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가 글을 쓸 수 있었던 생의 바탕에는 엄마라는 존재가 끼친 영향 지대했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성에 초점을 두고 그들의 인생 여력을 간단하게 살필 수 있어 좋았다. 콜레트 작품을 아직까지 접해보지 않았으니 천천히 읽고 보부아르는 더 깊이, 뒤라스는 더 넓게 읽기로. 애증이라는 말이 접착제처럼 찰싹 달라붙는다. 사랑이 넘친다는 건 어떤건가. 사랑의 결핍은? 타이거맘이건 히피맘이건 결국 딸에게 꼼짝할 수 없는. 광기일수도 있고 집착일 수도 있고. 다 읽고나니 뜬금포로 나혜석이 떠올랐다. 더 하고싶은 말은 있지만 아직 정리를 하지 못한 관계로 여기까지. 아이를 낳고나서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동안 나는 모성애가 참으로 부족한 인간이구나 그런 엄마로구나 하며 자책했는데_ 들끓는 모성애 후유증으로 나와 같은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보았기에 더 쿨하게 굴려고 그랬던 것도 같고_ 순환 과정은 되풀이된다. 인지하건 그러하지 않건 들끓는 모성애는 갱년기를 맞이해 활활 들끓는다. 이걸 어떤 식으로 순화시켜야 할지가 문제. 탯줄을 끊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할지. 과연. 



 












































어머니와 딸 사이에 골이 생겨나 점점 깊어진다. 하지만 자신이 받은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한 프랑수아즈는 딸들과의 정서적 유대를 회복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어머니는 딸들을 질투 섞인 눈으로 지켜본다. 딸들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는 게 싫다. 달리 말하면 결국 딸들의성장을 지켜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어머니는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놓도록 한다. "나는 어머니가 방에 앉아 열린 문으로 지켜보는 눈길을 견디며 공부해야 했다. 보부아르가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 꺼내놓은 기억이다. 어머니는 밤낮으로 한순간도 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딸을 향한 관심이 어머니를 사로잡아 잠식했다." 투명성을 강요한다는 건, 아이에게서 그만의 비밀공간과 내밀한 영역을 빼앗는다는 건 얼마나 큰 폭력인가. - P185

몽파르나스 대로 103번지에서 렌 거리까지 그리 멀리 옮겨온 것은 아니지만, 시몬은 유년 시절과 통째로 멀어진 느낌이다. 유년은 멀어졌을 뿐 아니라 꿈마저 기차처럼 줄줄이 엮어 전부 가져가버렸다. 새로 이사 온 이 집은 난방도 되지 않고, 욕실은 하나뿐이다. 집 안 어디나 냉기가돈다. 아버지가 서재로 쓰기로 한 방에만 난로가 놓여 있다. 연통에서 소리가 나긴 해도 어쨌거나 난로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반면 시몬과 엘렌이 같이 쓸 방에는 앉아서 공부할, 혹은 아래로 들어가 숨을 책상 하나 없다. 부모의 시선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놀이와 독서, 자유로운 사고 연습은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계발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게 해준다.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할 - P201

수 있을지 생각해볼 자유롭고 때로는 심심한 시간을 마련해주는 일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시몬이 금방 알아차린 바와 같이, 그 방은 어머니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그 방에 내밀한 공간은 없다. 사방으로 노출되어 집 안의 모든 소음이 드나든다. 그 방에서 시몬은 ‘빅 마더‘의 감시하게놓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곧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나쁜 생각을 해서는 안되며, 일거수일투족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 P202

말과 행동은 거침없고 솔직하다. 선생들을 대할 때조차 주눅 드는 법 없이 자연스럽다. 시몬은 그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 아이는 활기차고, 표정이 풍부하다. 웃음이 터지는 대로 꾸밈없이 웃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얌전을 부리는 법은 없다. 장난기 많기로는 마치 원숭이 같아서 선생들의 말투와몸짓을 그럴듯하게 흉내 내곤 한다. 한마디로 당돌하고 매력적인 아이다.
그런 성격은 그 아이 안에 상처 받기 쉬운 뭔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시골에 갔을 때감자를 굽다가 허벅지에 3도 화상을 입고 죽을 만큼 고생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경험, 어린 나이에 겪은 극한의고통이 자자의 성격을 단련해주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자와 시몬은 전교 수석 자리를 놓고경쟁하는 관계가 된다. 선생과 부모 들은 둘 사이의 이런 경쟁을 반긴다. 사내아이들처럼 경쟁을 통해 서로가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권장하는 우정의 유형이다.
자자는 시몬의 반항적인 쌍둥이다. 이 쌍둥이를 통해 시몬은 자신의 유년을 이해하고, 다소 냉랭해진 부모와의 관계를 벌충한다. 시몬을 내면의 감정에서 해방되도록 한 사람 역시 이 친구다. 자자는 시몬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게 하고,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표면으로 끌어내 바라보게 해준다. - P207

시몬은 립스틱을 집어 입술에 바른다. 다소 얇게 바른셈이지만 마음에 든다.달걀형 얼굴은 어머니를 닮았고, 눈과 광대뼈는 아버지를 닮았다.
이제 시몬은 자신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예전에, 좁은 욕실 세면대 위에 걸린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던 열두살 여자아이의 눈에는 어째서 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때 시몬의 눈에 비친 것은 추한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시몬은 추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시몬을 평가하는 눈에 쫓겨 그저 불행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시몬을 표정 없는 뚱뚱한 여자아이로 바꾸어놓았을뿐이다. 거울 앞에 선 시몬은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어머니의 눈이었다는 것을. - P249

"시몬…… 내 병이 다 나으면…… 나와 함께 로마에 가주겠니?"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몬은 어머니를 살핀다. 열에 들뜬 듯한 어머니의 눈이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시몬은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어머니는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시몬 속의 어떤명랑한 기운이 고개를 든다. 칭찬받고 싶은 어린 여자아이가 된 기분이다.
"그럼요, 엄마. 미네르바 호텔에 모시고 갈게요. 거기 가면 로마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요." - P269

시몬은 다시 울음을 쏟아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사르트르, 그래도 살아야지. 끝까지 살아야 해. 지금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어울리지 않는걸 알지만, 이야기하고 싶어. 나와 넬슨 사이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아. 그건 삶의 여담 같은 것이니까. 사르트르, 정신은 아무것도 아냐. 우리를 지배하는 건 바로 육체야!
그러니 우리가 어떤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그렇게 맹렬히사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자문해봐야 해. 개념을 좇다가 삶을 놓치고 있어. 우리는 이미 안전선을 넘어갔어.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시몬은 목이 멘다. 한번도 운 적이 없다가 오늘 처음으로 울어보는 기분이다. 분노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눈물을 쏟아본 적은 없었다. 전화선 저편에서 사르트르가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이고 있을 것이다.이윽고 그가 비음이 섞인 느릿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살아야지, 더 치열하게, 당신 말이 옳아, 카스토르, 살아야 해. 살면서 사랑하고 글을 써야 해, 글을 쓰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해, 어디로든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 다만 전보다 더 치열하게 나아가기만 하면 돼." - P274

어느날 시도는 우스꽝스러운 작은 외투가 옷장에 걸려있는 것을 본다. 콜레트 대위의 낡은 외투를 잘라 만든 그외투다. 시도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네 외투가 이것 말고는 없니, 투투 셰리?" 어머니가 딸에게 묻는다.
가브리엘이 당황하자, 그 수척한 얼굴, 뾰족한 턱이 더욱 가늘어 보인다. 딸은 거짓말을 하는 데 서툴다. 시도는 주먹을 말아쥐며 입술을 깨문다.
딸이 파리에서 번듯한 외투 한벌 없이 지냈다는 사실이 어머니의 가슴을 무너뜨린다. 사소한 일이라도 그 의미를 놓치는 법이 없는 시도는 딸의 외투 하나로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
"내가 한벌 사줄게! 지독한 구두쇠구나, 그 남자." 시도의 목소리에 분노가 배어든다. 시도는 자신의 다람쥐털 코트를 걸치고 곧바로 루브르백화점으로 달려간다. 그가 가브리엘을 위해 고른 것은 몽골산 고급 모직 외투로, 가격이 125프랑이나 나간다. 딸을 향한 보호본능이 최고도로 발휘된 것이다. - P375

콜레트는 자신의 굽은 손을 뻗어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아름다운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앙상한 시도의모습이 어느새 겹쳐지는 건 왜일까? 시도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악몽을 꾸듯 요란한 딱딱이 소리로 바뀌는 건 무엇 때문일까?
"널 기다렸어, 미네 셰리…… 아주 오래 기다렸는데... 넌 오지 않았어…."
콜레트는 어머니를 보고 있는 게 고통스러워 침대에서돌아눕는다. 아니라고 항의하듯 머리를 내젓는다.
"엄마가 내게 말했잖아요. 검은 상복이 싫다고. 내가장밋빛 옷, 푸른 옷 들만 입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잖아그러니 나를 이해해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도 엄마잖아요……"
"이해하지, 미네 셰리, 하지만 나는 네가 정말 보고 싶었어…… 지금은 행복하단다, 네 오빠 아실이 내 곁에 있거든."
"오빠에게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 해주세요. 내가 사랑한다는 말도 전해주세요. 그런데 엄마….… 내가 자랑스러우세요?"
"넌 대작가가 되었어, 미네 셰리. 뜻을 이루었지. 너는 내가 이룬 최고의 작품이고……" - P402

작가는 고양이를 닮은 그 눈을 가볍게 내리감는다. 딸 벨가주의 재기발랄한 얼굴이 떠오른다. 앙리 드 주브넬과의 결혼으로 얻은 딸이다.
콜레트는 딸이 자신을 보러 와주기를 바란다. 불운한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벨가주는 매번 자기 일에 대해, 어떤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서운해서 딸에게 뿌루퉁한 반응을 보인다. 어머니와 딸의 장면은 이렇게 세대를 이어 되풀이된다.
죽음이 이 장밋빛 쿠션 위로 찾아오면 콜레트는 뿌리치지 않을 생각이다. 친구를 맞이하듯 맞아들일 것이다. 친구가 내미는 손을 잡고 눈을 감을 것이다. 그러면 친구의얼굴은 어머니 시도의 얼굴, 조금도 늙지 않은 그 잿빛 눈, 풍성한 금발의 그 얼굴일 것이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의 폭신한 가슴에 머리를 파묻을 때이 배 속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아늑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릴 적의 그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일 것이다. 콜레트는 눈을 감는다. 어머니 시도는 편지에 이렇게 써 - P407

보내곤 했다. "내 사랑의 크기만큼 너를 껴안아 내 안에 품는다."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다면 죽음은 아주 아늑할 것이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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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9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19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1-11-19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타님은 이 책을 다 달려버리시었다!!! 멋쟁이 😉

vita 2021-11-21 09:14   좋아요 0 | URL
뤼스 이제 읽어야지요 우리~^^

프레이야 2021-11-23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글처럼 질투의 눈으로 보는 어머니를 느낀 적이 많았어요. 학생 때 일기나 다른 글을 쓰면 꼭 비평을 달며 지적하고 한번도 칭찬한 적이 없지요. 나름 상처였는데 그게 그런 질투의 시선이었다는 걸 크면서 알게 되었어요. 예전엔 매사 비평적인 말이 목을 조이더니 이제는 그 지경도 다 넘어서게 되더군요.
글 쓰는 딸들, 찜해 갑니다 ^^

vita 2021-11-24 13:42   좋아요 0 | URL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가 다층적이라서 질투도 가능할 거 같아요. 온통 질투로만 새겨진다면 그것도 슬프겠지만요. 전 읽는 동안 모녀관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어요. 즐겁게 읽으시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