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정혜선은 문장 쓰는 일에 능숙하다. 홀로 오래 종이 위에 글을 쓴 이의 울림이 느껴진다. 좋다.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예원 아이들이 잠깐 왔다고 한다. 아이의 친구는 예원 아이들을 관찰하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저 아이들은 예술을 하는 아이들이라서 그런가 모두 자세가 반듯하고 도도하네. 자신 안의 자부심이 그대로 몸짓으로 드러나. 우리는 아직 우리가 무엇을 잘 할지 알지 못하지만 저 아이들처럼 반듯하고 도도한 자세를 갖도록 하자. 그리고 바른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사항들을 이너넷에서 찾아 다음날 갖고 왔다고 한다. 다리도 꼬지 마. 밥 먹고 항상 10분씩 교내를 걷도록 하자. 퍼지면 안돼. 기타 등등. 우리 아가는 화나면 아이씨 이 말 잘 하는데 (이건 내 말버릇) 이것도 지적받았다고 한다. 도도한 이들은 아이씨 하고 말 안해. 그 말버릇 안 예뻐. 하지 마. 분노는 혼자 다스려야지. 오, 솔직히 놀랐다. 저 친구는 아이의 베프는 아닌데 같은 반이 되어 수학 문제를 풀다가 친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매일 하교 후, 저 친구 이야기를 한다. 물을 잘 안 마시는 딸아이에게 물을 얼마나 마셔야 피부가 좋은지 그것까지 체크를 한다고 하니 완전 사감 선생님 같은데! 하면서 동시에 내 친구가 떠올랐다. 딸아이의 친구가 예원 아이들에게서 본 그 반듯하고 도도한 자세, 벌써 어깨가 구부정해져서 걱정이었는데 딸아이는 이번에 그 친구랑 같이 자세 교정하면서 좀 어깨 펴지려나 싶어 엄마 된 몸은 들떴다. 규칙과 연습, 그 고된 과정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인듯. 아이들이 서로의 삶에 스며들면서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게 즐겁다. 사서 선생님에게 추천받아서 읽는 책인데 이거 철학 소설이야. 엄마가 좋아할 거야, 나 다 읽고 빌려줄게, 읽어봐 해서 오키 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씩은 묻는 질문들이 책 뒤표지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문득, 질문을 하고 끝까지 그 답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 사실도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잘 하는 일이 최소한 하나씩은 있는데 그 일을 하면서 주로 그 일에 시간을 쏟아부으면서 각기 나름대로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 애쓰는건가 그러는걸까 궁금해졌다. 

같이 글쓰기 공부를 하던 친구 이름도 정혜선이었다. 나이차가 있으니 글쓴이와 내가 아는 정혜선은 동명이인이지만 그 아이가 떠오른다. 핀란드에서 유학중인 친구는 공부를 하느라 얼굴이 많이 상했다. 못생겨졌지? 웃으면서 말했으나 공부하느라 상한 친구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이러다가 진짜 핀란드에서 박사까지 따겠는걸 하니 후후 웃었다. 영어로 다 하니까 핀란드어는 거의 안 늘었어. 하지만 단어 몇 개는 이제 익숙해 하며 알려주는데 낯설면서 아름다웠다. 핀란드어 배울 일은 이번 생에 없을듯 하니까 쿠쿠쿠. 너도 참 대단하다, 아이들 건사하면서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툭툭 어깨를 쳐주니 눈물을 왈칵 쏟으려고 한다. 우리는 모두 갈 길을 잘 찾아 가고 있는듯. 보리차가 끓는 아침이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이모가 어젯밤 꿈에 나와서 위험에 처한 나를 구해주었다. 간발의 차로. 내가 오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자꾸 여기로 얼른 와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꿈속에서도 감사하다 인사를 했다. 절박한 타이밍에 누군가가 손을 내밀 때 그건 구원과 다름 없으니까. 중학교 까까머리를 하고 다닐 때 일이다. 친구들이랑 롤러 스케이트를 타러 갔는데 돈이 부족해서 아이씨 하는데 옆에 아이를 데리고 온 아줌마가 대신 돈을 내주셨다. 감사합니다 하고 계좌를 알려달라 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받아 입금하겠노라고 했다. 그 아줌마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쿨하게 답하셨다. 됐다. 나중에 이런 일이 생길 경우에 너도 도와줘라, 그게 돈이 됐든 마음이 됐든. 그럼 그걸로 내게 빚진 거 갚는 거다. 아무런 관계도 아닌데 생전 처음 만난 타인에게 도움을 받았다. 아 인생은 순환 고리인가 그 어린 마음에도 뭔가 생의 지혜를 하나 깨우친 것만 같아 환희로웠다. 꿈 꿨다. 정지돈이랑 금정연이랑 나와서 같이 맥주 마셨다. 꿈속에서도 같이 술을 마시다가 이제 일어나야겠다, 우리 딸아이가 나 찾을 거야, 지금쯤 바락바락 울부짖고 있을 거야, 우리 엄마 쩔쩔매고 있을거야 하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일어나고난 후 금정연 새 책 나온 거 아직도 읽지 않아 죄책감에 꿈꿨나 싶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집을 다시 천천히 읽는다. 거기에 나왔던 시다. 오늘도 적어야지. 유학중인 내 친구 이야기 같기도 하고 이 글쓴이 이야기 같기도 하다. 인생은 일회성, 그러기에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어서 자꾸 되뇌이는 거겠지. 사색의 시간들. 예원에 간 한때 베프였던 친구를 보고 온 딸아이는 들떠서 엄마, 걔 턱 여기가 완전 시커먼 거야, 그래서 아 어떻게 하냐 괜찮아? 하고 물어보았는데 걔가 이딴건 아무것도 아니야 난 이 악기에 내 목숨을 바쳤으니까 하는데 말하는 게 완전 멋졌어. 나도 목숨을 바칠 뭔가를 찾아봐야겠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하길래 아 뭘 또 목숨까지 바쳐. 그냥 즐길 수 있는 걸로 하나 찾아. 그러면 돼. 너무 각 잡고 그러면 숨 막혀! 했으나 아니야 난 각 잡을래! 하길래 각 잡는 인생과 바람에 떠도는 인생 이렇게 나뉘는가 싶기도. 바람에 떠도는 인생이라고 해도 생명을 다해서 질문 하나를 붙잡고 그에 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어쩐지 그 질문 하나, 그 답 하나에 모든 가닥들이 있을 것만 같아서. 

사족 하나.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 역시 거창고등학교 출신이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비로소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 전까지 2년 동안 얼마나 맹렬히 독서를 하고 놀았는지 그 경험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틈만 나면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 그 2년이 없었더라면, 그때 만난 선생님들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너희들과 마주 앉아 수업을 하고 있지 못할 거다, 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래서 그때 우리반은 거창고등학교란 곳은 엄청난 곳이 틀림없어 라고 했는데 여기 이 책 안에서 거창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오네. 1등부터 꼴등까지 두 눈을 반짝거리며 50여명의 작은 짐승들이 시를 배우고 소설을 소리내어 배웠다. 그 기억이 쓰윽 올라온다. 신기루처럼. 학교란 공간에서 성적과 무관하게 선생님이란 존재에 빠져 문학에 빠졌던 우리는 수업이 끝나곤 하면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반 노트에 쓰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선생님은 피리 부는 사나이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선생님의 피리 소리에 빠져 한 길로 나아간다. 1등부터 꼴등까지. 문학을 아는 데 성적은 무관하다. 지능과 무관하다. 우리는 모두 선생님의 피리 소리에 빠져 그 말을 맹신한다. 그리고 절벽으로 나아가는걸까, 피리 부는 사나이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러나 우리는 안다. 선생님은 우리를 절벽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혹여 그곳이 절벽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안다. 피리 소리에 박자 맞춰 날개를 퍼덕일 것을. 나는 그때 말이 거의 없던 아이였기에 반 노트에 그렇게 적어놓았다. 적기를 좋아했다. 궁금한 게 있어 질문을 적어놓으면 선생님과 다른 반 아이들이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따지고 들자면 선생님이야말로 '삶을 위한 학교'의 선생님이었네. 


 나는 간다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곳 
 눈 속으로. 

 나는 간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로
 의무나 연민을 전혀 생각지 않으며. 

- 힐다 둘리틀, [꽃피우는 지팡이]에서 








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룬트비는 자신을 음유시인이라고 불렀다. 음유시인이야말로 보통 사람들의 진짜 선생님이라고 했다. 음유시인들이 모국어로 들려주는 시와 노래는 힘이 있고 풍요롭기에 우리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키워 준다. 그래서 초기 호이스콜레 교육과정은 덴마크 말로 된 신화와 전설, 시가 중심이었다. 그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구술 전통, 특히 풍부한 역사성을 지닌 이야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룬트비가 덴마크어로 된 민중 문학의 전통을 중시했던 이유는 19세기 덴마크 지배층의 교육이 라틴어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룬트비는 실제 덴마크인들의 삶과 분리된 라틴어를 외우게 하는 학교를 죽음을 위한 학교라 칭했다. 호이스콜레는 죽음의 교육 앞에 들고 일어선 삶을 위한 학교다. 천사의 손과 별의 펜촉으로 쓰여진 책이라 할지라도 읽는 사람의 삶 속으로 녹아들지 않는다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 - P34

덴마크 생활 20일째가 되는 날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더 깊은 지혜와 경험, 영감은 누가 거저 주지 않는다. 남이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게 아니라 두 발 벗고 들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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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6-03 08: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타님 글도 넘 예뻐요.^^
친구에게서 영향을 받는, 서로가 서로에게 선생님인 이야기!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잠언이 떠오릅니다.

vita 2022-06-03 18:46   좋아요 1 | URL
아니 저는 기록 차원인지라 ㅋㅋ 암튼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말씀해주신 잠언 좋네요. 가슴에 새겨둘게요. :)

단발머리 2022-06-03 12: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늘 글 너무 좋네요. 반짝이는 마음과 결심을 서로 나눠갖는 비타님 따님과 친구들이.... 너무 부럽네요. 부러워요, 진짜로 ㅠㅠㅠ

어떻게 하면 꿈에 정지돈이랑 금정연이 같이 나올 수 있는지 좀 알려주시면 제가 담에 후하게 사례하겠습니다. 진심입니다!!

vita 2022-06-03 18:47   좋아요 3 | URL
네 서로 반짝반짝 예뻐요. 정지돈이랑 금정연은 글쎄요 ㅋㅋ 이게 무의식에 들어온 이들인지라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아마 죄의식에 기인해서 그러했던 거 같아요 얼른 금정연 책 읽어야지 ^^;;

mini74 2022-06-03 13: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따님과 비타님 글 너무 좋아요. 항상 뭔가 몽글하고 따뜻해지는 ㅎㅎ 저도 오늘 아이한테 전화 한 번 해야겠어요. 너 밥은 먹고다니냐. 너 친구는 있냐! 하고 ㅎㅎ

vita 2022-06-03 18:48   좋아요 3 | URL
연락 없이 지내는 건 잘 지내고 있는 경우가 구할이더라구요. 그러니 전혀 염려치 마세요 저도 얼른 아이 독립시켜서 전화하고 싶네요. ^^;;; 아직 멀었지만.

바람돌이 2022-06-04 1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항상 따님과 끈끈한 소통이 웃음짓게 하네요.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vita 2022-06-04 21:07   좋아요 3 | URL
네 바람돌이님도 평안한 연휴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mini74 2022-07-08 1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타님 축하드려요 *^^* 따님책도 한권 사셔야 할 것 같은데요 ㅎㅎ

그레이스 2022-07-08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타님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2-07-08 19: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타님 당선 축하드려요 ^^ 언제나 멋지십니다~!!!

얄라알라 2022-07-1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타님 서재 종종 들리면서도 정작 당선작은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핀란드에서 공부하시는 친구분만큼이나 비타님도, 글도 아름다워요

따님은 예원친구들의 자세에서 그런 자부심을 캐치했다니^^
최근 본 <헤어질 결심>에서도 자세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

˝축하드립니다!!!!˝
요 얘기하려다가 엉뚱한 이야기 줄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