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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촐한 기억의 필름에 이 영화처럼 인상깊었던 영화도 몇 없다. 다시 보면서 세월이 건져주는 뜻밖의 것들에 토파즈처럼 파랗고 투명한 바닷속으로 나도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하는 반전...  수장되는 피아노에 밧줄로 묶여있는 에이다의 다리, 이제는 자신의 선택으로 과감히 발을 빼고 물 위로 떠오르는 환희의 순간에 나는 축복을 보낸다.

A CHANCE... A SURPRISE... 내가 삶을 선택했다니...

에이다의 마음의 목소리는 이렇게 망망대해에 꽂히는 햇살 한줄기를 닮아있다.

'신은 말 못하는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셨다.' 에이다와 피아노는 두 개의 말 못하는 피조물이다. '침묵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에이다는 침묵을 선택함과 동시에 피아노로, 여전히 침묵을 깨고 있다.

침묵의 소리를 이해하는 자와 그 소리에 귀가 먹은 자가 나온다. 원시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광활한 바다와 진흙탕 밀림의 뉴질랜드에서 원주민을 상대로 지내고 있는 두 사람, 베인즈(하비 키틀)와 에이다의 남편(샘 닐)은 극단에 있다. 야만적으로 생긴 하비 키틀이 보이는 진정한 사랑이 베인즈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강박적이고 이기적이고 물질(땅)에 눈이 뒤집혀있는 남편은 침묵의 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이다.

피아노는 에이다의 분신이다.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고, 만족하고, 꿈을 꾼다. 동시에, 태초의 섬에서 말 못하는 또 하나의 피조물인 피아노에게 생명의 주문을 걸 줄 아는 사람은 에이다뿐이다. 남편과 사람들은 피아노를 함부로 만지지만 에이다와 베인즈는 피아노를 애정의 손길로 쓰다듬고 감히 못 만지겠다는 듯이 아낀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나와 언어가 다르면 말 못하는 피조물로 취급하고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에이다의 남편은 원주민의 언어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보상을 하며 그들의 땅을 노리는 소위 문명인의 이기심만 가득하다. 베인즈는 원주민과 마음으로 통한다. 원초적인 걸 건드리는 그들의 농담과 교양(?)없어 보이는 행동에도 같이 웃고 즐긴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은 거의 들을 말이 없'기 때문에 이 원시의 섬으로 온 것일 게다. 

피아노의 건반 하나와 잘린 손가락 하나는 에이다가 베인즈에게 보내는 절절한 마음이다. 질투에 불타는 남편에게 손가락을 잘리고 진흙탕 위에 풀썩 주저앉는 에이다의 치마가 커다란 풍선처럼 부푼다. 이 장면에서 홀리 헌터의 표정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의 치마 속을 구속하고 치마를 부풀리게 하는 멋없는 구조물이 그 안에 있다. 에이다는 여태껏 자신의 의지로 삶을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말 못하는 피조물에게 애당초 삶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남편은 이제야 에이다가 하는 마음의 소리를 '머리로' 들었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들었다니 말이다. 베인즈에게 달려와 에이다가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묻는 말에 베인즈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하고 격노한 남편은 머리로 들었다고 소리친다. 베인즈는 온몸과 가슴으로 그녀의 소리를 느꼈기 때문에 머리로 들어본 적은 없었을 게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말 못하는 피조물이다. 소통을 제대로 하고 사는 건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을 내뱉고, 또 듣고, 상처 받고 상처 주고, 그러고 사는 건 아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줄 모른다. 차라리 입을 다물자. 내 안에서 곰삭아 익힌 제대로 된 말이 아닐 바엔 침묵하자. 태초에 소리라고는 없는 심연의 바다 속 무덤에  나를 수장하고 새로 태어나자. 

새 삶을 시작한 에이다는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길이다. 어둠이 있는 곳에서만 소리를 내려하는 에이다는 얼굴에 짙은 스카프를 쓰고 서툰 발음이지만 연습을 한다. 그녀에게 살며시 다가가는 베인즈, 에이다의 '어둠'을 걷고 둘은 빛과도 같은 입맞춤을 한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이 그처럼 화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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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4-03-2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무척 좋아하지요. 두 번은 본 거 같은데, 이 글 보니,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비로그인 2004-03-2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를 보고 열띤 대화의 장을 펼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이 영화에 접근하는 시각은 <페미니즘>적 측면에서의 논쟁(?)이었었는데....
에이다와 피아노, 그리고 에이다와 피아노와 베인즈, 그리고 에이다와 베인즈....
그들의 관계,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등에 대한 사려 깊은 들여다 보기가 빠진, 핏대 올리는 공허한 말장난만 했던 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금도 <피아노>의 OST는 제거 즐겨 듣는 OST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이다의 가슴 속 감추어진 열정과 사랑이 격정적이면서 잔잔히 잘 표현된~ ^^

진/우맘 2004-03-2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개봉될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에, 개봉 당시에는 야하다는 엉뚱한 이유로 관객을 그러모았지요. '야하다는데, 야하다는데....!'하며 보고 싶어 안달하던 제가 기억나네요.^^;;;

프레이야 2004-03-2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에이다의 테마곡에선 '냉정과 열정'이 모두 느껴지지요. 한밤이었는데도 오디오로 소리 나오게하여 크게 들었어요. 야한가요? 너무 아름답게 보였어요.
 

아줌쟁이(y 왈)들끼리 연극이라도 보러갈라치면 뭐 그리 걸리는 게 많다. 3장을 예매해 두었었는데, 친구 하나가 시어머니께 일이 생겨 못 가게 생겼다. 취소하기엔 환불이 50%밖에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넣어 3명이서 관람을 했다. 하지만 철저히 혼자서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을 보고 그 생각들을 재건축하는 건 혼자서 하는 고독의 작업이지 싶다. 난 그걸 즐긴다.

조재현은 '나쁜 남자'에서 인상 깊었던 배우다. 아이다운 장난기 어린 웃음과 함께 강렬한 눈빛이 꽤 악마적이기도 한 이 배우는 야누스적이다. 그는 1990년에도 알런 역을 했다. 그 때의 연기와 지금의 연기가 배우 자신에게도 다름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배우 자신의 말을 빌자면, 열정으로 따지면 14년 전이 오히려 더 중년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제야 17세 알런의 순수한 영혼이 보인다고도 말한다. 흘려보내놓고서 원거리로 보면 그 실체가 훨씬 잘 들어오는 법이다. 그래서 우린 사소한 삶에서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는 이번 연극을 위해 체력단련도 하여선지 군살없는 몸과 날렵한 동작이 17세 소년의 원시 에네르기를 유감없이 표현했다.

나는 이 유명한 연극을 20대가 아닌 30대의 마지막 해에 보게 되었다. 한 친구 대신 같이 가게 된 사람(조재현이 나온 대학이 그녀의 모교인데 거기 교수로 재직 중)의 대학동기가 이 배우의 아내란다. 그래서 그 때 여러번 보았단다. 농담 반, 사인을 받고 싶다는 나에게 약이라도 올리냐^^

연출가 김광보는 작업 내내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사는 알런보다는 온통 다이사트였음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구미에서는 다이사트에 촛점을 두는데 우리 연극에서는 알런에 더 비중을 두었던 게 사실이란다. 다이사트로 촛점을 두는 것은 개인적인 면에서 사회적인 면으로의 관심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나는 이런 해설 이전에 처음부터 연극의 화자로 등장하는 다이사트의 내면에 이는 파동에 줄곧 마음의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이사트와 난  알런이 고백하는 뜻하지 않은 경로를 따라가며 적잖은 정신적충격을 받았다. 거리두기를 하여 보려한 초심은 어디 가고 어느새 다이사트의 감정에 내가 이입되고 있었다.

무정자증의 배 나온 중년 정신과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창조할 수는 없'는 게 의사라는 말로 현대문명 혹은 현대인의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알런의 원시림 같이 깊고 위험한 눈빛, 조악한 의식과도 같은, 야성미 넘치는 일곱마리 말과 더불어 말처럼 벌거벗은 알런의 격렬한 춤과 음악은 오싹한 전율이 온몸을 쓸고 내려가게 했다. 원시종족의 제의처럼 날 것으로 약동하는 힘이 몸으로 스미는 것 같았다. 다이사트도 시종 부러운(?) 눈으로 이 장면을 본다.

하지만 다이사트도 나도 영원히 못 할 것 같은 결정적인 행동은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은 신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르는 일이다. 에쿠스는 적어도 알런에게는 신이다. 종교적으로 광신적인 어머니와 무신론자 아버지의 그늘에서, 어느 날 자기 방에 예수의 그림을 떼어내고 그곳에 말 그림이 붙여진 후 알런에게 말은 자신의 원초적 에네르기를 살려주며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신과도 같은 존재다. 감정의 억눌림과 그 모든 단절감은 어디선가 달려온 말의 등을 타고 함께 달릴 때 공기처럼 날아간다. 여섯 살 바로 그 때 아버지가 그 길을 막아서고 알런은 말에 대한 사랑을 남몰래 키운다.

그렇게 숭배하고 사랑하던 신이 나의 자연스런 본능과 소망을, 야생의 그것을 막으려 들 때, 잘 길들여진 우리는 어떤 행동이 사회적인 것인가 너무 잘 안다. 사회적으로 합당하지 못하면 우리는 정신이상이라는 병명을 씌운다. 하지만 때로는 정신이상자라도 되고 싶은 게 현대인이다. 그러지 못하는 건 우리를 감고 있는 굴레들, 일상의 크고 작은 굴레에서부터 좀더 거시적인 것까지. 그러니 정신과의사는 정열을 파괴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신과도 동일시한 말들의 눈을 찌르고 자신의 눈을 찔러 쓰러진 알런을 안고 다이사트는 '말은 죽었지만 또 다른 말이 말발굽소리를 내며 올 것' 이라고 말한다. 알런이 여섯 살 적 바닷가에서의 기억을 재현하는 짧은 모노드라마의 독백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디선가 어떤 아저씨가 데려온 말에 올라탄 알런은 희열감이 극치에 달한 순수하지만 탐욕스런 표정으로 내지른다. "너의 몸에 들어가고 싶어. 너와 한몸이 되고 싶어."  마굿간에서 일하게 되면서 너제트를 유독 좋아하는 알런은 밤마다 너제트를 타고 달린다. 

위선과 명분만 남고 정열은 죽어버린 문명,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진정 소통되지 못하는 겉핥기식 관계맺기로 자족하며 사는 우리. 어디선가 경쾌한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다그닥다그닥다그닥...... 다가와서 나를 덥썩 낚아채 말등에 태우고 달릴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위를.  꿈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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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03-1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연극을 참 보고싶었었는데....보셨군요....부럽네요....^^....다이사트역이 혹시 쓰러진 탈랜트 김흥기씨역이 아니었나요??.....아직도 그여운이 남으시겠습니다...영화는 여운이 그리 오래가지않는반면...연극은 몇년이 지나도 사라지지않고 오래 남더군요..아마도 배우들의 숨소리와 땀냄새를 직접 맡으면서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일까요??

프레이야 2004-03-1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그래요. 그리고 김흥기씨는 30일 낮공연이 끝난 후 쓰러져서 아직 못 일어나고 있다지요. 대역으로 이승호씨가 했습니다. 다시 무대로 돌아올 그날을 전원 손꼽아 기다리고 있대요.
박정자씨도 다이사트역을 하였더군요, 2001년 2월에요. 너무 웅변적이었다는 평이 있네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전지현이 주부다운 의상을 입고 나오고,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그녀의 등이 꾸부정해 보인다. 맑은 얼굴의 전지현이 자세는 영 별론가 하고 보다가, 이건 하나의 설정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에 대하여 섬뜩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너를, 혹은 무엇을 믿는다고 할 때 나는 어디까지를 믿는가. 연이(전지현 분)는 '우리는 겪은 것을 모두 믿지 않아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믿죠." 라며 "당신은 나를 믿나요?" 라고 정원(박신양 분)에게 애원하듯 묻는다. 그동안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숱한 배신감을 맛본 그녀는 외로움과 박탈감에 상처 입은 몸과 영혼을 걸치고 있다.



그녀는 보통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능력이 있다. 아무에게도 쉽사리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려하지만, 도와달라는 어느 타인(정원)의 묻어둔 기억을 끄집어내어 보이는대로 그에게 말해준다. 그녀가 보는 것은 진실이다. 믿고 싶지 않은 진실들을 우리는 얼마나 외면하며 살고 있는지.  믿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을 믿지 않으려하는 한 남자에게 그녀는 다시 한번 절망감을 느낀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보여주겠어요. 그 여자가 떨어질 때 내 눈이 그 여자 눈과 마주쳤다는 걸 믿게해 주겠어요. 준비됐나요? 자, 그럼, 눈을 크게 뜨세요. 지금부터 한순간도 눈을 깜박여서는 안 돼요."  떨리는 음성을 전화선으로 흘리며 연이는 자신이 이전에 보았던 것, 말했던 것이 정신병증이 아니라 진실임을, 죽음으로 보여준다.



나의 언어가 소통되지 않고 벽에 부딪히고 나의 진실이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을 때, 우리는 무엇으로 치유받아야 할까. 연이의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세상에 단 둘이었다. 연이가 기면증으로 거리에 쓰러져 잠에 빠지면 세상의 사람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뭐라고 한 마디씩 내뱉는다. 그녀는 그런 웅성거림을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누워서 다 들으며 "참 외로웠다"고 고백한다. "우리 엄마도 예전에 이렇게 외로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대사가 가장 가슴 아팠다.

정원과 결혼 날짜를 얼마 앞둔 밝고 씩씩한 여자 희은은 자신이 남자와 모든 진실을 공유하지 못함에 슬퍼진다. 내가 모르는 비밀이 도대체 어디까지 있는거야?, 라며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차 안에서였다. 차창 밖으로는 부산의 우이동교회가 보인다.

이야기 줄기는 대강 이렇다. 어느 마을 가뭄이 계속되어 힘든 때 교회에 모여 온 신도들이 비를 비는 기도회를 갖기로 하고 많은 신도들이 합심하여 교회에서 기도를 했단다. 비를 내려달라고. 한참 후 밖으로 나오니 정말 비가 오고 있었다. 여기까진 시시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신도들 중 아무도 우산을 꺼내 쓰는 사람이 없더란다. 그들의 믿음은 그만큼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어떤 아이 한명만이 우산을 가져왔더란다.

나도 아이처럼 믿고 싶다. 그리고 아이처럼 믿기고 싶다. 믿는 척하는 건 불신보다 더 나쁘다. 위선이다.  연이는 고양이를 싫어한다. 아이의 울음소리 같아서이다. 고양이 따위를 내세워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싫어한다. 자신을 불신하는 남편과도 이혼을 하고 싶다. 남편은 불신이라 인정하지 않겠지만 자신의 말을 믿으려들지 않는 건 불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쇠창살의 이미지를 전편 구석구석에 심어둔 것은 감독의 의도일까. 모던한 4인용식탁의 각진 네 변에 놓여있는 의자의 등받이부터 시작하여 베란다 창살 등등..  그 굵고 견고한 세로선의 이 편과 저 편에서 우린 얼마나 서로 다른 진실을 허공에 대고 말하고 있는지. 믿는다는 건 좋아한다는 것과 어떤 의미에서는 동의어이다. 연이는 "당신은 나를 좋아하죠? 나를 미워하지 않죠?" 라며 남자에게 믿음을 호소한다.

키워준 아버지와 아들, 여동생(어릴 적 진짜여동생은 자신의 손으로 죽인 셈이고)이 귀퉁이가 둥근 식탁에 앉아 소박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남자 혼자 네모난 4인용 식탁에 앉아 뜨거운 흰죽을 후후 거친 목구멍으로 넘기려하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는 뜨거운 걸  넘기려는 이 남자는 지금 왜소하다. 연이의 물음에 아직 뜨겁다고 대답하는 정원은 아직 아픈 진실을 믿기에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목사인 양아버지의 말대로, 뜨거운 걸 먹으며 시원하다고 말할 수 있기엔 아직 이 남자는 젊다. 지금으로선 사랑하는 약혼녀 희은의 믿음만이 남자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아보인다. 소통! 진실한 사랑만이 소통을 가능케 한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2003년 이수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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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화 홍련, 공포를 불러오는 죄의식
    from 처녀자리의 책방 2007-07-21 22:40 
       내게 가장 인상적인 공포를 불러온 우리 영화는 <알포인트>와 <4인용 식탁>이다. <알포인트>에는 사람의 감각이 만들어내는 허상과 허무한 싸움을 벌이는 자들이 나온다. 특정 신분, 특정 상황에서 그들이 뿌리는 피비린내와 마지막 장면의 라디오음성이 역시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감각의 허상을 부채질하였다. 이 영화로 나는, 공포는 우리의 감각에서 온다고 여겼다. <4인용 식탁>의 공포는 좀
 
 
김여흔 2004-03-09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인용 식탁, 얼마전에 저도 보았죠.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던 영화라서 잊지 못하고 있거든요.
비를 기원하는 신도들, 그리고 믿음...

좋은 글, 마음에 새기면서 가요.

물무늬 2004-03-1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영화라는 형식에 담은 감성적 이야기라는 느낌과 적지 않은 상념들과 화두들을 던져줬던 영화였었죠. 언제 이 영화에 대해서 글을 써봐야지하고 미뤄뒀는데 님의 글 덕분에 다시금 그 영화를 떠올리고 되뇌여보게 됩니다. 감사해요^^
다른 존재의 주검을 씹어 삼킴으로써 나의 생명을 이어가는 식탁에서 우리 생명이 누군가의 죽음에 의지해있다는 진실을 외면하곤 하죠. 그 진실은 나 역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줘야한다는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었기에 두려하고 애써 부정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두 아이의 주검이 4인용 식탁에 나타난다는 설정에서 스쳐간 상념 한 조각 님의 글을 통해서 떠오르기에 끄적거리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4-03-1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물무늬님. '주검을 씹어삼킴'이 생태계의 원리(?)라면 선선히 내어줌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싶어요. 전 죽으면 꼭 제 몸 기증할 거에요. 책익는 항아리의 '잔영'에 자주 가서 젖었다옵니다. 또 만나요.^^

sooninara 2004-03-1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화를 개봉관에서 보면서..박신양의 열연이 전지현때문에 묻혀버린것 같아서 아깝더군요..
자살한 이웃집언니(이름 모름)도 연기를 잘하는데..여주인공을 다른사람으로 했다면 더 좋지않았을까 아쉬운 영화였습니다..전지현도 연기변신을 하려고 했겠지만..엽기적인 그녀가 겹쳐보이더군요..아줌마 머리의 전지현은 설정이라는 느낌만을 주었던...

프레이야 2007-07-21 19:31   좋아요 0 | URL
수니님, 세상에나.. 3년이 넘은 오늘 이 댓글을 보네요. 미안해요^^
자살한 이웃언니는 추상미였어요. 이 영화는 제게 알포인트 다음으로 최고의
공포영화에요. 전지현은 역시 별로였죠.
 

이 영화는 크게 기대를 걸지 않고 보았다. 어제 Y가 상가 비디오점에서 대여해온 DVD로 우리는 자정이 되어 자리를 잡고 시작했다. 금세 나는 화면의 빛깔을 놓치기 싫어 눈이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빛을 담뿍 넣어 촬영한 듯 화면 가득 빛의 향연이다. 원색의 밝고 아름다운 빛깔들이, 부용정이며, 기와지붕위로 내려 앉은 가을의 황금색, 병풍이며 그위에 수로 놓은 꽃송이며, 그앞에 도도하게 앙큼을 떨며 앉아있는 조씨부인의 의상까지, 어느 한 곳 물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costume film이라고 케이스 겉에 적혀있던 작은 글이 무색하지 않게 의상들이 눈길을 끈다. 눈이 부시는 지경으로 빛을 담고있는 화려한 동양화첩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조씨부인이 햇살 가득 들어오는 방에서 몸종들의 시중으로 아침단장을 하는 장면은 접사렌즈를 댄 것 처럼 부분부분을 보여준다. 분단장을 하고 위엄있어 보이고 싶은만큼 커다란 다래를 정성껏 얹어 비녀를 꽂고 몇가지 장식을 한다. 도톰하고 오목한 입술은 붉은 연지를 곱게 칠해 농염함을 뽐낸다. 이런 입술엔 이미숙의 입술이 잘 어울린다 싶다. 단장을 마치고 흡족해하는 얼굴에 가득 분사되는 햇빛은 소프트포커스 같다. 신윤복의 그림에서 나온 것 같은 수줍은 듯 요염한 자태를 한 미인이다. 

때는 조선 정조, 화성이 축조중에 있고, 곳은 한양에서 강화까지, 오늘은 숙정문으로 가마 타고 나들이라도 가는 걸 보면 한양의 북쪽으로 위치한 마을(?), 해 지면 천막 속에서 천주교 집회가 열리며 마을사람들에게 천주실의를 나눠주고, 양반은 여전히 유교의 도리를 내세우고 있다.

전편에 흐르는 겉과 속의 양면성은 책과 현실의 대조만큼 자명하다. 누구든 알고, 행하기도 하지만 입밖에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 있느니라... 조씨부인은 남편의 소실로 들어온 어린 여자를 두고 나지막히 속삭이며, 질투의 어설픈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첫사랑에게, 남편에게, 일명 '청승'에게, 그녀의 모든 계략들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가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를 다보고 나면 그녀를 향한 연민이 생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의 독설과 솔직함과 앙큼함을 보는 나는 그녀의 복수가 귀엽기 그지없다.



프랑스 귀부인들간의 내밀한 이야기(untold scandal)를 우리 식으로 한 것이라는데, 무겁지않은 터치로 주고 받는 대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이미숙의 한껏 꾸민 외양과 말투 속에 숨겨놓은 욕망이 추하지 않게 보이는 건 왜일까. 첫사랑 사촌동생 조원이 귓가에 부는 입김만으로도 으음~ 이러며 클라이막스의 표정을 짓는 조씨부인은, 질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누이는 제일 아름답다,고 속삭이는 조원을 당치않은 소리!, 라며 토라져서 내친다. 웃음이 가볍게 일며 경쾌하다.

이 영화에선 다른 배우보다 이미숙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능글맞게 웃음을 자아낸다. 배용준은 안경을 벗고 상투를 쓰고 나오니 다른 사람 같다. 의외로, 갸름한 얼굴에 작고 눈꼬리가 약간 처진 눈,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듯 마는듯한 표정이 스물아홉의 사대부 야비한 난봉꾼에 잘 어울린다. 조원은 시서화에 능하고 미끈한 인물에 무예까지 겸비한 자다. 그가 그려놓은 그림들은, 나중에 화첩으로 세상에 드러나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들에게는 가히 낯뜨거운 것들이다.



반전이 나오고 화려하고 도도한 조씨부인은 가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행색도 초라하게 쫓겨난다. 그녀는 비단수건에 고이고이 싸 두었던 것을 나룻배 위에서 펴며 한 얼굴을 떠올린다. 조원이 준 하얀색 꽃잎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자락이 하늘로하늘로 날아올린다. 파란 하늘에 박히는 꽃잎 자국을 따라 조부인의 애타는 손끝이 보이다만다. 하늘은 아무일도 모른다는 듯 마냥 눈부시게 푸르기만하다.

사랑 운운하며 비아냥거리는 첫사랑 사촌남동생에게 별 시덥지 않은 소리 다 한다며 퉁을 주던 남몰래 그녀가 간직하고 있던 꽃잎이 왜 그리 애처로운지...  앳되고 여린 소녀의 순수함 같아서인지. 소녀 시절의 꿈으로 살기엔 바람이 너무 강해서인지... 칼을 맞은 몸으로 숙부인을 찾아가다 강화의 어느 바닷가에서 쓰러져죽는 조원은, 이제야 사랑을 알게 되었다며,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며, 눈을 감지 못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사랑은 쌍방향이 아니라 슬프다. 사랑은 원래, 쌍방향이라해도, 저울을 단다면 어느 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그러니 짝사랑은 세상 모든 사랑의 본모습이다. 세상은 겉과 속이 달라야 살기 편하다는 점은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책갈피 안의 세상과 책갈피 밖의 세상이 다르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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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침부터 기대되었다. daum cafe 뮤클의 정기 DVD공연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번 24회에서는 프랑스 3대 뮤지컬 중의 하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영하기로 공지되어 몇주전에 관람 신청을 해 두었다. 파리의 노트르담과 십계는 상영장소도 너무 멀었고 시간도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해서 못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누굴 끌고 가든 날짜 다가오면 봐야지 하곤 무조건 다섯 석을 신청해두었는데, 동행멤버가 다소 특이하게 구성되었다. 5시 상영시간보다 넉넉하게 그곳 소극장에 도착하여 아늑한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130여명의 모인 사람 중 20대로 보이는 사람이 제일 많았다. 저번 명성황후 뮤지컬 뒷풀이에서도 배우와 단체사진 한 장을 찰칵하며 보니, 20대의 풋풋한 분위기가 어찌나 좋던지...

참석한 사람들 중, 예순 다섯이지만 소녀의 감성을 잃지않은 최고령 친정엄마와 공연예절을 지킬 줄 아는 최연소 일곱살 희령이, 생각이 많고 음악을 좋아하는 유일한 초등학생 희원이, 그리고 특이한(?) 멤버를 대동하고 간 철없는 아줌마. 유일한 외국인도 있었다. 우리끼리 킥킥거리며 있는데 앞좌석의 여자회원이 뒤돌아보며 "전에 십계 상영할 때 아이 두명 데리고 오셨던 분 아니세요?" 이런다. 옆에 앉은 친구가 "그 분은 냉정과 열정사인데..." 이러는 거다. 알라딘에서 듣던 닉네임인데, 혹시? 그러나 그건 아닌 게 분명하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1막이 끝나면 막간 10분 가지고 2막 들어가며 총 2시간 30분이 걸릴 거란다. 재생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자막이 흐르고, 베론왕이 등장하고 몬태규가와 캐플릿가의 사람들이 청홍의 의상으로 대변하여 나와 증오의 몸부림을 보인다. 하얗고 얇은 옷으로 몸을 가리고 춤을 추는 죽음의 여신이 무대의 2층에 있다. 대사는 한 마디도 없이 죽음의 여신은 등장인물의 등 뒤에서 너울거리며 전편에 등장한다. 가장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을 배우같았다. 운명적인 사랑과 그것의 비극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재해석의 장치다.

로미오가 부르는 '사랑은'의 선율과 노랫말은 낭만적인 샹송의 느낌이다. '사랑은 아름다움 이상, 사랑은 높이 날아오르는 것, 그곳에서 새의 깃털을 만지는 것...' 가는 얼굴선과 우수에 찬 눈빛으로 매력적인 사랑의 연가를 줄리엣과 함께 불렀다. 줄리엣은 마치 한 마리 새처럼 순수하고 귀여운 낯빛을 하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슬픈 운명의 사랑에 손 내밀고 그 품에 안겼다.

줄리엣의 유모가 부르는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낳은 엄마 이상의 이해심으로 젖을 먹여 키운 줄리엣이 이제 성인이 되려하는 걸 감싸고 도와주려는 노랫말을 담고 있다. 박력있는 목소리가 큰 덩치 못지 않게 우렁찼다. 티볼트나 벤볼리오 역을 한 배우도 매력적이었다. 현란한 춤과 호소력있는 노래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까지, 공연이 아니라 DVD라는 점이 아쉽지만 흠뻑 빠지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제일 맘에 드는 배우는 따로 있었다. 극의 중반부 좀 지나 내가 감전될 줄이야.  로미오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를 죽인 줄리엣의 사촌을 칼로 살해하고 왕의 추방령을 받아 망투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때 줄리엣의 아버진 딸을 자기 맘에 드는 가문의 남자와 결혼시키려 한다. 유모에게 이미 난 결혼했어요, 라며 울먹이며 괴로워하는 딸, 내가 늙어가고 우리의 딸이 커갈 때 당신은 뭐하고 있었나요?, 라며 따지는 아내를 뒤로 하고 무대 중앙에 나오는 인물은 슬픔 이상의 얼굴을 한 줄리엣 아버지였다.

'딸을 갖는다는 건' 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이 어찌 가슴 아프던지 난 줄곧 감전된 듯 숨도 못 쉬고 있다가 마지막 부분에선 앞이 흐려졌다. '딸을 갖는다는 건/작은 구슬/반짝이는 눈/창백한 얼굴/딸을 갖는다는 건/모래가슴/신의 선물/악마의 선물/... 딸을 갖는다는 건/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증오하는 것/딸을 갖는다는 건/범죄를 저지르는 것...'

약간 허스키한 음색이 부드러우면서 깊게 젖어들게 했다. 아기를 안고 얼르는 포즈를 취하며 뭐라말할 수 없이 애조 띤 얼굴과 목소리가 썩 잘 어울린다. 줄리엣 아버지의 어쩔 수 없이 무능력해 뵈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남자들이 여자를 끌어당길 때 쓰는 술책을 알기에, 알면서도 보내야 하기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 그래서 가슴은 늘 모래가슴...  난 노랫말을 곱씹었다가 y에게 옮겼더니 정말 자기 맘이라며 끄덕였다. 내 아버지도 시시한 삶의 무게로 범죄를 저지르고 죄책감으로 밤마다 속울음 삼키며 모래가슴을 쓸어 다독이시겠지.

증오에서 사랑까지, 라는 부제가 예고하듯, 극의 종반은 모두들 나와 '죄인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죽음의 여신은 어느새 사라졌다. 사랑의 혹독한 값을 치르고 이제 사랑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을 희원이는 어리석다는 말로 표현했다. 값을 치르지 않고 얻는 것이란 없다는 걸 언제쯤 내 딸이 알게 될까.  

전 배우들이 무대에 일렬로 서 인사하고 몇몇이 Footloose같은 즉흥춤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주는 동안 희령인 박수를 치며 신나한다. 종영 후, 뒷풀이에 가긴 그렇고 우리 특이한 멤버는 코트 깃을 여미며 밖으로 나왔다. 꽃샘추위 치곤 제법 맵다. 새까만 하늘에 뎅그러니 보름달이 떠있었다. 마치 수은등 같이 온기를 내뿜고서...

극의 초반에 흘러나온 자막의 대사처럼, '달빛아래 별 다른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저지르는 일들이란 '역사를 번복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욕망도 증오도 사랑도 한자락 스쳐지나가는 바람의 장난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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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4-03-0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클 활동까지!... 참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군요...^^ 부러워요...

프레이야 2004-03-09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좋은 음악공연소식 알려오면 먼저 달려가보려하는 정도인데요, 뭘^^
카이레님, 강아지 넘 귀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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