 함께 사는 사람은 고양이가 가진 좋은 걸 많이 알겠습니다 프레이야 님도 그러시군요

프레이야 님 축하합니다 국제신문 시민기자 반려동물 부문에 붙다니... 앞으로 함께 사는 모꾸를 더 잘 보시겠습니다 모꾸뿐 아니라 다른 아이도 만날지 모르겠군요


희선

프레이야 2021-12-27 08:30   좋아요 0 | URL
카페 소록에 같이 간 친구 중 하나는 집에 냥이 둘이랑 동거해요. 저보다 오래되었구요. 그 둘이랑 동거하게 된 이유도 제가 알고 있는데 이야기가 많답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냥이랑 인연을 맺게 되더군요. 요즘 날이 추우니 길냥이들 너무 추워 보여요 ㅠㅠ 카페소록냥이 는 편안해 보였어요. 고양이들도 저마다의 운명을 타고 나는 듯요. 이용한 시인의 고양이책들 모두 사진과 함께 참 좋아해요. 모꾸는 그냥 🧡 고맙습니다 희선 님. 연말 따스하게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1-12-2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프레이야 님, 국제신문 시민기자 되셨군요, 이런 사실은 제게 비댓으로라도 알려 주셔야죠. 히힛...
저도 일간지 시민기자도 해 보고, 오마이뉴스의 기자도 해 봤답니다. 그냥 거기서 문자나 이메일 올 때
기자, 라고 불러 주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는 늙어서도 주부라는 존재 이외에, 사회에 다리를 하나 걸치고 사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살고 싶어용.
진심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21-12-29 00:51   좋아요 1 | URL
페크 님 정보 주신 덕에 덜커덕 됐네요. 오늘 저녁 다녀왔어요. 틀에 박히지 않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봅니다 또.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 같아요. 우리 양다리 걸치고 사는 기분으로다가. 고맙습니다 페크 님.

가필드 2022-02-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1,3봤는데 빈폴과 2,4만 보면 되겠네요 프레이야님 책과 함께 영화 고르는 안목이 상당하십니다

프레이야 2022-02-13 16:27   좋아요 1 | URL
가필드 님 반갑습니다^^
실락원도 보셨나요? 파격적이지만 전 상당히 좋았어요. 오래전에 볼 때보다 나이가 좀 들어서 보게 되니 와닿는 지점이 좀 달랐다고 할까요. 마지막 장면도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좋은 날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가필드 2022-02-13 16:31   좋아요 1 | URL
실낙원 괜찮을것 같아요 워낙 제목이 유명해서 나이가 들어 보면 좋을것 같은데 제 나이도 적지 않은 나이라 한번 봐야겠네요 보고 깊이감이 덜 오면 10년 후에 다시 보는 걸로 ^^ 추천감사합니다
 

아빠가 몸의 감옥에 갇혔다. 한 달이 다 되어간다. 9월 30일에 산성 오리불고기 집에 모시고 갔을 때만해도 잘 드시고 걸음도 걷고 하셨다. 가을 햇살 좋던 찻집에서 산 풍경을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산길을 차로 내려와 수목원도 조금 걸었는데 이제도 다시 못 일어날 것만 같아 믿기지 않는다. 2019년 7월에 동생과 같이 모시고 간 일본여행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때 내가 스케줄 짜고 배 기사 자청해 벳부와 유후인을 모시고 다녔는데 그 때를 참 좋았다고 표현해 주시니 그 마음이 읽혀서 짠하다. 어제도 집에 가 뵙고 오면서 눈앞이 흐려져 길가에 차를 세웠다. 집에 돌아와 지난 사진들을 찾아 보며 일상의 소중한 순간만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공간을 이동해 다른 시간을 선사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러고는 몸의 감옥에 갇혀 수많은 추리소설을 읽고 서평을 쓴 그이, 물만두 님이 생각났다.  이 책은 지금도 알라딘에서 팔린다. 1주년 동영상 트레일러가 책소개 아래에 뜨는데 검색하여 함께 보시길. 나는 이 책을 10년 전에 녹음하며 웃고 울고 가슴 뜨거워지는 귀한 시간을 선물받았다. 여러분에게도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별 다섯 인생홍윤

 

 

20111220일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책이 그해 마지막으로 낭독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어쩐지 소리 내어 읽고 싶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도 힘이 되는 내용이라는 확신도 들었기에 내가 갖고 있는 책을 추천했고 승낙되었다. 최대한 담담하고 편안하게 읽으려 했는데 부록에 있는 낯익은 알라디너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안녕의 인사는 기어이 나를 목메이게 했다. 우느라 웃느라 정지버튼을 누르기를 여러 번 하며 완료했다.


아마 오랜 알라디너를 비롯해 그리 오래지 않은 분들까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마음의 빚과 선물을 동시에 지고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당시에 생일이면 서로 책선물을 주고 받고 이벤트도 자주 열어 헌 책 나누기도 하였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라는 부제가 깜찍하게 달린 이 귀한 책의 저자는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2000년부터 추리소설 리뷰를 꾸준히 올렸다. 내가 이곳에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게 큰아이 7살 적이었으니까 그 시점보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아마 그 비슷하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인터넷 서재 시스템이 운용되기 전이다. 20048월 지금의 서재가 마련되어 우리는 뜻밖에 작은 집 하나씩을 분양받고 알라딘마을의 주민이 되어 본격적으로 리뷰를 쓰고 소소한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물만두 님의 추리소설 리뷰도 좋았지만 단란한 가족의 소소하고 유쾌한 일상 이야기와 댓글로 간명하게 주시는 좋은 말씀이 일상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땐 그런 것들이 그분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별 다섯 인생를 읽으며 우리가 어쩌면 쉽게 나누는 댓글 한 줄과 몇 마디 안부가 물만두 님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였던지 알 수 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한 리뷰를 올린 블로그는 세상 밖을 바라보고 세상에 인사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그녀의 유일한 창이었다. 나는 그녀가 육체적으로 그렇게 힘든 감옥에 갇혀있는 줄 몰랐고 그해 추석 끝에 그녀가 올린 글에서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뭔가 심각한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10년 전이다. 나의 사람살이가 그토록 껍데기였나 싶어 나중에야 마음 한 귀퉁이가 쿵 내려앉았다. 혹여나 그동안 내 한심한 투정과 일상사 불만의 글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부끄럽기도 했다.

 

,

,

그 리 고

사 랑 에

대 하 여.

 

, , 그리고 사랑이 있다가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와 너는 남았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나와 네가 사라지고 사랑이 남는다 해도 그 사랑 또한 좋은 것이니 족하다.

, , 그리고 사랑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모두 함께 사라졌으니

슬픔은 남지 않아 좋지 않을까.

나와 사랑만 남거나 너와 사랑만 남는다면

그 남은 한 자리는 슬픔이고 그리움이고 아쉬움일 테니

2006. 11. 18

                       (별 다섯 인생, )

 

위의 글은 에필로그와 부록 앞, 마지막 페이지 바로 앞장에 있는 블로그 비공개글이다. 이 글을 읽고 책을 잠시 덮는데 잔잔한 물결이 밀려들어 온몸을 적시는 느낌이었다. 별 다섯 인생에는 인터넷 서재에서 본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비공개로 써둔 일기가 사이사이에 들어있는데, 나는 이 글들이 너무 좋아 베껴 두고 싶은 정도였다. 이 글들에서는 우울과 조증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이겨내기도 하며 그녀가 깊이 사색하는 모습과 세상을 보고 읽는 정직하고 다정한 입김, 여리지만도 강하지만도 않은 감수성과 문학적 소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고 겸양의 말을 하고 있지만 그녀가 남긴 1800여 편의 추리소설 리뷰가 쉽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건 나이가 들어가며 느끼고 있는데, 하물며 몸이 성하지 않았던 그녀로서는 굉장한 노동이었을 것이다.


데미지를 입기 싫어 로맨스를 읽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무조건 삶에 강한 척만 하지는 않은 순수한 배짱을 볼 수 있다.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글은 영화 '청원'의 주인공을 떠올려 주는데, 60초만이라도 관에 들어가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순간을 체험해 보라던 말이 새삼 영화 속 대사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뜨거움이 느껴진다.


삶은 몸으로 살아내는 것! 그녀는 온몸으로 견디고 싸우며 치열하게 살다가 레테의 강을 건넌 것이다. 머리로만 사는 나는 할 말이 없고 먹먹했다. 그녀의 삶은 내가 감히 연민하거나 안타까워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누구의 삶인들 별이 아닐까마는 물만두 님의 '별 다섯 인생'에는 별 하나 아니 두 개 더 드리고 싶다. 별 다섯은 우리가 리뷰에 주는 최고점이었고 그녀의 리뷰는 거의 다 별 다섯이었다.

 

200493일의 글 '만두의 진실 또는 고백'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해 200312월에서 20071월까지의 글이 담긴 이 책은 주로 물만두 님의 가족사, 가족과의 일상, 인터넷서점 알라딘서재와 알라디너들의 이야기다. 언제든 창가로 가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세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우리와는 달랐던 그녀의 시간을 곱씹어보며 숙연해지길 여러 차례, 웃지 못할 기막힌 상황에서도 유머를 날려 깔깔깔 데굴데굴 구르게 만든다. 비공개 일기 속에 묻어둔 솔직한 회한과 갈망의 심정, 삶에 대한 동경과 무시로 찾아오는 우울, 삶을 긍정하는 포용과 용기가 대조적으로 더 귀하게 느껴진다.


이름도 예쁜 홍윤이 예기치 않은 희귀병으로 고통의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웃어넘길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뼈아픈 미안함과 고마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 두 동생들을 향한 맏이로서 갖는 책임감과 보살피려는 마음이 진하게 배어있다. 다섯 식구가 알콩달콩 주거니 받거니 토닥거리며 사는 정경이 푸근하게 그려지는 장면들, 빨간 야구모자를 삐딱하게 쓴 꾸밈없이 말간 그녀의 얼굴처럼 참으로 솔직담백한 이야기들, 읽다 보면 곳곳에 '우띠', '에헤라디야' 이런 추임새 덕에 나는 또 정지버튼을 눌러야 했다.


'에헤라디야'는 그냥 글자 '에헤라디야'가 아니고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곡조가 붙어져 ''에서 최고음으로 가락을 붙여 녹음해놓고는 혼자 우스워 배꼽을 잡았다. 특히 욕실 앞에 엎어져 있는 딸을 보고 아버지가 던진 한마디 "엉덩이 상한 거 아니야?" 에 물만두 님이 넘어져 누워 있는 상태로 "어버버 아버버..." 뭐 이렇게 반응했던 대목을 읽을 때, 내가 빙의라도 된 듯 어버버 아버버...” 이렇게 녹음되었다. 이 글은 예전에 물만두 님 서재 페이퍼에서 '상한 엉덩이'라는 제목으로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도 어찌나 웃기던지. 하하하! 참으로 유쾌한 분!


'당신이 장애인이라면' 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복지 문제를 비롯해 사회적 사안에도 늘 관심 두고 비판적 견해를 갖고 계셨던 분, 점점 근육량이 줄어들어 입부터 작아지고 나중엔 여섯 손가락의 힘으로 마지막 자판을 두드렸던 그녀, 이제는 평안한 곳에서 몸도 자유로이 지내시길, 그 감옥에서 풀려나셨길 바란다. 지금 당신들은 충분히 행복한 거라고, 힘주어 전한 말씀, 고맙습니다.


2012년 초까지 15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이 책을 녹음 완료했고 편집교정을 하며 일독을 더 하게 되니 나로선 감사하고 느꺼웠다. 물만두 홍윤 님의 깊고 진실된 사유와 온기있는 마음씀씀이, 쉽지 않은 생을 끌어안는 사랑과 여유, 재치와 유머, 무엇보다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때로는 가슴앓이하며 솔직히 토로하는 글귀가 또다시 마음을 울린다. 입이 점점 작아지는(, 나는 그녀의 입이 원래 작은 줄 알았다) 그녀에게 음식을 잘게 잘라 입에 넣어주는 만순이에 대해 고마움을 쓴 대목에서도 가슴이 찡해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만순이는 그녀의 여동생을 칭하는 닉이고 언니의 사후 이 책을 출간하였다. 그녀만큼 생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다 간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이 책을 녹음하며 진짜 노래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책 속에 나오는 김범수의 보고 싶다가사를 시적으로 옮겨둔 대목이 있는데 낭독을 한다는 게 그만 자동으로 노래가 되어 나왔다. 1차 편집을 하며 듣다가 나도 놀랐다. 이왕이면 좀 더 잘 부를 걸. 그런데 최종편집에서 아무런 말씀이 없는 걸 보니 그대로 녹음도서로 완성된 것이다. 그녀에게 보고 싶다고 마음을 전한 게 되었다. 들으신 분들, 놀라셨다면 용서하시길...


계절이 선택의 여지 없이 가고 또 오듯, 물만두 님의 글귀대로 '삶은 선택의 여지가 없'. 그런 것 같다. 한때는 내가 선택해서 살아왔다고 착각했지만 돌아서 생각해보면 그 반대가 아닌가. 한편으로는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무언가 물밀듯 밀려오고 밀려가는 느낌. 강물에 흘러가는 꽃잎처럼 살자. 도서관 입구에서 보았다, 백목련화 꽃봉오리들을. 입을 앙다물고 야심 차게 열릴 희열의 순간을 예고하며 단단하게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었다. 폰카메라로 그걸 담고는, 어느 순간 열렸다 화르르 닫힐 그네들의 뽀얀 꽃이파리를 동시에 떠올렸다. 눈물이 새큰 났다. 하늘이 너무 새파래서만은 아니지.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그 입장이 되어 보면 또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 그냥 살자. 어떤 삶이 더 낫다, 못하다 저울질 말고 그저 내 삶이 제일이려니 생각하고 살자. 누구든 살면서 남보다 우위에 놓이길 원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게 그리 중요한가. 내 삶은 이생에서 단 한 번뿐이고, 그 삶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스스로가 아름답게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중략) 살아 있어서 좋다는 건, 백 번의 불행이 닥쳐와도 단 한 번의 행복이 그 백 번의 불행보다 찬란하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 해피데이'라고 하는 건가. (별 다섯 인생 175)


 

인터넷의 폐해도 크고 단점도 많지만 물만두님에겐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 거의 전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하다시피 한 창구가 인터넷, 윈도우였다. 수족관 물고기들에겐 그 크지 않은 세상이 세상의 전부이고 화분 속의 꽃은 그 얕은 흙밭이 세상의 전부이듯,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세상의 전부일 테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루미의 말처럼 우리는 거울에 비친 얼굴이면서 동시에 거울 자체이기도 하다. 행위자이자 관찰자로서 ''는 생이 몰아가는 대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상하좌우 돌고 도는 어지러운 바퀴살이 아니라 바퀴의 굴대, 중심에서 살자.

 

세상에는 열 가지 보따리가 있다. 그중 아홉은 불행 보따리고 나머지 하나만 행복 보따리다.

아홉에 얽매일 것인가. 하나에 기뻐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별 다섯 인생 184)



기장 마레 앞 밤바다 (2021.12.18 박유영 라이카 촬영)

밤바다처럼 알 수 없기도 알 것 같기도 한 인생.


손 (2021.12.18. 배혜경 아이폰12)

피부가 좋은 편이었던 아빠의 90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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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07 18:55   좋아요 5 | URL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님~*^^*

서니데이 2022-01-07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프레이야 2022-01-07 21:55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

thkang1001 2022-01-07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2-01-07 21:5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러블리땡 2022-01-08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프레이야 2022-01-08 00:2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러블리땡님 ^^

희선 2022-01-08 0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또 축하합니다 불행 아홉 행복 하나여도 하나를 잘 보면 좋을 텐데, 생각은 해도 그렇게 하기 어렵기도 하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2-01-08 0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댓글들 올라오는거 보느라 자꾸 들어와서 밤바다 사진 볼때마다 가슴이 먹먹한느낌을 받네요
사진 정말 좋슿니다.

프레이야 2022-01-08 10:22   좋아요 2 | URL
밤바다 위로 둥근 달이 무언가 말을 하지요 그레이스 님에게도 달빛 가득 풍만한 한 해 매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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