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그대가 가을에 온다면,
반쯤은 웃고 반쯤은 비웃으며 주부가
파리를 쓸어 내 버리듯이,
여름을 쓸어 내 버릴래요.

1년이 흘러야 그대를 볼 수 있다면
한 달 한 달을 공처럼 뭉쳐 -
순서가 섞이지 않도록,
서랍마다 하나씩 넣어 둘래요 -

수 세기가 지나야 그대를 볼 수 있다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지쳐서 내 손가락이
반디멘스랜드에 떨어지겠죠.

이번 생이 끝날 때, 분명히 -
그대도 나도 사라져야 한다면
이번 생을 과일 껍질처럼 버리고,
영원을 맛볼래요 -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날갯짓을
더 해야 그대가 올지 전혀 몰라,
쏘지 않고 윙윙대는 기다림이 -
악마 벌처럼 날 괴롭혀요.

(122-123)

조애리 번역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서 오늘도 화이팅!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24-03-11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 낭송에 정말 잘 어울리는 목소리이고 톤이고 분위기네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저는 윤명옥님 번역하신 디킨슨 시선집에 들어있길래 다시 읽어보았어요.

수이 2024-03-11 18:23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나인님, 든든해서 앞으로 종종 올릴게요. 봄날 감기 조심하시구요. :)

단발머리 2024-03-11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이님의 불어 낭송을 엄청 좋아하는 1인입니다.
에밀리의 시가 이렇게 좋군요. 매일 한 편씩 꼭꼭 부탁드립니다!!

수이 2024-03-11 19:1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님이랑 나인님만 좋아하실걸요.
매일 올리면 알라딘이 싫어할지도 몰라서 이틀에 한 번씩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