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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오늘 배캠의 철수씨는 촌철시인 김경주를 모시고 시와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경주가 대학시절 손으로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외곤 했다는 시는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다. 나는 처음 들은 시인인데 당시 이 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젊은 층의 입에서 입으로 많이 불렸던 시라고 소개한다.

우리가 상정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궤도, 혹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잣대로 판단되는 성공과 실패, 우월과 열등, 도덕과 부도덕, 이 모든 것에서 탈주할 수 있기가
쉽지 않지만 그런 자유를 꿈꾸는 자는 그래도 반은 이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평가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가장 행복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김중식 시인은 이 시집이 처녀작이자 그 후속 시집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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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2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경주 시인은 알아도 김중식 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봐요. 그런데 올려주신 저 시가 그냥 마음에 와서 팍 꽂히네요 ^^ 뭔가를 깨달은 사람이 한 수 들려주는 선담 같기도 하고요.
대학 시절에 벌써 저런 시를 외우고 다녔다는 김경주 시인도 참 멋있고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주위에 시인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있었다면 ㅋㅋ...연애하느라 공부도 제대로 못했을 듯 해요 ㅋㅋ

프레이야 2011-09-29 11:00   좋아요 0 | URL
나인님 오늘아침 여기는 가을비 촉촉해요.
지금은 좀 잦아들었는데 이 비 그치면 가을이 확 다가올 것 같아요.

그런데 김경주 시인은 목소리에서 좀 깼어요.
외모나 시의 분위기에서 받은기대와는 좀 달랐어요.^^ (이것도 저의 편견이겠죠ㅋ)
저 시도 직접 낭송했는데 낭송이 별로였어요.ㅠ
하지만 시와 그에 대한 내용은 좋았답니다.
저 시 뒤에 하나를 더 소개했을텐데 차에서 내리느라 못 들었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1-09-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전설의 시집이지요.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
시 쓰는 어떤 언니가 저에게 사주지 않았다면 저도 몰랐을 테지만요.
이 시집, 저도 한때 되게 좋아라 했었지요. 다시 읽으면 어떨까, 갑자기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프레이야 2011-09-29 23:18   좋아요 0 | URL
전설의 시집이었군요.
이 시집을 소개하던 김경주 시인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섬님 반갑습니다.^^

비연 2011-09-2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중식 시인은 지금 뭘 하며 지내고 있을까요..궁금해집니다.

프레이야 2011-09-29 23:18   좋아요 0 | URL
비연님 오랜만이에요.
하얀 구름이 하트네요.^^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 팬이 많은 시인인가 봐요. 저 시만 해도 전 참 좋으네요.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지난주 나가수에서 부른 박정현의 '나 가거든'이 들을 때마다 울컥하게 한다.
인연이란 세상 다했을 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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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2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이야기드렸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지난번에 차를 타고 나가면서 푸른 나무들을 보는데 엉뚱한 공상을 하게 되었어요.
인간도 말이죠, 나무처럼 봄마다 태어나고 겨울마다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공상이요.
그러면서 해마다 조금씩 자랐으면 좋겠다 이런 공상이요. 저희가 40, 50대가 되어도
봄을 맞을 수 있어서 다시 쭉쭉 뻗어나갈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공상이요....
하지만 언니 말씀대로 시간이 남았죠, 우리 함께 갈...... 그져, 부비부비~

프레이야 2011-08-03 20:33   좋아요 0 | URL
겨울잠, 인간도 그걸 한다면 재미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는 대개 편안한데 가끔은 불안하기도 해요
남아있는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나무 한 그루 떠올려봅니다.
지난번 마녀님이 그린 나무와 그 돌아가던 길도 생각이 나네요.
부비부비 too ^^

2011-08-03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3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면의 시간이 악순환을 거듭하는 나날,
오늘 아침 시원하게 긋는 빗소리 들으며 큰딸 학교에 데려다 주고 안아주고 돌아왔다.
현관에서 자꾸 머뭇거리며 발길을 떼지 못하고 서 있던 새하얀 얼굴이 눈에 밟힌다.
고3, 지금 한참 힘들 때인데 어제낮에도 죄없는 애한테 내 답답하고 화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터뜨렸다.
주말에만 보는데 맛난 것도 챙겨주고 그래야되는데 그렇게도 못하고 엄마로서 참 많이 미안하다.
딸, 우리 건강하게 이 지긋지긋한 여름을 잘 견디고 나아가자.

오늘아침 문학광장 배달시는 아주 재미있다. 깜찍하다.
그리고 지리한 장마와 개같은 폭우처럼 잡다한 것들을 모두 뻥~ 날려주는 가벼운 시다.
가벼움, 그래 그게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내겐. 김선우 시인은 묻는다.
시인이 필요한 곳은 사람의 몸, 마음, 정신 어느 곳일까.. 라고?

 

 ----------

김민정,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꼭 한 달 만에 차였다
헤어지자며 남자는 그랬다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므로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호(號) 하나 달아드리니 son of a bitch  

사전은 좀 찾아보셨나요? 누가 볼까
가래침으로 단단히 풀칠한 편지
남자는 뜯고 개자식은 물로 헹굴 때
비로소 나는 악마와 천사 놀이를 한다,
이 풍경의 한순간을 시 쓴답시고

 
 
 
 
 
시_ 김민정 -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검은 나나의 꿈」 외 9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가 있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함.
 
 


 
흥, 치사하군요. 언제는 특이하게 시 쓴다고 달라붙더니 이제와선 시 쓴다고 트집 잡는 당신. 시인이 필요한 곳은 인간의 몸, 마음, 정신 중 어디일까. 세상의 어느 자리에 시인은 앉을 수 있을까. 헉, 그게 그런 거였어? 다정과 힐난이 줄넘기 넘는 아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거야 인생 다반사 그 모양이니 그렇다 치지만, 차버리고 떠나는 마당에 꼰대 같은 이유씩이나 조목조목 들이대며 ‘안전망’ 구축하는 당신. 마음 변했으면 그냥 쿨하게 잘 가줘요, 당신한테 시 쓰고 살라고 안 할 테니까. 여기서 뭉개져 시 쓰고 사는 거야 내 인생이죠. 난 내 인생이 좋다구요! 애인과 우습게 헤어지고 화가 나서 팔짝팔짝 뛰다가 푸른 밤바다를 보고 온 것 같은 시. 시시콜콜 가르치려드는 꼰대님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로 쓰기 쉽지 않은 바람맞은 시. 깎자고 덤비는 세상에서 너무 싸게 파는 거라서 더 이상 깎아줄 수 없는 시. 안 착해 보이는 착한 시. 그러니 우리 해피하자구요.
 
- 문학집배원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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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는 완전 그런 느낌이예요,
저보고 '너 상당 공부한다며? 상담가 되겠다며? 그런데 심성을 그리 먹어도 되냐?' 머 이러는거...
그러니 항상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본인이 무엇을 하든 속내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그런거...

ㅋ!ㅋ!

추신. 따님은 언니의 속마음을 충분히 알리라 생각해요... 멋진 따님이니까요. ^^

2011-08-02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8-0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인의 다른 시들도 읽어보셨지요? 읽는 사람을 때로 당황하게도 하고, 솔직하기도 하고, 뻔뻔한 것 같기도 하고, 흔한 이름인데도 한번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시인이어요.

오늘 아침 마지막에 한번 꼭 안아주는 순간, 모든 게 스르르 녹아내리지 않았을까요? 큰 따님이요...

프레이야 2011-08-01 18:54   좋아요 0 | URL
아뇨 처음 만나는 시인이에요. 나인님은 다른 시도 읽어보셨군요.
안 착해 보이는 착한 시^^
애가 부쩍 마음적으로 기대고 싶어하는데 제가 잘 못 해주고 미안한 마음이에요.
이렇게나마 같이 있을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위로 고마워요 ^^
평안한 저녁 보내세요.

진주 2011-08-0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걸 보니 왠지 시가 싫어지는데요?
에이~ 시답잖아~ㅎㅎ

ㅎㄱ님댁 고3은 얼굴이 하얗도록 공부하나봐요.
우리집은 어제 등산 갔어요.
가족 행사라서 고3도 예외는 아니죠^^;;

프레이야 2011-08-01 18:56   좋아요 0 | URL
진주님의 언어놀이는 늘 기발해요.
시답잖아 ㅎㅎ 동의해요.ㅋ
공부보다, 원래 하얀데다 바깥활동 안 좋아하고 그런 점이 저랑 닮았어요.
제가 고만할 때 무지하게 창백했거든요.
가족행사로 등산요? 에고 전 더워서 시러용.
아들은 좋았겠어요.


라로 2011-08-0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거나 첫딸이라 더 그럴까요????
저는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프레이야님의 잘못이라고 생각 할래요,^^;;
저도 그렇걸랑요,,ㅠㅠ
무조건 사과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세요. 사랑 팍팍~~~응?
빨래 삶다가 깜빡 졸았어요. 졸다가 무서운 느낌이 들어 퍼뜩 정신 차리고,,ㅎㅎㅎㅎ

프레이야 2011-08-02 10:09   좋아요 0 | URL
네, 제 잘못이 맞아요. ㅠㅠ
어제밤에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로 맺은 메시지 보냈어요.
"ㅎㅎㅎ 안녕히 주무세요." 이렇게 쿨하게 답장 왔어요. ^^
빨래도 삶고 나비님은 진짜 몸이 몇개에요? 응??ㅋ
졸다가 무서운 느낌 들어 놀라 깨는 기분, 아 그거 알아요.
무서운 느낌 드는 거 그게 꼭 이유가 있나요?뭐? 사는 게 다 무서운 거지.ㅋ

순오기 2011-08-02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한테는 체면 때문에라도 무례하게 안하는데~ 그래서 가족이 제일 만만하다잖아요.ㅜㅜ
나도 울딸 고3일때 편들어주지 않고 내처서 애를 서럽게 했어요.
엊그제 일욜엔 해사 시험친다고 집에 들렀던 아들한테 문 열어주었다는데, 왔다 간 것도 모르고 잤다니까요.ㅜㅜ
그래도 가족이라 그런저런 허물을 서로 보듬고 덮으며 사는거지요.^^
김민정 시인~ 기억할게요.

프레이야 2011-08-02 10:13   좋아요 0 | URL
네, 언니 만만하고 편안하니 그렇다고 이해해주는 딸이라 고마워요.
엄마가 좀 모자라서 미안하지만요. ㅠ
언니도 그래 편안하군요.ㅋㅋ 그래도 언니는 다른 때에 열심히 정말 잘 하시잖아요.^^
제 허물만 너무 많이 보이는 거 같아서 헐~
그래도 이렇게 가끔 찡찡거리면 얼른 달려와 위로해주시는 여기 벗들 있어서 좋아요.

뽀송이 2011-08-0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글을 이제야 보네요.^^;;
프레이야님도 고3 엄마노릇 힘드시죠?
아니면 이 여름이,,, 그냥 엄마라는 처지?가 힘든 건가요?ㅎ ㅎ
저도 작년에 고3 아들 겪으면서 뭐랄까??
막 이래저래 복잡한 감정에 힘들었어요.^^;;
뭐라고 딱히 설명할 수 는 없지만요.ㅎ ㅎ ㅎ
많은 분들이 그런가보더라구요.^^;;
따님도 수시 써야죠? 학교, 학과 결정은 하셨어요?
무더위에 님도 따님도 건강관리 잘하셔요.^^
일단 건강해야 뭐든 합니다.^^

프레이야 2011-08-11 01:17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고3엄마 선배로서 어떠셨어요?
남의 일일 땐 잘 몰라도 자기일이 되면 확실히 다르죠.^^
갈수록 살아가는 일이 무섭다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해요.
학과는 아이가 꼭 가고 싶어하는 데가 있어서 결정되어 있어요.
지금 무더위보다 더한 불안과 싸우고 있을 딸아이를 위해 그저 마음만이랍니다.
고마워요.^^
 


비밀 

 

사시사철 나는
할 말을 못하여 몸살이 난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며
다만 절실한 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 절실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행복......
애정......
명예...... 
권력......
재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무엇일까
실상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바로 그것이
가장 절실한 것이 아니었을까

가끔
머릿 속이 사막같이 텅 비어 버린다
사물이 아득하게 멀어져 가기도 하고
시간이
현기증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그게 다
이 세상에 태어난 비밀 때문이 아닐까
 

 

-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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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뒷쪽에선 비가 내리고

그 앞에는 반짝반짝 웃는 나의 얼굴

에나멜처럼 반짝이는

저 단단한 슬픔의 이빨.

 

어머니 북이나 쳤으면요.

내 마음의 얇은 함석 지붕을 두드리는

산란한 빗줄기보다 더 세게 더 크게,

내가 밥빌어 먹고 사는 사무실의

낮은 회색 지붕이 뚫어져라 뚫어져라,

그래서 햇살이 칼날처럼

이 회색의 급소를 찌르도록

어머니 북이나 실컷 쳐 봤으면요.

 

 

 

- 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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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4-29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이 두드려 울리는 북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두드려 울리게 하는 북이면 좋겠어요. 실컷 칠 수 있는 북이요.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북소리란 어휘때문에 더 절실해 보이고 시에서 소리가 나는 듯 하네요.

프레이야 2011-04-29 20:37   좋아요 0 | URL
그죠, 최승자님의 시는 뜨겁고 강렬하네요.
신산한 삶이라해도 신명나는 북소리로 훌훌 우리 날려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