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산문집, 미안한 마음

 

 

2012년 11월 20, 21일 녹음완료  총 6시간 소요.

 

그저께 <어머니학교>를 잠시 미루고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미안한 마음>을 먼저 읽었다.

그리곤 어제 합창연습을 마치고 또 달려가 마저 읽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데 표지가 다르네. 내가 읽은 건 2012년 8월 10일 초판2쇄인데.

알라딘에는 이게 최근 것으로 뜬다. 내가 읽은 게 훨씬 마음에 든다. 깨끗한 흰 바탕에

단아하게 놓여있는 백자 찻잔 하나. 그릴 수도 없고 ㅠㅠ 삽화도 동화처럼 순하고 착하다.

녹음하며 안타까운 건 이런 삽화나 사진을 보여줄 수 없을 때다.

 

함시인이 강화도에서 홀로 살면서 자연과 사람과 일상에 보내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환경에 쏟는 애정도 눈에 많이 띈다. 나를 스친 인연들, 내게 온 소중한 인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연민의 눈으로 보자. 조금은 낮아질 것이고 그보다 더 행복해진다.

그것으로 족하다. 더 바랄 게 없으니. ^^

 

 

 

 

 

작은 배들의 엔진은 고물에 붙어 있습니다. 이물을 가볍게 해 파도를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배 방향을 조절하는 키도 추진력을 만드는 물 회전 날개도 고물에 붙어 있고 선장도 고물에서 배를 몹니다.

뒤에서 배를 몰아야 배 전체를 살펴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배는 앞에서 끌고 가는 힘이 아닌 뒤에서 밀고 가는 힘으로 움직입니다.   - 38p

 

 

 

두려움 속에서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배 언저리만 보이는 안개에 갇혀 있는 상황과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무엇이 다른가. 내 삶을 좀 앞선 시간에서 뒤돌아보면 결국 안개에 갇혀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현재란 시간의 섬이다.

세월이 가는 길, 세상 모든 '멈춤들'의 정거장인 시간은 현재의 뭍이다.    - 39p

 

 

 

 

내 인생이란 배도 이물이 아니라 고물에서, 전체를 두루 살펴보며 살살 달래어 잔잔한 파도 따라 밀고 나아가야겠다.

자식이든 가족이든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뒤에서 지켜보며 감싸고 밀어주는 관계, 평화로운 관계가 주는 행복감.

봉하마을 현미 낫게 넣고 포실포실하니 갓 한 밥냄새로 깨우는 나의 아침! 소소한 것들의 행복.*^^*

 

 

 

 

 

 

 

오늘 아침 무작위 선곡^^

이 음반 듣다가 영화 <버스 정류장>도 생각나고.

이 중 세번째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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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1-2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엄마가 아침에 두부랑 무랑 파 잔뜩 넣어서 시원한 김치국을 끓여주셨는데 그게 엄청 맛있었거든요. 또 먹고 싶어지는 글이예요. 따뜻한 현미밥과 뜨끈하고 시원한 국이랑 그냥 김치..

아침 맛나게 드셨어요? 이제는 더 맛난 저녁 드세요^^

프레이야 2012-11-22 22:02   좋아요 0 | URL
아침밥 뜨끈하고 맛나게 잘 드셨네요. 그래야 감기도 안 걸리죠.^^
전 굴국이랑 김치찌게랑 고등어랑 김이랑 오뎅볶음이랑 '그냥김치'랑 맛나게 먹고
디저트로 빵이랑 귤이랑 커피였어요.ㅎㅎ 저녁은 주령구빵으로 맛나게 간단히^^
와인 한 잔이랑.(만날 와인 마신단 소리ㅋㅋ)
아이님 엄마(아이님 어머님이라도 이렇게 부르고 싶어요^^)표 김치국에 무요.. 무름했을 것 같아요.
오늘 벗이 '마음이 무름해졌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너무 좋은 거에요.
그 말 제가 가져가겠다고 했어요.ㅎㅎ
날도 차가워질 건데 마음은 무름하게 폭삭하게 그렇게 살아요, 우리^^

댈러웨이 2012-11-23 10:1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먹는 걸로 저 완전 고문시키고 있음. ㅠㅠ 근데 무름이 뭐에요?

프레이야 2012-11-24 13:45   좋아요 0 | URL
댈님, 무름하다는 건 물렁물렁하고 부드럽고 깨물거나 찌르면 튕기지않고 폭삭하니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요. 무국에 무 넣고 푹 끊이거나 생선조림ㅇ이나 매운탕에 무 넣고 푸욱 익은 그 맛과 촉감이요.
우리들 마음도 무름해지자구요. ♥ 전 요새 넘 무름해져 해피무름이야요ㅎㅎ 아프지말고 멋진 주말 보내요.

2012-11-2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란 시간의 섬이다. 라는 말과 그 앞뒤의 표현이 멋지네요. 역시 시인이라 다릅니다. 이 말의 의미에 잠시 머무르며, 좋은 이미지에 머물렀다 갑니다.^^

프레이야 2012-11-22 22:02   좋아요 0 | URL
역시 시인의 산문은 달라요.^^ 이 산문집은 삽화까지도 편안하고 수수하고 착하더군요.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어요.
세상 모든 '멈춤들'의 정거장, 그게 시간이라니.
섬님에게도 편안하고 행복한 오늘저녁이라는 정거장이요.~~~^^

라일락 2012-11-23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은 좋은 일도 많이 하시는 것같아요.
저는 <어머니학교>만 읽었는데, 이 책도 관심이 가네요.

프레이야 2012-11-24 12:18   좋아요 0 | URL
네, 이 산문집은 노골노골 편안하게 읽혀요.
라일락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댈러웨이 2012-11-2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포실포실한 페이퍼입니다. ^^ 함민복 시인 올해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목소리 들어보니까 아우 완전 따뜻한 분. <꽃봇대>라는 책도 낸 것으로 아는데, 책 이름이 참 이쁘지 않나요? 책이 좀 많이 팔렸음하는 어쩐 오지랖요. Have a good day,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2-11-24 12:21   좋아요 0 | URL
네, 늦게 좋은 인연 만난거죠.^^ 참 순한 사람 같아요.
꽃봇대,는 몰랐는데 이름 참 이쁘다요~~~
댈님도 하루하루 좋은 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전 오늘 특별한 곳에 가요. 한 번도 안 가본 곳인데 재미날 것 같아요.
간접적으로 파릇했던 시절을 환기해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ㅎㅎ
 

요즘따라 하루하루가 새롭다. 작은 것 하나, 스치는 순간 하나가 모두 낯설고 설렌다. 아마도 계절 탓이려니.

11월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오늘, 아침에는 다소 흐린 하늘이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맑고 청명한 얼굴을 보였다. 

길가 가로수들도 울긋불긋, 노랑노랑. 초겨울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마저도 경쾌하다. 

환하게 노랑등불 밝히며 하늘거리는 은행나무 터널이 점자도서관 가는 길목에 나있는데,

그이들의 손짓을 받으며 빠져들어가는 듯한 황홀한 기분에 차를 길가에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넋 놓고 하늘을 쳐다보고 순간을 담았다.

너희들 참 밝고 어여쁘구나. 순리대로 가고 오고, 만나고 이별하고 어엿하구나!

 

한동안 낭독녹음한 도서 정리가 좀 밀렸다. ^^

 

 

 

 

2012. 10. 10 녹음 시작, 총 256쪽, 8시간 소요 완료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곷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진실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쏟고, 줄기를 바로잡듯 부지런히 실천하며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 문장은 성급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 정약용, [다산시문집], '양덕 사람 변지의에게 주는 말'

                                                                                                  (255-256쪽)

 

 

 

 

 

2012. 10. 29 녹음 시작, 총 390쪽, 13시간 소요 완료

 

 

이메일 언어를 통한 놀라운 사랑의 결실과 세심한 심리 분석 및 묘사가 흥미롭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의 후속작이다. 꼭 4년 전 나는 이 책을 녹음했는데 당시

내 마음의 어떤 작용이 그 책을 읽게 했다. 녹음해 둔 걸 며칠 전 들어보니 그때 내 목소리엔

모종의 무늬 같은 게 아른댔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친근감은 거리를 좁히는 게 아니라 거리를 극복하는 것이에요."

에미 로트너가 레오 라이케에게 쓴 이메일 문장이다.

나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이후 나의 4년이 흘렀고 나는 또 그때의 나와는 조금 다르기도

같기도 한 모양새로 또다른 의미의 '일곱번째 파도'를 기다린다.

산다는 건 설레는 일 아닌가.  '모든 것을 주는 사람에 대한 환상' 그것이 일곱번째 파도라면

어느 한 사람만은 '한 사람'에게 그 파도가 될 수도 있다는 설렘.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 운명.

레오와 에미는 그 파도를 놓치지 않을 만큼 영리하고 솔직하다. 물론 기나긴 이메일 언어와 몇 번의 만남, 갈등과 화해,

탐색과 이해의 시간들을 거쳐 서로 거리를 '극복'했으니. 역시 사랑하면 가까이 있고 싶고 가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사랑하기 쉬운 것인지. 육체적 호감과 육체적 거리에 '말'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는 결론은 좀 힘이 빠지지만 그게

진실 아닐까.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의 상관관계, 문장부호 하나하나의 의미, 번호매기기 질문과 대답, 재치있는 대화 등 재미난 요소가 많은, 다니엘 클라타우어 장편소설.

 

 

 

 

2012. 5. 21 녹음시작  녹음완료. 1차 편집 중,  총 495쪽 중 446쪽까지 완료.

다음 주면 마칠 듯. ^^

 

세번째 읽으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올리브는 어쩜 그렇게 살아서 튀어나올 정도로

생생할까. 어쩜 이렇게 사람의 구질구질한 이면과 내면을 짚어내 두근대게 하는 걸까.

이 소설을 읽으면 세상의 이러저러함에 의연하고 현명해지라는 응원을 들을 수 있다.

구역질 나는 순간의 기억들마저도 생의 프레임 밖으로 내치는 게 아니라 안으로 끌어들여

안고 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인생이 내게 준 게 많든 적든, 아니 많다고 생각하든 적다고

생각하든, 적절하다고 여기든.

둘러가는 듯 하나로 아우르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인물들이 남몰래 간직한 이런저런 상처와

비밀로 너덜한 가슴의 중심부를 적중하는 화살처럼 날렵하다.

'삶을 마법으로 만들 줄 아는 분이자 내가 아는 최고의 이야기꾼 어머니에게'라는 헌사로

시작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역시 그녀에게도 이야기꾼 어머니가 있다.

 

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담배 피우는 앤을 바라보며 생각하건대, 그런 안정감을 갖는 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아이가 필요했다면

사랑으로는 불충분했던 게 아닐까.

 

                                                                                                              - 378 쪽  "불안" 중

 

 

 

 

 

다음 녹음도서는 이정록 시집 <어머니 학교>, 다음 편집 도서는 한창훈의 <꽃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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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 2012-11-1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보면 항상 제 나태한 생활을 반성하게 돼요.^^;;
제가 읽어본 저 책들 언젠가 프레이야님 목소리로 들어보고 싶네요. ^^

프레이야 2012-11-16 11:37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 아.. 좋아라. 통하는 느낌^^
정말 몇 번 읽어도 좋아요, 저 책들.
귀엽고 상큼한 토트님, 오늘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요, 우리~~

아무개 2012-11-1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벽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다락방님위 추천으로 읽었는데 전 지금 두 주인공의 이름이 님의 페이퍼를 보고서야 기억났어요. 저는 에미의 남편 베른하르트-이름도 긴데-만 기억이 나더라구요. 제가 베른하르트에 감정이입을 해서 그랬나 봅니다. 밖에 날씨가 스산하네요. 날씨와는 상관없이 쫄깃!한 하루 되시길.^^

프레이야 2012-11-16 11:4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마중물님, 베른하르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읽으셨군요.
저도 베른하르트에게도 감정이입 해봤어요. 충분히 그럴 만하죠.
결혼생활이란 모순형용이란 생각이 들게 에미에게 틈을 준 그가 좀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일곱번째 파도'에서 에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 결혼이란 단지 거기에 발을 담근 사람들이
발판을 잃었을 때 꽉 붙잡고 매달릴 수 있다고 믿는 하나의 구조물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이곳은 날씨가 청명해요. 기분 좋은 정도로요.
님도 쫄깃한 하루!!!!! 되시길요.*^^*

moonnight 2012-11-1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EBS 라디오를 들으면 프레이야님 생각이 나요. 저도 프레이야님이 녹음하신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프레이야 2012-11-17 12:46   좋아요 0 | URL
달밤님, 제 생각하셨다니 기뻐요. 좋아라^^
저도 도움이 좀 될까하기도 하고 책소개도 좋고 해서자주 듣는답니다. 오디오북은 씨디로 제작돼 시각장애우들에게 배포되는 거라 일반유통은 안 되고 있어요. 순전한 자원봉사인데 무엇보다 제가 즐겁고 행복해지는 일이라 너무 좋아요.^^

라로 2012-11-1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터널이라는 표현 너무 좋아요!!!!
저희 가게 앞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큰 차창으로 바라보는 그 나무 덕분에 숨쉬고 견디고 했던듯,,,
어여쁘면서 어엿한 그것에 의지하면서,,,^^;;;;

라로 2012-11-17 14:45   좋아요 0 | URL
댓글 달고 급하게 다시 덧글,,,ㅎㅎㅎㅎ
저는 말만 이렇게 할 뿐 아주 잘 있습니다.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12-11-17 15:34   좋아요 0 | URL
어여쁘고 어엿한 나무가 참 그런 힘이 되죠.
알아요.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거. ^^♥
봄이면 벚꽃터널, 가을엔 은행터널 ㅎㅎ
나무나 꽃 좋아지는 건 나이들어간다는 증거
아닌가 몰라ㅋ 그런것들 보는 게 전같지 않으니 헉

다크아이즈 2012-11-18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질구질한 이면과 내면, 이라는 프님의 소개글만 보고도 올리브 키터리지, 읽고 싶어지네요.
그나저나 이 긴 작품들을 몇 개월에 걸쳐 녹음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위대해요. 프레이야님.
녹음된 건 전국 배포가 아니라 필요한 그분들께만 제공되는 것이지요?

프레이야 2012-11-18 19:54   좋아요 0 | URL
호호~ 제가 즐거워 하는 일이라 그저 좋아요.^^
네, 전국의 점자도서관과 관련기관에 배포되어 시각장애우 회원들에게 보급되어요.
일반유통은 전혀 안 하구요.
팜님, '올리브 키터리지'는 정말이지 강추에요. 님도 분명 아주 좋아하실 거에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에요. 우리 나이쯤 되면 더 와닿는 그런 것이요.
 

 이홍섭 시집 <터미널>, 문학동네

 

 

 

 

 

2012년 6월 22일 녹음 2시간 30분 소요 완성 

 

 

 

시집을 낭독 녹음한 건 처음이었다. 오늘 1차 편집.

다음에도 기회가 오면 또 하고 싶은 게 시집 낭독.

 

 

그런데 앞으론 소설을 주로 해야할 것 같다. 오늘 팀장이 특별히 부탁을 한다.

40대 이하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은 컴퓨터 음성 지원 시스템을 이용해 듣는 경우가 많고

청소년 이하 학생들은 점자를 학습해 점자도서를 잘 읽고

녹음도서를 이용하는 분들은 대개 50, 60, 70대 연령의 남 녀 반반 비율인데 소설류를 가장 애호한다고.

연세도 있는 분들이 귀로만 집중해 들어야 하니 딱딱한 책은 힘들다고 한다.

특히 연애소설, 그러니까 로맨스가 있고 관능적인 부분이 많으면 더 좋고.

욕설이나 저속어가 나오면 그것도 오히려 좋아하신다고.

대리만족 같은 걸까. 나도 녹음하다 그런 문장이 나오면 감정이입 되어 실감나게 내뱉는데ㅎㅎ

 

예를 들어 한창훈의 '꽃의 나라'나 김훈의 '공무도하'도 그랬고,

동시에 1차 편집하고 있는 '올리브 키터리지'에도 그런 단어나 대사들이 실감나게 나온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정말이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아무말 못할 정도다. 다음 기회에...

 

그다음으로 잘 나가는 게 에세이류인데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처럼 소녀감성이 두드러진 에세이도 의외로 좋아한단다.

미처 몰랐다. 소설 낭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녹음봉사자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아 수요와는 반비례하기에

특별히 봉사자들에게 귀띔하는 것이라고. 철학서나 종교서나 좀더 전문적인 도서는 특별히 신청하는 회원의

책에 한하여 봉사자들에게 부탁할 것이라고 한다.

이왕이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한 봉사니까 그분들이 원하는 걸 제공하는 게 맞겠다. 동감!

점자도서관 책꽂이에 비치된 소설류는 영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서 집에 있는 소설들 중 몇 권 찜해 뒀다.

이미 나는 읽은 책이지만 일순위는 <일곱번째 파도>.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를 몇 해 전 녹음했으니 후속편으로 나온 이 책을 녹음하면 좋을 것 같다.

이메일로 주고받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선 그 후속편이니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걸 상상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대화체니 듣는 사람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을 거다.

자, 그럼 소설은 목소리를 너무 차분한 톤으로 하지 말고 드라마틱하게 읽어보자구. 일석삼조!

 

그리고 자목련님 페이퍼 보고 신간 소설 두 권(각각 한강, 김선우 작)도 담아왔다. 그분들 취향에 맞을 것 같고 나도 읽고 싶고.^^

 

 

 

 

 

 

 

 

 

 

 

 

 

 

 

 

 

 

 

다시 시로 돌아가, 강원도 산골마을이 고향인 이홍섭의 <터미널>에는 좋은 시가 많다.

 

 

 

입술

 

 

수족관 유리벽에 제 입술을 빨판처럼 붙이고

간절히도 이쪽을 바라보는 놈이 있다.

 

동해를 다 빨아들이고야 말겠다는 듯이

입술에다 무거운 자기 몸 전체를 걸고 있다

 

저러다 영원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유리를 잘라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시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꼭 저 입술만하지 않겠는가

 

 

 

 

 

심봤다

 

 

  일평생 산을 쫓아다닌 사진가가 작품전을 열었는데, 우연히 전시장을 찾은 어떤 심마니가

한 작품 앞에 섯 감탄을 연발하며 발길을 옮기지 못하더란다. 이윽고 그 심마니는 사진가를

불러 이 좋은 산삼을 어디서 찍었느냐고 물어온 것인데, 사진을 찍고도 그 이쁜 꽃의 정체를

몰라 궁금해했던 사진가는 산삼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기절초풍을 했더란다. 그날 이후 사진

가는 작품전은 뒷전인 채 배낭을 메고 산삼 찍은 곳을 찾아 온 산속을 헤매게 되었다는데......

 

  그 사진가는 허름한 곱창집에서 소주잔을 건네며 사는 게 꼭 꿈결 같다고 자꾸만 되뇌는데,

그게 자신한테 하는 말인지, 산삼한테 하는 말인지, 사진한테 하는 말인지 영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 이상한 것은 그 얘기를 듣는 나도 그 사진가를 따라 오랫동안 산속을 헤매 다닌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리고 자꾸만 사는 게 꿈결 같다고 맞장구를 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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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2-10-2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프레이야님께서 실감나게 내뱉으신다구요?ㅋㅋ 박장대소했어요...
프레이야님께서 낭독녹음하신 그 도서들을 읽는분도 듣는분도 참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홍섭님의 시집은 그냥 지나쳤던 시집이었는데..
시를 잘 음미할줄 모르는데..적어놓으신 시들을 두번 내리 읽으니까..뭔지 모르게 좋으네요...
이런 느낌 주신 프레이야님~~~ 좋은밤 되시길...빕니다.

프레이야 2012-10-25 17:54   좋아요 0 | URL
히히, 잘 내뱉어요, 저 ㅎㅎ 대리만족도 하고요.
저도 우연히 만나게 된 이홍섭 시집, 좋은 시가 참 많더군요.
오늘 하루도 멋지게 보내고 계시죠, 블루데이지님^^

순오기 2012-10-25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낭독녹음하는 페이퍼 읽으면 나도 막 낭독하고 싶어져요.
애들 어릴 땐, 책 읽으면 늘 곁에 있으니까 필 돋으면 막 읽어줬는데
이젠 다들 커서 내 곁에 있어주는 녀석이 없네요.
우리 광주에서 만날 때 한 꼭지 읽어줄 것도 챙겨오세요~ ^^

프레이야 2012-10-25 17:39   좋아요 0 | URL
애들 어릴 땐 진짜 아이랑 윤독도 하고 대사 부분은 아이가 또는 제가.. 이런 식으로도 하고..
이제 애들이랑 같이 책읽기는 안 되지만 그런 기억이 새록새록^^

네꼬 2012-10-2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완전 멋있다. (얼얼한 얼굴로.)

프레이야 2012-10-25 17:54   좋아요 0 | URL
진짜 멋찐 네꼬님, 얼얼한 얼굴은 어떤 거에용??? ㅎㅎ

heima 2012-10-2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틱한 낭독!! +_+ 듣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시겠어요!

프레이야 2012-10-25 17:40   좋아요 0 | URL
소설은 그렇게 좀 후까시 넣어 낭독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잘 안 되겠지만 노력은 해보려구요. 그래도 기본은 편안하게 들리는 게 최고라지요>^^

댈러웨이 2012-10-2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노랑무늬영원> 저도 자목련님 방에서 보고 표지 완전 이쁘다고 생각했었는데. 한강 작가는 <희랍어시간> 때문에 고생을 좀 해서 손이 갈까 했는데 순전히 표지때문에 읽고 싶어졌어요. 따뜻한 뭔가를 기대해? 뭐 그런 심정? 그나저나 <심봤다>는 정말 꿈결같은 시군요. ^^

프레이야 2012-10-25 17:41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찌찌뽕 ㅎㅎ 전 노랑색 좋아하는데다가 저 책 표지는 정말 사랑스럽지 뭐에요.
뭔가 노랑노랑해지는 기분.^^
시인은 참 대단하다 싶어요. 물론 소설가도 그렇구요.

야클 2012-10-2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느끼지만 정말 좋은 일 하십니다 ^^

프레이야 2012-10-27 16:40   좋아요 0 | URL
야클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계속 할 생각입니다. ^^
 

눈부신 시월도 어느새 열흘을 넘기고 있다. 지난 주 점자도서관에 가지 못해 어제 시월 들어 처음 가게 되었다.

밀린 1차편집분 도서들 어서 진도 나가야 된다. 그런데 또 녹음하고 싶은 책에 두시간 할애하고 남은 시간에 편집^^

고미숙 님이 공부는 몸으로 해야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요약정리, 필사나 낭송 같은 방법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낭독으로 읽고 편집하며 한 번 더 읽고 참 좋구나.

입으로 읽으면 내용이 잘 안 들어오지 않냐고 누가 묻길래 처음엔 틀리지 않게 읽으려고만 집중하다보면 좀 그런대

이젠 낭독하며 밑줄도 긋는다고 하니 오호~ 웃더라. 운전하며 김밥도 먹고 화장도 하듯 ㅎㅎ 위험해 이건.

아무튼 좋다. 내게 온 모든 것들이.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쓰고 엮음 / 포럼

  2012년 10월 10일 녹음시작

  256쪽 중 66쪽까지 녹음.

 

 

 

 

박지원, 이덕무, 이수광, 이익, 장유, 정약용, 홍길주, 홍석주, 허균, 최한기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문장가들의 저술이나

문집에서 글쓰기와 관련한 좋은 내용을 추려서 엮은 책이다. 각각의 글 뒤에는 엮은이들이 느낀 소감을 재치있는 문장으로

짧게 기록해 두었다. 입시와 취업, 혹은 사회 여러 곳에서 '글쓰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한 가닥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서문에 밝혀 두었다.  실용서는 아니고, 책은 가볍고 아담한 분량이다.

 

95가지 제목으로 95가지 조언이 실렸다. 역시 글쓰기에 왕도나 첩경이 있지는 않지만, 은은한 묵향처럼 퍼지는 근본적인

조언들을 새김질해 볼 만하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잊기 쉽고 실천하기는 더 어려우니 늘 깨닫고

채찍질이 필요하다. 문장가들의 문장이니 그 문장 자체로도 향기롭다.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 조언은 보편적이다.

시대에 맞춰 글을 쓰되 옛고전에서 모범을 찾으라는 말과 역사서를 포함한 다양한 독서의 중요성, 기교에 치우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빠진 글을 지양하고 글과 사람의 일치함을 강조하는 내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치있는

충고다.

 

기이하고 뛰어난 작품들이 든 책 꾸러미를 짊어지고 자신을 찾아와 포부와 학식을 쏟아내며 눈을 반짝이던 젊은이,

이인영에게 다산이 들려준 말은 참으로 한 젊은이를 살린 살뜰한 스승의 말이 아니었나 싶다. 명쾌하고 따끔하다.

나도 부족한 부분이라 여기 옮기며 새겨둔다.

 

 

  "이리 와 앉아 보게. 내 자네에게 한 마디 하겠네.

   문장이란 학식이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바깥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것이네. (중략)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갑자기 문장을 이룰 수 있겠는가? 온화하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도와 우애로 본성을 닦아 공경과 성실을 한결같이 실천해야 하네. 이렇게 힘쓰고 올바른 길을 바라보면서 고전으로 마음을 닦고 지식을 넓히고,

여러 역사서로 과거와 현재의 변화하는 이치를 꿰고, 예악 문화와 법령 및 정치제도 그리고 옛 문헌과 법도 등을

가슴 속 가득 쌓아야 하네.

  그런 다음 외부의 사물과 마주쳐 옳고 그름, 이롭고 해로움을 다투게 되면, 마음속에 가득 쌓아둔 경험과 지식이

파도를 치듯 거세게 소용돌이쳐 천하 만세의 웅장한 광경으로 세상에 남겨 놓고 싶어질 것이네. 그런 의지와 욕구를

주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네. 그걸 지켜 본 사람들은 앞 다투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네.

  나는 이러한 이치로 자신을 표현한 글만을 참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하네.

어찌 풀을 헤쳐 바람을 맞이하려는 듯 분주하게 서두르고 성급하게 내달린다고 문장을 붙잡고 삼킬 수 있겠는가?

(생략)"

 

                                                                                                 정약용 <다산시문집> '이인영에게 주는 말'

 

                                                                                                                                                 - p60

 

 

 

포럼 출판사의 조선지식인 시리즈로 이런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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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1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2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0-1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쌓으면 읽고 싶은, 묵히고 있는 책들이란 게 이런 이들의 책들이었어요. 김훈의 <풍경과 상처>나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에서 그들이 살을 보태 보여주는 옛 글의 맛이라는 게 뭐라고 해야하죠. 웅숭깊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정좌하고 대면해야 할 듯한 그런 세계? 소개서 혹은 입문서로 적당한 거겠죠,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2-10-12 09:52   좋아요 0 | URL
몸을 정좌하면 마음도 따라오는 것 같아요.
이책은 발췌글 엮음책이라 어떨지 모르겠어요, 댈러웨이님에게. 웅숭깊다,는 말 오랜만에 들어요.^^
옛글의 맑은 기운은 느낄 수 있어요.

2012-10-12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10-12 13:46   좋아요 0 | URL
네, 곧 도착하겠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2년 8월 29일 녹음 시작, 총 12시간 소요 완료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은 기본적으로 건축가의 입장에서 집짓기의 철학과 집짓기의 욕망을 해부한다.

고객 중 자신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를 모르고 의뢰하는 부류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누구누구의 집 비슷하게, 이런 주문을 하는 부류는 건축 후 만족도도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은 하나의 은유로도 많이 쓰이는데 '집'을 '짓다'라는 의미에 많은 걸 대입할 수 있다.

저자 함성호는 개인적 차원의 집짓기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공적 집짓기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생각을 갖고 있다.

 

글을 읽을수록 저자가 상당히 반듯하고 온기있는 품성을 지녔다는 걸 느낀다. 편견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예를 들어 무작정 도시보다 시골을 예찬한다든가, 유기농 채소가 무조건 좋다든가,

이런 틀에 잡히지 않는다. 감성적인 부분에서는 감성적으로, 지적으로 통쾌하고 정확한 부분에서는 또 그렇게 해박하다.

학창시절 어느 수학 선생님의 이야기나 건축현장에서 목수와 반목했던 이야기는 가슴을 둔중한 무엇으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척' 하지 않고(그렇다도 애정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표현이 적은 사람 같다)

인간적으로 모자람에 솔직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같다. 생각이 깊고 공정하고 강직하면서도 여린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잘 보이는 에세이라서 믿음직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을 위한 집 이야기와 집을 통해 본 사랑과 문학과 문화에 대한 답사기!"

 

이 구절은 책 뒷표지에 적힌 부제 아닌 부제다. 다 읽고 나니 그다지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는 구절이다 싶다.

건축가 함성호는 실제로 늘 두 가지 이상의 길을 동시에 갔다고 고백한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그래서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프루스트는 갈림길에 서 있었던 어느 한 시절의 가지 않은 길을 노래했지만, 사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길로 이미 우리의 그리움과 망설임의 또 다른 나를 가게 했다.

'나'는 실은 단수로서의 '나'가 아니라 수많은 복수로서의 '나'가 모인 우리이다. 그 수많은 '나'들은, 잃어버리고

새로 나타나는 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만나고 헤어진 '나'다. 우리가 타인과 만나 이야기 할 때, 그 타인은

어쩌면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믿고 있던 그 길로 보낸,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 p145

 

 

저자는 건축가 외에도 시인, 만화광, 공연연출가, 여행가이지만

나는 철학자라는 이름을 하나 더 주고 싶다.

 

마지막 장의 '행복의 조건들'에서 그가 중요하게 말하는 '경험'이란 말에 집중하게 된다.

바깥으로 우리의 경험을 이끈 다음에야 파랑새를 보여주는 행복을 넘어 이제는

구체적으로 행복을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한다는 그의 조언이 귀담아 들린다.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에서 감동할 줄 아는 삶의 경험을 찾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다.

사람의 의지가 개입한 결과에 가까운 '만족'과 인간의 의지보다는 어떤 큰 흐름을 뜻하는 '행복',

둘의 차이에 대한 구절이 내 마음 깊이 와닿는다.

 

 

만족한다는 것은 한계를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만족한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다 뒤져보았다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만족은 꼭 기쁨으로 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짙은 슬픔으로 우리를 집어넣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따라 나는 내 것이 아닌 게 어떤 것인 줄도 알게 될 것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리가 없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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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9-2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은 없다....정말 그런 것 같아요...
찾아보니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을 비롯해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도 마음이 끌려요. 얼른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2-09-23 18:41   좋아요 0 | URL
아, 아른님, 역시 함성호는 철학가군요.
철학으로 읽는 옛집,도 전에 제목만 보고 담지 않은 책인데 바로 담았어요.
아주아주 좋아보여요.^^

박찬일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읽는데 함성호의 시가 몇 번 나와 반가웠어요.
두 사람이 막역한 사이인가? ㅎㅎ

2012-09-23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3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9-2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애정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표현이 적은 사람'이라는 님이 표현 좋아요.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해요.
저, 표현이 적은 사람이랑 살면서 애정이 적은 사람이랑 사는 줄 착각하고 툴툴거린 날들을 돌아봤어요.
프레이야님, 감사~!
여긴 가을 햇살이 참 넉넉해요.
거긴요~?

프레이야 2012-09-25 11:12   좋아요 0 | URL
님, 저도 늘 툴툴거리며 살아요.^^ 생각해보면 참 많은 걸 가지고 누리고 사는데도 말이죠.
여기도 가을 햇살이 밝고 넉넉해요. 마음에서 분노나 불만이 일어날 때면 그건 사실과는 달리
무의식의 기억이나 상처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과 기억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걸 깨닫고 멈추면 되는데.. 브레이크 작동 잘 하며 살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