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소슬소슬하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방울이 또르르르 맺혀 바닥으로 향하는 곳으로 순간이동하고싶다.

느긋하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도 되는 그런 무념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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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모든 글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 때때로 너무 어려워서- 이 책만은 읽고 읽어도 좋다. 

빛과 초록, 그 사이 보이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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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1 1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하고 배경하고 완전 잘어울리네요. 눈이 정화되는 기분~!!

vita 2021-04-11 13:07   좋아요 2 | URL
저도 소설 읽는 동안에도 소설 다 읽고 책 찍으면서도 정화 ^^

psyche 2021-04-11 1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표지랑 배경이 딱 맞춤이네요!

vita 2021-04-11 13:07   좋아요 2 | URL
어쩌다 우연히!

blanca 2021-04-11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다른 책은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이 책은 한번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요!

vita 2021-04-12 09:03   좋아요 0 | URL
파스칼은 좀 애매한 지점이 많아요 저는 그래서 수월하게 읽히지 않던데 이 소설은 좋았어요 블랑카님
 

"늘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출판사에 지원을 해야겠지요."
나는 예전의 총명한 장사 수완을 되찾을 실마리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읽을 줄 알아야 해. 몇 가지 언어를더 할 줄 알면 좋고,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같은 걸로……..
러시아어를 구사할 줄 알면 더욱 좋지. 매년 6월이면 편집자가 될 거라는 생각으로 수백 명의 아가씨가 뉴욕으로 몰려들지. 보통 사람보다 나은 뭔가가 필요해, 외국어를 몇 가지 배우는 게 좋을 거야."
제이 시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졸업반 때는 외국어를 배울 짬을 내기 힘들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독립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우등생프로그램을 수강할 예정이었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강의를 듣고 고급 시 쓰기 세미나에 참석해야 했다. 그러면서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의 모호한 테마에 관한 글을 써야 했다. - P51

내 인생이 소설에 나오는 초록빛 무화과나무처럼 가지를 뻗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가지 끝마다 매달린 탐스러운 무화과 같은 멋진 미래가 손짓하고 윙크를 보냈다. 어떤 무화과는 남편과 행복한 가정과 아이들이었고, 어떤 것은 유명한 시인이었고, 또 어떤 것은 뛰어난 교수였다. 훌륭한 편집자라는 무화과도 있었고, 유럽과 아프리카와 남미인 무화과도 있었다. 어떤 것은 콘스탄틴, 소크라테스, 아틸라 등 이상한 이름과 엉뚱한 직업을 가진 연인이었다. 올림픽 여자 조정 챔피언인 무화과도 있었고, 이런 것들 위에는 내가 이해 못하는 무화과가 더 많이 있었다.
무화과나무의 갈라진 자리에 앉아, 어느 열매를 딸지 정하지 못해서 배를 곯는 내가 보였다. 열매를 몽땅 따고 싶었다. 하나만 고르는 것은 나머지 모두를 잃는다는 뜻이었다. 결정을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는 사이, 무화과는 쪼글쪼글 검게 변하더니 하나씩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 P107

블라인드를 내렸지만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엄마가 머리를 말아서 꽂은 핀들이 작은 단검들처럼 보였다.
유럽에 가서 연인을 만날 때까지 소설 쓰는 일은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또 속기는 한 단어도 배우지 않기로 했다. 속기를 배우지 않으면 속기를 쓰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여름 동안 『피네건의 경야』를 읽고 논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리 준비하면 9월 말에 새 학기가 시작됐을 때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고 커피와 벤제드린을 밥 먹듯 하며 쩔쩔매지 않아도 되리라. 우등 코스를 택한 졸업반은 졸업 논문을 마칠 때까지 정신없이 보내기 마련이지만, 난 마지막 해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터였다. 문득 공부를 일 년 미루고 도자기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났다. 아니면 독일에 가서 웨이트리스를 하면서 독일어를 완벽하게 익힐까.
이런저런 계획이 산토끼 가족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 P165

나는 〈베이비 토크〉지를 초조하게 넘겼다. 페이지마다 통통하고 환한 아기들이 밝게 웃고 있었다. 대머리 아기, 초콜릿색 피부를 가진 아기, 아이젠하워처럼 생긴 아기, 처음으로 뒤집기를 한 아기, 딸랑이에 손을 뻗은 아기, 처음으로 단단한 음식을 먹는 아기. 성장하면서 겪는 온갖 사소한 일들을 하는 아기들. 그렇게 한 발 한 발 초조하고 불안정한 세상에 발을 내딛는 것을.
이유식과 시큼한 우유, 기저귀에서 나는 소금에 절인 대구냄새가 뒤섞인 냄새를 맡자 서글프고 마음이 아련해졌다. 여기 있는 여자들은 아기를 갖는 것을 아주 쉽게 여기는데! 나는 왜 이리 모성애가 없을까. 왜 도도 콘웨이처럼 울어대는 통통한 아기에게 헌신하는 꿈을 꿀 수가 없을까.
온종일 아기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면 미칠 것 같았다. - P294

내 스무 살 생일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요양원에 면회 왔을 때의 엄마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꾸짖는 창백한 달 같은 얼굴, 딸이 정신 요양원에 있다니! 엄마가 그런 꼴을 당하게 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래도 엄마는 날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엄마는 순교자같이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떠나온 곳에서 시작하는 거야. 이 모든 게 나쁜 꿈이었던 것처럼 행동하자꾸나."
나쁜 꿈.
벨 자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죽은 아기처럼 텅 비고 멈춰버린 사람에게 세상은 그 자체가 나쁜 꿈인 것을, 나쁜 꿈, 난 모든 걸 기억했다. 해부용 시신, 도린, 무화과 이야기, 마르코의 다이아몬드, 광장에서 만난 해병, 닥터 고든 병원의 사시 간호사, 깨진 체온계, 두 종류의 콩 요리를 가져다준 흑인, 인슐린 투약으로 9킬로그램이 늘어버린 체중, 하늘과 바다 사이에 회색 두개골처럼 튀어나온 바위.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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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4-0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이 짧은 한 문장이 너무 슬프네요 ㅠㅠ

vita 2021-04-03 18:43   좋아요 1 | URL
시간이 너무 빠르네요......

syo 2021-04-0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장국영>이 출간되었음을 아시나요. 4월 1일 딱 맞춰서.....

vita 2021-04-05 11:14   좋아요 0 | URL
앗 😤 오늘 못 읽고 내일 읽어야지!!!
 

입마개는 머리 위에 씌우는 철제 틀이었고, 대부분 위반자의 입에 삽입되게 만든 긴 못이나 톱니바퀴가 달려 있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여자의 혀를 눌러서 조용히 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이와 같은 못 달린 철틀은 툭하면 다투거나 남편이 적절하게 통제할 수 없다고 판정된 여자들을 벌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이런 처벌을 집행하는 통상적인 형식은 여자에게 입마개를 씌운 채 마을을 돌게 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일정한 시간 동안 기둥에 사슬로 묶어두기도 했다. 이런 일은 공적인 징벌이었지만, 가정 내의 지배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일부 도시에는 가정 내에서 입마개를 사용하기 위한 규정이 마련되었다. ....... 남자들은 흔히 입마개를 씌우겠다고 위협해서 부인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혀를 가만히 두지 않으면 간수를 불러다가 입마개를 씌울 줄 알아." 이 사례에서 우리는 가부장의 지배와 국가의 지배가 얼마나 복잡하게 뒤얽혀있는지를 알 수 있다. -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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