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부랴부랴 대홍수처럼 불어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 없어 조급해하고 초조해서 발을 동동 굴리며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이 먹으로 물들 무렵 교실 안에서 사각사각 샤프펜슬 굴러가는 소리가 너무 지겨워져서 도망치고 싶었던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문득 아침 떠올랐다. 나는 아무래도 여든을 넘기기는 힘들 거 같아 마주앉아 밥을 먹던 엄마가 그래서 또 어린애처럼 발을 동동 굴리며 싫어 싫어 최소한 아흔까지는 살아야 해 싫어 싫어 견딜 수 없어 화가 잔뜩 난 수컷 염소처럼 무언가를 들이받을듯 머리에서 김이 슉슉 솟아올랐다. 달콤한 돼지갈비살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 내 새끼 밥 위에 얹어주니 엄마는 나랑 할머니랑 없으면 못 살겠네 오물오물 씹으며 이야기해서 상상만 해도 싫지 그럼 나도 콱 죽어버려야지 방실방실 웃으며 말하니 그럴 거 같은데 못 그래, 우리 엄마 갑자기 가셔서 나도 따라가고 싶었는데 갓 돌 지난 네가 있어서 엄마도 못 죽었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모두 한날 한시 같이 가면 좋을 거야. 얼마 전에 내 친구가 나 죽고난 후 내 새끼 이 세상에 남아 살다 사라진다 생각하면 어때 물어서 너무너무 싫어서 답도 제대로 안 나왔어 중얼거렸다. 그래서 난 백삼십세까지 살아야해, 엄마도 백살까지 살자 하고 그럼 슬픔이 좀 사라질까 했다가 지겹게 그 나이까지 어떻게 사나 엄마가 말할때 순간 백세 노인이 된 것 같아 황망했다. 얼른 제정신을 차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바람을 뚫고 카페로 들어갔다. 바라는 게 많다는 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뜻일까.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다는 뜻일까. 사람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별들의 흐름에 내 운명과 내 시간과 내 인생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별들의 흐름상 이러저러한 운명의 실들이 엮여 있노라고 그런데 그걸 미리 알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냐고 피할 것들은 피하고 방지할 수 있는 것들은 방지할 수 있으니까. 다시 숫자를 새기고 다이어리를 펼치고 사랑하고싶은 것들과 사랑하는 것들 사이 접어놓았던 책갈피를 펼쳤다가 다시 접는다. 태어난 그대로 살아가면 그게 제일 행복한 거라고 모양을 변형할 필요도 없이_ 그게 좀 신기했다. 뭔가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냥 관뒀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하고난 후에 친한 동창 옥이와 함께 종로에서 만나 사주팔자를 봤을 때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이러저러한 말을 중얼중얼거리다가 객사하게 된다고 길 위에서 죽게 될 거라고 말했다. 오호라 하고 나는 신기했다. 옥이가 엄청 화를 냈다. 아니 왜 화를 내냐 이해할 수 없어 물어보았다. 객사하면 길 위에서 죽는다는 거고 길 위에서 죽는 죽음이 좋을 까닭이 뭐가 있겠는가 집에서 가족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죽어야 그게 좋은 죽음이지 하고. 자유롭게 길 위에서 살다가 죽는다는 거잖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가 길 위에서 죽으면 그것도 객사고. 굳이 가족들 다 보는 앞에서 죽을 까닭도 없는 거고. 사방팔방이 막힌 공간에서 그러는 것보다든 사방팔방 뚫린 곳에서 죽는 게 좋지. 시원하고 마지막을 맞이하기에도 좋고. 이야기했더니 더 화를 냈다. 옥이가 무슨 별자리였더라 음. 그런데 그 일화가 떠올랐다. 객사를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다 제각기 다른 거구나 그때 알았다. 병원에서 몸 곳곳을 바늘로 뚫려 생명을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진다. 친구가 한정원의 [시와 산책] 좋아 죽을 거 같아 할 때도 응 그래, 잘 썼다고 하더라 흘려들었다가 너나할 거 없이 모두 읽던 시와 산책이 매대에 보이지 않게 될 무렵 샀다. 읽으면서 오 이런 진작 살걸, 진작 읽을걸 하고 후회를 쥐똥만큼 하며 아침 읽는다. 캐롤은 12월 내내 흘러나올 것이고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인생을 위해서 연말 마무리와 연초 맞이를 시작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도 12월에는 이런저런 계획을 잔뜩 세워봐야지. 어젯밤 엄마 이마 주변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맥주를 시켜서 꿀꺽꿀꺽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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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28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머리카락 정말 안쓰러워요. 그게 또 유전이라 저와 여동생에게 오니 서글퍼집니다 ^^ 그 오래전 야간 자율학습 시간 그때의 건강함이 그리워지는 ^^.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잘살수 있을까요~ 무의미한 질문이지만 왠지 그리운 그 시간.

vita 2021-11-28 15:49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엄마 유전자 물려받아서 나중에 좀 무서워요 ^^;;; 저는 야자 시간 절대로 그립지 않아요 ㅋㅋㅋㅋ 오히려 지금이 더 낙천적이라서, 그땐 너무 우울하고 괴로웠어요 ^^;;;; 친구들 만날 때 저도 가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_ 하고 묻지만 다시 또 그만큼 방황할 테고 넘어질 테고 그럴 거 같아서 더 잘 살 자신이 없어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이 행복해서 그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