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클린 우드슨의 [Feathers]를 아침 완독. 에밀리 디킨슨의 시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의 1연이 책 시작 전 적혀있다. 희망은 날개 달린 것_번역된 이 시는 굳이 에밀리 디킨슨이나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두번 들었으리라. 에밀리 디킨슨의 이 시를 학교에서 배워갖고 와 엄마에게 시 이야기를 해주는 프라니 모습이 인상 깊었다. 197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고속도로를 가운데 두고 도로 이쪽편에는 흑인들이 살고 있고 저쪽편에는 백인들이 살고 있다. 어느날 이 흑인 학교에 백인 남자아이가 전학을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의 큰 틀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프라니의 오빠와 지저스라고 불리우는 백인 남자아이와 학교 친구들 이야기, 다 늙은 나이에 임신을 한 엄마. 프라니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이어지는데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학교를 좋아했는지 알았다. 딸아이가 읽는 소설 이야기 잠깐 해주면서 투명인간 이야기. 왜 투명인간이야? 물어보니 존재감이 제로여서 학교에 있는 그 누구도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해. 그래서 아이는 투명인간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내. 나는 투명인간이다 하고. 등을 밀어주면서 엄마도 학교 다닐 때 그랬어, 맨날 책만 읽고 목소리도 모기 같다고 해서 투명인간 같았어. 말도 안돼. 웃으면서 응, 근데 그랬어. 그런데도 학교를 좋아했어? 아이가 물어보았다. 잠깐 기억을 떠올려보니 응 엄마는 학교를 좋아했어. 배울 것들이 많아서 좋았어. 자클린 우드슨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업 장면들 읽으면서 다시 깨달았다. 나는 학교를 좋아했구나 하고. 프라니가 아빠에게 아빠가 가본 곳 중에서 제일 아름다웠던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았을 때 아빠가 캘리포니아와 여기, 라고 답하는 씬 확 박혔다. 그래, 캘리포니아를 꼭 가봐야겠군 다시 이런 마음 들었다. 프라니의 오빠 Sean이 프라니에게 하는 다리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여기와 저기를 모두 이어주는 다리.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두 세계를 모두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는 것. 너는 이미 그런 존재라고 Sean이 프라니에게 이야기해줄때, 그 장면도 확 영혼에 박혔다. 너무 감동적인지라 옆에서 책을 읽는 딸아이에게 구절들을 모두 번역해서 읽어주었다. 아이는 별로 큰 감흥이 있는 거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멋지지 않니? 딸아, 너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모두 활보할 수 있어. 엄마도 그런 존재가 되면 정말 좋겠다! 열에 들떠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알았다. 왜 세상에 역관이 제일 멋있어보이는건지.

지저스 보이는 나는 저 세상(백인들 동네)에 속할 수 없어서 이곳으로 왔어_라고 프라니에게 이야기한다. 지저스 보이는 백인인데 체육관에서 우연히 만난 지저스 보이의 아빠는 흑인이다. 저쪽 동네 살때 이야기인데 아빠랑 나랑 신나게 공원에서 놀고 있을 때 경찰이 다가와서 아빠(흑인)가 나(백인)를 괴롭히는 줄 알더라구. 지저스 보이의 엄마, 아빠는 모두 흑인이다. 그러니 지저스 보이도 그렇고 악동 트레버(트레버의 아빠_ 백인, 트레버는 백인의 외적 특징을 갖고 있고)는 두 세계를 이어줄 수 있는 인물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지저스 보이도 악동 트레버도 그냥 아이들일뿐, 어딘가에 종속되어있다는 정체감 없이 계속 헤매게 된다면 그 슬픔의 무게가 너무 무거울 거 같은데 소설의 분위기로 봐서는 두 아이 모두 단단하고 부드러운 성인들이 되어 세상에 나갈듯 싶다. 종교에 대해서 친구 사만다와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씩 깨우쳐가는 프라니 서술 방식도 좋았다. 사만다에게 설명을 하면서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장면. 사만다는 뭐래, 너 뭔 소리 하고 있는거야? 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지만 프라니는 나는 이해했어, 나는 알겠어, 그러니 제대로 된 말을 하고 있는거야 하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 무속인이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몇 문장들이 묶여서 인터넷상에 돌고 있는 걸 보았다. 그러니까 점을 보러 가지 마, 점보러 가지 말고 자신을 믿어, 자신을 좀 사랑해봐, 라고 문장은 시작된다. [책 읽어주는 남자]도 불현듯 겹쳤다. 내가 내게 쪽팔린 짓을 했을 때 세상이 그 쪽팔린 짓을 알까봐 두려움에 떠는 게 아니라 내가 내게 너무 쪽팔려서 죽고싶을 때,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_ 그것도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장면과 부합된다. 그러니 일단 세상이 알까봐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이 모두 다 알까봐 너무 쪽팔린 짓을 했을 때 그 벼랑에서 다시 시작을 말하려면 내가 나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선 아닐까 싶기도. 소설의 장면이 겨울이어서 귤 까먹으며 읽는 재미도 더해졌다. 응 그러니까 나는 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군. 학교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학교를 좋아했다.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고 맨날 도망치고 싶어했지만 실상 도망치고 싶어한 그 마음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된 정체성을 찾고자 함 아니었을까. 영어덜트 소설 좋아한다고 했는데 아니었어, 이 수준이 딱 내 수준이로군 하고 깨닫고 완독 후 자클린 우드슨의 책 다섯 권을 주문했다. 얼마 전에 영어듣기 공부할 때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어려울 거 같노라고 아무래도 지금 미국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노라고 기자가 말할 때 나는 아메리칸 드림 이룰 일도 없는 사람이지만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Feathers] 읽는 동안, 사대주의도 사대주의지만 개 같은 짓도 많이 했지만 나는 그들의 경계없음, 광대한 포용력이 좋아서 더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실력은 원하는 만큼 늘지 않고 있지만.

Each moment, I am thinking, is a thing with feathers. (118)







+ 아침 다 먹고 차 마시면서 민이랑 버지니아 울프 언니 이야기 잠깐 했다. 아이는 Who 시리즈로 읽은 버지니아 울프 가 전부인데 나도 나중에 울프 언니처럼 저렇게 침실 위에 책장 예쁘게 만들고 싶어, 한 칸이라도. 응 그것도 좋지. 그리고 이번 겨울방학때 울프 언니 가로등도 읽어보려고 엄마. 해서 울프 언니 소설 중에 가로등이라는 제목이 있던가 싶어서 아가, 혹시 [등대로]를 말하는 거니? 그랬더니 부끄러워서 미친듯 웃더니 얼굴을 못 들더라. 가로등이나 등대로나 빛은 빛이니까 ^^;;;;; 하니까 그냥 이럴 때는 가로등이 등대로구나 하고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냥 모른 척 해주지, 그걸 꼭 지적을 해야해?! 소리를 질러서 엄마 앞에서는 괜찮은데 다른 데 가서 등대로를 가로등이라고 말하면 그건 좀 아니지 않니....... 하니 응 그건 그렇지 하고. 울프 언니가 양성애자라는 것도 후에 나왔나? 하니 응, 나왔어. 남자도 여자도 사랑했노라고. 그래서 그 이야기 좀 하고 레너드 울프 이야기 하고 비타 이야기도 좀 하고 자살 이야기도 좀 했다. 근데 엄마, 울프 언니 작품 다 읽었어? 물어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니까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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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16 1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결론은 따님의 승??ㅋㅋㅋㅋ
가로등이 이겼어요^^
어서 울프 언니 책 읽고 고개 들 수 있는 비타님 되시길~~^^
그리고, 이웃집 알라디너 이모도 고개 못든다, 더라고 전해 주세요ㅜㅜ

vita 2022-01-16 23:22   좋아요 3 | URL
가로등이 이겼습니다 책나무님 ㅋㅋㅋㅋㅋㅋ 버지니아 울프 전작 읽기가 작년 목표였는데 두 권 읽은 게 전부네요 ㅠㅠ 우리 올해에는 울프 읽기 두 권 정도 추가해볼까요?

단발머리 2022-01-16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클린 우드슨 얼굴 한참 보고 가요. 이 책도 ‘읽고 싶어요’입니다. 당연히!!

vita 2022-01-16 23:21   좋아요 2 | URL
닮고 싶은 얼굴이에요. 우리가 동년배잖아요 단발님. 우리 예순 즈음에 지금보다 조금 더 예뻐지면 좋겠어요. 여기서 예쁘다는 그러니까 자클린 우드슨 언니 이쁨이요.

바람돌이 2022-01-17 0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딸과 버지니아 울프 얘기를 하는 비타님 복받으신 분. 저는 어릴때 책도 많이 읽어주고 했는데 왜 이놈의 딸들은 게임만 하고 있는것일까요? ㅠ.ㅠ 제가 영어 원서를 안 읽어서 그런걸까요? ㅠ.ㅠ

vita 2022-01-17 18:55   좋아요 1 | URL
민이도 웹툰 많이 보고 게임 많이 해요 ^^ 저도 얼추 마음은 비우려고 해요. 직접 알아서 펼칠 날이 있겠지 싶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