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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리운 이여」 
                  

                                                          최명희



나는 봄의 밤 강물을 보았다.
달도 없는 야청 하늘 검푸른 등허리에, 몇 점 별빛, 새로 돋는 풀잎부리 여린芽(아)처럼 눈 뜬 밤.
물 오른 어둠을 깊숙히 빨아들여 숙묵(宿墨)보다 더 검어진 산 능성이 반공에 두렷한 마루를 긋고
있는데, 그 산 그림자 품어 안은 밤 강물이 소리 죽여,
제 몸의 비늘을 풀며, 아득히 가득히 흐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제 몸의 비늘을 풀며, 아득히 가득히 흐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것은 돌아오는 강물이었다.
언제라고 강물이 한자리에 서 있으랴만,
가을의 강물은 뒷모습을 차갑게 가라앉히며 멀리 떠나가는 강물이요,
겨울 강물은 쓸쓸히 남은 그 물의 살을 벗고,
오직 뼈만으로 허옇게 얼어붙어 극한(極寒) 속에서 존재의 막투름을 견디는 얼음이다.

지난 여름, 무성하게 푸르러 눈부시게 젊고도 풍요로운 강물이
제 온몸을 수천 수만 수십만 개 은비늘로 찬연히 부수며,
물의 살 끝 끝에까지 차오르던 환희를 어찌 잊으리.
목숨이 누리는 영화에 여한이 없었다.
흰 돛 달고 두둥실 구름같이 배 띄우는 수면에 바람은 불어와 황금빛 노를 젓는데,
솟구쳐 뛰노는 은어떼, 비단고기, 자멱질이 숨 막히었지.
이윽고 해가 지면 밤이 익어 꽃술 터지듯 함성을 지르며 쏟아지던 저 별들의 무리.
살아서 아름다워, 이만한 충만이 어디 있으랴.
돌아보아 부러울 것 하나 없던 뜨거운 여름이 만월(滿月)이라 보름달같이,
시위 당긴 활만큼 넘치게 부풀어 아슬아슬한 고비 정점에 이르면,
이 어인 일이가, 아차,
한 순간 놓친 것이 그만 쏜살처럼 뒷모습 보이며 저만큼 흘러가 버리는 가을 강물.
가을 강물이 설명도 없이 투명하게 씻고 가는 모세혈관에,
그 여름의 잔정(殘情)은 이미 자취를 거두고,
이제는 온기 식어 텅 빈 실핏줄 메마른 굽이마다
홀로 남아 여윈 뼈가 쓸쓸히 일어서는 겨울이 왔었다.

그 여름의 휘황한 갈채 은비늘이 뒤집히어,
이제는 비늘마다 시퍼렇게 날 세우며 얼어붙는 겨울 강은, 침묵의 비수였다.
수천 수만 수십만 개 단도로 앙상한 제 가슴을 찌르고 있는 겨울 강의 빙판 저 언저리에,
아아, 어느 날인가, 문득 연두 물빛 번지면서 소살소살 소살소살 발소리 들린다.
돌아오는 강물의 발소리인 것이다.
한꺼번에 다는 못 돌아오고 아주 조금씩, 강 언덕 가장자리 눈치 못채게 숨결로 스미다가,
드디어는, 날 세운 비수도, 거꾸로 박힌 단도도 고단하게 돌아오는 손으로 다 녹이어
깊이깊이 풀어주는 발소리가, 비어있던 온 강에 가득 차는 봄 밤.
이 강물은 과연 어디만큼이나 멀리 멀리 다리가 아프게 헤매어 흐르다가,
지금 이렇게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는 것일까.

웬일인지 봄날의 강물은 눈물겨웁다.
눈물 섞인 강물이 제 몸을 적시어 일깨우는 산하(山河) 대지에
어찌 새 풀 돋지 않고, 새 꽃 피지 않으랴.
세우(細雨) 내린 언덕에 버들은 아스라지게 애달픈 연두 머릿단 감아 빗고,
더 못 숨길 마음 같이 봄의 가슴 문지르며 피어나는 무리무리 연분홍 진달래,
보라색 제비붓꽃, 노란 민들레, 풀섶에 패랭이꽃, 장다리, 배추꽃, 홍자색 산철쭉,
논에는 자운영, 밭에는 쑥부쟁이, 들에도 피어나고, 산등에도 피어나고,
응달진 골짜구니, 흥건한 물가에도 얼마든지 피고 또 피는 봄꽃들의 저 황홀한 잔치는,
천지를 오색 교성(嬌聲)으로 자지러지게 한다.

돌아온 안도의 저 빛깔들이여,마음놓고 어우러져 서러울 것이 없구나.
봄 하늘에 새 울고 나즉히 일렁이는 아지랑이 꿈결같은데,
그 갈피 간질이며 고개 젖혀 색색깔로 웃는 꽃들의 향기와 짙어지는 풀빛들은,
모두 다 새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들이다.
겨울 강은 봄 물을 나무라지 않는다.
홀로 빈 겨울을 묵묵히 견딘 저 해토(解土)의 대지 또한.

네가 나를 무참히 버리고 가, 내가 너를 이토록 기다리게 하였으니. 보라.
꽃 진 자리 멍든 상처, 길고 긴 회한을 내보이며 원망하지도 않는다.
겨우내 얼어터진 발등과 오래오래 기다리다 메마른 앙가슴을 두드리며,
포원(抱寃)진 설움에 목을 놓아 울지도 않는다.

그저 다만 그 돌아오는 강물이 촉촉하게 스며든 대지의 젖은 살은,
긴 겨울의 무거운 비늘을 벗고, 꽃비늘 벗고, 다투어 다투어 흐드러지게 피어날 뿐이다.
그러나, 이 봄이 무르익어 여름이 넘치면 가을은 또 뒷모습 보이며 흘러가고,
꽃도 지고 잎도 지고 낙목한천, 다시금 겨울이 강물과 대지의 세상을 혹한에 내던지겠지.
그 도취와 상실과 아픔, 그리고 기다림과 견딤의 시간들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흡사 약재 숙지황(熟地黃)처럼 느껴진다.

이 봄날의 장독대 언저리에 막 잎사귀 돋아나는,
숙근초(宿根草) 다년생 풀뿌리 지황은,
엄지손가락만씩한 뿌랭이를 조롱조롱 줄조롱으로 달고 있는데.
생지황 그대로 먹어서 혈증(血症)을 다스리기도 하지만,
구증구포(九烝九曝), 아홉번 찌고 아홉번 말리어 숙지황으로 만들면,
이것은 허손증(虛損症)에 쓰이는 보혈(補血), 보정(補精)의 소중한 한약재가 되었다.

허손증이란, 사물에 허기를 느껴, 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가지고자 덤비는 것이라 하던가.
약성이 무거운 숙지황은,
알갱이 빠져버린 헛껍데기 빈 몸에 허기를 가라앉혀 잡아주고, 피와 원기를 만드는 데 긴요한 약이다.

그러나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가 않다.
축사밀(縮砂密)의 씨 사인(砂仁)을 넣은 술 사인주에 생지황 뿌리를 취하도록 담갔다가,
햇볕에 꺼내어 바싹 말린 다음, 이번에는 뜨겁게 찌는 숙지황.
그것도 그냥 찜통이나 솥에 넣고 잠깐 찌는 것이 아니라,
불가마를 만들고는 거기에 쌀알만큼씩 굵은 모래를 채운 뒤, 모래 속에 지황을 묻어놓고,
그 위에 자갈을 무겁게 덮어서 함봉을 하여, 나뭇가지 정하게 꺾어 오래오래 공들여 뜨겁게 쪘으니.
지금이야 그리 하기 어찌 쉬우랴마는,
옛날에는 산 속에서 약 짓는 노인들이 도(道) 닦는 마음으로 이와 같이,
똑같은 순서를 아홉 번씩 되풀이했다 한다.
한 번으로 끝난대도 결코 수월치 않을 것을,
지황은 묵묵히, 소스라치게 독한 술에 담그어졌다가,
폭건(曝乾)으로 묵어 목이 타게 말려졌다가, 한중보다 더 무섭게,
마지막 수분이 다 빠지도록 쪄졌다가, 다시 처음부터 단 한치 달아날 길도 없이
그 일을 당하면서 조금씩 약이 되어갔던 것이다.
그것을 어찌 하루에 다 할 수 있으리오.

지황으로 태어난 한 세상을
그렇게 오직 온 몸뚱이 목숨을 찌고 말리는 일에 다 들여야 했으니,
지황이 만일 사람처럼 생각 있어 문득 돌아본다면,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기품을 자랑하는 왕후장상 소나무도 아니요, 뜨락의 군계일학 모란꽃도 아닌,
일개 풀뿌리로 태어나 별로 누린 것도 없이,
무슨 좋은 날 기약된 것도 아니면서 어이하여 이와 같은 곤욕 과정을 견디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오직 그가 약재(藥材)로 난 탓이다.

약재 아니더면 그러할 리 천만 없는 혹독지경을 숙지황은 몸소 겪으며,
긴긴 나날, 취하고, 울고, 가뭄에 갈라지는 논바닥처럼 제 몸 트고 쪼개져 저 실핏줄의 마지막까지 다 마르고,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불덩어리 불가마 한복판에 이글이글 파묻혀 뜸질에 잠 못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그 몸에 점점 술(滿)이 없어지는 지황은,
본디의 물 많고 노르스름한 살덩어리를 벗어가고, 조금씩 독성을 거르고,
드디어는 쫀득쫀득 정혈만 남아 새까맣게 엉긴 약재로 값지게 태어나는지라. 잡티와 한숨과 허상도 다 버린.
한 번 찔 때마다 흑칠 같은 윤택이 단맛과 함께 자르르 깊어지는 숙지황은,
또 한 번, 다시 한 번, 찌고 찔수록 약효가 더욱 신묘해진다.

장독대 언저리의 하찮은 풀뿌랭이 하나도,
제가 가진 약성(藥性)을 제대로 발휘하게 하려면 이와 같을진대,
사람이라면 그 어찌할 것인가.

사람이 제 값나게 살아서, 눈빛만 맞추어도 약이 되고, 소리만 들어도 허기가 가시며,
그가 다만 목숨 가진 이승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온기 도는,
그러한 날을 이룰 수 있으려면 과연 몇 증 몇 포를 해야 하는 것일까.
사람이 일생에 모진 일을 세 번만 당하여도 그만 다 늙는다 하는데. 풀뿌리만 못할 리 있으랴.
아무러면 사람같이 오묘한 것 하늘 아래는 다시 없을 터인즉. 약이라면 사람만한 약 어디 있을까.

그대, 괴로운 이여.
누구의 아픔과 허손에 쓰이려고, 그토록 제 몸을 약으로 달이고 있는가.
그러나, 꿈에라도 슬플 일 없는 이를 부러워 말라.
낮도 밤도 없이 너무나 밝은 태양만 내려쪼이면
제 아무리 기름진 옥토라도 부스러져 사막이 되고 마는 법이니,
나를 찌며 번민으로 구증구포,
눈물이 나를 적시우는 불면의 밤이야말로
나의 대지에 스스로 내리는 단비가 아니랴.

술 보다 더 독한 인연에 대취(大醉)하여 고꾸라진 이여.
내가 바라는 생의 소망 그 무엇이 아직도 발소리를 풀지 않는 침묵의 봄날,
견딜 일 많은 시름을 잠시 놓고, 저 흐르는 물, 피는 꽃을 바라볼 일이다.

'사랑이여, 이제 너도 돌아오라.'라고 부르던 어느 시인의 노래 한 소절 손짓을 간절히 마음에 담고,
이 봄의 밤, 숙지황같이 검은 강물 돌아오는 물비늘 이랑을 나는 보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아직은 돌아오지 말라.
내 이 가슴에 약이 덜 차 아직 이 봄이 약(藥) 봄이 아니어든.
천지에 난만한 꽃 피어나 독하게도 휘황하여 아득한 어질머리 일으킬지라도.

그대여, 내 아직 약 아니 되었거든 더디 더디 오시라. 조금 더 홀로 두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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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9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0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3-10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운 글이네요. 애절하다.. 주소 복사해서 제 서재에 좀 넣겠습니다.
종종 읽고 싶어서요. ^^

프레이야 2010-03-13 10:1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네 가져가셔서 읽으세요.
저도 그러려고 여기 옮겨놓았어요.^^

후애(厚愛) 2010-03-1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름다운 글입니다.
저도 담아갑니다.^^

프레이야 2010-03-13 10:13   좋아요 0 | URL
후애님, 몸은 어때요? 잘 지내세요.

blanca 2010-03-1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냥 프린트해서 꾹꾹 눈에 눌러 담을래요. 프레이야님의 혼불 독서 기행을 따라가다 저도 갑자기 혼불을 구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헤매 다닐지도 모르겠어요.

마녀고양이 2010-03-11 10:04   좋아요 0 | URL
저두 혼불 못 읽어서 아래 글 읽고 현재 보관함에... ㅋㄷㅋㄷ

2010-03-11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1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은 훈장(勳章)


천 상 병



꽃은 훈장이다.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훈장이다. 

산야(山野)에 피어있는 꽃의 아름다움.

사람은 때로 꽃을 따서 가슴에 단다.
훈장이니까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으젓한 일인가.

인류(人類)에게 이런 은상(恩賞)을 내린 하느님은
두고 두고 축복되어 마땅한 일이다.
전진(前進)을 거듭하는 인류의 슬기여. 
 

 

-------- 

 

  봄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무춤하고, 내일 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들린다. 날이 아직은 꽤 차다. 큰딸은 오늘이 월요일이라 기숙사에 다시 들어갔는데 아이팟 mps를 두고 갔다고 해서, 도서관 갔다 나오는 길에 갖다주었다. 수학수업 중이었다. 5분 정도 복도에서 기다렸다가 마치고 뒷문을 열고 부르니까 친구들이랑 수다떨다가 헤헤거리며 나왔다. 2학년이 되었는데 즐겁게 잘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데 학교가 꽤 썰렁하고 추웠다. 복도는 또 왜그리 황폐해보이던지. 좀 화사하게 환경미화 좀 하지. ^^

 

 전주 한옥마을 가운데 위치한 최명희문학관을 2월말에 다녀와서 방금 퇴고까지 다 마치고 원고를 보냈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의 중요한 공간으로도 나온다고 하여 더욱 가보고 싶었던 집이다. 글에 영혼이 거한다면 그이의 집만큼 그 느낌이 아늑하게 살아있는 집도 없을 듯했다. 세상과 영이별 후 그런 소담한 집 하나 있어 숨 쉴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행복은 산 사람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집"이 없는 나는 부럽다. 그이의 영원한 한옥 한 채, 그 옆으로 경기전과 전동성당 등 가볼 곳이 두루 많은 마을이었다.  

 

 혼불 10권은 그동안 못 읽고 있었던 대하소설이었는데, 이 기회에 중고샵에서 저렴하게 구입했다. 대하'예술'소설이라고 적혀있다. 오래되어 좀 누런 책장이 오히려 마음에 좋다. 대만족이다. 1권의 1판 1쇄는 1996년 12월, 1판 18쇄는 1999년 1월로 적혀있다. 우선, 곳곳에 유명한 글귀로 소문난 곳을 찾아 훑어보았다.

 

  최명희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96년 '혼불'의 집필을 마치고 1998년 12월 난소암으로 세상을 떴다. 사실은 완성작이 아니라고 한다. 작가는 해방 후 6.25, 굴곡진 현대사까지 쓰고 싶었다고 하니. 2년 후 2000년 10월에 수상한 옥관문화훈장은, 천상병 시인이 꽃은 훈장이라 노래한 것처럼, 하느님의 은상(恩償)으로 그이의 가슴에 달렸다. 꽃과 같은 마음으로 꽃심 튼실한 외유내강의 글을 쓴 다감한 수필과 진솔하고 소박한 칼럼, 혼을 불어넣은 강연글, 벗들에게 띄운 속내 깊은 편지글이 유난히 마음에 들었다. 그중 <그대 그리운 이여>는 내가 흠모하는 수필이 되었다. 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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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3-0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혼불을 구하셨단 말이에요? 우와! 저 한참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잊고 있었는데 그 작년엔가 나온 반짝거리는 책은 얼마 안 있다 바로 들어가 버리더라구요. 결국 중고로만 읽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프레이야님의 혼불 독서에 묻어 가야겠어요. 중간 중간 글 올려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단락 마치 시 같아요.

프레이야 2010-03-08 20:43   좋아요 0 | URL
저도 중고삽을 뒤져서 얻었어요. 횡재^^
일단, 산문시같은 수필 <그대 그리운 이여>를 제 서재에 올려둘게요.
"약이라면 사람만한 약이 어디 있을까"라고..
그이의 수필을 찾아읽다가 이 글이 제맘에 확 당겼어요.

순오기 2010-03-0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혼불문학관 다녀왔군요.
혼불은 못 읽었고 문학관에도 못 갔고...ㅜㅜ
지금 확인해보니 2009년에 나온 세트는 절판이지만 낱권으론 살 수 있네요.
예전에 최명희 1주기때 KBS스패셜로 최명희문학 방송했는데 굉장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0-03-09 01:21   좋아요 0 | URL
아뇨, 언니 그곳 남원의 혼불문학관 말고
전주 최명희문학관요. 참 아기자기 정갈했어요.
혼불문학관도 가보고싶어요.
혼불의 배경이기도 하여 볼거리가 많겠더라구요.
그녀가 가신 지 벌써 12년이 되었군요.

hnine 2010-03-09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심 지닌 사람이 사는 집>이 완성되었군요.
봄비라는 말이 무색하게 어제 밤엔 집에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쌀쌀하던지.
오늘은 눈까지 온다네요. 내일은 영하로까지 내려간다고 하고.
오늘 어떻게 무장하고 나가야하나,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부터 합니다.

프레이야 2010-03-09 07:16   좋아요 0 | URL
네, 나인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저도 늦게 잤는데 6시에 일어났어요.
그냥 잠이 좀 안 오고 마음이 좀 그래요.
오늘 날이 많이 춥다고 하더라구요.
완전 겨울옷으로 톡톡히 무장하고 나가시기를요.

세실 2010-03-09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훈장이란 표현이 참 곱네요.
처음 보는 시가 참 좋아요.
혼불은 왜이리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지..
집에 달랑 1권 있습니다.

프레이야 2010-03-09 07:15   좋아요 0 | URL
천상병시인의 눈이 참 그런 것 같아요.^^
언제든 읽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건 오히려 손이 잘 안 가더군요.
오늘 추워요. 비는 그쳤네요.

무스탕 2010-03-09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을 읽을때는 정신줄 놓고 읽었는데 이젠 생각나는 장면이 몇 없어요;;;;
울 엄니는 청암부인이 죽는 장면을 읽고는 손늘 놓으시더군요.
기운이 빠져서 못 읽으시겠다고요..
전주엘 그렇게 다녀도 가본 곳이라곤 경기전이랑 덕진공원밖에 없어요. 왜 이렇게 퍽퍽하게 사는건지.. -_-
다음에 전주 내려갈땐 프레이야님의 숨결이랑 발자국이 남아있을 최명희문학관도 꼭 가봐야 겠어요 ^^

프레이야 2010-03-09 09:3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엄니도 읽으셨군요.^^
전동성당이 참 멋있었어요. 구석구석 느리게 걸으며 다니면
좋을 도시 같아요. 덕진공원의 연꽃은 저도 그림으로만 봤다우.
무스탕님 좋은하루!!

L.SHIN 2010-03-0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시도 프레님의 글도 좋습니다.
저 역시 꽃에 대한 글을 올릴려고 어제 써놓은게 있는데...
마치, 제가 이 글을 보고 쓴 것과 같은 느낌이 나는군요. 희안합니다.(웃음)

프레이야 2010-03-09 11:30   좋아요 0 | URL
그래요?^^ 비슷한 감정, 비슷한 심상이 친근하기도, 놀랍기도 해요.
밤새 비가 내렸는지 베란다창틀에 빗방울이 맺혀있어요.
날이 흐리네요. 그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락방 2010-03-1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해에는 혼불을 읽어야지, 해놓고 무심히 넘겼는데 이 페이퍼를 보니 다시 혼불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솟았어요. 셋트는 절판이지만, 저 위에 순오기님 댓글을 보니 낱권으로는 살 수 있나 보군요. 저는 긴 셋트는 낱권으로 사보는 쪽이 더 편하니까 낱권으로 사서 읽어야겠어요. 다 읽고나면 프레이야님과 혼불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겠죠?

프레이야 2010-03-13 10:15   좋아요 0 | URL
그랬어요? 다락방님^^
우리 다음에 혼불에 대해 얘기 나눠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요.
 

그대를 어찌?

 

 

황동규

 

 

복사꽃 조팝꽃 산벚꽃 싸리꽃

꽃 물결 때문에

길들이 온통 뒤엉켰구나.

그 길에 엉켜 앞뒤 못 보고

아파트의 찌든 살 한 덩이

떠돌지 않고 돌아왔다면

그대를 어찌?

 

가슴에 주렁주렁 꽃채 매단 큰 재 하나 넘으면

작은 재들 머리에 꽃동이 이고 떠돈다.

처음 보는 재도 낯익은 재 같아

벼랑 가까이 끌려가다 아슬아슬 놓여난다.

발 바로 앞에서 산까치 한 마리 현란히 난다.

벼랑이란 바로 날기 시작하는 곳.

그 날음에 눈 퍼뜩 떠져 벼랑 반보(半步) 앞

살 떨림 한번 격하게 격하게 그대 몸 훑지 않았다면

그대를 어찌?  

 

- <외계인> 황동규 시집, 중(문학과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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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3-0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대보름이라고 동해안 길들이 온통 뒤엉켰더군요.
왠지 뭔가 달님께 소원 비는 것도 온통 잡스러운 듯한 느낌에 기분이 별로였더랬죠.
아파트의 찌든 살 한 덩이, 사는 일이 이토록 잡스럽습니다. ㅎㅎ

이 봄, 건강하시고, 늘 웃음 가득하시길...

하늘바람 2010-03-0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이란 날기 시작하는 곳.
멋져요 작년이 벼랑이었다면 이제 올핸 날일만 남은 것같아요 님
멋진 시 감사해요.

비로그인 2010-03-0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 반 보!


같은하늘 2010-03-0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이란 바로 날기 시작하는 곳, 이란 글귀를 보니 한비야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좋은 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3-0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황동규 시인의 시는 가슴으로 와 닿아요.^^
 

毒은 아름답다

 

함민복 

 

은행나무 열매에서 구린내가 난다 

주의해주세요 구린내가 향기롭다  

 

밤톨이 여물면서 밤송이가 따가워진다 

날카롭게 찌르는 가시가 너그럽다 

 

복어알을 먹으면 죽는다 

복어의 毒이 복어의 사랑이다 

 

자식을 낳고 술을 끊은 친구가 있다 

친구의 독한 마음이 아름답다 

 

- 함민복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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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2-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0-02-18 20:07   좋아요 0 | URL
섬님, 복어의 독이 복어의 사랑이다..^^
쓴맛을 달다할 수 있으면 좀 어른이 되는 건가요?

2010-02-18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좋은 일들






심보선



 

오늘 내가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을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 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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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흔 2010-02-07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stella.K 2010-02-07 11:33   좋아요 0 | URL
헉, 여흔님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