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어머니가 속삭였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나만 옆에 있으면 절대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때도 언제나처럼 자기가 아니라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내 이름이 추억 속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를 음미하며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실제가아닌 머릿속에서 들리는 환청이었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찾아 온 집 안을 헤매던 가상의 시간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여전히 같은 곳에 앉아 어떻게든 빨리 그 메아리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몇 달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죽어서 없어져버린 내 어머니 아말리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자아가 층계참에 서서 엘리베이터에 앉아 있는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 P38

나는 수도꼭지를 꽉 잠갔다. 어머니는 옛날 사람이라 낭비를 용납하지 않았다. 바싹 말라 딱딱해진 빵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치즈 껍데기도 따로 보관해두었다가 수프에 넣어서 감칠맛을 냈다. 고기를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신 정육점에서 공짜로 얻은 뼈다귀를 수프에 넣어 그 안에 신비한 영양소라도 있는 것처럼 쪽쪽 빨아먹곤 했다. 그런 어머니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물 한 방울까지 절약했고 그런 어머니의 절약 정신은 평소 행동과 예민한 청각과 말투에도 묻어났다. 어렸을 때 뜨개질용 바늘처럼 가느다란 물줄기가 싱크대로 조르르 흐르면 어머니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야단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내게 이렇게 외쳤다.
"델리아! 수도꼭지!" - P43

어머니가 어느새 집에 돌아와 내가 로션을 바르고 화장을 하고 화장을 지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늙은 어머니가 남몰래 온종일 자기 몸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의 유희에서다른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읽어내지 않았다면, 그것을 부정한 행위의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아마도 젊었을 때부터 그런 놀이를 즐겼을 것이다. - P49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머니가 베고 자던 베개에 뺨을 대고 꼭 그때처럼 달리고있다. 어머니는 내가 집으로 뛰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곧바로 머리를 풀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나선형의 조각처럼 어머니의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흑단같은 머리카락은 어머니의 손길에 따라 마치 분자 구조자체가 변하는 것처럼 모양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머리가 아주 길었는데 그 긴 머리를 계속 풀어헤치는 바람에 비누가 부족했다. 재와 양잿물 때문에 하얗게 변색된 계단 아래 지하 가게에서 비누를 파는 남자의 비누통이 통째로 다 필요할 지경이었다. 나는 가끔 어머니가 내 시선을 피해 사내의 허락을 받고 비누통에 머리를 담그러 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
순간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즐거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젖어 있었다. - P51

"망자들은 그들이 죽은 첫날 살아 있는 자들을 잠들게 내버려두지 않는 법이지."
부인이 말했다.
"소리를 듣고 깨신 건가요? 제가 방해가 됐나요?"
나는 마음에 없이 예의바르게 물었다.
"나이가 들면 원래 잠이 없어져. 깊게 자지도 못하고. 게다가 자물쇠 소리도 한몫했지. 밤새 들락날락했잖니."
"맞아요."
내가 말했다. - P68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벌어들인 돈과 가족 앨범 속에서 본 그 당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열여덟 살이었던 어머니는 나를 임신해서 배가 이미 불러 있었다. 사진속에서 어머니는 발코니에 서 있었다. 그 뒤로 평소 어머니가 사용하던 싱어 재봉틀이 살짝 보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깐 재봉틀 페달에서 발을 뗀 것 같았다. 아마도 어머니는 사진을 찍자마자 다시 재봉틀 앞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았을 것이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반짝이던 눈빛과 미소를 잃고 머리조차 제대로 손질할 틈도 없이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 P84

어머니는 혈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피부가 새까만 데 비해 아버지는 금발에 피부가 하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자기가 엄청나게 대단한 핏줄을 타고난 줄 알았던 것같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똑같은 색깔로 똑같은 소재와 똑같은 들판과 똑같은 바다를 그리는 주제에 자기 재능이무한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세 자매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누구든 어머니와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온갖 협박을 퍼부었다. 우리는 그런 아버지가 친딸인 우리에게 해코지하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함께 전차에 탈때면 우리는 두려웠다. 아버지는 특히 키가 작고 피부가 까맣고 머리가 곱실거리고 입술이 두툼한 남자들을 경계했다.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어머니의 육체를 범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어머니가 그들처럼 예민하고 다부지고 단단한 육체에 끌린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 P102

어머니는 두 손가락으로 가슴골을 가린 채 허리를 굽히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치마가 올라가는 것에 신경 쓰지않고 다리를 꼬고 싶었을 것이다. 품위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껏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을 것이다.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하고 상대방이 누구든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 매력을 온몸으로 뿜어내면서 사내들과 일대일로 음란한 말을주고받고 밀당을 하는 사교계의 여왕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 P111

삼촌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라는 표현으로 방금 전에 삼촌 스스로 어머니를 묻은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서 내가 우울해 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떠오르게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나는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 우울하다기보다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빨리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시간에 쫓기며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닥치는 대로 뒤지고 다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캐모마일 차라도 한 잔 마시면 나아질 것 같아 필리포삼촌을 스카를라티가에서 처음 눈에 띈 바로 이끌었다. 그새 삼촌은 죽은 아내도 항상 우울해했다면서 숙모 이야기를 꺼냈다. 숙모는 부지런한 일꾼인 데다 세심하고 깔끔한 여자였지만 항상 우울해했다는 것이다. - P119

나는 어머니와 관련된 것이라면 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것까지 모두 지워내고 싶었다. 나는 내게서 어머니의 몸짓과 말투를 지워내려 했다. 컵을 쥐는 방식이나 찻잔으로 차를 마시는 모습, 치마나 옷을 입을 때의어머니의 움직임, 주방과 서랍에 물건을 정돈하는 방식,
은밀한 부분을 씻는 방법, 음식 취향, 어머니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등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 했다. 어머니가 사용하던 언어와 어머니의 도시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 P124

어머니의 호흡마저 닮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나와 온전히 내가 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새로 만들고싶었다.
게다가 나는 누군가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얼마 후면 나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평생 단 한 번도 어머니와 완전히 한 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어머니에게서 분리되기가 힘들었던 나처럼 누군가가 내게서 분리되는 것이 힘들어 괴로워할 일도 없게될 것이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몸에서 몰래 취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평생을 홀로 불행하게 살 것이다.
내가 어머니의 몸에서 취한 전리품은 형편없이 적었다. 나는 어머니의 피와 자궁과 숨결의 일부를 조금씩 떼어와 내 몸과 내 변덕스런 뇌 속에 숨겨 놓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 여인의 몸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억지로 도망쳐 나오는 과정을 ‘나‘라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순진하고 무심한 위장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 P125

먼 옛날 여기 이 정거장 한구석에서 내가 어머니의 속마음을 전혀 읽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어머니의 내면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내게 이런저런 명령으로 들릴 뿐 이미 그때부터 나라는 존재는 음성화되기 이전에 생각이 형성되는 어머니의 내면 깊숙한 곳에 없었다. 나는 끝끝내 어디까지 말로 표현하고 어디까지 소리를 부여하지 않고 생각으로만 간직할지 결정하는 어머니의 의식 안까지 파고들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마음이 아팠다. - P144

아버지는 어머니의 웃음소리를 못 견뎌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상투적이고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모르는 사람이 올 때마다, 예컨대 거리의 부랑아들이나 집시 여인들 또는 베수비오 화산과 소나무가 그려진 풍경화 따위를 그려달라고 정기적으로 아버지를 찾는 의뢰인들이 올 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그들 앞에서 웃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기에게 창피를 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달콤하게 웃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머니는 사진이나 포스터나 40년대 잡지 속에 나오는 행복해 보이는 여인들이 낼 것 같은 목소리를 흉내 낸 것뿐이었다. 그 여인들은 언제나 립스틱을 두껍게 바르고 두 눈을 반짝이며새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기도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며 거기에 어울린다고 생각한 웃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 P198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대하거나 그게 아니면 최소한의 거리를 두고 지내라고 강요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분에 못 이겨 욕설을 퍼부어댔다. 아버지가 보기에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목소리 톤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동작이 느리고 나긋나긋했으며 뻔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눈빛이 생생하고 활기차 보였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상대방의 마음을 얻었다. 어머니가 원치 않아도 항상 그렇게 됐다. 그렇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매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의 뺨을 때리고 주먹을 날렸다. - P201

지금 내가 그 터널을 지나는 이유도 돌덩이가 나뒹구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그 시절의 이미지를 다시 보고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서였다. 내 어머니가 되기 전의 어머니가 훗날 사랑을 나누게 될 남자에게 쫓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어머니의 이름 위에 자기이름을 덮어씌우고 자기 이름의 철자로 어머니의 이름을 한 글자씩 지워버릴 것이다. - P221

어떻게 아버지는 평소에는 살인도 불사할 것 같은 기세로 지키려 했던 육체가 노골적이고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림을 천박한 사내들 손에 넘길 수 있는 걸까. 실수로 미소 한 번, 눈빛 한 번만 잘못 보내도 미친 사람처럼길길이 날뛰며 잔혹해지던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에게 그렇게 야한 포즈를 취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원본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질투심이 많으면서 어떻게 수십 장, 아니 수백 장이 넘는 복사본이 길바닥에 깔리고 모르는 사람들의 집에 걸리게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 P229

아버지가 투덜거렸다.
"장례식에는 왜 안 오셨어요?"
"사람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그래도 오셨어야죠."
"너는 내 장례식에 올 테냐?"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아니요."
아버지 눈 밑에 달린 거대한 주머니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나보다 네가 먼저 뒤질 테니 오고 싶어도 못 오겠지."
아버지는 이렇게 내뱉고는 갑자기 주먹을 날렸다. 주먹은 내 오른쪽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 육체적인 고통은 별것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폭력 앞에 내 자아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힘들었다.
"너도 네 어미 같은 창녀로구나." - P234

하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아버지는 다시 내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나는 아프지 않은 척 아버지를 밀쳐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서나왔다.
"너도 늙은 주제에!"
아버지가 뒤에서 내게 외쳤다.
"못 봐주겠으니 그 옷이나 벗어버려!"
현관으로 걸어가는데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40년 전과거의 마룻바닥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젤과 침실을 겨우겨우 받치고 있던 마룻바닥이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까봐 두려웠다. 나는 서둘러 층계참으로 나가 조심스레 현관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온 후 옷을 살펴보았다. 그제야 나는 음부 높이에 가장자리가 허옇게 변한 커다란 얼룩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혐오감을 느꼈다. 딱 그 부분에 진한 얼룩이 진 것이다. 얼룩을 만져보니 풀을 먹인 것처럼 빳빳했다. - P245

그는 카세르타가 아니었다. 카세르타는 분명 어머니와 함께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노인을 밀쳐내고 울면서 도망쳤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젤과 침실이 있는 우리 집 마룻바닥의 파편을 밟으며 뛰어 들어가 나는 아버지에게 안뜰에서 놀 때처럼 험한 사투리로 그 노인이 내게 한 추잡한 말과 내게 행한 음란한 행위를 일러바쳤다. 그러면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두려움과 몸에서 분출되는 열기로 일그러진 노인의 얼굴이 똑똑히 떠올랐다.
"카세르타 아저씨가 그랬어요."
나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안토니오의 할아버지가 내게 한 말을 카세르타가가게 지하창고에서 어머니에게 했다고 말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안토니오의 할아버지가 내게 한 것과 똑같은 짓을 카세르타가 아말리아의 동의하에 그녀에게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작업을 멈추고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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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줌파 책이 두 권 왔고 쿤데라의 [우스운 사랑들] 이탈리아어판 표지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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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5-1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해 14권인가 책을 샀는데 페이퍼 몇 줄 쓰다가 말았네요. 이 게으름을 어찌 할 꼬.
발 빠른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상과 너무 먼 나의 현실... ㅋ

vita 2021-05-15 14:45   좋아요 1 | URL
부지런히 읽으시면서 더 멋진 글 쓰시기 바랄게요 페크님 :)
 

 




Lorenzo Bartolini, 
Fiducia in Dio,
1834, marmo, h. 93 cm, 
Milano, Museo Poldi Pezzoli
Image 1 of 6 























딸아이가 서양미술사를 책장에서 꺼냈다. (책 넣으려고 검색창 켜봤더니 신판이 새로 나왔네!)


엄마, 내가 마음이 확 바뀌어서 다시 그림 그리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물어보면서.

너는 재능을 타고났으니 다시 그림 그려도 괜찮지.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알아서 하렴.

왜 이렇게 오늘따라 쿨하게 대답해? 

실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 좋지. 르네상스인처럼! 욕망을 드러내보이니 

역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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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12평에서부터 50평까지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빛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주로 하는 일상은 읽기와 쓰기와 다시 읽기와 쓰기이지만 그럼에도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공간 크기와 무관하게 알았다. 내가 품을 수 있는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략 이제는 눈치를 챘다. 그럼에도 공간에 대한 욕심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건 어쩐 일인지 알 수 없다. 4년 전 급하게 이사를 하면서 이삿짐 정리를 하기 전에 찍어놓은 사진을 발견했다. 발견은 무슨. 4년 전 오늘이라고 떠서 알았다. 내게는 아직 집이 없다. 내 소유의 공간이 아닌지라 항상 내게는 집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잠시 빌려 사는 공간들이었고 그 공간들에 시간을 덧대어 애정을 덧대어 보금자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지만 온전하게 이곳은 나의 집이다 라고 말한 기억은 없다. 엄마아빠 집에서 사는 동안에도 이곳은 우리집이다 라는 말보다 엄마아빠 집이라고 말했다. 엄마아빠 집이 항상 드넓고 빛이 많아서 나는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공간에서 살 줄 알았다. 문득 언제쯤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기려나 싶다. 나는 그럴만한 깜냥이 안 되기에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면 네가 내 집이다 라는 소리를 곧잘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다. 내게 집은 유목민의 그것과 비슷해서 쉬이 움직일 수 있고 쉬이 안착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항상 그럴 수 있다면 그들이 내 집이 되어주리니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했다. 배낭 하나만 갖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동갑내기 여자아이를 스물다섯에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나 배가 고픈데 밥 좀 사줄 수 있니 라고 그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서 아 그래, 그럼 국수집으로 갈까 하고 쌀국수를 사주고 같이 바에 들어가 병맥주를 마시면서 물어보았다.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거냐고? 마음과 몸이 동시에 나아가야 그것이 옳은 삶이라고 여겼지만 나는 마음만 그럴뿐 차마 그렇게 배낭 하나만 짊어메고 온 세상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상고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잘 다니다가 문득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 싶어서 모아놓은 적금을 깨고 항공권을 샀다고 했다. 그리고 인도로 들어가기 전에 방콕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홀몸으로 돌아다니는 게 가능해? 물어보니 그때 그 아이가 해준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세상에는 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 무서운 사람들도 있지만 따뜻한 환대를 해주는 낯선 사람들이 엄청 많아. 영어는? 영어는? 이라고 물어보는 나도 내 질문이 바보 같아서 막 웃었다. 영어는 아무것도 아니야. 영어 못하는 사람들이 영어 잘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아. 영어는 그냥 하다보면 늘어. 나도 영어 엄청 못해. 못하긴 개뿔. 엄청 잘 하던데. 늘었어. 여행하다보니.얼마나 더 돌아다닐 거니? 물어보니 계획상으로는 그리고 지금 통장에 있는 돈으로는 앞으로 2년 남았어. 근데 가능하면 더 돌아다니고 싶어. 그리고? 그리고 뭘 할 거니? 한국으로 돌아갈 거니? 글쎄. 영영 안 돌아갈 수도 있지. 그래도 울엄마가 계시니까 가긴 가야지. 우리엄마는 아직도 일주일마다 통화할 적마다 운다. 둘이 마구 웃으면서 엄마라는 존재들은 원래 그러니까. 그리고 문득 왜 그러지 못했을까 지금 와보니. 오랜만에 좋아하는 곡을 들으며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줌파 라히리를 다 읽은 아침인지라 더 느긋해진다. 집이 문득 갖고싶어진다. 온전하게 나만의 집.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고 마침내 안착하여 편하게 몸을 눕힐 수 있는 곳. 카오산로드에서 만났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그것도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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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5-10 11: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저도 어릴 때 그런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면 이층집이 저절로 생길 거라고. ㅋㅋ 저는 전세든 월세든 내 사는 곳이 다 내 집이다 생각하며 살아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임대받는 집은 있어도 임대받는 삶은 없다고.
생각해보니 저는 늘 빛이 아쉬운 집에서 산 날들이 많았어요. 빛이 모자라 빛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몸과 맘이 동시에 나아가기란 원래 힘들지 않나요. 몸이 좀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자구요^^

vita 2021-05-10 21:10   좋아요 1 | URL
욕심이 많아서 제가 동시에 나아가야 하는 사람인데 생각해보니 행복한책읽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과 몸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아 몸이 고생하는 경우가 꽤 있더라구요. 임대받는 집과 임대받는 삶에 대한 통찰은 깊이 새겨들을게요. 그런데 어쩐지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마치 임대받은 삶처럼 시간을 허비한 경우가 많아서 앗 가슴이 찌리릿 하고 아팠습니다.

transient-guest 2021-05-10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빛과 공간의 조화가 기묘합니다 아름다워요 ㅎ

vita 2021-05-10 21:11   좋아요 1 | URL
해가 잘 드는 곳이었는데 갑자기 앞에 빌라가 뚝딱 하고 들어서더니 저 빛을 모두 잡아먹더라구요. 그런데 저 빛 또한 지금 대하니 아주 소중했구나 알았습니다.

mini74 2021-05-1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땅 내 집이 있나 싶어요. 다 빌려 사는 삶, 갈 때 다 주고 가는 삶 ㅎㅎ 그 날의 빛 그 날의 책 그 날의 즐거움을 나무테마냥 새기다 가고 싶어요 ㅎ근데 좋은 것만 새겨지진 않네요. 좋은 글 좋은 사진에 주저리 하다 갑니다 *^^*

vita 2021-05-10 21:13   좋아요 1 | URL
물론 이건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닐 텐데 땅이랑 집에 목숨 거는 이들이 꽤 많아서 갈 때 역시 돌려준다기보다는 물려주는 개념이 더 짙어져가는 거 같아요. 순간의 빛 찰나의 순간들 모두 기록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걸 다 해내지 못해서 매순간 아쉬워지는 거 같아요, 더 나이가 들면 그런 아쉬움도 덜해지겠지만요 :)

난티나무 2021-05-10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에서 결국 울컥. 저도요.ㅠㅠ

vita 2021-05-10 21:14   좋아요 0 | URL
우리에게는 하염없이 수많은 찰나들이 있어요 언니!!
 




 
















꿈을 꾸었다. 정훈이가 나왔다. ( 앗 착각하실지도 몰라서 제 인생에 정훈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둘 있는데 여기에서 정훈이는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정훈) 정훈이가 꿈에 나와서 울었다가 웃다가 슬퍼하다가 기뻐하다가 그랬다. 이 작은 아이( 실상 키는 190cm에 육박하고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좋은)를 처음 만난 날이 언제였는지 가만 떠올려본다. 소설가 한강이 좋아서 소설가 한강을 위한 카페가 다음에 있었다. 20대 초반이었다. 소설가 한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였고 소설가 한강도 그 카페에 와서 나의 보잘것없는 작품을 읽어주어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대부분 카페 회원은 스물 전후였다. 이십대 초반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많았다. 처음 정모라는 걸 한다고 했을 때 나갈까 말까 갈등을 했고 당시 나의 첫사랑은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모임에 나가보라고 권하지는 않았다.

카페에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이들 중에 동갑내기는 두 명 있었고 글을 유난히 아름답게 쓰는 한 여자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가 궁금해서 첫 정모에 참가했다. 카페를 오픈한 클럽장 오빠가 분위기를 잘 이끌었고 하나둘 신촌 언저리에서 우리들은 모여 맥주잔을 기울였다. 책으로 만난 첫 정모였고 온라인으로 만난 첫 사람들이었다. 모두 다 착한 사람들이었고 모두 술을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강의 소설을 갖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그때 정훈이도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훈이를 콕 찍어놓은 이들이 꽤 많았다. 외모는 터미네이터를 닮았다. 키는 190에 육박했고 어깨가 넓었고 목소리가 좋았으며 충청도 남자처럼 느리게 말을 했다. 하지만 제주도 사람입니다. 다정했고 젠틀했다. 상대방을 항상 배려했고 모두에게 다정했다. 모르는 것이 거의 없었고 박학다식했다. 가물가물한데 토목공학과였던가 건축학과를 다니고 있었던가 그랬다. 가끔 시간이 남고 그러면 고대앞으로 가서 정훈이랑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칭얼거리는 쪽이었고 다정하게 귀를 기울여주었다. 이것은 정훈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의 특징인듯.

박학다식했던 정훈이는 학교에서도 인기가 있었고 우리 북클럽에서도 인기가 짱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삐쩍 말라 여동생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찾았을 때에도 있는 동안 여기를 데려가고 저기를 데려가면서 사흘 동안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동생이 굳이 비교를 하려는 건 아닌데 언니 언니 첫사랑보다는 저 오빠가 백배 나은 거 같다 라고 해서 막 신경질을 부린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도 좋아하셨고 아빠도 좋아하셨다. 사윗감하기 딱 좋아 라고 여러모로 좋아하셨지만 말했다시피 그는 인기가 너무 좋아서 나는 친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술김에 고백도 했던 거 같은데 알고보니 카페에서 그에게 고백하지 않은 여자들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역시 카페 내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다정한 여인과 사랑을 했는데 그 사랑은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아주 시간이 흐르고 정훈이를 욕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도 정훈이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완벽해보이는 우리 정훈이도 완벽하지 않았구나 했다.

그렇게 다정한 우리 정훈이가 내게 화를 막 낼 때가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모임중에 내가 너무 애처럼 군다고 조용히 타일렀다. 화가 나서 나는 마구 화를 내며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맞다, 정훈이가 맞았고 내가 틀렸다. 그래서 더 화가 나서 화를 내도 정훈이가 다 받아들여줄줄 알고 화를 냈다가 정훈이 화내는 모습을 보고 너무 슬퍼서 막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엄청 울었다.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만났지만 한동안 말도 안 걸었다. 얼마나 유치한가. 그래도 마냥 웃어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또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만났다. 나는 공부를 해야 할지 다시 취업을 해야할지 갈등하던 시기였고 정훈이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가 월급은 너무 적고 일은 툭하면 야근이 많아서 몸이 많이 축났던 시기였다. 그래서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마시며 서로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_ 정훈이는 카페에서 만난 그 착하고 다정한 후배와 계속 연애중이었다, 곧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그 즈음에 들었던 것도 같다. 얼마 전에 시작한 연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자기가 아는 군대 후임이랑 진짜 비슷하다고. 마침 연인 사진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정훈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가보니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군대 후임이 맞다고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남자가 군대 선후임이라는 사실도 놀라웠고 그 둘이 서로 그렇게 한 공간 안에서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해서 그것도 신기했다. 근데 왜 화를 내? 물어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랐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훈이는 그 관계를 당장 끊지 않으면 나는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나는 정훈이를 택하지 않았고 연인을 택했다. 그 뒤로 정훈이와는 가끔 전화 통화만 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될줄 몰랐지만 그때 연인을 택하지 않고 친구를 택했더라면 정훈이가 힘들때 옆에서 만나서 토닥거려주고 나도 힘든 시기 여느때처럼 녀석의 위로를 받게 될줄 알았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지금 후회한다. 후회는 언제나 미처 행하지 못한 일의 아쉬움과 죄스러움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정훈이가 꿈에 나왔다. 우리가 어렸을때 같이 놀았던 그 시절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정훈이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아서 당황한 나는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다가 꿈에서 깼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정훈이가 꿈에 나왔는데 꿈에서 울었어. 하니 터미네이터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외국에 나간다고 했던 것도 같고 제주도로 돌아갔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정훈이 최근 소식을 아는 이들은 지금 연락이 닿는 이들 중에 아무도 없다. 작정하고 잠수를 탔는데 어떻게 알아내겠어 하고 친구들은 이야기.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고 그런다면 어딘가에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우연히라도 마주친 적 없다가 꿈에 나타나 우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안 좋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면 좋겠다. 외국에 살아도 좋고 제주도에서 살아도 좋고 서울에서 살아도 좋으니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나 잘 지냈어?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라고 소식을 전해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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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08 17: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터미네이터인데 다정하고 인기많은 정훈씨가 꿈에 나오고 수연님은 꿈에서 울었다 하니.... 쪼금 걱정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오래동안 좋아했던 친구가 꿈에 나타나면 며칠 동안 우울하더라구요. 좋아했던 사람은 어디서든 행복하게 잘 살기로 하고, 꿈에는 안 나왔으면 싶어요 ㅠㅠ
수연님을 많이 아껴주었던 정훈씨, 어디에 있든 잘 지내시길 바라게 되네요, 저도 모르게.

vita 2021-05-10 09:58   좋아요 0 | URL
앗 저는 안 울고 정훈이가 울었어요! 연락이 닿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어디서든 행복하게만 살고 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듯 해요. 사랑하는 이들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나중에 파파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우연히 만나 그동안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서로 마구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릴래요. 알고봤더니 제가 정훈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을 마구 사랑하는 경향이 있는가 보아요?! 호호호호호호호호

얄라알라북사랑 2021-05-08 16: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참 꿈을 자세히 기억하시네요. 정훈이라는 친구분의 느낌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오셔서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하실지도


vita 2021-05-10 09:59   좋아요 0 | URL
그 친구가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사람 곁에서 한순간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게 참 감사한 일이라는 걸 이렇게 뒤늦게 깨닫네요.

바람돌이 2021-05-09 0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연락이 끊긴 옛 친구들이 가끔 생각납니다. 어디서든 잘 살고 있을거야,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듯이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같아요. 정훈이란 그분도 그렇지 않을까요? 가끔 수연님을 생각하면서 그 때 그렇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하겠죠.

vita 2021-05-10 10:00   좋아요 0 | URL
아끼는 마음에서 위하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친구보다는 사랑이라고 항상 외쳐왔는데 그 사랑이 별 거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요. 이래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그래야하는가 봐요 바람돌이님

붕붕툐툐 2021-05-09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연님의 이야기는 다 아름다워요~ 수연님이 유독 아름다운 관계가 많으셨던 걸까요? 아니면 글을 아름답게 쓰시는 걸까요?🤔

vita 2021-05-10 10:01   좋아요 1 | URL
제 곁의 이들이 모두 아름다운 이들이어서?!

얄라알라북사랑 2021-05-09 0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툐툐님의 댓글이 수연님의 이 페이퍼랑 주거니 받거니, 톤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화음 내는 것 같아요^^

붕붕툐툐 2021-05-09 22:06   좋아요 0 | URL
아이쿵, 북사랑님 이런 과찬의 말씀을~ 제가 너무 행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