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질문을 받았다. 뭘 할 때 제일 행복한지? 뭘 할 때 제일 행복한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 공간에 있던 다른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5년 만에 마주한 사촌들은 모두 늙어있었다. 사촌들 역시 내 얼굴을 보고 왜 피골이 상접한지? 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난리였지만. 함께 간 내 딸아이는 어릴 때의 나와 판박이인지라 둘이 같이 다니면 모녀가 아니라 자매로 알겠노라고 무슨 쌍둥이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들었다. 내 딸이 훨씬 예뻐! 했더니 민이도 맞아요, 우리 엄마보다 내가 100배 더 예쁜데! 버럭 해서 웃겼다. 중년이 되어 행복을 이야기할 때, 나와 동갑내기인 사촌 녀석 하나는 근래 5년 동안 행복했던 기억이 없어, 라고 말해서 좌중을 침묵케 했다. 사촌 녀석의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왔고 퍼뜩 아내를 본 녀석은 난 항상 행복해, 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뭘 할 때 제일 행복하다 만족스럽다 이런 게 있을 거 아냐, 라고 재촉했더니 골프칠 때, 라고 답했다. 한쪽에서는 골프가 뭐가 재밌냐 우우우 했다. 나도 결혼생활을 16년차 했고 녀석도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사촌이 없을 때 녀석의 아내에게 다가가 행복하니? 물어보았다. 당황스러워하면서 응응 이라고 답해서 말해봐, 진심으로, 했더니 행복해, 만족스럽고, 그런데 차갑고 이성적이어서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 지금은 너무 차갑고 너무 이성적이니까 그래서 질려, 라고 말했다. 오 사랑했던 까닭이 증오하는 까닭이랑 겹쳐진 거네?! 말했더니 뭘 또, 증오까지, 그냥 싫어, 정 떨어지는 순간들 많아. 그래서 고개를 끄덕끄덕. 사촌언니도 사촌오빠도 사촌도 나를 질질 끌고 가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안 보고 산 사이에? 그랬지만 뭐 그냥 나중에_ 어르신들도 계시는 판국에_ 했더니 다들 술 마시자고 난리법석이었다. 아름다운 조카는 연애를 왜 안 하고 사냐는 이야기를 100번 넘게 들었고 살 더 빠지면 해골 뼈다귀가 춤을 추겠다고 고모는 내 엉덩이를 때렸다. 이렇게 튼실한 엉덩이를. 이혼을 두번 한 사촌 언니가 날씨 좀 더 풀리면 여행이나 가자, 애들 데리고 그래서 오, 그래 콜, 했다. 딸 하나 엄마 하나, 딸 하나 엄마 하나. 아름다운 조카의 책장을 쓰윽 훑고 온 딸아이가 언니도 철학책이랑 정신분석책 엄청 많아, 엄마, 그래서 오, 얼굴도 예쁜데 정신까지! 하니까 아 이모는, 이러면서 팔 한쪽에 매달렸다.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녀석이 대학교를 졸업했다니, 새삼 시간의 흐름에 놀랐다. 사촌 언니가 견적비 꽤 나오겠다, 가서 리프팅하고 필러 채워 넣자, 해서 푸후후 웃었다. 언니는 얼마 나왔어? 물어서 한 거 티 나나? 해서 다 티 난다, 했더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새로 나온 그것도 하고. 푸후후 계속 웃었다. 대학교를 같이 다닌 사촌오빠가 요즘도 책 많이 읽나? 물었고 제부가 맨날 끼고 산다고 뭐라 하고 사촌들은 노안도 왔는데 무슨 책이냐, 책 좀 그만 읽어라, 아우성이었고 한쪽에서 책을 읽고 있던 딸아이와 조카 녀석은 책 좋아 책 좋아 하더니 애들을 다 집합시켜 놀이터에 광합성 하러 가자더니 우루루 나갔다. 뭘 할 때 제일 행복한지, 그 시간이 결국 인생을 좌우하는 거 아닐까. 엄마집에 와서 잠깐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 딸아이가 오더니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냄새 나는 정수리에 코를 박고 입을 맞추었더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조카들이 우리 엄마는 정수리에는 뽀뽀 안 해준다고 그래서 이모가 해줄게, 일루 와, 하고 녀석들을 차례로 안고 입을 맞추었다. 중딩 조카가 이모, 냄새 안 나요? 물어봐서 중딩 조카님, 호르몬 폭발하셔서 냄새 엄청 나죠, 했더니 근데 어떻게 뽀뽀를 해요? 물어봐서 사랑하니까, 대답하니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셋 다 거실로 나갔다. 막둥이가 전화기를 보면서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너 뭔 일 있지? 물어보니 씨익 웃더니 나 연애해, 답해서 다들 우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사진 보여줘, 사진 보여줘, 엄마가 보더니 미인이라며 좋아했다. 연애를 하지 않은지 꽤 시간이 흘러, 연애 따위 안 해, 라고 막둥이는 귀찮아했다. 보리차를 마시다 말고 궁금해서 물어봤다. 너 귀찮다고 여자 안 만난다고 연애 같은 거 안 한다고 그랬잖아, 근데 왜 그 친구한테는 마음 열었어? 물어보니 왜? 다시 질문으로 답해서 수많은 여자들이 있잖냐, 근데 연애 안 한다고 몇년 그랬고, 그러다가 마음을 연 까닭이 있을 거 아냐? 다른 여자들이랑 달라. 말을 예쁘게 해. 다정하고. 뭐 더 물어봤자 연애 며칠차 인데 싶어 그래,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니까 네가 마음을 열었겠지. 서로의 고유성만을 알아보는 건 연인의 특징이다. 다른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내 눈에는 보이는. 그런 걸로 서로 시작이 되는 거겠지, 아마도. 경계를 사라지게 해, 자꾸 경계가 사라져, 그 말이 떠오르면서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었던 방어막이 순식간에 해제가 되어버린 거겠지? 물었더니 막둥이가 응, 웃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웃고 있더라고, 그래서 자꾸 웃는 모습 보고 싶고. 경계가 사라진 거네. 전화기에서 눈을 못 떼는 막둥이를 흘깃 쳐다보면서 답했다. 막둥이의 그녀에게서는 끝없이 카톡이 왔고 막둥이의 손가락은 소설을 쓰는 작가의 손가락처럼 재빨리 타자를 쳐나갔다. 전화기 없었으면 연인들은 어떻게 살았으려나. 

아이는 느즈막히 깨워달라고 새벽에 말했다. 프렌치토스트 맛나게 하는 그 집 가서 브런치 먹자 엄마, 라고 중얼거리면서 잠든 내 품 안으로 들어와 중얼중얼 말을 했다. 잠결에 응응, 그러자, 아가, 말한 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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