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를 포함하는 캄파니아 주는 우리가 이탈리아 남부 하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나폴리 남쪽에는 유명한 아말피 해변이 있고, 살레르노 시 남쪽에는 아름답지만 덜 알려진 또 하나의 지역 칠렌토가 있다. 나폴리의 경관은 라퀼라만큼이나 극적이다. 연기가 솟아나는 베수비오 화산이 항만을 굽어보고 있는 풍광은 예로부터 수많은 인쇄물에 등장했다. 초창기에 나폴리는 일종의 지상 낙원으로 여겨졌다. 1787년에 이 도시를 방문한 괴테는 나폴리에 늘 만연했던 빈곤은 무시한 채 이곳을 "모든사람이 몰아(沒我)상태에 빠져 살아가는" 곳으로 묘사했다. 그가 오늘날이 도시와 주변 지역을 살펴봤으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캄파니아 주는이탈리아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비애감에 젖은 지역이다. 휴가를 즐기러 온사람들은 주로 카프리 섬이나 소렌토, 포시타노 같은 리조트만 보고 가지만, 캄파니아 주민 대다수는 나폴리와 살레르노의 거대한 배후지의 위험하고 열악한 주거지에 살며 부정부패와 곳곳에 스며들어 활동하는 이 지역 마피아 카모라의 횡포에 노출되어 있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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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작동한다. 철커덕, 탁, 윙, 애인의 코 고는 소리가 살짝 들렸던 것도 같다. 수많은 아이스크림들이 그득한데 순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얼그레이를 골랐다. 철커덕, 탁, 윙윙윙,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단골 손님들이 미친듯 몰려 들었다. 담배 태우는 연기들이 테이블마다 그득했고 나는 정신 없이 커피를 내리고 칵테일을 만들고 재떨이를 비우면서 혹시 담뱃불이 붙어 있지는 않은가 하고 확인하며 쓰레기통에 쓸모없는 정신의 환락거리들을 내버렸다.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잠깐 한숨 돌릴 틈이 있는가 홀을 둘러보니 한숨을 돌릴만 하다. 함께 일하는 언니에게 손짓으로 전화 좀 받고 오겠다는 모션을 취하고 테라스로 나갔다. 애인이 공부를 하다가 심심하다며 전화를 했다. 나 지금 바쁜데. 그럼 우리는 언제 사랑을 속삭여? 다른 사람들이 더 중요해? 나보다 더 그들이 더 중요해? 그들을 더 사랑해?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심심해하지 말고 공부해. 모레 만나면 그때 많이 놀자. 아니 싫어. 지금, 지금 나는 네가 필요해. 살짝 골이 난 애인에게 사랑을 속삭여줄 틈이 없었다. 언니가 테라스 문을 열고 얼른 들어와, 바빠. 나 들어가야 해. 내일 모레 만나. 이따 집에 들어가면서 전화할게. 황급하게 전화를 끊으려고 하니 네 인생에 나는 쉼표 같은 존재도 될 수 없어. 차라리 내가 없는 편이 네게는 더 나아. 너는 항상 바쁘고 항상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으려고 해. 나 같은 건 필요 없는 거지! 소리를 빼액 내지르지는 않았지만 거의 고함을 지르듯 툴툴거리며 전화를 탁 끊는 소리. 귀찮아 사랑 따위.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겠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탁 전화를 끊는 폼이 완전 왕자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다. 귀찮아 사랑 따위. 


고뇌가 사람 얼굴을 비참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다는 걸 처음 겪고 나는 그를 이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데 대체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하고 곰곰 생각해보았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라 그렇다면 그 정도로 사랑한 건가 하고 자문도 해보았지만 온전하게 가질 수 없어 화가 날 때는 있어도 서로가 서로를 찾을 때 서로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을 수 없어 서서히 어긋나는 타이밍 사이로 미끈거리는 사랑의 껍데기만 서걱서걱 만져질 뿐. 온전하게 사랑할 틈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도 화가 났지만 얼마나 바쁘고 바쁘고 바빴는지 모른다. 탁, 윙, 철커덕. 윙윙윙. 정신을 차렸다. 다시 돌아왔다. 2021년 6월 10일로. 너를 사랑한 걸까. 너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너를 아끼기는 했다. 너를 사랑했던 것도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아가 같이 사랑해달라고 투정부리던 모습. 익숙해지지 않아 빠져나오려고 해도 매번 잡히던 손목에 무슨 마법의 주문이라도 새겨져 있었던가. 확신이 없는 사랑이라고 여겼고 확신이 있던 사랑조차 스스로 놓아버린 적 있고 확신이 있던 사랑이라 여겼던 사랑에 배신을 당했고 이따위 이런 게 사랑이라면 다시는 하지 않겠노라고 매번 악다구니를 내지르면서도 사랑이 좋았던 건지 낯선 살결에 매혹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책이 도착했다. 룰루랄라. 연약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잔인하게 마법의 술수를 부리면서까지 본모습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엘레나 페란테 뭐가 그렇게 좋았던 건가 잘 설명할 수 없었는데 백수린 소설 이야기 나누다가 알았다. 아주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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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11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어린 시절의 사랑은 대부분 상대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내가 더 중요하죠. 그런 주제에 각자가 그렇다는걸 인정하기라도 하면 되는데 심지어 상대는 그 자신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기를 바라고..... 그래서 대부분의 연애가 깨진답니다.
나이들어서 사이좋게 사는 부부나 연인들은 상대를 더 배려하고 자신보다 더 사랑해서 사는게 아니에요. 각자가 다른 존재가 각가에겐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걸 인정해주는 것이랄까? 그게 되면 같이 사이좋게 사는거고,아니면 못사는거고요. ㅎㅎ 그냥 수연님 이야기 읽다보니 저 어릴 때 연애하던거 생각나서 주절주절하게 되네요. ㅎㅎ
 









 친구가 읽자 하고 던져준 자그마한 블루가 짧은 여행을 끝내고 집에 당도해보니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고 안의 글자 색깔이 파래서 놀랐다. 까맣게 하지 않고 파랗게 찍은 이유가 있나. 어쨌거나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생각보다 몰입도가 높아서 앉은 자리에서 몇 페이지 후루룩 읽고 이제 샤워하고 저녁 차려야겠다. 과제해야 하는데 읽어야 할 책이 도착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놀아야겠다. 3부작 3부 얼마 전에 출간되었다고. 번역서 읽어보고 좋으면 원서도 깔맞춤으로 준비하도록 하자.
































나는 생살구의 달콤한 귤빛 살을 한입 베어 물며 학교 놀이터에서 마주치던 여자들, 나와 함께 아이를 기다리던 엄마들을 떠올렸다. 엄마가 된 뒤로 우리는 예전 우리 모습의 희미한 그림자가 되어 버렸고, 아이를 갖기 전까지만 해도우리 자신이었던 여자들이 그런 우리의 뒤를 따라다녔다. 가는 곳마다 우리 뒤를 쫓는 이 맹렬하고 독립적인 젊은 여자들, 잉글랜드의 빗발 아래 유아차를 미는 우리에게 대놓고 소리치고 손가락질하는 이 여자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응수해 보려고도 했지만 우리가 다만 아이들을 얻은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실상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온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존재로, 새로이 육중해진 몸과 모유로 찬 가슴을 지녔으며 아기가 울면 달려가도록 호르몬에 의해 설정된 사람으로 변신해 있었으니까.

우리의 집단 상상을 부단히 사로잡는 여성의 출산과 임신은 또한 신성함의 피난처로도 기능한다.…… 오늘날 모성에는 종교적 감정의 잔존물이 스미어 있다.

쥘리아 크리스테바, 「오늘의 모성」Étre mère aujourd‘hui, 2005- P23

사랑과 관계된 만사가 그렇듯 아이들은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을 행복에 더해 그에 못잖은 불행을 안겨 주었는데, 그렇대도 21세기 ‘신가부장제‘ 만큼 우리를 비참한 수렁에 몰아넣지는 않았다. 신가부장제는 우리에게 수동적- P24

이되 야심 찰 것을, 모성적이되 성적 활력이 넘칠 것을, 자기희생적이되 충족을 알 것을 요구했다. 즉 경제와 가정 영역에서 두루두루 멸시받으며 사는 와중에도 우리는 ‘강인한 현대 여성‘이어야 했다. 이렇다 보니 만사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게 일상사였지만, 정작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P25

마침 그 무렵 읽고 있던 아드리엔 리치는 이를 정확히 짚어 냈다: "남성 의식 슬하의 제도 안에 진정으로 인사이더인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기이했다. 점차 나는 ‘모성‘이 남성 의식 슬하의 제도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여기서 남성 의식은 곧 남성 무의식이었다. 남성 무/의식은여자이자 또한 엄마이기도 한 동반자가 자기 욕망일랑 밟아 끄고 그의 욕망을 시중들기를, 그런 뒤에 다른 온갖 사람의 욕망을 시중들기를 요했다. 우리는 욕망을 거두어 보려했고, 우리가 그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음을 발견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삶의 활력 가운데 상당량을 아이와 남자 들을 위한 집을 꾸리는 데 투입했다.- P26

마르그리트 뒤라스만큼 무자비하게, 그리고 자상하게 이에 대해 논한 사람도 없다. 내가 읽어 본 어느 페미니즘 비평 이론이나 철학도 이리 깊이 사무치지 않았다. 마르그리트는 거대한 안경을 끼고 다녔고 자아도 강했다. 강한 자아가 있었기에 안경보다도 작았던 두 발로 여성성에 대한 망상을 거뜬히 짓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만취했을 때가 아니고는 지칠 줄을 모르던 지적인 기력으로 이내 또 다른 망상을 박살 내러 발길을 옮겼다. 조지 오웰이 작가가 지녀야 할 필수 자질로 순 이기주의 [에고이즘]를 언급했을 때, 그는 여성 작가의 순 이기주의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교만한 여성 작가라도 12월까지는 고사하고 1월 한 달간이라도 버텨 줄 만큼 굳건한 자아를 확립하러 나선 이상은 철야를 면할 도리가 없다.- P27

남자와 여자는 결국 다르잖은가. 어머니가 되는 것과 아버지가 되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여자가 제 몸을 아이에게 내줌을 뜻한다. 언덕을 오르고 정원 안에 들듯 아이들은 여자 몸을 기어오른다. 그리하여 아이가 저를 먹고, 두들기고, 품에 안겨 잠을 취할 동안 여자는 이를 순순히 허용하고, 더러는 아이들이 제 몸에 올라타 있기에 잠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와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대도 여자들은 누군가의 어머니 또는 배우자로 존재하는 와중에 저희 나름의 절망 또한 분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같이 이어지는 절망 가운데 자신의 왕국을, 전 생애에 걸쳐, 잃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젊은 날의 포부와 강인함과 사랑, 이 모두가 순전히 합법적으로 주고받는 상처를 통해 깡그리 새 나가는 건 아닐까. 요는 이건지도 모르겠다 — 여자와 순교는 동행하기 마련이라는 사실. 나아가 이 세상엔 본인의 깜냥을, 각양각종의 기량을, 요리 솜씨를, 또한 덕목을 뽐냄으로써 충족을 느끼는 여자들이 널렸다는 사실.

뒤라스, [살림살이]- P28

아이들은 언제고 다른 이를 만나러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기 마련이니까. 그래, 나만 해도 코트 지퍼를 여며 주느라고 문을 나서는 내 딸아이들을 여러 번 불러 세우지 않았던가. 걔들이야 차라리 춥고 자유로운 편을 선호한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내가 모성 본능과 사랑의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아니다. 난 단지 여자들에게 진실하게 그리고 자유로이 이를 겪어 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종종 그렇듯 구실 삼아 그 안으로 도피했다가 막상 그 감정들이 고갈된 뒤에야 피난처로 여기던 곳에 자신이 갇히고 말았음을 깨닫는 대신에 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상황의 힘』 La Force des choses, 1963-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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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찰랑찰랑 거리는 틈바구니 사이로

그는 주로 오후나 밤에 집에서 책을 읽었다. 그에게 집은 학교에서수업시간 동안 공부를 하느라 뒤죽박죽인 머리를 정리하는 곳이었다. 이제는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거나 책에 대해서 토론하지 않는 그의모습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등 그 당시 널리 읽힌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 그리고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대학생이 토론 중에 매번 인용하는 다른 책을탐독했다. 그는 내게 그런 책 뒤에 있는 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들을 정말 알고 싶은지 아닌지는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러한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동안 그는 어떤 조언도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본능만을 믿었다. 그는 일단 정보를 흡수해서 자기 가치관에보탤 뿐 주체적인 척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를 읽는 동안 내가 그의 생각을 물을 때마다 그는 "아직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했다.-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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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전에 언니가 이야기해줌, 

 그라치아 델레다, 1926년 노벨문학상 수상. 

 사르데냐 섬의 이야기꾼.


 1875.9.27 - 1936.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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