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생긴 우동집은 별로다. 돈까스도 맛없었고. 롤도 그닥. 우동조차 맛이 없었다. 그래도 한동안 돈까스 매일 100개 만들어 100개씩 튀겨 팔던 여자로서 이런 건 용납할 수 없다_ 라는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 이건 아니죠. 사장님. 딸아이가 시킨 돈까스와 우동 두 입, 롤 3개 먹고 젓가락을 재빨리 내려놓았지만 역시나 집에 돌아와 체하고 말았다. 체기가 다 가신지 정확히 하루가 지났는데 또 체하고 말다니, 하지만 왜 체했는지 그 까닭은 맛없는 식사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조금만 뒤틀려도 그걸 꼭 티를 내고야 만다, 성격이 저래서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말을 아빠에게 듣고 그럼 불편한데 어떻게 해! 소리를 빽 지르기도 했던 어린 기억도. 맛없으면 남겨, 했으나 민이는 돈까스를 다 먹었고 결국 집에 돌아와 체한 거 같아 맛없었어, 너무, 그래서 그러니까 엄마가 남기라고 했잖아, 그걸 왜 다 먹어, 잔소리 한마디 하고 소화제를 내미니 매실차 마실래 해서 소화제는 내가 먹고 매실차 타주고 나는 힘들어서 샤워 끝내고 얼른 잤다. 새벽 1시 넘어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서 몇 시야? 물어보니 새벽 1시! 그래서 왜 이렇게 늦게 자?! 또 한소리 하니 소설 잼나, 엄마, 그래서 잠결에도 웃음이 나왔다. 카프카와 다자이 오사무를 읽고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아이는 요즘 유행한다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집어들었는데 완전 힐링이라며 저녁을 먹는 내내 그 소설 이야기를 했다. 결국 카프카와 다자이 오사무도 그 소설을 쓴 작가도, 장자도 타자 이야기구나, 아이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느꼈다.
마흔에 읽는 뭐뭐뭐, 오십에 읽는 뭐뭐뭐...... 이런 책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던데 아직 한 권도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서점에서 그런 책이 매대 한켠을 차지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뭘 원하는 걸까? 이 시대의 중년들은 뭘 원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 만 적 있다. 마흔과 쉰, 중년 초입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마흔부터 중년이 한창일 때, 이때가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가로지르는 딱 그 지점이다. 성공과 실패를 적절하게 맛봤고 실패만 그득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어도 중년인데 나도, 이제 꿈 하나라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시기로 여긴다면 중년 이후부터라도! 이런 마음인 걸까. 나는 또 내 인생을 대입시켜서 제멋대로 생각하곤 한다. 혹은 무탈하게 앞으로 남은 나날들을 어느 정도인지 헤아리기는 힘들어도 평화롭게 만족하며 보내고 싶어서일까. 아이 키우는 아줌마들 나이는 다 거기서 거기다. 일찍 결혼했으면 사십대 초반, 늦게 결혼했거나 늦둥이라면 오십대 초반, 대개는 내 나이대. 다시 돌아가 젊어질 수 있다면_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다시 돌아가 젊어지고 싶다_손을 드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만큼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젊었을 때 그 난리 부르스를 다시 하라고 한다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 이야기들. 치열하게 살았건 치열하게 살지 않았건 그때 그 감정의 널뛰기를 다시 겪으라고 한다면 너무 끔찍하지 않냐_ 라면서. 뒤라스가 딱 쉰이 되어 한 인터뷰를 짤로 보았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아요. 과거의 나도 좋았지만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더 그럴 거 같습니다. 난 지금의 나에게 만족합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확실히 뒤라스 목소리에는 힘이 있구나, 다시 한번 뒤라스 목소리에 반한 지점이기도 하고. 언니가 한 말 중에 제일 좋았던 건 '앞으로도 더 그럴 거 같습니다' 여기. 뒤라스의 인생 전반을 봤을 때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죽기 전까지, 투병하면서도, 그걸 알고 있는 팬 입장에서는 더욱 더. 얼마 전에 나눈 대화에서 사람들은 결핍은 결핍대로, 또 튀어나온 부분은 튀어나온 부분대로 그걸 가만히 두고 바라보지 않는다_라는 말에 뭔가 발끈해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냥 응응 하고. 결핍은 결핍대로, 저 녀석은 저게 한참 모자란 녀석이지, 그 결핍을 갖고 이야기를 하고 튀어나온 부분을 갖고는 저 녀석은 저렇게 나대고 살지, 그냥 좀 조용히 있어도 좋을 텐데 저렇게 좋다고 나대고 다니네, 얼마나 그 행운이 가는지 보자, 하고 시기하는 마음과 못된 마음을 먹고. 왜 그럴까? 엄마에게 이래서 이래서 이랬어, 하고 이야기를 하니 엄마가 현명하네, 다행스럽게도, 라고 했다. 사람들 사는 게 그렇다. 이 에미도 곧 여든인데 사람들 말소리에 일희일비하기 일쑤인데 그냥 너를 보면 애간장이 탄다, 라고 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하니 너는 그냥 다 말해버리니까, 다 쏟아내버리고, 얼굴에도 그냥 다 드러나고. 엄마 말을 들으면서 그냥 눈동자를 굴리고 말았다. 민에게도 들었던 바, 엄마는 포커 페이스가 안되더라. 해서 너는? 했더니 나는 포커페이스 짱이지,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 들려주어 들어보니 그렇다, 우리딸도 포커 페이스다. 포커 페이스 연습해야지. 아침 간단히 먹고 병원 순례 다녀야 하니 오늘은 여기까지.
어젯밤 잠들기 전에 든 생각, 대붕 이야기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어느 누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메추라기가 될 때도 있는듯 싶다, 스스로를 메추라기로 만들 때도 있고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자매, 내 친구들, 내 연인, 내 아내, 내 남편, 내 선생님들이 나를 메추라기로 만들 때도 있다. 나는 공적인 관계에서 활동을 해본 경험은 진짜 짧아 공적인 관계를 언급하기에는 그래서. 또 동일한 케이스로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자매, 내 친구들, 내 연인, 내 아내, 내 남편, 내 선생님들이 나를 곤으로 붕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지나고보면 난 운이 좋았던 것도 같다. 물론 그만큼 불행도 겪긴 했지만. 더불어 내 친구나 내 연인이 내 선생님이 나를 하늘로 띄워 날아오르게 만든 바람이라면, 나 역시 그들을 하늘로 띄워 날아오르게 만드는 바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더불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메추라기가 아니라 곤으로 붕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하여 중년의 나이에 고전을 읽고 그 고전의 구절에 내 인생을 대입시켜보고 거기에서 희망을 찾고 또 신발끈을 묶어보자 싶어 그런 식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 아니겠는가. 문득 졸혼하고 싶다는 동네 친구들도 떠올랐는데 그냥 거기까지 생각하고 잠들었다. 자신을 메추라기로 만드는 이들은 그 관계가 어떠하든 간에 확실히 끊어버리는 편이 좋다고 여긴다. 마음에 안 들면 칼같이 자르는 거, 좋지 않다고 엄마가 맨날 나한테 하는 이야기인데. 또 자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군, 아침부터. 아직 어려서 그렇다. 쉰이 뭐가 어려? 켁켁. 아직 어리다고 여깁니다. 쉰이 되어보면 마치 모든 것들을 헤아릴 수 있어서 허허실실 웃기도 많이 웃고 다니고 사람들도 항상 곁에 그득할 줄 알았고 하는 일마다 모두 다 잘 해낼 것이다, 그런 망상과 같은 생각을 스물에 한 적 있다. 곧 관뚜껑 열고 들어가도 될 정도 아닌가 그러하다면. 개인적으로 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곧 죽어 바람에 훨훨 날아갈 정도의 경지가 아닌가 그 정도라면. 스물 즈음에 막연히 그렸던 그 쉰을 곧 마주하고 있노라면 별로 달라진 거 하나도 없구나 알게 된다. 그러니 음 예순 정도 되면 우리 엄마 말씀이 맞았구나 그렇게 칼같이 끊어버리면 안 되는구나 하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끊는 게 답입니다, 라고 말하고 만다. 똥고집이네.
또 어마무시한 꿈을 꾸었다. 이쯤 되면 나의 무의식이란 대체 무엇인가, 싶어지는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