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큰딸이 드립해준 커피를 마시며 우연히 보게된 프로그램에서 '아내의 정원'을 보았다. 오산의 호숫가에 800여 평의 자연정원을 40여 년간 가꿔온 여인과 그 남편의 이야기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큰 자연정원이었을 리 없다. 미약하게 시작해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지 느껴졌다. 86세의 남편과 사는 83세의 이 아리따운 여인은 안홍선 님. 시인이자 퀼트예술가인데 말도 맵시도 참 곱구나, 속말을 하며 보면 볼수록 두 사람의 멋스러움이 배어나 마음에 참 좋은 거다. 두 분 모두 상당히 멋쟁이인데 그 멋이란 게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점에도 있겠지만 순한 인상에 말수가 적고 상대를 배려하는 진중한 마음씨 그리고 상대를 고마워하고 추켜세워주는 마음에 느껴지는 진심에서 오는 것이었다.
안홍선 님의 커다란 퀼트작품에는 정원일과 정원의 아름다운 식물들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들어가 있다. 정원을 가꾸며 모자를 쓰지 않는다는 안홍선 님. 햇볕이 자신의 약한 몸을 치료해주었다고, 기미 정도는 햇살의 은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다. 계절마다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하는 시기면 돌보아줄 꽃들이 많아 손이 바빠진다며 행복해 한다. 생명을 돌보는 마음이 시인의 마음, 예술가의 마음이구나. 남편은 이 모든 걸 영원히 담아두기 위해 사진클래스를 듣고 아름다움을 채집한다. 집도 정원도 정원일을 하는 아내를 사진에 담아내는 남편의 눈길도 품위있고 온후한데다 주말이면 내려와 음식을 해주는 중년 딸과 호숫가 그늘 식탁에 둘러앉아 만찬을 즐기는 부부가 참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 김장철이면 청년 손자까지 내려와 이북식 김치를 담는데 손자도 참 순둥하네. 인간으로서 할머니를 좋아한다는 말, 최고의 존경심이 아닐까. 가족이 모두 유순하고 온유한 성품이다.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뾰족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다독이게 된다.
정원을 가꾸면 그렇게 되는건지 그래서 정원을 가꾸는 건지 따져볼 것도 없이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소망이 다시 불현듯 든다. 여생에 한번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다짐을 조용히 해보며 타샤 튜더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펼쳐보기만 해도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든다.
타샤는 1915년 보스턴에서 조선 기사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타샤 집은 마크 트웨인, 소로우, 아인슈타인, 에머슨 같은 인물들이 출입하는 명문가였다. 9세에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 친구집에서 살기 시작하며 그 집의 자유로운 가풍에 영향을 받았다.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23세에 첫 그림책을 출간하고 결혼한다. 30세에 뉴햄프셔의 시골로 이사해 2남 2녀를 키우며 그림책을 내고, 칼데콧상을 수상한 건 42세 때이다. 더욱 시골인 버몬트 주 산골에 18세기 풍의 농가를 짓고 생활하기 시작한 건 56세 때이다.
<호박 달빛>은 1938년에 출판된 내 첫 작품이다. 뉴욕의 출판사마다 찾아나녔고, 결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해주기로 했다. 당시 난 갓 결혼한 새댁이었고, 사람들은 그 책에 나오는 아이가 나중에 내가 낳은 아이들과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내가 그런 아이를 갖기 바라면서 그렸을까. 처음 받은 인세는 75달러였다. 난 큰돈을 벌었다고 생각했고!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111쪽
가을에 정원에서 일하면 얼마나 상쾌한지. 서리 맞은 고사리와 초록 나무의 싱그러운 냄새가 풍기고, 성가신 날벌레도 없다. 이때 많은 양의 구근을 심어야 한다. 나리까지 넣으면 이번 가을에는 2천 개쯤 심으려 한다. 저번 달 정원에서 일을 하다가 첫 캐나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자 마치 원시 시대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맑은 날, 편지함 옆의 흰 자작나무 위로 흰 기러기떼가 날아가는 광경은 숨 막힐 만치 아름답다.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112쪽
또 내가 좋아하는 책 <정원일의 즐거움>
수채화 그리는 헤세만큼이나 정원일 하며 글을 쓰는 헤세의 명상에는 눈여겨볼 곳이 많다.
헤세는 수채화와 정원일로 스스로 치유의 즐거움을 누렸다.
이 책은 딱 20년 전에 맞이해 가끔 들춰보곤 하는데 오늘 정원 이야기를 보니 또 꺼내보고 싶어졌다. 표지의 저 사진이 본문에 수록되어 있고 그 아래 이렇게 적혀 있다. 해바라기에 대하여.
- 헤세는 이 사진 밑에 친필로 "내가 가꾼 몬타뇰라의 진미,
해바라기는 화가와 새들에게 최고의 진수성찬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113쪽)
내가 정원 위로 눈길을 보내면 정원은 단지 황홀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시선을 던지는 이방인을 보듯이 그렇게 나를 대하지 않는다. 정원은 나에게 무한히 많은 것들을 준다. 지난 수년 동안 밤낮으로, 매 시간마다 모든 계절과 모든 날씨 속에서 정원과 나는 친밀해졌다.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의 잎사귀들과 그들이 꽃피고 열매 맺는 모습은 물론, 생성하고 소멸해가는 모든 과정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친구였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나무들 가운데 한 그루라도 잃어버린다면 나한테는 친구 한 사람을 잃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다가, 깊은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발코니에 나가 나를 올려다보는 우듬지들을 바라보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 (69쪽)

좋은 영화 <인생후르츠>를 빼놓을 수 없지. 실제 일본 부부, 90세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와 그의 아내 87세 츠바타 히데코가 도심 마을에 그들만의 작은 집(효율성을 생각해 목조 원룸으로)을 짓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소소한 일상과 소박한 자연정원의 아름다움을 유머 깃든 넓은 품성으로 꾸린다. 문은 늘 열려 있고 슈이치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고간다. 이들의 작은 정원에 빨간 방울토마토가 열리고 무당벌레도 보이고 애벌레도 기어간다. 꽃만 어여쁜 게 아니라 예술가의 눈에는 온갖 생명이 다 애정을 갖고 응시할 대상이다. 특유의 밝은 분위기가 이어지는 넉넉하고 조촐한 삶, 그 삶의 과정에 마지막으로 죽음이 등장한다. 여느 때처럼 정원일을 하고 들어와 자는 듯이 가버린 남편을 히데코는 여전히 사랑한다. 이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럽다. 소박하고 정갈한 품성으로 죽음도 자연스럽게 축복하는 마음, 남은 자의 안쓰러울 법한 여생도 수럭수럭하게 그러안는 마음. 무엇보다 생을 명랑하게 꾸려나가는 태도가 마음에 든다. 내레이션을 키키 키린이 맡아 열연하는데 히데코의 낙천적인 목소리로 잘 어울린다. 포스터도 밝다.

키키 키린의 유작이 되어버린 <모리의 정원>도 너무 좋다. 포스터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든다.
나라에서 주겠다는 문화훈장도 귀찮아서 안 받겠다는 94세 화가, 모리카즈는 아내 히데코(키키 키린)와 작은 정원이 있는 이 집에서 30년을 산다. 실제로 1880년에 태어나 1977년에 타계했으니 영화는 세상을 뜨기 3년 전의 상황이다. 이 수수한 집에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드나는다. 여관 간판 글씨를 써달라고도 오고 그림을 배우겠다고도 오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온다. 모리는 정원 한가운데 땅을 파서 자연굴을 만들었는데 그곳에 자연적으로 물이 고여 연못이 되었다. 그 연못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건 작은 풀들에게 인사하고 개미가 발을 띨 때 왼쪽 두번째 발부터 뗀다는 걸 관찰하듯 일상이다. 모리에게 정원은 자신의 모든 것, 우주다. 더 살고 싶고 다르게도 살고 싶은 모리는 바둑을 두다가도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간다. 그의 '학교'란 집에 있는 화실. 꾸밈없고 소박한, 아이의 그림같은 작품을 그려낸다. 그에게 딸이 그린 '태풍' 그림을 보여주며 의견을 구하는 남자에게 하는 소중한 대사 한마디 "잘 그린 것은 끝이 보이잖아. 못 그려서 좋아. 잘 그린 것만 작품이 되는 건 아니야." 죽음의 사신이 어느 날 모리의 손을 끌지만 가고 싶지 않다고 아내가 번거로워질거라 안 된다고 거부한 모리는 더 살고 싶고 다르게도 살고 싶은 생의 열망을 지녔다. 나이가 들어도 몸이 불편해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이 모든 걸 유머러스하고 밝게 담아내어 다시 보아도 좋은 영화다.
<모네의 정원에서>
2014년 2월 도쿄에 32년만의 폭설이 온 날 중학교 졸업을 앞둔 희령이를 데리고 도쿄에 갔다. 다행히 둘쨋날 도시의 거리는 걷기에 괜찮았다. 간다역에서 하라주쿠, 신주쿠, 다시 우에노역으로 가 우에노공원으로 들어서며 공원지도를 챙기고 바로 우측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 갔다. 마침 클로드 모네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으니 지나칠 수가 없었지. 그때 참 인상깊었던 건, 노년으로 보이는 여성분들이 특히 많았고(단체 아니고 개인적으로) 모두 조용조용 한참동안 한 그림 앞에 서서 감상하더라는 점. <모네의 정원에서>는 오래전 아이들에게 모네 그림을 소개해주면서 고른 좋은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처럼, (뜬금없지만 요즘 터지는 사건들을 보면), 아잇적에 의미 있는 타인으로 역할해주는 어른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2016년 7월초 지베르니의 모네 정원. (배혜경 아이폰 촬영)
파리 근교 지베르니, 모네의 집과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들머리부터 길섶에 꽃양귀비와 내가 이름을 잘 모르는 꽃들이 반겼다. 우리네 시골처럼 소박한 마을, 생의 절반을 보냈던 모네의 멋진 집(주방이 특히 이뻤다)과 화구들을 보고 2층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네는 열정적으로 이 넓은 정원을 가꾸었고 수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초록정원을 한 바퀴 걷는데 싱그러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느새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색색의 수련과 온통 초록 내음 속 저 진초록 일본식 다리! 다리 자체는 별것 아니지만 모네가 막연히 동경했던 흔적이고 그림에도 나오는 곳을 디디니 '모네의 정원' 표지 속 아이처럼 반가웠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거닐던 청명한 기억이 새록새록.
주변에 정원을 가꾸는 이도 있고 텃밭을 가꾸는 이도 있다. 텃밭이라고 하면 정원하고는 또 다른 것이지만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작은 찻집을 하며 아이들 건사하고 주말엔 남산에서 편의점 알바도 하는 친구와 그런 일은 하지 않지만 나대로 또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나는 이 모든 걸 텃밭을 가꾸는 일에 비유하는 데 동의했다. 오늘도 텃밭 잘 가꾸고 있지? 이러며 ^^ 몸은 물론 마음텃밭도 잘 가꾸자꾸나. 그러고 보니, 정원을 가꾼 이들 모두 적어도 팔순을 넘기고 장수했다. 나는 장수를 꿈꾸는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