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 탈진되고 , 불만스럽고, 공허한 감정. 더는 술 없이 살아갈수 없다는 그 한 가지 생각으로 인한 자기파괴.
토레 처음으로 술을 끊으신 건 언제인가요?
뒤라스 난 이제 술이라면 사람을 알듯, 알아요. 어느 정치 모임인가 사교 모임인가에서 처음 술을 입에 댔죠. 그러다가 마흔 살에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어요. 1964년에 일단 끊었다가 10년 뒤에 다시 시작했죠. 그렇게 지금까지 세 차례나 술을 끊었다가 다시 입에 대기를 반복했어요. 결정적으로 뇌이에 있는 미국 병원에 입원해서 3주 가까이환영과 정신착란에 시달리며 비명으로 나날을 보낸 후에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죠. 그 후로 7년이 지났지만, 난 알아요, 당장 내일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 P181

토레 왜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세요??
뒤라스 알코올은 고독이란 유령을 미화시켜요. 이곳에 없는 ‘타인’을 대신해주고 오래전, 어느 날, 우리 안 깊숙이 팬 구멍을 메워주죠. - P182

토레 선생님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선생님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뒤라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경험했어요. 다른 모든 여성들처럼, 일에서 벗어나 휴식할 때 나를 곁에 두고 싶어 하거나 그냥 내가 집에 있기를 바라는 남자 곁에서 지치고 지겨워졌죠. 많은 경우 내가 글을 쓰는 곳은 바로, 집이고 부엌이었어요. 집에서 나간 남자들이 남긴 빈자리가 좋아지기 시작했죠. 거기서 비로소 생각을 할 수 있었거나, 아니면 결과적으로 마찬가지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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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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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천천히

어머니는 내가 내 방을 정리정돈하고 작은 식탁보에 끝도 없이 수놓는 것을 보기보다는, 내가 책을 읽거나 혼자 놀면서 말하고, 작년에 사용한 노트에 글을 쓰는 모습을 보는 쪽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베풀어준, 세상으로 통하는 문과 같았던 독서를 기억하고 있다. - P38

세상이란 거기에 뛰어들고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 P43

완전무결하다는 오기노식 배란일 계산법을 여자아이들은 모두 수첩에 잘 베껴놓았다. 하지만 소리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것,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새끼 새의 부리처럼 항상 열려 있는 자궁과 난소를길들이기 위한 이 하찮은 달력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 두려움의 힘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스 비극과 라신의 비극은 전부 내 자궁 안에 들어 있다. 온갖 부조리 속의 운명. 어느 햇살 좋은 날, 당신의 인생이 한 방에 끝나버린다. 신부의 면사포 또는 작은여행용 가방 그리고 애새끼들, 비참한 해결책, 그에 비해 카뮈식 반항과 자유에 대한 철학적 갈망은 턱없이 모자란다. 나는 과묵한 나의 동반자를 아주 좋아하고, 때로 즐기고,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매달 28일째 되는 날 나의 미래가 멈춰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건 원치 않는다. - P134

수녀들을 벗어나서 1차 바칼로레아를 마치고 고등학교 3학년 과정에서 바칼로레아 철학 영역을 준비하고 싶은 새로운 욕심이 생긴다. 내가 계시처럼 기다려온 그 학년, 그 반에서 종교가 나를 망가뜨리게 둘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대도시와 높다란 고택들 사이를 누비는 익명의 도로, 어린 시절에 내게 보상이 돼주었던 도시 루앙을 갈망한다. 축제의 도시였던 루앙은 결국 내가 매일매일을 보내는 도시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작은 상점, 벽에 온통 스며든 커피 냄새, 날씨에 마법을 거는 노랫소리, 익숙한 생활과 죽음을 떠날 것이다. 나는 충분히 강한가.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고 어머니는 곰곰 생각하더니 외친다.
"네가 원하면 떠나라. 여자아이라고 엄마 치마폭에 영원히 남아 있으란 법 없다!" - P136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나를 눈뜨게 한 책이다. 읽고서 곧바로 결심한다. 결혼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나를 대상으로 취급하는 누군가와의 사랑도 안 된다. 학교로 가는 길에 떠오른 멋진 계획. 그러나 내가 부르고 싶은 호칭으로 맘대로 부르고, ‘너 머리결이 참 곱구나, 젖가슴이 이러쿵 저러쿵’, 몸을 두고 하는 입발림 없이, 웃고 교감하며 섹스를 하고픈 남자는 과연 어디 있을까? "내가 저 애 따먹었어." 그렇게 경멸당할 걱정 없이, 신뢰와 평등을 공유하면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그런 남자는 분명 드물다. 나는 견디고, 기다리지만, 혼란은 다시 시작되고, 그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세세한 것은 말하지 않겠지만 항상 똑같은 이야기다. 하루 저녁 동안, 일주일 동안, 한 달 동안, 그런 남자를 찾았노라 믿었다. - P144

기혼녀들의 충만함. 이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꼬치꼬치 따지는 데 쓸 시간이 없고, 현실은 그런 것이다, 한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단지 요구르트 두 개, 차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니까, 이제 덤벙거리는 여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날마다, 태워버린 완두콩에서부터 너무 짠 키슈까지, 즐겁지 않으면서도, 나는 불평하지 않고, 유모 노릇을 하려고 노력했다. "있잖아, 대학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집에서 먹는 게 더 좋아. 훨씬 맛있어!" 그는 진지하게, 나를 엄청나게 기쁘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가라앉는다고 느꼈다.
영어 번역, 으깬 감자, 역사 철학, 곧 슈퍼마켓이 닫힐 거야, 틈틈이 조각내서 하는 공부는 심심풀이가 되고, 점점 단순한 아마추어의 즐거움으로 변한다. 나는 힘겹게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전년도에 내가 열정적으로 선택한 초현실주의에 대한 논문을 마쳤다. 첫 3개월에 단 하나의 과제도 제출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중등교사 자격증도 분명히 따지 못할 것이다. 너무 어렵다. 이전의 내 목표들이 기묘한 흐릿함 속에서 사라져간다. - P183

그가 정오에 집에 돌아왔을 때, 점심 식사가 차려져있고, 아이는 침대에서 사랑스럽게 자고 있고, 그의 접시 옆에는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놓여 있다. 청소한 세면대, 비워진 재떨이, 다시 곧게 펴져 있는 침대 시트, 최소한의 것이 늘어갔다. 그를 기쁘게 해주고, 그의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점점 나를 단련시키는 생각, 곧 자명한 이치가 되는, 이토록 예쁘고 작은 가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회는 잘 돌아간다. 젊은 커플이 처음 번 돈으로 무엇을 살지 추측해보라. 나무로 된 스페인산 회전 전기스탠드, 고풍스러운 거울, 카드 테이블, 오래된 피아노, 종일 쳐두는 베일 커튼. 하나씩 하나씩, 물건들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고, 우리 주변에 자리 잡는다. 여전히 손에 손을 잡고 우리는 진열창 앞에 다시 선다. - P209

겨울에, 나는 첫째 아이의 걸음에 맞춰 안시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기차역 광장에 있는 작은 공원의 분수대 한가운데의 조각상 위에서는 물이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온몸을 따뜻하게 감싼 둘째 아이는 자신의 유모차에서, 연못 주위를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비둘기들을 잡으려 애썼다. 나는 내 육신이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고, 오직 시선만이 광장 건물들의 정면에, 생 프랑수아 학교의 철문에, 사보이 영화관에 얹혀 있었다. 영화관에서 상영하던 영화의 제목은 잊어버렸다.

끝에 거의 다 왔다, 거의 다. 이제 나는 곧 내가 끔찍이 싫어했던, 주름지고 비장한 얼굴들을 닮아가리라. 미용실 샴푸대에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젖히고 있던 얼굴들을 얼마나 걸릴까. 더는 숨길 수 없는 주름, 쇠락이 바로 앞에 와 있다. 이미 나는 그런 얼굴이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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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 시민 - 엄마를 위한 페미니즘 소설 선집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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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에이드리언 리치가 시작했던 지점에 도착한 것일까? "아이들은 내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격렬한 고통을 안겨준다. 양가감정이라는 고통이다. 나는 쓰라린 분노와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 더없는 행복에 대한 감사와 애정 사이를 죽을 듯이 오간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일기에서 나타나듯 리치에게 양가감정은 분노와 애정이, 아이에 대한 거부와 아이에게로의 손 내밀기가 번갈아 발생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충동은 마치 서로 단절되어 있고, 극복 불가능한 대립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작가로서의 자신을 긍정하고픈 엄마의 욕구와 엄마의 이타심에 대한 아이의 욕구(또는 아이에게 그러한 욕구가 있으리라는 엄마의 믿음)가 서로 대립하듯이 말이다. 라자르의 우화에도 이러한 분투가 어느 정도 나타나긴 하지만, 대립하는 요소 사이의 갈등이 아닌 조화의 가능성 또한 나타난다. 엄마가 검은 여인이고 검은 여인이 엄마라면, 둘 중 하나가 가진 에너지와 열망은 곧 다른 한쪽이 가진 에너지와 열망일 것이다. 엄마로서의 애정과 검은 여인의 자기표현 욕구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도울 수 있다. (190)




오늘 같이 샤워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주로 공부였지만, 주체적으로 공부 의욕을 드러내보이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공부 못해도 괜찮아, 공부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 하니까 거짓말 하고 있어, 안 믿어 흥! 이사가면 내 책상과 책장 달라고,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자기 책상은 작업대로 쓰겠다고. 응 그래라 했다. 남편도 봐둔 책상 있어, 나 그거 사줘 해서 그러기로. 나 지금 쓰는 건 작업대로 할래. (아니 왜 이렇게 작업대를 갖겠다고 하는거야, 다들) 그럼 나는 책상을 또 사야겠다. 어쩔 수 없이 사는 거랍니다, 책상. 이번에는 기필코 어마무시 넓은 책상을 사도록 하겠다. 이등 시민을 다 읽고나니 책상이 떠올랐고 내 책상과 책장을 달라고 한 민이 말이 떠올랐다. 모이라 데이비가 엮은 소설집 [이등 시민]을 완독. 오랜만에 재독했는데 역시 뼈를 울리는 구절들. 지금은 얼추 안정됐지만 그 긴장감을 생각하면 다시 아이를 낳을 자신 없다. 물론 둘째 계획도 없지만. 언제더라 결혼 생활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였던 거 같다. 남동생과 아이스 커피를 한 잔씩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누나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타임머신을 타고 말야,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다시 결혼할 거야? 아니면 솔로로 자유롭게 인생을 살아갈 거야? 조건은 없는 거야? 하고 물어보니 당연히 있지. 민이가 있고 없고. 다시 돌아가도 역시 나는 결혼을 할 거다. 민이는 내 목숨이랑 맞바꿀 수 있는 단 하나, 하니까 다시 똑같은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당연하지. 이런 고통 따위 아무 것도 아닌걸 푸후후 웃고 말았다. 저울로 무게를 잴 수 없다. 자식이라는 건. 꿈과 미래, 특히나 읽고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앞으로 업으로 삼을 엄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결론은 매한가지다. 물론 에이드리언 리치와 같은 고통은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자기만의 인생을 살겠노라고 떨어져 나갈 때까지 이어지지만 (우리 엄마 보면 그것도 아닌듯).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나중에 딸아이가 엄마가 되어 엄마로서의 인생과 자신의 일 사이에서 갈등을 할 시간이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이건 딸아이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기도 하다. 내 목숨 수천 만개와 맞바꾸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우리 아가다. 모성애라는 건 그렇게 수없는 씨실과 날실이 엮여 만들어진다. 애를 덤벙 낳았다고 해서 덤으로 거저 생기는 게 모성애가 아니다. 수많은 페이지를 넘기듯 싹트는 사랑이다. 엄마 마음이라는 건. 그토록 읽고 쓸 시간이 부족해서 허덕여도 나같이 천하의 게으름뱅이 엄마에 부족한 어미라 해도 결론은 단 하나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피학적인 애정이라고 한다면 백날 밤낮으로 비웃어줄 수 있다.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소설들 안에서 드러나있는 엄마 존재는 갈등 사이 여기와 저기에 있는 모습 투명하게 보여준다. 쓰다가 망할지라도 놓을 수 없는 자리이다. 흥한다면 더 좋겠지만 빛 반대편 이름 없는 존재들도 존재는 존재니까 또 나는 응달에 있는 이들에게 끌리더라. 거짓말하고 있네 라고 민이가 이 글 읽으면 그러겠네 크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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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0-03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학적인 애정이든 뭐든 아이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뭐라 하나로 이름붙이기 어렵죠. 아이 때문에 세상을 더 잘 보게 된다고 느낄 때도 많고, 아이때문에 내 삶이 너무 허덕인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이 아이로 인해서 나라는 인간이 좀 더 나아진다는게 맞는거 같아요.

vita 2021-10-03 22:18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말씀이 맞아요. 저는 더 밝고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구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제가 부족하고 한없이 모자른 인간인지라 그런가 보다 다른 여자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데 하고 나만 약간 또라이인가 하고 유독 힘들어했는데 지나고보니 그건 또 아니었더라구요. 모성애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뭐 지금이라고 다른 엄마들처럼 잘해주나 싶으면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그래도 자괴감은 더 이상 들지 않으니 살 거 같던데 아마도 아이랑 말이 통하고 서로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려는 마음가짐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결론은 역시 잘 낳았다 입니다 후후

2021-10-15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5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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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03 0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께들이 장난이 아니네요

vita 2021-10-03 09:58   좋아요 1 | URL
네 바라보기만 해도 뿌듯하더라구요 ㅎㅎㅎ

초딩 2021-10-03 0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정말 두께가 ㅎㅎㅎㅎ 파이팅이요!

vita 2021-10-03 09:58   좋아요 1 | URL
화이팅!!! 초딩님두!!

새파랑 2021-10-03 0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달안에 저책들을 다 읽을수 있는건가요? 대단~!! 숙제 달성을 응원합니다 ^^

vita 2021-10-03 09:59   좋아요 2 | URL
약속의 땅과 학교의 슬픔은 11월로 넘어갈듯 해요. 나머지는 10월 숙제인지라 가능하면 :) 응원 감사합니다. 새파랑님도 요즘 어마무시하게 읽으시던데요. 화이팅.

다락방 2021-10-03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장난 아니네요 저걸 다 어찌 읽으시려고요, 라고 하고 싶지만 저랑 겹치는 책들이라 함께 한숨 쉬고 힘내 봅니다!

vita 2021-10-03 14:33   좋아요 1 | URL
우리는 다 읽을 수 있다 아자!!!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10-03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하세요. ^^ 두께에 일단 으악입니다. ^^

vita 2021-10-03 22:19   좋아요 1 | URL
전 신나는데요 변태 같네요 신난다 얏호! 하니까 ㅋㅋㅋㅋㅋ
 
이등 시민 - 엄마를 위한 페미니즘 소설 선집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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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출산]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

일시 정지. 축축한 고양이가 제니의 다리 사이로 스르륵 미끄러진다. "아기 한번 보세요." 의사가 말한다. 하지만 제니는 아직 눈을 감고 있다. 어차피 안경이 없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아기 한번 보세요." 의사가 또다시 말한다.
제니는 눈을 뜬다. 옆에 실려와 있는 아기가 보인다. 걱정스러울 정도였던 보랏빛이 벌써 사라지고 있다. 제니는 생각한다. 좋은 아기다. 마치 그 나이든 여자가 ‘좋은 시계네요‘라고 말했을 때처럼, 아기가 튼튼하게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아기는 울지 않는다. 처음 보는 빛 아래서 눈부셔하고 있다. 탄생은 제니에게 주어진 것도, 제니가 행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제니와 아기가 이렇게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발생해버린 것이다. 간호사는 아기의 이름이 쓰인 팔찌를 준비 중이다. 따뜻하게 천으로 단단히 싸여 제니 곁에 누인 아기는 스스륵 잠이 든다. - P121

아기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마치 사과처럼 포장되어 방으로 들어오자 제니가 아기를 확인한다. 아기는 온전하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제니는 새로운 단어들에 휩쓸리고, 제니의 머리카락은 점점 짙어진다. 제니는 원래의 자신이기를 그만두고, 서서히 다른 누군가로 바뀌어간다. - P123

산책하고 백조한테 빵도 주자. 그리고 나는 크게 웃고, 노래를 부르고, 키도를 간질이면서 낡은 모성의 기쁨을 끌어올린다. 아이를 놀이방에 넣어놓고 귀에 귀마개를 쑤셔 넣은 다음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불온한 욕망은 내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침실로 뛰어 들어가 아이의 배변 훈련용 바지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유모차를 끌고 나갈 준비를 하는, 내 속도에 맞춰 아이를 다그치지는 않는 진짜 엄마여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 시큼한 냄새를 풍기면서 코를 질질 흘리던, 어린 시절에 알던 녀석들, 전혀 아이를 돌보지않는 지친 이웃이나 약간 머리가 어떻게 된 할아버지에게 버려진 네놈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너희 엄마들은 가난하고 양육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 반면 나는 아름다운 아파트에 살면서 바람을 넣어 부풀리는 아기용 욕조, 아기 저울, 엉덩이 크림도 갖고 있지. 우린 달라. 그리고 아기의 첫 3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그 정신분석학의 저주. 나는 그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 저주는 24시간 내내 나를 괴롭히고, 물론 나만 괴롭힌다. 나는 아이를 전적으로 혼자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 P130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슈퍼마켓에서 일어나는 정신분열이다. 절대 예측할 수 없다. 나는 통로를 따라 카트를 민다. 밀가루, 오일, 고등어 통조림, 망설임. 이건 늘 적신호다. 옆에 있는 다른 여자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쾌활하게 선반에 있는 물건들을 쓸어 담고 있다. 다른 여자들은 통조림과 쿠키 상자 앞에 서서 라벨을 읽으며 엄청난 집중력으로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내일그리고 남은 주중을 위해서는 분명히 먹을 게 아주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뭔가를 사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다. 먹을 것들이 늘어선 통로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식료품들은 점점 흐릿해지면서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흘러나오는 음악,
조명, 다른 여자들의 결단력,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소름끼치게 한다. 나는 영양 공급성 건망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자리에서 즉시 내빼버리고 싶다. 나는 가까스로 치즈와 포장된 편육 제품 몇 개를 대충 카트에 던져 넣은 다음 음식으로 터질 것 같은 카트와 위풍당당하게 그 카트를 밀고 있는 여자들 뒤에 얌전히 줄을 선다.
슈퍼마켓에서 나온 후에야 편히 숨을 쉴 수 있다. 냉장고 앞이나 슈퍼마켓 카트 뒤에서 느끼는 실존적 구토, 얼마나 훌륭한 농담인가. 그가 들으면 좋아할 것이다. 견습 교사 기간의 모든 게 비루하고 중요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째째한 불평,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징징거림이 아니고서는 표현하기가 힘들다. 나 피곤해, 손이 두 개밖에 없다고, 당신 일은 당신이 하는 게 어때. - P139

중학교는 일이 훨씬 더 쉽다. 재미는 없지만, "경력 쌓기." 그것은 남자들의 몫 중 하나고, 내 남편은 스스로를 위해 착실히 경력을 쌓아나가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차이, 무슨 차이를 말하는지, 나는 더 이상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같은 신문을 읽고, 똑같이 회의적인 태도로 정치인들의 연설을 듣는다. 우리의 계획은 평범하다. 새 차, 새 아파트, 아니면 우리가 수리할 수 있는 오래된 집,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여행 떠나기. 심지어 다른 삶에 대한 막연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도 똑같다. 가끔씩 그는 한숨을 쉬며 결혼은 상호간의 구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에 기꺼이 동의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견습 교사 기간이 끝난다. 습관은 계속 이어진다. 집 안에서는 원두 분쇄기와 프라이팬의 소음이 잔잔하게 이어지고, 바깥에서는 신중하고 현명한 선생님이자 까사렐이나 로디에에서 나온 옷을 입는 중역의 아내가 된다. 얼어붙은 여자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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