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 제2부 현대 여성의 삶 제2편 상황 제1장 기혼 여성 편 간단하게 정리.

여자는 결혼하면 세계의 작은 일부를 영지로 받는다. 법적 보증이 그녀를 남편의 변덕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그러나 그 대신 여자는 남자의 하녀가 된다. (537)

역시 친구의 친구가 했던 말이 어쩔 수 없이 또 떠올랐다. 부유하고 나이든 한 남성의 첩이 되어서 넓은 평수의 아파트도 자기 명의로 받고 역시 어지간히 넓은 평수의 미술학원도 남자의 도움으로 차린 여성. 돈만 보고 그러는 거라면 또 그렇죠 그럴 수 있죠 그런 이야기 많잖아요 할 수 있지만 이 언니는 부유하고 나이든 남성 진심으로 사랑한다. 내가 그의 첩이 되어 그의 사랑과 돈을 받고 그를 사랑하는 것과 네가 네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가 되어 그의 사랑을 받고 그를 사랑하고 그의 돈을 받아 생활하는 것에 있어 뭐가 그렇게 다르겠는가. 오히려 나는 그의 세컨드인지라 본처로서 행해야 할 것들을 행하지 않아도 되니 내 삶이 오히려 더 자유로운 거 아닌가. 따지고들자면 법적인 안정성을 제외하고 사회 윤리적인 잣대로 너는 옳고 나는 그르다는 걸 제외하고 그렇게 다른 게 무엇인가. 할 때 그렇죠 그렇죠 그럴 수 있죠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 내 세컨드 할래? 라는 제안이 있을 때 나 역시 좋다, 그럼 내가 네게 내 몸과 내 사랑을 줄 터이니 그렇다면 50평짜리 아파트 하나 내 명의로 구입해달라 했을 때 상대방이 아 그건 좀 무리인데 책과 옷은 마음껏 사줄 수 있어 라는 소심한 대답을 듣고 하염없이 웃음이 터져나와 공원 한복판에서 미친듯 웃고말았다. 스카이 대학 나온 어떤 언니도 남 부러울 거 없는 탄탄한 바탕을 갖고 있던 차 새로운 모험을 해보겠노라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영역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실하고 똑똑하고 다정해서 금세 자리를 잡았더란다. 사장은 새로운 지점의 매니저로 언니를 앉히려고 하고 동업자인 사장의 아내는 오케이한다. 언니는 성실하고 똑똑하고 다정하니 금세 새 지점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며. 그리고 상황은 너무 뻔하게 돌아가게 된다. 7년이 흐른 후 광화문 어느 레스토랑에서 모피를 두른 언니와 애인을 우연히 스쳐 지나갔다. 대단한 자신감과 확고한 애정이 깃든 얼굴은 현재의 삶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 법적인 하녀와 법적인 테두리 바깥의 하녀. 그 테두리를 넘어서면 나는 쟤가 될 수 있고 쟤는 내가 될 수 있다. 스쳐지나가는 순간 명확하게 깨달았다. 

바로 권태이다. (614)

아내의 운명은 가난하고 일이 많을수록 한층 가혹하다. 생활이 여유롭고 위안거리가 있을 때는 그녀의 마음도 밝아진다. 그러나 권태, 기대, 실망이라는 공식은 대부분 반복된다. (622)

남녀 모두의 이익을 위해, 결혼을 여자의 '직업'으로 보는 시선을 거두고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여자는 지금도 난처한 존재다'라는 구실 아래 반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자들이 가당치 않은 역설을 늘어놓고 있다. 바로 결혼이 여자를 '사마귀'로, '거머리'로, '독'으로 만들기 때문에 결혼제도를 바꾸고, 전반적으로 여자의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세상이 여자가 자립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무섭게 매달린다. 남자는 여자를 해방시킴으로써, 즉 여자에게 이 사회에서 어떤 일거리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해방될 것이다. (632)

권태로 이 모든 일들은 따박따박 일어나고. 하녀 혹은 노예. 사랑은 있으면 좋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한 배를 탄 전우들이니. 이런 소리를 너나없이 하게 되고. 결혼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문제시되는 건 이 권태인데 남자는 남자로서 이 권태를 '밖에서' 처리할 수 있다 치자. 그럼 가정 안의 여자는 이 권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까. 보부아르 언니라고 현명한 대책을 마련해주는 건 아니지만 가정 안에서 남편이 주는 돈으로 살아가면서 그 권태를 현명하게 처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거야 라는 조언은 해주신다. 행복인가 자유인가. 민이 어렸을 때 이혼하려고 실질적으로 이것저것 알아볼까 하던 중에 한동안 연락 끊고 지낸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리얼한 세상이 어떤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_ 결혼하고 몇 년 동안 박혀서 살림과 육아만 했으니_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이혼을 말렸더란다. 능력 있는 언니들도 이혼해서 다 폐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너는 네 생계를 이어갈 마땅한 일도 시작하지 않은 마당에 어떻게 이혼을 하겠다는건가. 백프로 후회할 것이다 정 하고 싶다면 너와 네 딸아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생활을 이어갈 정도의 월급은 받을 수 있는 일을 해라. 그럼 이혼하는 거 찬성하겠다, 너의 이혼으로 너만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게 아니라 네 딸도 그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다. 단 한 번도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네가 그 고통의 불구덩이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간다면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 너를 말릴 것이다 해서 아니 내 인생인데 왜 네가 돈 몇 푼으로 사람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냐고 맥주를 마시며 벌컥 화를 냈더니 인간아 세상이 어떤 건 줄 알아 하면서 울면서 제발 하지 마 이혼 해서 당황스러웠다.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돈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두고두고 그 친구 말이 백프로 옳았다는 걸 깨닫게 되고. 기혼 여성 편 읽는 동안 결혼한 내 친구들, 결혼한 선배들, 이혼하고 살아가는 친구들 인생을 이리저리 겹쳐보았다. 결국은 자립이라는데 그러하다는데 하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자유와 행복이라. 라 그랑드 아방뛰흐라. 결혼이란 제도 자체를 바꾼다는 게 가능할까. 더구나 프랑스도 아니고 한국에서. 가능하리라고 본다. 하지만 내가 이 제도 속에 머물러 있는 한 결혼 제도가 얼마나 혁신적으로 바뀔지 그건 모르겠다. 결혼 제도가 갖는 불충분함과 단점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확실한 건 여성의 삶에 있어서 결혼이란 제도 자체는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 요소가 많다. 자유와 행복을 굳이 덧붙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 딸아이가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 친구들이 엄마들에게서 들었다는 이야기. 결혼 절대 하지 마! 자유롭게 너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살아!와 결혼해서 너도 나 같은 딸아이 낳아서 고생 실컷 해봐! 결혼이 인생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 선택 조건이라는 사실을 딸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은 알고 있다. 다음 장은 어머니_ 이 챕터도 결코 쉽지는 않을듯.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덧붙이자면 경제적인 자립이 없고서는 실존으로서 우뚝 자립도 불가능하다는 보부아르 언니 말은 일견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는. 갈등과 방황을 끝내고 내가 내린 결정은? 비겁한, 껍질만 페미니스트_ 보부아르 언니 이론에 의하면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비겁하고 안온한 껍질 속에 내내 갇혀 있기로 결정한 껍질뿐인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르겠다. 왜 자학해?! 자학하지 마! 라고 눈물 아이콘 덧붙여야 할 자리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자학이 아니라 팩트니까 괜찮아. 팩트를 냉정하게 서술하는 건 아이엔티피의 장점이야 라고 하고 결정내리기 전에 시간 좀 더 모아보도록 하자. 결정을 내리긴 내릴 수 있겠니. 으악.






















  보부아르 이 책 읽기 전에 읽어야 하는 책이 있으면 알려주세요_라는 비댓이 달려서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알라딘의 다락방님 서재 가시면 여성주의 책 쫘악 나와요, 거기 참고하시면 될듯 해요, 알려드리고 저는 이 책과 이 책을 읽고 페미니즘을 좀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했다. 다시 읽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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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10-25 1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혼 여성>을 필두로 그 뒷부분 읽으면서 참 복잡다단한 생각에 매여 있었더랬죠. 저는 이번에 두 번째 읽잖아요(자랑일까? ㅎㅎㅎ ) 그 때와는 또 다른 구절이, 어쩌면 잊어버렸던 구절이 새롭게 막 등장하고 그러는데, 현실을 알려준 보부아르가 밉기도 하고,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나의 현실이라는 게 있고, 또 한편으로 변명하고 싶기도 하고, 나약하게 징징대지 말자 하는 한쪽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면서.... 아직 글을 쓰지도 않았는데 쓰기 전의 제 맘과 머리속이 완전 난장판이었어요.
비타님 글 읽으면서 위로가 되네요. 우리의 현실을 인정하고 팩트를 냉정하게 서술하면서, 우리가 어떤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지, 혹은 될 것인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봐요, 비타님.
좋은 글... 고마워요....

vita 2021-10-26 09:48   좋아요 0 | URL
재독은 자랑하셔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저는 실패했다가 다시 읽어서 그런가 더 좋네요. 현실을 알려준 보부아르 언니는 좀 밉기도 해요. 어쩔 수 없지요. 아픈 곳 막 찌르는데 쿡쿡 쑤시는데 안 아프다고 하면 밉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비겁한 페미니스트가 되어도 괜찮을까 싶은 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이지만 어쩌면 한편으로는 살만하니까 이렇게 비겁하게 안온함을 추구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페미니즘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거기에 방점이 찍혀서 저는 어쩐지 읽으면 안될 거 같았어요. 읽으면 더 괴롭기만 할 테니까 그걸 알아서 많이 주저했고 중간중간 힘이 빠지기도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알고 당하면 좀 덜 억울할 거 같다? 이 마음이 들더라구요. 모르고 당하면 미치기만 할 따름이지만 알고 당하면 미쳤다가도 빠져나올 구멍이 있을 테니까. 부족한 읽기 친구에게 언제나 응원만을 보내주시는 단발님께 언제나 감사함만을.

공쟝쟝 2021-10-25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계 안에서의 자유가 엄연히 있는 거 잖아요. 전체를 볼 줄 안다고 해서 한계 이상의 도약만이 자유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하진 말아요. 보부아르언니도 원치 않을거예요. 행복한 페미니스트가 되자. 물론 행복해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ㅋㅋㅋ (매일이 분노와 딥빡으로 점철된 나날들...)

vita 2021-10-26 09:49   좋아요 1 | URL
이제 괴로워하지 않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통은 예전에 벌써 끝냈어요. 그러니까요. 행복해지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여겨요. 어디에서 감히 행복을 말해! 자유롭기만 해도 좋잖아! 보부아르 언니가 그러시지는 않을 거 같아서 후후 곧 봐요 사랑스러운 쟝쟝님

책읽는나무 2021-10-25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내가 만약 이혼을 한다면??그런 생각 한 번씩 해보곤 하거든요!!
근데 곧 생각을 접어버리는 이유가 늘 경제적 독립이 안될 것 같은 이유가 너무 커서 언감생심.....아서라 아서~~그리되곤 하더라구요!!!! 결론이 좀 비굴해지죠ㅋㅋㅋ
주변 지인들이나 친구들과도 한 번씩 서로 이혼에 대한 의견을 공유해 보는데 늘 결론이 경제적 자립이 큰 걸림돌이 된다는 거에요ㅜㅜ
지참금을 주고 결혼하던 옛시절이나 현재 지참금을 내지 않더라도 스스로 당당하게 결혼한 지금이나 아마도 여성들이 느끼는 한계는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싶습니다.
결혼생활이 그러한 문제의 속박이 주가 되어선 안되고 무조건 사랑이 근본이어야 한다고 주입??시키며 살고 있지만...늘 머리가 갸웃거려지게 되는 문제였어요.
내가 결혼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았더라도 제대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하구요....지금은 뭐 결혼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살아보는 게 우선 아닌가??결론 내리다가 늙은 갱년기 여성편에서 좀 휘청했네요.
너무 내얘기 같아서요ㅋㅋㅋ
삶의 정답은 없는 거겠죠???

vita 2021-10-26 09:53   좋아요 2 | URL
이혼 생각하다가도 이혼 못하겠다 싶은 게 경제적 독립이 불가하니까_ 이건 비굴한 건 아닌 거 같아요.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도 있지만 자유롭게 결혼 제도 바깥에서 지내고 싶은 독립심도 자연스러운 거 같아요. 로또가 되면 이혼하겠다는 여자사람친구들이 정말 많습니다 제 옆에는 ㅎㅎ 결혼했으니 그걸 선택했으니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 것도 한 선택이고_ 그러니 이제 성숙기와 노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거기에 경제적 독립까지 한다면 좋겠지만 생각해봐야 할 때 같아요. 정답이 없다는 말씀이 정답 같습니다. 경제적 독립을 이룬 이들이라고 해서 모두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고 또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트러블들이 있으니까요. 오늘도 휘청거리면서 나아가보아요 책읽는나무님 :)