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에서 했던 인상파 거장전이 9월 8일부터 부산박물관에서 시작했어요. 오늘 오후 늦은 시각에 아이들이랑 옆지기랑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가까워요.
어른 만원에 학생은 칠천원의 입장료네요. 12월 10일까지 합니다.
프랑스 화가, 미국화가 모두 87점의 인상파 그림이 전시되어있고 미국 브룩클린 미술관에서 빌려온 것들이라고 하죠.
오랜만에 간 박물관의 전경이 가을향기와 함께 아늑했어요. 늦은 오후의 가을햇살이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은 나뭇잎 사이로 고운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어요. 정문을 들어서서 표를 사고 본당으로 올라가 옆의 회랑을 따라 돌아서 갔어요. 회랑을 걸어갈 때면 전 언제나 설렙니다. 돌아서는 그곳에 보고픈 만남이 있으니까요.
역시 인상파의 초기 화가 모네의 찬란한 빛의 붓터치는 인상적이네요. 두껍게 덧칠한 붓결을 눈에 두고 점점 뒤로 물러서면 그림이 마치 마술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서 본 그림의 인상과 점점 거리를 두며 갖게 되는 인상은 제 마음에 마술을 보여줍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술도 이런 것일까요. 주체와 객체 간에 그려내는 빛의 마술, 피사체에 눈을 갖다대는 행위의 묘미도 이런 것이겠죠.
늘상 빛의 포착에 집중하는 아마추어사진사 옆지기도 역시 모네가 순간적으로 포착한 빛에 매료되나봅니다. 한참을 서서 마주하고 있네요. 희령인 <모네의 정원에서>로 클로드 모네를 만난 적이 있어서 모네를 들먹이네요. 부인이 아주 많았다면서..^^
프랑스 인상파들만 알고 있었는데 미국 인상파화가들의 그림을 두루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반가웠습니다. 특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아니 보았던 것 같은 친근한 그림, 바로 그 그림,
찰스 커트니 커란이 그린 <언덕 위에서>!!
(여기 옮길 수가 없네요. 대신 부분만 폰카로 찍어서..)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하얀색 물감이 어찌 그런 터치로 칠해져 있는지. 하얗게 부서지는 빛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순결합니다. 나란히 앉은 처녀 세 명의 홍조 띈 옆얼굴과 올려묶은 머리카락에는 빛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무늬가 어립니다. 흰구름보다 더 흰 레이스옷의 질감이 그대로 잡힐 것 같네요. 보이지 않게 속으로 나풀거리는 흰색의 춤이 순수한 물결을 그려냅니다. 처녀들의 가느다란 팔도 꼭 한 번 잡아보고 싶을 정도로, 살아있는 온기가 느껴집니다.
화려한 빛과 점묘법의 화가, 르느와르는 1897년 사고로 팔이 마비되어 붓을 손에 끈으로 묶어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화사하고 생기가 감도는 빛을 살려내면서, 이면에는 육체의 한계에서 오는 고통을 감당해야했을 화가의 정신력에 감탄했습니다. 딸기가 있는 정물, 처음 보았는데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정물에서 동적인 느낌을 받게 되네요.
프랑스인상주의 화풍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으로 사진기술의 발달은 알고 있었지만 일본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이번에 알았습니다. 일본전통판화로 세속을 주로 소재로 한 목판화 우키요에. 인체의 부분을 절단하는 형식의 그림이 그것의 영향이라고 하네요. 스냅 사진의 묘미인 순간의 포착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시대의 조류에 거스러는 행위는 그것이 예술이든 다른 무엇이든 호평을 쉽사리 받기 어려운 법이겠지만,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는 예술혼은 어느 시대에나 아니 시대가 흘러서 오히려 재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프랑스 인상파화가들의 시대가 막이 내려갈 무렵 19세기 말, 미국의 인상파 화가들이 그들의 시대를 여는데 그들의 그림은 유럽풍보다 좀더 광활하고 거침없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만의 인상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시대의 조류였지 싶습니다. 미국 여류 인상파화가의 그림들도 인상적이었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파리 미술학교 입학을 거절당하고 달리 공부한 여성화가도 있더군요.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체를 원뿔과 원, 원기둥 등으로 단순화한 화가도 있어, 후기 인상파 그림에서는 20세기 입체파의 태동을 느낄 수 있어요.
아무튼 미국의 인상파 그림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덤이었습니다. 기모노를 입고 있는 여인, 도 인상적이었어요. 석판화와 에칭 작품도 더러 있어서 또다른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빛의 기운을 잔뜩 받고 왔어요. 빛으로 가득한 가을을 꿈꾸며 모두 밖으로 나와 옆지기의 주문대로 모델이 되어주었어요.^^ 일부러 마감시간 맞추어 갔더니 사람들이 별로 없어 감상하기에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