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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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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실린 추모 산문 세 편부터 읽으면 정미경 작가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떠 있던 달을 기억하며. 2016년 정미경의 마지막 단편 <새벽까지 희미하게>가 표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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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목에 닿자 어둑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짱뚱어다리 위에 서서 한순간에 잠기는 해를 바라보았다. 왠지 목이 잠겼다. 붉은 해를 삼킨 검푸른 바다가 빨아 당길 듯 넌출거렸다. 짙어지는 어둠 속에 바다는 소리 없이 잠겨들었다.

 

외로운 섬끼리 섬을 찾아갔다. 섬에 가서도 우리는 익숙하게 거리를 두고 떠 있는 섬처럼 편안하기도 적적하기도 했다. 깊은 고요 속에 뒤척이다 여명이 밝아오자, 아무도 밟지 않은 너른 바다로 걸어 나갔다. 엎드려 있던 하얀 파도가 리듬을 타며 들고 일어났다. 파도가 일으켜 세워주는 마음을 수평선까지 뻗었다. 기지개를 켜듯 그렇게.

 

뜨끈한 매생이국으로 속을 달래고 숙소를 빠져나온 우리는 겨울햇살이 포근히 내리쬐는 섬을 천천히 돌았다. 마음이 붙들리는 곳이면 어디든 차를 세워두고 느리게 거닐었다. 섬은 그야말로 스스로 그러한 풍경이었다. 마음이 더없이 수굿해졌다. 세상의 소음을 삼킨 그 섬에서 우리는 어떤 풍경이었을까.

 

풍경 속에 소금밭이 자리했다. 살짝 얼어 있는 그 위를 조심스레 디뎌 보았다. 소금밭 앞 쪽으로 길게 이어진 갯둑에는 나무로 지은 집들이 간격을 두고 도열해 있었다. 쨍한 하늘을 받들고 선 몸에 풍화의 흔적이 위엄마저 풍겼다. 함석판이 덮인 지붕이 부조화를 연출했지만 시커먼 나무판 사이사이 밴 냄새가 묘한 감정을 불러왔다. 소금꽃을 품었던 공기와 바람과 햇살의 냄새였다. 이제는 할 일을 못하는 이 집들은 속엣 것을 다 내놓은 빈 집, 세상의 어미들처럼 낡아가는 껍데기였다. 모진 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버텨 서 있는 육신이 삭아져 내리고 있었다. 오래된 시간이 켜켜이 쌓였을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소설 한 편이 그해 겨울을 불러준다. 정미경 작가의 유작 장편소설 <당신의 아주 먼 섬>에는 증도에서 만났던 그 집이 등장한다. 강렬한 기억 속, 바람과 파도와 그 둘의 시간을 모두 품고 있는 소금집이다.

 

부고는 늘 거짓말 같다. 그이의 소설을 흠모하는 독자로서 믿기지 않았다. 동반자 김병종 화가는 일 년 전 아내가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하고 세상을 뜬 후, 반지하 집필실을 정리하다 원고뭉치를 발견했다. 완벽주의자가 그냥 둔 원고라면 미완일 게 분명하지만 미완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 믿고 발간을 결심했다. 자신의 강요 아닌 강요로 탄생한 소설, 당신 때문에 내 몸이 삭아져 내린다고 투정한 아내를 향한 미안한 마음에 집에 오면 방에 들어가 울음을 토하며 애도의 나날을 보내온 남자. 최초의 독자이자 최후의 비평가였던 그는 아내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면서도 잘 몰랐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우리처럼 서로 조금은 먼 섬이었을지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내는 쓸쓸한 사람풍경과 인물의 내면을 신랄하게 파고드는 정미경 소설의 문장들 뒤에는 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고픈열망이 담겨 있다. 그이가 얼마나 생을 사랑한 사람이었는가를 남은 사람들의 추모 산문과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남편의 발문에서 알게 되었다. 일상에도 문장에도 빈틈없이 성실하고 온전했던 그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예감하였던 걸까.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훈훈한 기운이 스미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매만지기 이전의 글이라 그이의 민낯과 속마음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읽다보면 아릿한 풍경과 연민이 이는 사람들 속으로 어느새 걸어 들어가 있다. 상실과 이별, 각자의 상처를 어쩌지 못해 차오르는 눈물로 짜디짠 소금꽃을 피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섬에 모이고 섬에서 나아간다. 슬픔도 바람에 날리면 바람이 되고 눈물도 바다에 녹이면 바다가 된다. 섬은 그대로 치유의 다른 이름이 된다. 이러저러 맺어진 관계의 중심에는 버려진 소금집을 도서관으로 만들려는 남자가 있다.

 

해풍이 불어드는 도서관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너무 멋지지 않은가.  나란히 서 있는 소금집의 칸칸을 다른 종류의 책들로 정리하고 한 칸 정도는 카페로, 작가를 대신한 그 남자가 이루어낸다. 세상의 이익에는 무관심하게, 뚝심 있게 해내는 일이다.

 

남자는 바람이 집채를 들어올려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 해도 다시 데리고 오면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담담하고 덤덤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부드러움 속에 신념이 밴 그런 목소리에 나는 빠져든다.

 

언젠가 김병종 화가는 아내에게 좀 몽롱하게 써보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정 작가는 당시 똑 부러지는 말로 퉁을 주었지만 그 말을 염두에 두었던 듯하다. 이 소설의 끝은 다소 몽롱朦朧하다.

강풍이 불어와 집을 날려버리는 순간, 눈앞에서 세계는 잠시 탈색되었다. 우주의 뿌리처럼 빛이 바다 위에 떠올랐다 사라졌다.(211p)'고 쓴 문장에서 세상을 탐미하는 작가의 형형한 눈빛이 반사되어 내 눈이 다 부시는 것 같다. 남자는 시력을 잃어가는 병에 걸렸지만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가 하나의 도서관이라면 우리도 하나의 책, 하나의 작은 세계, 곰팡내 나고 빛바랜 시간의 퇴적물이다. 영원한 동시에 덧없는 우주의 먼지, 바람에 날아올라 공중에서 빛을 발하는 하나의 집일 것이다.

 

스러져가는 소금집을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 누구에게든 맞춤한 일이 운명처럼 주어진다. 그 운명을 사랑할 때 나의 집은 어디서든 참된 빛을 발할 것이다. 지독하게 사랑한 운명 안으로 훌쩍 날아간 그이, 문학의 제단 앞에서 영육靈肉을 사리지 않은 작가의 마지막 문장 앞에서 살포시 눈을 감는다.

 

 

 

 

- 바람소리가 바깥에 있을 때보다 더 세차게 들린다. 틈 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거친 목관악기처럼 울어댔다. 불협화음은 불안한대로 아름다웠다. (중략)

누군가 거대한 입을 벌리고 검은  구름을 토해내는 것 같다. 그 틈 사이로 붉은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디선가 커다란 나무이파리가 휙휙 날아왔다. 창고 지붕들이 들썩거렸다. 갯벌의 풀들이 바닥을 쓸 듯 엎드렸다가 가볍게 일어나곤 했다. 바람의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갯둑에 서 있는데 몸이 주춤주춤 뒤로 밀려났다. 입고 있는 옷이 파닥파닥 소리를 내며 나부꼈다. 바다가 하얗게 일어섰다.

  내가, 마지막으로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야.  

  (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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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9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9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8-02-20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가본 곳이라 글을 읽으며 눈앞에 풍경을 데려다 놓게 되네요. 이 책 기증받았만 아직 순위가 밀려있어요~ 정미경 작가님 마지막 작품이라 안타가워요.ㅠ

프레이야 2018-02-20 12:46   좋아요 0 | URL
네. 많이 안타깝지요. 좋은 작품을 더 볼 수 없다는 것도 생이 꿑난 것도요. 날이 따뜻해지면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요.
 

건물이 아주 멋지다.
실내로 들어가면 더 편안한 구조와 설비를 갖추어
두었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같은 게 있어서 뭔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휴대폰 통화를 그 안에서 하라는 공간이다.
방음이 잘 안 되니 그 안에서도 조용히 통화해 달라고.

1층 열람실로 들어가면 역시 자유롭게 편안하게 의자가
비치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대면낭독실과 장애인도움코너,
큰글자 도서 비치 코너가 앞쪽에 있다. 대형 돋보기도.
대면낭독실 두 개는 닫혀 있었지만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의자와 탁자가 몇 개씩 비치되어 있다. 필요한 시설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큰글자 도서 또한 반가움.
우연의 일치인지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과
김민부 시집과 특히 이상의 작품을 담은
큰글자 책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시간 가량 읽다가
여섯시가 훌쩍 넘어 나와 세종문화원으로 출발.
호수공원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곳 1층 열람실은 밤 아홉시까지 열어둔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앉아 독서나 공부 중이었다.

집에 와 보니
이상 전집 중 수필집 복각판을 중고로 구매한 게
도착해 있다. 소설과 수필의 경계가 모호한 그의 작품,
삶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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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0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종시에요? 맛지네!! 도서관에서 큰소리로 전화하는 사람들 머리를 한대씩 쥐어박고 싶었는데 그런 빨간 공중전화 부스라니 넘 귀엽네요!!
삶은 경계가 언제나 모호. 진실과 거짓도.

프레이야 2018-02-03 19:48   좋아요 0 | URL
네. 세종시에 이리 멋진 도서관이요. 모호한데 그걸 명확하게 하겠다고 따져보는 게 그닥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이거나 아니거나 별반 다르지 않을...

cyrus 2018-02-03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게실에서 전화 통화하면 될 것을 굳이 자료실 문 앞 주변에 전화 통화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 목소리가 크다보니 자료실 안에 있는데도 통화한 내용을 다 듣게 됩니다.. ^^;;

프레이야 2018-02-03 19:51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가끔 공공장소에서 목소리 조심해야겠다는 생각했어요. 말하다보면 목소리 올라가는데 말이죠. 빨간 부스가 꽤 귀여웠습니다 ^^

서니데이 2018-02-0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입춘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올해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프레이야님, 좋은 일요일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8-02-04 08:36   좋아요 1 | URL
고마워요 서니데이 님도 마음에 봄이 가득 차오르길, 하는 일에도 봄빛이 환히 들어오길요. ^^

순오기 2018-02-0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물 외관이 거대해서 압도되는 느낌이라 모서리가 둥글었으면 친근함이 더 들지 않을까 상상해봐요. 빨간 부스는 굿아이디어!^^

갈수록 공공예절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의 무신경과 무례함에 눈살 찌푸려져요.ㅠ

프레이야 2018-02-04 12:07   좋아요 0 | URL
좀 그런 느낌이긴 하죠.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 같아요. 곳곳에 비슷한 느낌의 가분수 건축물 제법 있더라구요. 다행히 가로선은 곡선이라 좀 나아 보여요 저건.
 

서촌 한옥마을 안에 조촐하게 앉은 이상의 집.
신년초의 늦은 오후, 누군가 대금 한자락을 풀고
있었다. 이상과 이상의 작품 관련한 책들이 한쪽 벽면
선반에 꽂혀 있고 사람들은 자유로이 세 가지 공간에
속해 있다. 크지 않은 실내, 흑백사진들이 걸린 마당,
육중한 철문을 열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뻥 뚫린 공간. 그것에 우뚝 서면
하늘 아래 기억 자를 그리는 기와 지붕 그리고 마당이 조감도처럼 펼쳐진다.
李箱에게 헌사하는 방이라고 적힌 좁은 이곳은
방이라기보다 하나의 출발점 혹은
하나의 상자 같은데
거기서 고개를 들면 마치
날개가 돋아나기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왠지 무서운 공간이었다.
내려올 때 계단은 왜 그리 또 어두운지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 다행히 발목을 다치진 않았지만.


- 사람들은 누구나 평생에 단 한 번은 그렇게 날아오르지 않는가? 자신의 운명을 알아버린 얼굴 하얀 아이도, 자기가 온 것을 알아버린 낯선 아이도. 누구나 한번은 그렇게 날아오르지 않는가? 부러진 날개로, 우리는 모두 한번은 날아오르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닌가?

/ 김연수, 꾿빠이 이상 p280


김연수 2001년 동서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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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8-02-03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촌은 가봤어도 서촌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네요.ㅠ 다음에 서울가면 꼭 둘러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8-02-03 08:31   좋아요 0 | URL
서촌 구석구석 소소하게 가볼 곳 많아요. 서촌 지도가 길가 입구에 있으니 보시면 꺅~하실 거에요^^ 아담한 카페도 있구요.
 

 

 

 

 

 

 

 

 

 

 

 

 

 

 

 

 

두 번째 에세이집을 세상에 내놓고 한 달도 지나고 새해를 맞이했다. 통과의례로 첫 에세이를 세상에 내보낸 후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고 싶었던 컨셉대로 했고 겁없이 저질렀다. 그동안 축하도 받고 이런저런 구체적인 좋은 말도 많이 받았다. 좀더 다른 방향의 모색도 시도해 보라는 뜻이 담긴 의외의 말도 들었다. 처음엔 야릇하게 들린 말이었지만 나를 더 발전시키고 더 넓은 길을 가보라는 채찍질이라 생각한다. 지평을 넓혀보는 것도 좋겠지만 동시에 깊이를 좀더 다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리 부지런히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느긋하고도 차근히 보람되게 나아가고자 한다.

 

첫 번째 책에서도 영화에세이 몇몇을 실었지만 아쉬움이 남았고, 해보고 싶었던 내용으로 51을 담아냈다. 숫자 51은 중의적이기도 하여 나름의 의미가 있다. '농밀한'은 고심끝에 찾아낸 단어다. 세 음절에 내 마음과 의도가  담겨있다고 여겨도 무리는 아니다. 진지한 리뷰로 페이퍼로 애정어린 피드백을 해주시는 분들, 무심한 듯하면서도 뜻밖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들, 모두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에너지총량의 법칙에 따라 자연히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을 터인데 잘 견뎌준 가족들에게도 고맙다. 때로 예민해지는 감정을 잘 받아준 이들도 고맙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은 발가벗는 일이나 다름없다.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첫 번째 책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번 책의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다. 표지를 비롯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옆에 사진 셋을 덧달았다. 눈치챌 수 있겠지만 표지 속 인물은 나. 사실 저 사진 말고 다른 뒷모습 사진도 생각했는데 좀 그런(?) 거 같아서 이걸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책의 컨셉과 잘 어울린다 싶어서가 이유라 하겠다. 의도하지 않고 찍힌 사진이라 그냥 자연스럽고 내 마음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알라딘 오공주 중 한 분은 나의 정체성과 잘 어울린다고 말씀하셨다. 그런가 보다.^^  (언젠가 나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만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해본다. 담은 사람은 물론 옆지기가 되겠지)  

 

표지사진의 장소는 부산 기장의 '마레'라는 레스토랑.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기장바다는 사람을 무한정 끌어당긴다. 마음이 너무 가라앉을 때면 이곳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진다. 요동치는 바다를. 지중해 풍의 하얀 건물이 시퍼런 바다와 어울리는 곳이다. 이번 책의 표지를 위해 찍은 게 아니라 예전에 찍힌 사진인데, 이렇게 오래전의 어느 순간이 영원히 남아버렸다. 표지부터 좋다고 이쁘게 봐 주신 분들에게 또 꾸벅 고맙다. 사실 그런 피드백이 용기가 되고 힘이 되어 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제목, 부제, 표지, 구성, 디자인 모두 내가 90%개입하여 정하고 조율했다. 애 하나 낳는 일에 비유하지만 정작 애는 그렇게 정해서 낳을 수 없다. 중요한 건, 뭐든 내 것이 되고 나면 무한사랑 무한애정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옆지기사진이 물고온 짧은생각' 에 포스팅했던 사진이다.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인 건 마찬가지.

 '盛夏'라는 제목으로 올렸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이걸 표지사진으로 먼저 생각했었다.

 

책날개 아래쪽에 작게 적혀 있지만 책에 넣은 사진 셋은 모두 옆지기 작품이다. 프롤로그 옆의 위 사진은 2013년 11월 시모노세키를 둘이서 터벅거리며 골목골목 돌아다니다 우체국 옆의 어느 찻집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살짝 나가 본 뒷마당 풍경이다. 일명 '시크릿 가든'. 석조건물 창가에 홀로 오똑하니 앉아 있는 소녀상이 나도 한눈에 들어왔다.

 

 

 

 

에필로그 옆의 위 사진은 부산 삼일극장 안의 복도인데, 삼일극장은 오래된 소위 삼류극장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자세히 보면 꼬질꼬질한 소파의 천이 날강날강 뜯겨 있다. 저 사진을 찍을 당시 그곳엔 영사기를 돌리는 시네마천국 알프레도 할아버지 같은 분도 있고 상영관 안이나 복도에서도 지극히 본능적인 남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다. 그에게 들은 말이다.

 

 

흑백필름을 주로 담는 사람이고 사진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 요즘 사람들의 구미에 잘 맞지 않을 수 있고 답답하고 칙칙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진으로 공감하고 이해와 소통이 되니 좋은 점이 더 많지만) 그런 사람이 2017년 12월 충무로에서 열린 제8회 라이카클럽 전시회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화사한 칼라 사진을 걸었다. 마음自樂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 환영할 일이다. 마음자락에 등불을 켜듯 꽃송이를 피우는 건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상대에게 밝은 기운을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저 아래 네 개의 사진은 모두 '순정'이라는 테마의 옆지기사진 카테고리 안에 있는 예전 사진이다.

 

벽에 내어거는 것과 서랍 속에 넣어 두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사진만이 아니라 말이든 무엇이든 그러하다. 순정 외에도 여러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개인전시회나 사진책을 내길 바라는 건 나의 마음이고 그는 정작 그런 욕심에는 더디게 반응한다. 돌다리를 너무 오래 두드리는 스타일이라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영원히 純情한 아마추어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전시회는 끝났지만 그날 행사가 있어 전시회에 함께 가지 못한 마음을 이곳에 걸어둔다.

 

 

 

 

 

 

 

 

 

오래된 저의 서재를 찾아와 주시고 늘 애정과 관심으로 좋은 말씀 주시는 지기님들, 무한히 고맙습니다.

올해에도 복 짓고 복 받는 밝고 충만한 날들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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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0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뒷모습 사진 정말 근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18-01-03 11:32   좋아요 0 | URL
비타민 C 같은 다락방 님, 참 오랜 인연에 감사드려요.
새해에도 기분 좋은 페이퍼 자주 볼게요.

hnine 2018-01-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중 몇개는 기억이 나요.
당시 프레이야님의 사진은 Trunleft 님 사진과 함께 알라딘 서재를 빛내주셨었죠.
글을 쓰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라고 생각되는 삶. 언제 상상해도 멋진 삶이랍니다. 프레이야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18-01-03 11:33   좋아요 0 | URL
나인 님, 기억하시네요.
이래서 이곳이 고향이라지요.
격려와 응원 말씀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가족은 예술 집안이시군요.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프레이야 님..

프레이야 2018-01-03 11:34   좋아요 0 | URL
복 많이 받으라는 말씀 고맙습니다.
새해답게 조금 설레고도 긴장된 마음으로 그러나 차분히 시작해 볼까요.

시이소오 2018-01-0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새해에도 건필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18-01-03 11:36   좋아요 0 | URL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자주 보길 바랍니다.
마음은 늘 이곳에 있는데 한동안 발길이 뜸했어요.^^

2018-01-02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8-01-03 11:38   좋아요 0 | URL
그죠. 뭐든 자신의 관심과 통하는 부분이 먼저 보이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봐도 못 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글 쓰고 책 내는 일은 그저 저 자신을 닦는 길이라 여깁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늘 응원과 칭찬 주셔서 감사해요.

단발머리 2018-01-0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이 글 쓰시고 옆지기님이 사진 찍으시면 말 그대로 환상의 예술 작품 나오겠어요~~~
알라딘 오공주님들과 같은 마음으로 프레이야님 응원합니다!!! ^^

프레이야 2018-01-03 11:39   좋아요 0 | URL
오공주에 들어오실라우?
2년 전 멋진 따님과 함께 야나문에서 나오는 길에 극적으로 만났어지요.
다정한 단발머리 님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씩씩하게 전진!!! 고마워요.

지금행복하자 2018-01-0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뒷모습입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18-01-03 11:39   좋아요 0 | URL
님, 오랜만이어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행복하시길.^^

페크(pek0501) 2018-01-0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을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18-01-03 11:41   좋아요 0 | URL
페크 님, 새해엔 같이 웃을 일 많이 만들어요.
발레하시는 페이퍼도 자주 엿볼 수 있게 써주시구요.
주변에 말하니까 발레?라면서 모두 갸우뚱 ㅎㅎ(이 나이에라는 선입견들이 있나 봐요)
저도 아무튼 새해엔 요가라도 다시 시작할까 해요.

카스피 2018-01-0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사진이 넘 멋있으시네요.프레이야님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18-01-03 11:42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고맙습니다.
같이 뜸했지요.ㅎㅎ
황금개띠의 해라는데, 뭐든 술술 잘 풀리는 한 해 되시길.

책읽는나무 2018-01-0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뒷모습보다 앞모습이 더 멋지신데 말이죠!!
저는 그동안 프레야님의 글을 읽으면서 참 우아하다란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실제 모습도 우아하면서 정감이 더해 있어 좋았습니다^^

두 번째 뒷모습은 관능적이면서 아름답네요^^
사진은 담아 주는 사람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사진 주인공이 아름답게 나오는 것같던데 남편분의 사랑스런 눈길이 느껴집니다^^
올 한 해도 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프레이야 2018-01-03 11:4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남는 건 사진이네요.
잊고 있었던 순간들을 떠올려주니 좋아요.
어느새 일 년 하고도 좀 지났네요.^^ 우리도 그날 사진 한 장 찍어둘 걸 그랬어요.
이제사 그 생각이... 둥이들이랑 민이랑 늘 가족 두루 행복하시길 바라요.
지금 앉은 책상에서 고개만 들면 그 그림이 저를 내려다 보고 있어요.
구름이 두둥실 살아나올 것 같아요. 계속 그리고 계신지 궁금해요.

겨울호랑이 2018-01-0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뒤늦게 책 출간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18-01-03 11:49   좋아요 3 | URL
겨울호랑이 님, 축하말씀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혜덕화 2018-01-0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좋네요.
2018년에도 좋은 글과 사진으로 만나기 바랍니다.
님의 책을 이제야 주문했어요.
빨리 읽고 축하해줘야지 했는데 이렇게 말로만 먼저 축하합니다.^^

프레이야 2018-01-03 11:51   좋아요 0 | URL
혜덕화 님, 어머니 건강은 어떠신지요?
이제 늙음 앞에서 순해지시는(꺾이는,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모습이 안쓰러울 때가 있어요.
제 분신과도 같은 책에 애정을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라로 2018-01-0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모습도 아름다운데!!

프레이야 2018-01-03 11:57   좋아요 0 | URL
ㅎㅎ 엉뚱하긴요
우리의 추억을 생각하며 종종 웃는다우.
돌아보면 철없던 적이 있지만 그게 또 우리지.
이만큼 나아갔고 성장했고.
늘 고맙고 사랑해요. 부족한 친구를 그냥 생긴대로 이해해줘서.
자기삶에 열정과 열심으로 매진하는 라로, 늘 응원 보내요~

psyche 2018-01-02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이 정말 좋네요! 남편분의 사진과 프레이야님의 글로 책을 묶으셔도 좋을거 같아요.

프레이야 2018-01-03 11:58   좋아요 0 | URL
프시케 님, 정말 제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보셨네요.
고맙습니다. 정진할게요^^
새해에도 좋은 모습으로 뵐게요.

마녀고양이 2018-01-0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쪼옥~♡♡♡
근사한 일 가득한 새해되셔요

프레이야 2018-01-03 12:00   좋아요 0 | URL
울마고 님도 새해 더욱 보람찬 한 해 되어요.
기를 많이 빼앗기는 일에 몰두하느라 건강 잃지 않도록 해요.
사랑스런 코알라 사진 반가웠어요. 늘 빚 지고 있는 엄마처럼 그러는 마음이
안쓰러웠는데, 이쁘게 잘 자라줘서 고맙지요.

희선 2018-01-0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보고 프레이야 님일까 했는데 맞군요 남편분이 담은 사진 다 멋지네요 전시회도 하셨군요 정말 남편분 사진과 프레이야 님 글로 책 내도 괜찮겠습니다

프레이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장 챙기고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프레이야 2018-01-03 12:01   좋아요 0 | URL
희선 님, 고맙습니다.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하기!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희선 님도 그러자구요.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나아가길.

순오기 2018-01-03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사진도 글도 참 좋아요. 흑백사진도 멋졌는데 컬러는 더 강렬하네요!!♥
아직 할 일을 못했지만 무한 애정은 변함없다오~^^

프레이야 2018-01-03 12:03   좋아요 0 | URL
오기 언니의 무한애정과 무한에너지로 이곳이 더 고향처럼 포근한 것 같아요.
늘 배울 거리를 주시는 순오기 님 하시는 일에도 응원 보내드립니다.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참 좋아요.
건강하시길요.

2018-01-03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8-01-03 21:22   좋아요 0 | URL
헤헤~ 늘 노란등불처럼 따스해서 참 고마워요. 새해엔 더욱 이쁘고 건강하고 즐겁고 기쁘게 그러자구요^^

cyrus 2018-01-0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님이 작년 말에 보내주신 두 권의 책은 한해 가장 기억 남을 만한 복 중 하나였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프레이야 2018-01-04 04:41   좋아요 0 | URL
소중히 받아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진지하게 공감하며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 태도를 배웁니다. 새해에도 여여하시길.

꿈꾸는섬 2018-01-0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보며 남다르다 했어요. 예전에 올리셨던 남편의 사진작품들도 떠오르고, 표지도 영화에세이도 모두 탁월하단 생각들어요.
곧 읽을 예정이라 내용은 아직이지만 그래도 아는 건 좋은 글들일거라는 거에요.
좋은 글과 사진 아껴가며 읽을게요.^^

프레이야 2018-01-05 10:31   좋아요 0 | URL
한결같은 꿈섬 님, 늘 고마워요. ^^
꿈섬 님에게 새해엔 더욱 좋은 일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水巖 2018-01-0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축하해요. 알라딘 광고보고 알았네요.
오랜만에 알라딘 옛 친구들 이름 보니 반갑군요.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쓰시기를...
- 팔십 먹은 할아버지가 -

프레이야 2018-01-06 21:10   좋아요 0 | URL
수암 님 너무나 반갑습니다. 그간 건강은 어떠신지요? 인사동에서 뵐 때만 해도 멋스러운 은발에 중절모가 썩 잘 어울리셨던 수암 님. 어느새 여든이시군요. 진석인 몇살인기요? 할아버지의 곡진한 사랑으로 잘 자랐겠지요. 축하말씀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인사 나누게 되네요.

水巖 2018-01-07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오랜만에 글로라도 만나니 너무 반갑죠? 진석이는 올해 18살이고 이제 고 2 되겠죠.
작년 2월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시행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2급에 합격했다네요.
하지만 요샌 학원 다닌다고 얼굴 보기도 어렵답니다.
프레이야님 댁 따님들은 숙녀가 되었갰군요. 이제 인사동 이야기는 오랜 옛날 이야기가 된것만 같군요.

프레이야 2018-01-07 10:13   좋아요 0 | URL
고2가 되군요. 잘생긴 진석이가 한국사검정까지 대단해요. 할아버지의 손길이 얼마나 정성스러운지 알지요. 인사동 11월이었지요. 골목바람이 제법 불었지만 참 따스했습니다. 그때 그 작은애가 대학2학년 되네요 올해. 수암 님 건강하기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