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섬 뒹굴며 읽는 책 5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송영인 옮김 / 다산기획 / 2001년 9월
구판절판


비는 때로 사람들 마음 속의 그늘진 부분과 가슴 아팠던 기억들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지난 날의 슬픔,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갈망, 실망, 유감, 차디찬 비탄 같은 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소란스러운 밝은 날에는 결코 떠오르지 않는 의문들을 곰곰이 생각해 볼 여유를 주기도 합니다.-66쪽

우주는 무한히 차갑고 쓸쓸하며 졸린 곳이지만 바람만은 달랐습니다. 바람은 겨울의 한 부분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진, 환영 받지 못하는 영혼이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꿍꿍거리고, 쉴 곳과 자기의 업보를 닦을 곳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는 영혼이었습니다.-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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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3-0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학년 정도 이상에게 권해요. 윌리엄스타이그의 산문이 너무나 멋드러져요.
 
대학이 이런 거야? 반올림 7
캐롤린 발두 지음, 김혜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11월
절판


난 미래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냐. 평범함에 대해서라구. 학교를 고르는 건 정말 불가능해 보여. 왜냐면 그건 잘못될 첫 번째 결정, 첫 번째 장소로 보이니까.-14쪽

물론 내 첫 번째 우상은 프로이트였다. 그가 발견한 것들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시작' 때문에,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계급 사회에 도전한 것 때문에.-30쪽

우리는 전형적인 새 룸메이트 관계였다. 상호의존적이지만 약간 거리가 있는 관계. 결핍에 의한 우정 같은 것. 이런 우정은 방사성 낙진 대피소에서도 생길 만한 것이다.-44쪽

헨리를 그런 모호한 단어로 설명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헨리는 내게는 정말 진짜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얼굴과 말뿐인 사람들,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나와 함께 어떤 일을 하기도 하지만 절대 확실히 그려 낼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건 그림과 조각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 그래서 나는 테드에게 헨리가 그런 허상 같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면서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45쪽

사실 난 여기서 발견한, 정치엔 무심하고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있는 이 창조적인 유형의 인간들에게 익숙해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52쪽

이건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제나 내 것을 낚아채가서 먼저 읽거나 먹어 치우는 형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 분명 중산층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가난의 고통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동생이 됨으로써. 가난 방지 프로그램 회의 같은 데서는 맏이들은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59쪽

군중의 소음과 혼란 속에서 피곤한 발바닥 밑으로 전해져 오는 지하철의 어렴풋한 진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그 진동에 대해선 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머릿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인식하고 있다. 발 밑에 보이지 않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하나의 도시가 있다는 것을.-62쪽

섹스, 혁명, 과학. 아마도 이 곳에서의 내 인생의 세 가지 기초 필수품. 그리고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4년밖에 없다. 그것들이 그렇게 기본적일까? 헨리는 아마 아니라고 할 것이다. 헨리는 인생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할 것이다. -93쪽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것일까? 나는 영영 준비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사회는 나를 협박한다.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게 삶인가? 방향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로지 야망만이 있는 것이?...... 버스는 더럽고 낡고 불편했다. 내 늙은 할머니와 있을 때처럼. 나는 반감을 느끼고, 반감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112쪽

나도 내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뒤의 삶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전화번호나 양말 바구니 뒤에 놓여진 아파트 열쇠 같은 것이 없는 삶은.-136쪽

그럼. 그 만족시킬 수 없는 입맛하며 긴 머리카락에 빨랫감도. 맞아, 빨랫감 꼭 가져오렴! 난 네 양말과 더러운 속옷도 그립거든. 네 불쌍하고, 지치고, 배고픈 빨래 덩어리 말이다.-147쪽

아일랜드에서는 꿈에 아기가 나오면 운이 나쁘다고 한다. 그건 죽음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53쪽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모습에 구토를 느꼈다. 그들은 절대 올려다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이 복잡한 도시에서 역의 천장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고.-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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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3-0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 3이상 권함
 
사랑의 기술 청목 스테디북스 58
에리히 프롬 지음, 설상태 옮김 / 청목(청목사) / 2001년 4월
절판


오늘날의 평등은 '일체성'보다는 '동일성'을 의미한다. 즉 평등은 추상적인 동일서, 곧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의 동일성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시대의 진보의 징표하고 찬양되어지는 몇 가지 업적들, 예를 들면 남녀 평등 같은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28쪽

모든 형태의 창조적 작업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 대상은 하나가 되며 인간은 창조 과정에서 자신을 세계와 결합한다.

황홀경 속에서 이루어진 합일은 일시적이며 일치에 의한 합일은 사이비 합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실존의 문제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해답에 불과하다. 완전한 해답은 인간 상호간의 합일과 타인과의 융합, 즉 '사랑'의 성취인 것이다.-31쪽

공서적 합일과 대조적으로 성숙한 사랑은 '개인의 통합성, 즉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 있어서의 합일' 이다.
사랑은 인간에 있어서 능동적인 힘이다. 즉 인간이 타인과 분리되는 벽을 허물어 버리고 타인과 결합시키는 힘이다. 사랑은 고독감과 분리감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며 동시에 각자에게 자신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고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지만 동시에 따로따로 남는다는 역설이 성립한다.-34쪽

사랑의 한 측면이 되는 지식은 주변에 머무르지 않고 중심을 꿰뚫는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내가 나에 대한 관심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을 그의 입장에서 볼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43쪽

우리가 우리 존재의 내면이나 타인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인식의 목표는 더욱 더 멀어지기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영혼의 비밀, 즉 '인간'이라는 내면의 핵심을 향해 가까이 가고자 하는 욕망을 저버릴 수가 없다.

이렇듯 인간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갈망 속에는 깊고도 강렬한 잔인성과 파괴욕이라는 기본적인 동기가 내재해 있다.

'그 비밀'을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바로 사랑이다. -44-45쪽

성숙한 인간은 외부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자유롭게 된 사람이며, 자기 내부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형성한 사람이다.-60쪽

형제애란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한 책임감, 보호,존경,지식과 더불어 그의 삶을 심화시키려는 소망을 의미한다.

무기력한 사람, 가난한 사람, 낯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형제애의 시작이다.-64-65쪽

꿀은 생명의 달콤함, 생명에 대한 사랑과 살아 있다는 행복감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젖을 줄 수 있지만, 오직 소수만이 꿀도 줄 수 있다. 꿀을 주기 위해서 어머니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하며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한다.-67쪽

우리는 성애의 중요한 요인인 '의지'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 결정이며 판단이고 약속이다.-74쪽

이기심과 자기애는 동일하기는커녕 정반대 되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자신을 증오한다. 이런 자기 자신에 대한 호감과 보살핌의 부족은 그의 생산성 부족의 한 가지 표현에 불과하며 자신을 공허하고 좌절된 상태로 남겨 둔다.-79쪽

"알지만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최고의 각성이고,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최대의 질병이다."

궁극적인 실재, 궁극적인 일자는 말이나 사고로는 파악할 수 없다.-94쪽

사랑의 기술에 있어 사랑의 기술에 익숙해지고자 열망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기 생애의 모든 면을 통한 훈련, 정신, 인내의 '실천'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37쪽

진실로 정신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귀중한 조건이 된다.-138쪽

사랑의 성취를 위한 중요한 조건은 '자아 도취의 극복'이다. 자아도취적 방향은 오직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만을 현실적인 것으로서 경험하는 것이며, 외부 세계의 현상은 현실성을 갖지 못하며, 그것들은 자기에게 유익한가 혹은 위험한가 하는 관점에 따라 경험하게 된다. 자아 도취의 정반대되는 것이 객관성이다. 이는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즉 객관적으로 보며 그러한 객관적인 상을 자기의 욕망이나 공포에 의해 형성된 상과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이다.-145쪽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이성'이다. 이성의 뒤에 있는 정서적 태도는 '겸손한' 태도이다.-147쪽

활동이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활동, 즉 자기 힘의 생산적 활용을 뜻한다고 말했다. 사랑은 활동이다.-155쪽

사랑의 본성을 분석하는 것은 오늘날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고, 이렇게 만든 데 책임이 있는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것이다. 예외적인 개인적 현상뿐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신앙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에 기초하고 있는 합리적 신앙이다.-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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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3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2-1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즐거운 한 주 아자아자~ 저도 오래전 이책을 읽고 감명 받아 내용정리를 해 두었었는데 이번에 밑줄그은 것 훑어보며 다시 되새김해보았어요^^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구판절판


내가 적의 존재를 믿는 것은, 밤낮 할 것 없이, 내 삶의 길목마다 그것과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적이란 내부로부터 파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파괴해버리지요. 그는 각각의 현실 속에 내재하는 조락의 기운을 드러내 보여줍니다.-33쪽

인간이란 하나의 성채城砦이고 감각들은 그리로 드나드는 문들이라고 했습니다. 청각은 그러니까 가장 방비가 허술한 입구인 셈이지요.-42쪽

나는 극도의 형식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엄격한 화장법에 의거해 행동하는 셈이죠.

그래 그 '법'으로 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름다워지셨소?

화장법이란 보편적 질서의 학문이자 이 세상을 결정하는 지고의 도덕률이라오. -113쪽

자아라는 종교는 이상도 하구만. '나는 나입니다. 나일 뿐이고, 나 이외에 다른 아무도 아닙니다. 나는 나이기에, 나는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가 아니며,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나무도 아닙니다. 나는 세상 다른 모든 것과 뚜렷이 구별되며, 내 육체와 정신의 경계 안에 한정됩니다. 나는 나입니다.-130쪽

3백년 전의 어느 대단한 철학자가 자아란 가증스런 거라고 말할 수 있고, 지난 세기의 위대한 시인 하나가 나는 곧 타자라고 말해도 되는 건, 다 그래서야. 그건 마치 심심풀이 땅콩처럼, 살롱의 안락의자 속에 푹 파묻혀서 나누는 대화에나 써먹기 좋은 거지. 각자 자신의 자아에 죽치고 눌러 앉아,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우리의 든든한 확신에는 눈곱만치의 영향도 주지 않으면서 말이네.
-131-132쪽

누구나 자기 내부의 적을 너무 오랫동안 입막아두고 있으면 이렇게 되는 법이라네. 그러다가 일단 마이크를 붙잡게 되면 절대로 놓지 않으려 드는 거지.-132쪽

나는 아무것도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자네의 일부일 뿐이거든. 모르는 것과 잊는 것은 아주 다르지. 만약 사람들이 모든 기억을 잃지만 않는다면 전혀 모른다고 생각해온 주제에 관해서도 얼마든지 서로 의견을 나눌 수가 있는 거라네.-133쪽

난 자네 자신을 파괴하는 자네의 일부분이야. 거대해지는 모든 것은 자기파괴능력을 배가시키는 법이지. 내가 바로 그런 능력이고.-136쪽

가장 심각한 사랑에 빠진 남자조차도 - 아니, 특히 그런 남자일수록 - 언젠가는, 비록 일순간이나마, 자기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드는 법이라네. 바로 그러한 순간, 그게 바로 나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그 감춰진 모습을,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믿을 정도까지 무마시키고야 마네. -141쪽

물질적인 증거라는 것은 너무도 투박하고 멍청해서 확신을 굳혀주기보단 오히려 그걸 약화시키기 마련이라네.-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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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통 작품을 이걸 읽고 반했다가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실망했답니다 ㅠ.ㅠ

프레이야 2006-02-1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둘다 '살인'이 등장하네요.. 전에 읽었던 것들에 밑줄 친 것 올려봅니다.^^

하늘바람 2006-02-1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멜리 노통좋아요

프레이야 2006-02-1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그러고보니 앙테크리스타, 와도 비슷한 거 같네요.
 
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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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직업이 바로 작가라는 직업이오. 문체니 주제니 줄거리니 수사법 같은 것들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오로지 작가 자신이니까. 그것도 말이라는 걸 갖고 그렇게 한단 말이지. 화가나 음악가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네 작가들처럼 말이라는 잔인한 도구를 갖고 그렇게 하진 않소. 암, 기자 양반. 작가는 음란해야 하오. 음란하지 않다면 회계사나 열차 운저누나 전화 교환수 노릇을 하는 게 더 낫지. 다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들 아니오.-21쪽

나는 음식을 먹듯 책을 읽는다오. 무슨 뜻인고 하니, 내가 책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책이 나를 구성하는 것들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들을 변화시킨다는 거지. 순대를 먹는 사람과 캐비어를 먹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잖소.-76쪽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이토록 실상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이 어디 있겠소.

읽히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특혜지. 어떤 이야기든 다 쓸 수 있으니까. -79쪽

이 시대처럼 가증스러운 시대는 없었다오. 한마디로 허위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대요. 허위적인 건 불성실하거나 이중적이거나 사악한 것보다 나쁘지.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말로 장식되는 졸렬한 자기만족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오. 또 남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정직하고 사악한 거짓말, 남을 궁지로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지. 사이비 거짓말, '라이트'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미소를 띤 채로 욕을 해댄다고, 호의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오.-82쪽

귀는 입술의 울림상자요, 내면을 향한 입이라고.

손은 쾌감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거요. 글을 쓰면서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작가는 당장 절필을 해야하오. 쾌감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패륜이오.-95쪽

독서 혹은 非독서와 결부된 대화가 얼마나 거만함으로 가득할지. 그리고 또 기타 등등하며! 그러니 나한테 글쓰기가 강간처럼 해롭지 않다느니 하는 얘기일랑 하지 마시오.-96쪽

글을 쓴다는 건 소통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오. 왜 글을 쓰냐고 물었으니, 매우 엄정하면서도 매우 배타적인 대답을 들려드리리다. 그건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요. 글쓰기는 날 쾌감의 절정으로 이끌곤 하오.-97쪽

문제는 읽는 장소가 아니라, 읽기 그 자체요. 내가 바라는 건 내 책을 읽되, 인간 개구리 복장도 하지 말고 독서의 철창 뒤에 숨지도 말고 예방 접종도 하지 말고 읽으라는 거요.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부사 없이 읽으라는 거지.-177쪽

창작 행위에 있어서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오. 정해진 형태도 의미도 없는 우주와 마주하여 작가는 조물주 노릇을 할 수밖에 없소. 작가가 대단한 글재주로 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지 않는 한, 사물들은 제 윤곽을 지니지 못할 테고 인간의 역사 또한 놀란 입만 쩍 벌리고 있게 될 거요.-226쪽

레오폴딘을 목 조르면서 내가 그애를 진정한 죽음으로부터, 즉 망각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거요. ....... 이 세상은 살인자들로 득실대고 있소.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 놓고 그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 말이오.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소? 망각은 대양이라오. 그 위엔 배가 한 척 떠다니는데, 그게 바로 기억이란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억의 배는 초라한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오.-230-231쪽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언젠가는 진부한 표현들 너머 말이 그 처녀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황무지'에 도달하리라는 일념으로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지. 악취미다 싶은 말을 하면서도 경이로울 정도로 지고지순한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 말싸움과 하찮은 불평불만을 영원히 넘어서는 것 말이오.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일 거요. '사랑하오'라고 말하면서도 음란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으로는.-251쪽

문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변별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오. 우리의 숭고한 대화도 불가능했을 것이고.-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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