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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구판절판


- 소리의 근본은 물(物)을 넘어서지 못한다.
- 하오면, 물이 어찌 사람을 흔드는 것입니까?
- 울림이다. 울림에는 주객이 없다. 그래서 소리가 울릴 때, 물과 사람은 서로 넘나들며 함께 울린다.......
- 하오면, 듣는 자가 여럿이면 한 소리가 여러 소리가 되어 소리는 정처 없는 것입니까?
- 니문아, 네 말이 너무 어렵구나. 이 널판이 악기가 되는 날, 아마도 알 수 있을런가-21쪽

- 소리가 저 무너지는 고을들을 어찌할 수 있으랴.

널판에 육기가 빠져 재료의 뼈대만으로 마르는 날, 널판에 울림통을 파고 그 위에 열두 줄을 매어서 튕기면 마른 널판이 줄의 떨림을 울려주고 또 재워주며, 소리와 소리 사이를 이어줄 것이었다. 새 시간이 그 열두 줄 위에 내려앉고, 그 줄이 울릴 때 시간의 빛들은 끝없이 태어나서 이어지고 또 흩어질 것이며 소리는 그 시간 위헤 실려서 솟고 또 잦으면서 흘러갈 것이었다.-86쪽

소리에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없다. 마르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다. 소리는 덧없다. 흔들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소리의 본래 그러함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제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소리는 사는 일과 같다. 목숨이란 곧 흔들리는 것 아니겠느냐. 흔들리는 동안만이 사는 것다. 금수나 초목이 다 그와 같다.-139쪽

소리가 곱지도 추하지도 않다면 금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 덧없는 떨림을 엮어내는 틀이다. 그래서 금은 사람의 몸과 같고 소리는 마음과 같은데, 소리를 빚어낼 때 몸과 마음은 같다. 몸이 아니면 소리를 끌어낼 수 없고 마음이 아니면 소리와 함께 떨릴 수가 없는데, 몸과 마음은 함께 떨리는 것이다.

떨림은 시간과 목숨이 어우러지는 흔들림이다. 그래서 목숨은 늘 새롭고 새로워서 부대끼는 것이며 시간도 그러하다. 소리는 물러설 자리가 없고 머뭇거릴 자리가 없다.-140쪽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아정과 번잡은 너희들의 것이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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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클럽 반올림 6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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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 부는 곳을 걷는다. 어딘가 문이 있다. 잊고 있었던 문이 열렸다. 그래, 저런 문이 있었지. 차갑고 뜨거운 빛깔의 청동 잎과 꽃과 줄기로 장식된 문. 잊고 있던 곳으로 통하는 문.

문 너머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문 안에 있는 것은 잊고 있었던 정원, 잊고 있었던 길, 잊고 있었던 호수, 잊고 있었던 세계. 세계의 잔해.-11쪽

나는 말이 없어졌고, 신중해졌다. 말하지 않기. 보지 않기. 틈을 보이지 않기. 티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걸은 물러서고 나면 한 걸음 다가와 끌어 내는 사람은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원하는 만큼 물러설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의 거리. 무한한 척력으로 채워진 공간.-16쪽

퍼즐을 쉽게 맞추려면, 먼저 모두 그림이 있는 쪽으로 뒤집어. 그 다음에는 이렇게, 한쪽이 직선인 테두리 조각들을 찾는 거야. 테두리를 둘러 맞춰 놓아야 안을 채우기가 쉽거든.

사는 거랑 비슷하네.-79쪽

테두리 밖에도 퍼즐 조각들이 있다고 생각해?

나는, 늘, 그런 기분이야.-80쪽

몸으로 사는 것. 머리로만 살지 않는 것. 그런 걸 나도 할 수 있다면. 나도 몸을 던져서 타오를 수 있다면. 그런 일체감 속에서 살 수 있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를 보았다. 역시 세상은 넓었다. 내가 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닐지도 몰랐지만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128쪽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일들은 사건이라거나 행운이라고 하고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은 일상이라 부른다. 상처 받고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리고 피를 흘리는 일들을 일상이라고 한다. 일상의 처연한 풍경 안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은행나무 잎들이 바람에 몰려 골목을 지났다. 구겨지고 밟힌 노란색.-157쪽

- 무감각한 것보다야 훨씬 낫지. 맘껏 흔들리고 불안정해지는 게 나아.
-그래야 뭔가 탄생할 여지가 생기는 거니까. 창조......변화, 소용돌이, 뭐 그런 거.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숨은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오스에서 모든 게 시작되듯이. 안정된 원소는 분열하지도 않으니까. 뭔가 만들어지려면 괴롭고 슬프고, 그런 게 필요하거든.-172쪽

상처 받는 걸 두려워하지 마. 상처를 가지고, 그것 때문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도 있어. 나이 든 사람들의 주름처럼. 어쩔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면, 말끔히 지워질 것 같지 않다면, 그걸로 아름다운 흉터를 만들도록 해. 상처가 아무는 것은 그 후에 달린 거니까.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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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책장을 열어보고 싶었는데 혜경님 서재에 몇 장 열려있네요. ^^

프레이야 2007-08-19 11:00   좋아요 0 | URL
누에님, 몇 군데 잘 보셨는지요? ^^
책표지가 참 근사하지요.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한여름 밤의 꿈 혜원 월드베스트 34
W.셰익스피어 지음 / 혜원출판사 / 1998년 7월
품절


헬레네 :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거야. 그러기에 날개를 가진 큐피드는 장님으로 그려진 거지. 사랑이 마음은 조금도 분별심이 없어. 날개와 장님, 이러야말로 물불도 모르는 성미를 나타낸 거지.-14쪽

파크 : 그러면 두 사람이 동시에 한 여자에게 애걸하게 되겠네요. 그렇게 되면 참 가관이겠네. 저는 일이 뒤죽박죽되는 걸 제일 보기 좋아하거든요.-47쪽

오베론 : 이것도 네 태만 때문이구나. 여전히 넌 실수 아니면 고의로 장난을 저지르는구나.
파크 : 아닙니다. 그림자 세계의 임금님. 이건 실수 쪽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니 도리어 좋잖습니까? 글쎄 저자들의 이 다툼이 썩 좋은 심심풀이가 된 셈이거든요.
오베론 : ...... 그때에 이 약초를 라이샌더의 눈 속에 짜 넣어라. 이 약즙은 굉장한 효험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번에 눈의 착각은 씩겨지고 장상적인 시력으로 회복될 것이며 눈을 뜨고 이 어리석은 소동은 모두 허무맹랑한 꿈같이 여겨질 것이다.-55쪽

디미트리어스 : 그래 우리들은 확실히 눈을 뜨고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엔 어쩐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걸.-67쪽

티시어스 : .... 광인과 연인과 시인은 머리 속에 상상이 가득 차 있소. 광대한 지옥도 좁을 만큼 악마를 보는 자가 있는데, 이것이 곧 광인이오. 연인도 광인과 똑같이 거지 계집년의 얼굴을 절세 미인같이 보거든요. 시인의 눈 또한 요기에 불타고, 천상에서 대지르 ㄹ내려다보며, 지상에서 천상을 쳐다보오. 이렇게 해서 시인의 상상력이 미지의 사물에 일정한 형태를 주자, 그 붓은 그걸 구체화 시키며 공허한 환상에다 장소와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오.-71쪽

티시어스 : ...... 하지만 정말 난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환영의 마음씨를 찾아냈소. 마구 조잘대는 건방지고 무엄한 웅변보다는 그렇게 겸손하고 황공해 하는 충실성이 나로선 훨씬 더 좋게 느껴졌소. 그러니까 경애심과 혀를 속박당한 소박한 마음씨는 말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에게는 더욱 웅변처럼 들린단 말이오.-74쪽

파크 : 혹시 저희네 요정들의 한 짓이 마음에 안 드시거든, 이렇게만 생각해 주십시오. 잠시 졸고 계시는 사이에 꿈을 꾸신 거라고요. 그래야 화도 풀리실 것 아닙니까. 이 빈약하고 보람없고 꿈 같은 연극을 부디 과히 꾸짖진 마십시오.-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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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구판절판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empower).-12쪽

낮과 밤의 구분이 모호한 해질녘 황혼과 동트는 여명이 아름다운 것은 경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혼란이 아니라 기존의 대립된 시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상상력이며 가능성이다. 대립은 서로를 소멸시킬 뿐이다.-13쪽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각자의 처지(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연대이지, (남성중심의) 단결이나 통합이 아니다.-22쪽

고통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권태다. 고통은 변형되어야 하되 잊혀져서는 안 되고, 부정되어야 하되 지워져서는 안 된다. 죽음이라는 사실(fact)은 육체적으로 우리를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idea)은 우리를 구원하듯이 말이다...... 나는 열등감과 분노, '불평 불만'은 새로운 인식, 즉 실천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25쪽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 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한 가지 목소리마저도 알기 어렵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34쪽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35쪽

여성주의는 세상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바로잡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의식과 행동을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인식하고 정치화하도록 돕는 것이다.-43쪽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서구 남성 중심의 사유방식이라면, 여성주의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라고 믿는다. ......다른 타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보편주의' 정치학으로서 여성주의의 언어가 지닌 힘이다.-44쪽

어머니는 대단한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픽션이며, 따라서 예측할 수 없는 임의적인 이데올로기다. 아들이 필요로 하는 변화무쌍하며 한없는 요구의 대상, 이것이 어머니론의 핵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는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희망과 자신에게 부과된 희망을 구별하지 못한다.-65쪽

인간 세계는 말을 만드는 사람, 즉 정의하는 자와 정의당하는 자가 있다. 언어는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차별의 시작이다.-72쪽

아버지의 연장으로는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 - 벨 훅스

'말씀'의 세계에서 내쫓기는 것도 비참하지만 그것에 감금당하는 것은 더욱 비참한 일이다. - 버지니아 울프-77쪽

이 사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인간의 감성과 사랑이 평등이나 정의가 아니라 지배와 폭력을 에로틱하게 느끼게 되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평등을 에로틱한 것으로 느낀다면, '위안부 누드'는 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86쪽

남성문화와 여성문화가 동일하게 학습되고 상호 존중되어야 여성들은 남성과의 차이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지금처럼 남성의 목소리가 일방적이고 유일한 것일 때 즉,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가시화되지 않을 때 남녀 모두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기 쉽다.-97쪽

가부장제 사회는 여서의 좌절이나 분노, 우울증 같은 학대당한 경험의 표현을 억압하는데, 여성이 자기 고통에 직면하지 못할 때 섭식장애가 나타난다. 폭식이나 거식은 언어화되지 못한 여성문제가 머무는 도피처, 연막인 것이다.-101쪽

가족은 친밀성과 자발적인 상호 보살핌의 공간이 아니라 지나치게 도구적이다. 기러기 아빠는 이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이는 남성이 희생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가족이 자녀교육의 성공, 즉 출세지상주의와 경쟁논리로 가득한 공적 영역에 얼마나 종속적인지를 보여준다.-107쪽

여성운동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 역사, 정치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125쪽

나는 모든 남성이 여성문제에 대해 '무지몽매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남성을 깨우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여성주의 정치학'이 내 삶의 다양한 준거 중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내가 '계몽적인 인간'이 될까봐 몹시 두려워하는 사람이다.-129쪽

여성의 피해의식이 피해자로서 지니는 사회구조적 의식이라면, 남성의 '피해의식'은 가해자의 정신분열, 프로이트식으로 말한다면 죄의 투사이다.-145쪽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이 대립할 때, 당연히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성폭력뿐 아니라 모든 인권 이슈의 기본 시각이다. ... 피해자 진술의 객관성은 피해자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회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150쪽

표현의 자유는 아무 때나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저항일 때만 권리로 존중될 수 있다.-158쪽

인권은 사회의 권력 관계와 관련 없이 추상적, 초월적으로 본래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구성되고 쟁취되는 경합적 가치관이다. 인권은 언제나 피억압 집단의 개입을 기다리는 과정적 개념인 것이다.-159쪽

여성주의의 인권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근대적 개인, 근대적 주체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과 동시에, 기존 인권 개념의 기준 자체에 도전한다. 정의(justice)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178쪽

연령주의의 문제를 회피하는 사회는 나이 듦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라는 식의 담론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인간의 나이는 임의적인 인식과 제도의 산물이다. 그것은 억압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정치,경제학적,사회,심리적인 물적 토대를 가진다.-189쪽

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는 계엄령이 필요없는 사회다. 사회 구성원들의 상상력, 용기나 소망은 나이에 따라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나이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억압된 사회, 이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조용한 폭력'이다.-199쪽

모든 대상과의 소통은 새로운 관계에 들어감을 의미한다. 대화의 과정이란 나와 상대방의 의도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와 상대방이 대화의 관계에 몰입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대화의 관계에서는 누구도 상대를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다만 이해하려고 한다. 대화로부터 무엇이 드러나는지는 대화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대화는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의미의 재창조이다.-215쪽

이름짓기는 정치학이다. 명명(命名)의 과정과 결과는 명명하는 집단의 시각과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때문에 객관적이거나 보편적 언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용되는 언어는 그 언어를 둘러싼 사회적 투쟁의 연속선의 한 지점일 뿐이다.-226쪽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각은 역사적으로 다르다. 4천 년 전 중동의 수메르 사회에서 성판매 여성들은 지혜롭고, 교육받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남성을 길들이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이후 도시 국가에서 가족 제도가 확립되면서부터 '아내'와 구별되기 시작했다.-232쪽

목소리와 침묵에 관한 이슈들은 여성주의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우리는 정치적 의제 설정 과정에서, 누구를 배제하고 누구와 토론할 것인가, 누가 말하고 누가 들을 것인가, 어떤 주제를 토론하고 토론하지 않을 것인가는 모두 권력 관계의 결과임을 알고있다.-238쪽

무엇보다 이 영화는 성별화된(gendered) 주체이자, 시각 주체(the seeing subject)로서 근대적 남성 주체와 군사주의의 필연적 연결성을 보여주는 매우 뛰어난 반전영화이다. <알 포인트>는 타자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타자와 공존할 수도, 거리를 둘 수도 없는 남성의 자기 분열과 죽음 고백한다.-242-243쪽

이때 평등은 공정함(fairness)이라는 정의가 아니라, 남성과의 같음(sameness)을 강요하는 남성동일화(identification)이다. 때문에 여성의 '평등한' 군대 참여는, 역사상 어느 국민국가에서도 채택된 적이 없고 어떤 여성해방 이론에서도 주장된 일이 없다.-252쪽

총을 쏘는 것, 과녁을 맞추는 행위는 보는 행위다. 미술에서 원근법은 인식 주체인 개인의 등장과 함께 발명되었는데, 근대적 의미에서 이러한 보는(인식) 주체는 백인 남성을 의미한다. ......보이는 대상은 성애화된다. 사격, 사정, 투사, 촬영하다(shoot)는 모두 '쏜다'는 뜻을 포함한다.-268쪽

군 제도에 동원되는 피지배 계급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성찰하여 지배 계급 남성과의 연대와 동일시 욕망을 극복하고 여성들과 연대할 때, 군사주의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273쪽

혁명은 이름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지만, 개혁(re/formation)은 몸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앎은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에게로 자기 몸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경험하게 되면, 다시는 알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안다는 것은 자신의 확장된 몸에 사로잡히는 것이기 때문이다.-277쪽

알이 부화하여 나비가 되는 것처럼 몸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태(變態 , metamorphosis) 의 고통을 뜻한다. ...... 의식화는 '변절'이나 '전향'이 가능하지만, 변태는 형태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의식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변절'이 불가능하다.-278쪽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리에 저항하는 여성주의는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대립시키지 않는 사유 방식이다. 나의 변태는 곧 사회의 변화이다.-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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