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흐르는 것들이 동류이기에 어렵지도 않고 알아듣기도 쉬웠다. 그래서 그 이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이미 아는 것들 말고, 모르는 것들,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이미 아는 것들 그 이상으로. 하여 정해진 바가 없다는 건 또 제자리 돌기인가 싶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이십대 시절에 읽은 엘렌 식수 말고. 명쾌하게 결론은 단 두 글자이다. 엘렌 식수가 읽고 쓰기와 꿈꾸기 기록을 강조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쓰기_이다. 별 수 있는가 싶을 때가 있는데 이런 식. 허나 심플했고 읽는 동안에도 즐거웠다. 이미 아는 바, 라고 말했으나 내가 나에 집착하는 바가 타인들이라는 사실 또한 이번 읽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보고싶은 얼굴 하나, 떠올리며 마지막 페이지 덮었다. 








쓰기는 두 해안가 사이에 길을 만든다.
<글쓰기 사다리의 세 단계Three Steps on the Ladder of Writing≫, p. 3.

이 장에서는 독자이자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식수의 역할을 검토할 것이다. 또한 식수 자신의 글이 다른 이들에게 읽히는 방식들도 살펴볼 것이다. 식수가 다른 작가들을 읽고 언급한 것들을 목록화하기보다는, 그녀가 리스펙토르의 글을 읽고 (읽혀지는) 방식들을 살펴볼 것인데, 왜냐하면 식수의 글쓰기 대부분에서 풍부한 "상호텍스트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식수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대해 쓰고 말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리스펙토르의 글은 여전히 식수의 글쓰기에 충격/영향을 주었던 외부의 주요-아마도 바로 그 주요 요인들 중 하나일 것아다. 식수에게 끼친 리스펙토르 글의 충격/영향의 몇몇 측면들은 이전 장(특히 3장)에서 이미 논의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식수의 읽기 실천에 관한 검토는 여성학연구센터의 세미나에서 리스펙토르의 쓰기가 어떻게 "읽혔는지에" 집중될 것이다. - P139

만일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이론‘의 발전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면, 만일 (버지니아 울프가 언젠가 말했듯이) 독자에게 건네질 "순수한 진리의 덩어리"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써라‘일 것이다. 식수의 ‘이론‘은 타자가 스스로에 대해 글을 쓰고 읽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식수의 발자취를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여정, 자신만의 탐색을 시작하는 것, 자신만의 질문을 찾고 탐구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어둠 속에서 문자 그대로 글을 썼던 유대인 여성인 에티 힐레Etty Hillesum (1943년 11월 30일 아우슈비츠에서 사망)의 일기에 대해, 식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즐거움을 경험할지에 대한, 삶의 노하우savoir vivre의 바이블로 읽힐 수 있다. 나만의 레시피가 언제나 변함없이 있다. 그 레시피는 독자들로 하여금 꽃을 심으라고 말한다. 은유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Readings, p. 122).‘ 식수의 ‘이론‘은 독자에게 읽기의 노하우savoir lire, 쓰기의 노하우savoir écrire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여성적 글쓰기에 관한 자신의 ‘이론‘으로 식수가 의도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쓰기와 읽기)를 시작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과정이 시작되면, 그녀의 유용하고 횡단가능한 ‘이론‘은 분명 그 목적을 다했다. 식수는 잠재적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그들이 취할 수도, 취하지 않을 수도 있는 다양한 경로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길이 어떤 길이든, 거기에서 어디로 가든 식수는 전적으로 그들에게 맡길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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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8-12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식수 이 언니.. 빡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데리다 애인이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하는데.........

수이 2024-08-12 06:33   좋아요 0 | URL
식수 언니랑 데리다 오빠랑 연애했었어? 나 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