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정훈이가 나왔다. ( 앗 착각하실지도 몰라서 제 인생에 정훈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둘 있는데 여기에서 정훈이는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정훈) 정훈이가 꿈에 나와서 울었다가 웃다가 슬퍼하다가 기뻐하다가 그랬다. 이 작은 아이( 실상 키는 190cm에 육박하고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좋은)를 처음 만난 날이 언제였는지 가만 떠올려본다. 소설가 한강이 좋아서 소설가 한강을 위한 카페가 다음에 있었다. 20대 초반이었다. 소설가 한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였고 소설가 한강도 그 카페에 와서 나의 보잘것없는 작품을 읽어주어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대부분 카페 회원은 스물 전후였다. 이십대 초반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많았다. 처음 정모라는 걸 한다고 했을 때 나갈까 말까 갈등을 했고 당시 나의 첫사랑은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모임에 나가보라고 권하지는 않았다.

카페에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이들 중에 동갑내기는 두 명 있었고 글을 유난히 아름답게 쓰는 한 여자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가 궁금해서 첫 정모에 참가했다. 카페를 오픈한 클럽장 오빠가 분위기를 잘 이끌었고 하나둘 신촌 언저리에서 우리들은 모여 맥주잔을 기울였다. 책으로 만난 첫 정모였고 온라인으로 만난 첫 사람들이었다. 모두 다 착한 사람들이었고 모두 술을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강의 소설을 갖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그때 정훈이도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훈이를 콕 찍어놓은 이들이 꽤 많았다. 외모는 터미네이터를 닮았다. 키는 190에 육박했고 어깨가 넓었고 목소리가 좋았으며 충청도 남자처럼 느리게 말을 했다. 하지만 제주도 사람입니다. 다정했고 젠틀했다. 상대방을 항상 배려했고 모두에게 다정했다. 모르는 것이 거의 없었고 박학다식했다. 가물가물한데 토목공학과였던가 건축학과를 다니고 있었던가 그랬다. 가끔 시간이 남고 그러면 고대앞으로 가서 정훈이랑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칭얼거리는 쪽이었고 다정하게 귀를 기울여주었다. 이것은 정훈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의 특징인듯.

박학다식했던 정훈이는 학교에서도 인기가 있었고 우리 북클럽에서도 인기가 짱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삐쩍 말라 여동생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찾았을 때에도 있는 동안 여기를 데려가고 저기를 데려가면서 사흘 동안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동생이 굳이 비교를 하려는 건 아닌데 언니 언니 첫사랑보다는 저 오빠가 백배 나은 거 같다 라고 해서 막 신경질을 부린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도 좋아하셨고 아빠도 좋아하셨다. 사윗감하기 딱 좋아 라고 여러모로 좋아하셨지만 말했다시피 그는 인기가 너무 좋아서 나는 친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술김에 고백도 했던 거 같은데 알고보니 카페에서 그에게 고백하지 않은 여자들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역시 카페 내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다정한 여인과 사랑을 했는데 그 사랑은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아주 시간이 흐르고 정훈이를 욕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도 정훈이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완벽해보이는 우리 정훈이도 완벽하지 않았구나 했다.

그렇게 다정한 우리 정훈이가 내게 화를 막 낼 때가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모임중에 내가 너무 애처럼 군다고 조용히 타일렀다. 화가 나서 나는 마구 화를 내며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맞다, 정훈이가 맞았고 내가 틀렸다. 그래서 더 화가 나서 화를 내도 정훈이가 다 받아들여줄줄 알고 화를 냈다가 정훈이 화내는 모습을 보고 너무 슬퍼서 막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엄청 울었다.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만났지만 한동안 말도 안 걸었다. 얼마나 유치한가. 그래도 마냥 웃어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또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만났다. 나는 공부를 해야 할지 다시 취업을 해야할지 갈등하던 시기였고 정훈이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가 월급은 너무 적고 일은 툭하면 야근이 많아서 몸이 많이 축났던 시기였다. 그래서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마시며 서로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_ 정훈이는 카페에서 만난 그 착하고 다정한 후배와 계속 연애중이었다, 곧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그 즈음에 들었던 것도 같다. 얼마 전에 시작한 연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자기가 아는 군대 후임이랑 진짜 비슷하다고. 마침 연인 사진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정훈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가보니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군대 후임이 맞다고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남자가 군대 선후임이라는 사실도 놀라웠고 그 둘이 서로 그렇게 한 공간 안에서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해서 그것도 신기했다. 근데 왜 화를 내? 물어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랐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훈이는 그 관계를 당장 끊지 않으면 나는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나는 정훈이를 택하지 않았고 연인을 택했다. 그 뒤로 정훈이와는 가끔 전화 통화만 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될줄 몰랐지만 그때 연인을 택하지 않고 친구를 택했더라면 정훈이가 힘들때 옆에서 만나서 토닥거려주고 나도 힘든 시기 여느때처럼 녀석의 위로를 받게 될줄 알았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지금 후회한다. 후회는 언제나 미처 행하지 못한 일의 아쉬움과 죄스러움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정훈이가 꿈에 나왔다. 우리가 어렸을때 같이 놀았던 그 시절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정훈이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아서 당황한 나는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다가 꿈에서 깼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정훈이가 꿈에 나왔는데 꿈에서 울었어. 하니 터미네이터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외국에 나간다고 했던 것도 같고 제주도로 돌아갔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정훈이 최근 소식을 아는 이들은 지금 연락이 닿는 이들 중에 아무도 없다. 작정하고 잠수를 탔는데 어떻게 알아내겠어 하고 친구들은 이야기.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고 그런다면 어딘가에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우연히라도 마주친 적 없다가 꿈에 나타나 우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안 좋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면 좋겠다. 외국에 살아도 좋고 제주도에서 살아도 좋고 서울에서 살아도 좋으니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나 잘 지냈어?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라고 소식을 전해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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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08 17: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터미네이터인데 다정하고 인기많은 정훈씨가 꿈에 나오고 수연님은 꿈에서 울었다 하니.... 쪼금 걱정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오래동안 좋아했던 친구가 꿈에 나타나면 며칠 동안 우울하더라구요. 좋아했던 사람은 어디서든 행복하게 잘 살기로 하고, 꿈에는 안 나왔으면 싶어요 ㅠㅠ
수연님을 많이 아껴주었던 정훈씨, 어디에 있든 잘 지내시길 바라게 되네요, 저도 모르게.

vita 2021-05-10 09:58   좋아요 0 | URL
앗 저는 안 울고 정훈이가 울었어요! 연락이 닿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어디서든 행복하게만 살고 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듯 해요. 사랑하는 이들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나중에 파파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우연히 만나 그동안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서로 마구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릴래요. 알고봤더니 제가 정훈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을 마구 사랑하는 경향이 있는가 보아요?! 호호호호호호호호

얄라알라북사랑 2021-05-08 16: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참 꿈을 자세히 기억하시네요. 정훈이라는 친구분의 느낌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오셔서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하실지도


vita 2021-05-10 09:59   좋아요 0 | URL
그 친구가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사람 곁에서 한순간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게 참 감사한 일이라는 걸 이렇게 뒤늦게 깨닫네요.

바람돌이 2021-05-09 0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연락이 끊긴 옛 친구들이 가끔 생각납니다. 어디서든 잘 살고 있을거야,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듯이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같아요. 정훈이란 그분도 그렇지 않을까요? 가끔 수연님을 생각하면서 그 때 그렇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하겠죠.

vita 2021-05-10 10:00   좋아요 0 | URL
아끼는 마음에서 위하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친구보다는 사랑이라고 항상 외쳐왔는데 그 사랑이 별 거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요. 이래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그래야하는가 봐요 바람돌이님

붕붕툐툐 2021-05-09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연님의 이야기는 다 아름다워요~ 수연님이 유독 아름다운 관계가 많으셨던 걸까요? 아니면 글을 아름답게 쓰시는 걸까요?🤔

vita 2021-05-10 10:01   좋아요 1 | URL
제 곁의 이들이 모두 아름다운 이들이어서?!

얄라알라북사랑 2021-05-09 0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툐툐님의 댓글이 수연님의 이 페이퍼랑 주거니 받거니, 톤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화음 내는 것 같아요^^

붕붕툐툐 2021-05-09 22:06   좋아요 0 | URL
아이쿵, 북사랑님 이런 과찬의 말씀을~ 제가 너무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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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0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의 향기를 느끼고 갑니다. ^^

vita 2021-05-07 12:3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초급인데;;;;; 어떻게 고수의 향기를 -.-;;;;;;;

2021-05-07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8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5월에 새로 나온다는 책을 미리 훑어보았다. 시처럼 쓰는 법_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글의 최고의 경지는 시_라고 믿는다. 이 믿음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마흔이 너머서도 이 생각이 변하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역시 산문보다는 운문에 가까운 인간이다. 글을 엄청 잘 써서 누구나 그 친구를 보면 지금 당장 책 내도 팔릴거다 얼른 책 내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그는 아니야 나는 이렇게 여기에서 노는 게 즐거워 라고 대꾸한다. 그 생의 태도는 운문에 가깝다. 친구된 입장으로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그의 글을 읽었으면 싶고 노트북 화면과 휴대폰 화면으로 말고 종이에 인쇄된 그의 글을 읽었으면 하는데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의 뜻을 꺾을 도리는 없을듯 싶다. 보고있지? 친구야. 우리 모두는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나저나 시처럼 쓰는 법_이라는 책 제목을 본 순간 시처럼 사는 법_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궁극은 시처럼 사는 것이다. 시처럼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시처럼 사는 법_이라고 한다면 주변에 누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떠올라서 그 친구 이야기도 잠깐. 시처럼 사는 건 역시 이탈리아가 짱이지 나지막하게 중얼거려본다.

하루에 이탈리아어 공부를 3시간씩 하던 때가 있었다. 뒤돌아보니 3시간 했다고 하지만 실상 따져보자면 한 시간 정도는 이탈리아어 갖고 노는 연습을 했고 나머지 두 시간은 이탈리아어 언제 잘 하게 되나 하고 공상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어디 한 시간으로 단어 정리를 하겠는가, 문법 공부를 하겠는가, 숙어를 외우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헛된 시간을 보냈다. 위 사진은 그때 하루 한 시간 공부하던 옛날 사진이다. 우리 아가가 어린이집 막 들어가고 이제 나는 자유다 두 손을 번쩍 하늘로 뻗고 서강대 어학원에 곧바로 등록을 했다. 그때 모두 신부님도 프랑코 선생님도 성형외과 원장님도 만났다. 수강생은 열명 내외 였던 걸로 기억한다. 굳이 성비 구분을 따지자면 여자는 성형외과 레지던트였던 언니 한 명과 나란 아줌마 둘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였다. 신부님들이 두 명이었고 유학 준비를 하는 성악 전공자, 미술 전공자들이었다. 그때나 이때나 눈에 띄는 이들이 있으면 가서 곧바로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인데 우리 통성명하고 인사하고 지냅시다. 그렇게 해서 성형외과 레지던트 언니와 신부님들과 인사를 텄는데 나중에 성형외과 레지던트 언니는 바빠서 두 달 지나서 안 나왔고 두 신부님들 중 한 명은 내향적이셔서 말씀을 거의 안 하시길래 마띠아 신부님과 주로 수다를 떨었다. 이탈리아를 가면 뭐 하자 뭐 하자 뭐 하자 그곳에서 만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보고 놀자 놀자 놀자. 그때 맺은 인연들 마띠아 신부님은 여전히 로마에서 유학중, 프랑코 선생님은 상해에서 이탈리아어 가르치시고 성형외과 레지던트 언니는 본인도 성형을 하시고 강남에 성형외과를 차려서 연예인들이 어마어마하게 간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어젯밤 이탈리아어 단어를 외우다가 아이고 골치 아프다 하나도 모르겠다 하고 침대 위에 대자로 뻗었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 슬프다 딸. 하니까 딸아이가 다가와 위로를 해주었다. 내가 다섯 살때 이탈리아어 공부했다며? 근데 그게 아직까지 엄마 머릿속에 있으면 엄마는 천재지. 괜찮아. 다 잊었으니 새로 시작하면 되는거야 라는 위로를 받으며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거의 10년인데 그 10년이면 다른 거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이렇게 조금 저렇게 조금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고 있겠네!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리고 홧김에 와인 한 잔을 마시고 꾸벅꾸벅 졸면서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남자가 들어왔다. 화들짝 놀라 얼른 이탈리아어 책을 다른 책으로 덮어버렸다. 아직까지는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 다시 이탈리아어 공부하고 싶어, 라고 이야기하면 남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니까. 샤워를 다 하고 와인 한 잔을 따라서 오랜만에 옆에서 이야기를 하던 남자가 어 저게 뭐지? 하고 덮어놓은 책들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숨겨놓은 이탈리아어 문법서를 탁 펼치고 남자가 아이구야 했다. 그게 여보 어떻게 된 거냐면 우물쭈물 이야기를 하려니 나 몰래 또 이탈리아어 시작한 거지? 어쩐지 컴퓨터 배경화면도 카톡 배경화면도 노트북 배경화면도 모두 다 피렌체로 바뀌어 있어서 아니 이 아줌마가 설마 했는데 역시!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나 이탈리아 갈 거야! 하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황망해하던 남자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이탈리아어 자격증 B2 따갖고 와. 그 전에는 절대 허락하지 못해! 응? 나는 물어보았다. 이탈리아어 자격증 B2 따갖고 오면 나 보내주는 거야? 응, 그 전에는 안돼. 민이도 영어랑 이탈리아어 준비해놓고 가. 가서 애 고생시킬 생각 하지 말고. 급밝아진 표정으로 혹시 B1은 안 되겠니? 하니 안돼! 그렇게 해서 일단락을 지었다. 집에 있는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교재 모두 상자에 넣어둬. 다시는 못 봐. 이제 이탈리아어만 봐! 그래서 남자에게 가서 누나 보고싶다고 울지 말고 3년만 참아 하고 가슴에 턱 손을 얹고 나도 모르게 눈을 깜박이는 횟수가 현격하게 늘었다. 그 표정을 지켜보던 남자가 자격증 못 따면 택도 없어. 그리고 딸아이 잠자는 데 옆에서 꽁알꽁알거리면서 이야기. 아빠가 보내주신대. 근데 이탈리아어랑 영어 공부 해야해. 안 그러면 못 가. 딸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겼군. 하고. 금세 또 표정이 바뀌며 뭐야 시작도 안 했는데 영어랑 이탈리아어 공부 하기 싫은 거야? 하니 아니 누가 하기 싫다고 했나 뭐 하고 쳇 하는 표정을 짓길래 그럼 뭐 우리딸이 가기 싫다고 하면 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여기에서 학교 다니고 있어, 엄마 혼자 얼른 공부하고 올게 했더니 고개를 홱 벽 쪽으로 돌리길래 삐쳤나 싶어서 공부하기 싫으면 괜찮아 여기에서 아빠랑 있어도 돼. 하니까 어깨가 들썩들썩. 옴마나 하고 억지로 딸아이 고개를 돌렸더니만 눈물범벅이다. 황당해서 물었다. 아니 왜 울어? 아가 하니까 엄마가 나랑 아빠 버리고 이탈리아 혼자 간다고 했자나! 나두 갈 거야 이탈리아! 엉엉엉 하고 오열. 공부해서 같이 가면 되는 거잖아! 울지 마! 아가! 하니까 나는 엄마 없으면 콱 죽어버릴거야.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나 홀로 감동먹고 벅차서 이 엄마도 민이 없으면 콱 죽어버릴거야! 했더니 눈물을 쓰윽 닦고 방금 전에 뭐랬지? 너는 한국에 있으렴, 엄마 혼자 이탈리아 가서 공부하고 올게 라고 한 사람이 누구였지? 아 당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 먹으면서 남자가 신나서 말했다. 나 이탈리아 가면 여기도 가고싶고 저기도 가고싶고 또 거기도 가볼래! 응? 저기 여보세요. 아저씨는 여기에서 일하셔야 하고 이탈리아 가는 건 저희가 가는 건데요? 했더니 싫어 싫어 싫어! 나도 일 다 때려치우고 이탈리아 갈래! 누나! 아....... 보다 더 상세한 스케치는 뭐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그려지지 않을까. 자기야는 일단 여기에서 돈을 벌고 있다가 제가 공부 마치고 일을 할게요. 그때 일 때려치우세요, 허니! 했더니 눈을 반짝인다. 확대되는 남자의 동공을 지켜보면서 아 어쩌지 그냥 이탈리아 가지 말아야 하나 어째 플랜대로 가지 않네. 당황해하며 아침 크로와상이랑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와중에 우리 선생님도 티라미수 케이크를 좋아하신대 엄마 하는 딸아이, 아 딸아 너 그거 아니? 티라미수도 이탈리아어란다. 자 이리 와서 스펠링 좀 써보련? 엄마가 알려줄게 그 뜻을 했더니 냉큼 온라인수업 하신다고 도망간다. 딸아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남자가 다시 눈빛을 반짝이면서 하는 말, 이번 생에 다시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다고 또 그러면 확 헤어져버릴거야! 너의 인생에는 이제 이탈리아어뿐이야. 다시는 랭귀지 카사노바 짓거리 할 수 없어. 라고. 아니 근데 여보 이탈리아 가면 스페인 애들이랑 프랑스 애들이랑 독일 애들도 만날 텐데 하니까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어차피 걔네들이랑도 다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해야 할 거 아니야. 이탈리아어 막히면 영어로 하겠지. 이제 네 인생에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는 없어! 쾅쾅. 근데 이탈리아 가서 뭐 공부하려고?

이탈리아 페미니즘은 어떤지 구경 좀 하고 올까 해.

뭣?! 벌떡 일어서는 남자.

지그시 지켜보며 싱긋 웃는 여자.

이탈리아어 문법서 펼치기 전에 오늘의 일기를 먼저 올립니다. 그럼 챠오. 

이탈리아어 문법서를 펼치고 아베체데 하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그람시 읽는다!

우리 엄마가 그러셨거든, 여자는 꿈을 품고 사는 거라고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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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4-28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시간 중에 실제로는 1시간 공부, 나머지 2시간에 수연님께서 하신 일이 외람되지만 사랑스러우셔서 빙그레 웃고 갑니다^^

vita 2021-04-28 23:12   좋아요 1 | URL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으려구요. 얄라얄라님 내일 만나요 뿅.

행복한책읽기 2021-04-28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꿈 멋지시당.^^

vita 2021-04-28 23:12   좋아요 0 | URL
꿈이 현실로 되어야 할 텐데 말이죠. ^^;;;

syo 2021-04-2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친구와 좋은 남자와 좋은 민이를 두셨네요. 훗. 😌

vita 2021-04-30 08:28   좋아요 0 | URL
나 다 가진 사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돈만 벌면 되는데 :)
 

질문 술라라는 인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모리슨 술라는 여느 인물처럼, 다 그렇지는 않지만, 완전한 모습으로, 거의 완성된 상태로 순식간에 이름과 함께 나타났어요. 엄청 친밀하게 느껴졌어요. 술라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지만 만들어가는 데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술라를 매혹적인 동시에 얄미운 사람으로 만드는 게 힘들었어요. 모두를 화나게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지만 매력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혐오스러워서는 안 됐습니다. 이걸 조율하는 게 어려웠는데 평범한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성격적 특성을 그려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사회에서 외면받는 모험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일확천금을 찾아 나서는 그런 모험가가 아니라 여성이 모험가가 될수 있는 방식, 그러니까 상상력을 가지고 모험하는 방식을 그려내 - P204

고 싶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인상적이고 대체로 매력적이지요. 아무튼 술라는 골칫덩어리입니다. 《술라》를 끝내고 난 뒤에는 술라가 그리웠습니다.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보다 더 실제처럼 느껴지고 그리운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질문 작업 중인 원고를 읽는 게 작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모리슨 새로운 점을 발견하기 위해 제가 쓴 원고를 다시 읽는 일은 여전히 새롭습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다른 독자나 청자를 상상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저도 독자이자 청자입니다. 아주 훌륭한 독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잘 읽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압니다. 처음에는 제가 잘 읽는 만큼 잘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기도 합니다. 쓴 것을 훑어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작가인 저와 페이지 위에 놓인 글 사이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게 저절로 되고 어떤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되지 않습니다. 결과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자신의 작품을 읽어봤다면 그렇게 놔둘 리가 없겠지요. 중요한 과정은 퇴고입니다. 아주 긴 읽기 과정이고, 자신을 아주 비판적이고 까다로우며 쉽게마음을 주지 않는 독자, 텍스트에 깊이 참여할 수 있는 지성이 있는 독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책이 다 끝난 뒤 제가 더 이상 할수 있는 게 없을 때 그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과 자신 사이에, 즉 작가로서 자신과 독자로서 자신 사이에 무언가 벌어질 수 있도록 쓰려고 애씁니다. - P205

저는 누가 가르쳐주는 글쓰기 기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의미의 다양한 빛깔, 평가가 아닌 여기저기 찍힌 방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발견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입니다. 제가 남의 책만큼 제 책을 잘 평가할 수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원고의 일부를 읽어달라는 요청에 재빨리 응하곤 합니다. 저의 다른책들은 집필이 거의 다 끝날 때까지 출판 계약을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매인다는 느낌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 책의 경우에는 아주 일찍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읽는건 출판사로부터 이 글을 되찾아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것이 되어야 하고, 쓰지 않는 태워버리는 지금처럼 쓰는 제 결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튼 제가 독자인 겁니다. 과거에는 망설여질 때면, 문제가 있을 때면 책 속 어떤 구절이든 낱말이든 무엇이 됐든 책 속 인물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냥 불러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말이죠. 완전히 실현된 인물이고 이름을안다면 대체로 아주 협조적입니다. 이름을 모른다면 별말이 없습니다. - P206

하지만 그래서 조용히 썼어요. 무엇 때문에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마치고 즐겁게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때문에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책을 쓰는 동안은 아주 일관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저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세 번째 책 [솔로몬의 노래]를 쓰고 마침내 ‘이게 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스스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책 세 권을 쓴 뒤에야 [솔로몬의 노래]를 끝낸 뒤에야 저는 ‘이게 내가 하는 유일한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전에는 제가 편집자지만 책도 쓴다, 학생을 가르치지만 책도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작가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닙니다. 작가들은 정말로 진심으로 자신에게 성취를 허락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지요.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허락 - P209

해야 합니다. 매일 글을 쓰고 책을 보내면서도 허락해야 합니다. 어떤 작가들은 어머니가 작가인데도 다른 사람과, 그러니까 남성이나 편집자, 친구와 긴 과정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좋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공동체가 괜찮다고, 남편이 괜찮다고, 자녀들이 괜찮다고 합니다. 엄마가 괜찮다고 합니다. 결국 모두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 됩니다. 제 경우도 그랬습니다. 세 번째 책을 쓰고 난 뒤 마침내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래서 여권을 들고 입국 심사를 받을 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오면 또박또박 대답합니다. 작가라고요.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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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놀자.


[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테마로 잡아놓았는데 벌써 책으로 나오네 -__- 빠르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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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27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띠용!! 😳 먹음직한 딸기잼 뒤에 넘치는 책장,책상~^^♡

vita 2021-04-28 10:44   좋아요 1 | URL
아 개판인데;;;; 그걸 어찌 보시고;;;

공쟝쟝 2021-04-27 13: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옷. 바야흐로 딸기 잼의 철! 울엄마도 만드셨는데!!

vita 2021-04-28 10:44   좋아요 1 | URL
엄마들은 바쁘다 딸기잼도 만들고 책도 읽어야 하고 놀아야 하고 ㅋㅋㅋㅋㅋ

hnine 2021-04-27 14: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딸기잼과 키위잼 완성했을 때 성취감도 책 한권 끝냈을때 성취감 못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수제잼-그것도 두 종류씩이나- 완성했을때가 조금 더 기분 좋을 사람 ^^)

vita 2021-04-28 10:44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성공할 확률이 절반이라서 ㅋㅋㅋㅋ 저보다 엄마랑 여동생들이 만들어주는 거 받아먹을 때가 더 좋더라구요 ^^;;;;;

페넬로페 2021-04-27 14: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과 완성된 딸기쨈!
삶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오후입니다^^

vita 2021-04-28 10:45   좋아요 2 | URL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 들으면 막 웅장해지고 막 아름다워지고 ^^

붕붕툐툐 2021-04-27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소가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vita 2021-04-28 10:4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툐툐님 센스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