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은 사랑에 빠진다. 알코홀릭 남편과 함께 살면서 취미로 테니스를 친다. 두 딸아이는 대학생이다.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폴과 사랑에 빠질 때 수전의 나이 마흔 여덟이다. 테니스를 치다가 그들은 자주 어울리고 자주 만나다보니 결국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 모두가 다 알지만 모르는 척 진행되는 - 연애는 수전이 집을 나와 폴과 함께 살 집을 구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수전은 알코홀릭 남편과 폴 사이에서 왔다갔다 사랑과 삶 사이를 오간다. 폴이 법률을 공부하기로 결심하면서 대학교에서 공부를 이어나가는 동안 수전은 집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중산층 생활을 이어가며 테니스 치기를 즐기던, 알코홀릭 남편 때문에 셰리주 한잔 마시기도 저어하던 수전이 대책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을 알콜로 정화시키려는듯 시도때도 가리지 않고 술병을 입에 갖다댄다. 인생보다는 사랑을 택한 그들의 결말은 비참하다. 나이차가 많아서 불행한 사랑은 아니다. 더 이상 수전을 감당할 수 없어 폴은 수전의 딸에게 그녀를 맡기고 영국을 떠난다. 아빠를 버리고 젊은 애인과 사랑에 빠져 알코홀릭이 된 엄마 수전을 딸은 말없이 받아들인다. 시간은 흘러 알콜과 항우울제로 인해 수전의 뇌는 더 이상 제기능을 할 수 없다. 알콜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수전의 옆 병상에 있던 여자는 폴에게 물어본다. "네 할머니는 왜 병원에 오셨니?" 라고. 사랑은 수전에게 무엇을 남겨놓았을까. "네 할머니는 왜 병원에 오셨니?" 라는 문장을 읽고 약과 알콜로 인해 눈빛이 탁해진 수전에게 감히 묻고 싶었다.
책을 읽지 그랬어요, 수전_ 이라고 속편한 소리가 나오는 건 아마 내가 책에서 모든 걸 대체하려고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의 인생에 함부로 훈수 둘 일이 아닌데 또 훈수를 두고 있다. 만일 내 친구가 수전과 같이 맹목적이고 대책 없이 어린 남자애와 사랑에 빠진다면,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뭔 훈수질을 할 수 있으려나. 그나마 이 소설에서 제일 호감있게 다가온 이는 수전의 친구 조운이다. 알코홀릭 친구 조운과 알코홀릭 남편 사이에서 술 마시기를 저어하던 수전이 사랑을 얻어 도피를 하면서 기껏 한 일이 싸구려 위스키를 들이붓는 거였다. 사랑을 파국으로 결말맺는 일은 소설 속에서도 역시 괴롭다. 그렇다면 사랑에 몰래 빠진 내 친구들이 파국을 맞이하려나. 그또한 바라지 않는다. 어긋난 사랑 -그렇다면 제대로 된 사랑은 뭔데? 라고 수전이나 조운이나 폴이 물어보면 또 어버버할 수 밖에 없지만- 을 하는 과정은 주변인들을 한숨짓게 만든다. 수전이 사랑의 도피를 행하고 애인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법률 공부를 할 때 페미니즘 공부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람들과 어울려 독서모임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수전은 페미니즘 공부가 끝나고 독서모임이 끝난 후 아무도 모르게 싸구려 위스키를 꿀꺽꿀꺽 마셔댔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사는 인물이다 수전은. 먼저 읽은 이들이 쓴 [연애의 기억] 리뷰를 찾아 읽어보았다. 번역에 대한 불평이 많던데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은 말의 표기법이 좀 어색한 걸 제외하고는 만족스러웠다. 표지에 대한 이야기도 원서 표지와 더불어 많던데 한역본은 좀 표지가 달달하게 나오긴 했다, 마치 로맨스소설 표지처럼. 하지만 소설을 읽은 이들이라면 이 여인이 행하는 포즈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을 다 읽고난 후 표지를 보니 절망적이고 암울하게 다가왔다. 산뜻하지만 사랑의 불행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영어를 좀 읽을 줄 아신다면 꼭 영어로 읽기를 강추한다는 평을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보았다. 줄리언 반스의 [The sense of an ending]을 완독 후 이 책을 읽어볼까 한다. 로맨스는 로맨스의 힘이, 로맨스가 아닌 소설은 그 소설이 갖고 있는 힘이 각각 다른 영어 단어로 표기되어 있다. 시댁으로 갖고 가는 책은 이렇게 두 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