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도 랄프 파인즈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두어 달 안에 연이어 보게 되었다. The Constant Gardener는 예상 외의 감동을 받은 작품이었고 The English Patient는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디비디를 이번에야 보게 되었다. 두 영화 모두 인간애와 인류애를 말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지만, 주인공 랄프 파인즈가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인물로 나온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독일군 장교 역할을 할 때의 악의에 찬 그에게서도 어쩔 수 없이 설핏 느꼈던 이미지가 두 영화에서 더욱 강하게 비쳤다.

 



특히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는 상당히 지적이며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로 나오지만 그 안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속으로 모든 번민과 후회와 애정을 흐느끼는 모습에서 연민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점잖은 사람들 앞에 불쑥 나타나 오만불손한 태도로 사람들을 조롱하며 일탈의 태도를 취하는 정장 입은 멋진 모습과 그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캐서린(사랑하지 않았어야 할,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콘스턴트 가드너 / 국제인권가 아내, 용기있어 더욱 아름다운 여인>

 

<콘스턴트 가드너>는 ‘충실한 정원사’로 번역되는데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다른 내용과 아프리카 곳곳의 장면들이 충격과 감흥을 주었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자연과 사람들을 비춘 풍광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데, 거대제약회사의 음모와 아프리카인의 생명을 담보로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일들에 분노하게 된다. 비참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도 명랑하고 밝은 유희적 삶의 태도를 잃지 않는 아프리카인들의 생활 모습이 감동적이다.

 

이 영화는 여성성에 대한 예찬을 기저에 둔다. 정원을 가꾸며 꽃을 그리 여기듯, 아내를 신의 축복 어린 선물로 여기는 영국 외교관이 검은 대륙 또한 우리가 가꾸어야할 정원의 연장이란 것을 느끼기엔 아직 부족해 보인다. 아내도 세상에 가꾸어야할 정원의 꽃 한 송이였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은 그는 충실한 정원사의 자격이 모자란 걸까. 보이지 않는 검은손에 의해 의문사를 당한 아내를 따라가야하는 운명이었으니. 다소 소극적인 결말을 보여주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숙제를 남겨주는 영화다. 마지막 장면, 총소리에 놀라 새들이 날아오르는 황량한 호수의 하늘이 가슴 저민다. 

 


<콘스턴트 가드너>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대사는 문학적이다. 헤로도투스를 즐겨 읽고 그 책장 안에 스크랩과 편지 등을 간직하는 알마시. 키플링을 읽을 땐 콤마를 잘 인식하며 읽어야 한다며 또박또박 읽어주는 영국인 환자. 하지만 캐나나 간호사와 인도 장교에게는 호감을 얻지 못하는 내용이다.

 

아프리카 북부의 광활한 사막 풍경은 대사 못지않게 아름답다. 몰아치는 모래바람과 신비한 사구들 그리고 경비행기를 타고 아래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하나의 국가, 힘 있는 자들이 그린 국경이 없는 사막의 그곳을 좋은 사람들과 손잡고 걷고 싶은 희망. 캐서린이 죽어가며 남긴 글귀들이다. 국가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름으로 개인을 지켜주는 부분이 과연 무엇인지, 에 대해 이 영화만큼 서정적이며 가슴 시린 결론은 없는 것 같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toasted) 비참한 얼굴로 누워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알마시 백작(영국 지도학자)을 연기한 랄프 파인즈의 목소리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애절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


그는 비를 맞고 싶다고 늘 말했다.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 어느 날 시원스레 빗줄기가 내리고 간호사(매력적인 줄리엣 비노쉬)와 다른 두 사람(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장교와 알마시의 잃어버린 이름과 정체를 알고 접근한 영국 스파이장교)이 알마시를 들것에 태우고 밖으로 나온다. 얼굴에 비를 맞으며 행복해하던 그 보기 흉한 얼굴을 기억한다. 흥겨운 원시의 제의와도 같이 이들은 정원을 빙빙 돌며 춤을 춘다. 세례의식이라도 하는 걸까. 알마시는 자신의, 의도하지 않은 모든 죄의 대가를 이렇게라도 씻고 싶은 것 같다.

 



아내를 지극히도 사랑하여 자신이 가꾸었던 정원에 울분을 토하고 죽은 아내를 따라간 남자와 첫눈에 유부녀를 사랑하여 자신이 그린 지도를 팔아 국가적 배신자가 되면서도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려했던 불운한 남자. 영국인 랄프 파인즈는 두 영화에서도 영국인 외교관과 지도학자를 각각 연기하면서 귀족적인 풍모와 품격이 돋보였다. 영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외모가 그런 분위기에 썩 잘 어울린다. 그런데 평소의 진중한 태도가 조금 흐트러지면서 눌러두었던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더욱 보기에 좋았다. 멋있는 배우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알마시가 캐서린과 사랑을 나누며 하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무엇을 가장 싫어하느냐는 캐서린의 질문에 그는 '소유하는 것 그리고 소유되는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는 점점 그 망할 놈이 소유욕에 빠져들고 그 욕망이 자신을 파멸로 이끈 것인지도 모른다.  소유의 큰 개념, 국가와 국경에 대한 생각들이 자꾸만 존 레넌이 부른 'Imagine'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의 음악은 가브리엘 야레의 작품으로 모래사막에 물기가 젖어들듯, 메마른 가슴에 촉촉히 젖어든다.

 

- The English Patient / 2007년 내가 본 첫번째 영화 / 안소니 밍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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